-연작 자유시-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회상>
-최상규-
< 1 >
햇살이 눈이 부시게 쏟아진다. 이른 아침 하늘은 청명하고
산과 논밭의 광할한 대지위를 싱그러운 풀내음새 맡으며
꼬불꼬불 뚝방 길을 따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약칭 국과수)로
출근을 한다.
국과수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소속 과학수사
연구기관이다. 역사는 6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모든 시설을 다
갖춘 독자적인 건물조차 없이 더부살이로 운영 되어온 설움 많은
국가기관이었다. 마침네 1986년 소리소문 없이 양천구 신월동 331번지
에 작고 아담한 신축건물을 짓고 이전을 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처럼 한적한 곳에 신축건물을 세운 것은 국과수 설립이래 처음으로
부검실을 갖춘 시설을 소유하기 위해서였다. 이전 종로구 청운동과 서대문구
미근동 청사는 도시 한복판에 있어 시신을 다루는 부검시설을 갖추기에는
그 누구도 원치 않아 한계에 부딪치곤 했다. 바로 혐오시설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 생명이 끊어진 시신은 인권조차
박탈당하는 현실이라면 너무 슬프구나!.
신월동 신축 청사 뒤쪽으로는
아름답고 풍치좋은 지양산 산줄기가 끝없이 펼쳐저 있어 맑은 공기와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 비록 오염된 공기가 있어도 금새 말끔하게 씻어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국과수가 신월동에 신축되면서 주변산과 논밭에는 하루가 다르게 많은
주택과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서울 외곽 신도시로 변모하는데
가속도가 붙은 셈이다. 양천구 신월동 331번지에 국과수가 업무를 시작하면서
지역발전에도 크게 기여하는 좋은 일을 한 것 아닌가? .
< 2 >
국과수의 업무는 다양한 분야가 있어 서로 협조체게를 이루는데는 좋은점과
나뿐 점들이 공존하고 있어 자칫 갈등을 겪기도 하는 특수한 기관이기도 하다
법의학, 생물학, 약학,물리학, 화학, 범죄심리 등 약 20여개 분야가 넘도록
다양한 학문의 집합소인 연구기관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신월동 맑은 공기 마시며 연구원들의 긍정적이며 낙천적인 마음 하나 되어 서로
갈등하지 말고 협조가 잘 이루어저야 미궁의 사건이 없도록 감정업무가
효율적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너무 크도다!.
국과수 연구원들은 각기 자기 분야에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나라의 인권존중을
위한 법과학적 연구와 분석시험을 잘 수행할 지어다. 매 업무마다 순간 우울하다가
순간 즐거워지기도 하는 정서적인 기복이 심한 업무인지라 흥미도 있고 보람도
느끼는 스릴 넘치는 연구를 하는 연구원들은 복받은 행운아인줄 알고나 실험에
임하여라! 내가 그 옛적에 그런 정신으로 열심히 뛰며 일했던 경험에서 나온 애기이니
헛소리로 듣지는 말거라! 후배들아! 하지만 항상 냉철한 이성으로 흔들림없이 각기
자신의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해 신속, 정확하고, 공명정대한 실험을 수행하여
전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은 연구기관을 한층 더 하늘 높이 날게 하거라!
범죄자들이 남긴 불의(不義)의 잔재들을 눈에 불을 켜고 증거의 핵심 부위을 찾아
절단하고 채취하여 분석실험이 이루지니까. 한 방울의 피, 한 오라기의 털을 소중하게
다루어 창의적인 연구와 분석을 수행하는 색깔 뚜렷한 한층 높은 수준의 연구기관으로
거듭나거라!. .
이들 실험 결과는 범인색출에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하고, 무고한 사람의 결백을
증명해주기도 하는 인권보호를 가장 중시하는 국과수의 역할은 존중받아 마땅한 중요
연구기관이 아닌가?..
< 3 >
나는 그 누구보다도 유독 국과수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깊은 애착과 희노애락을
같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부터 2005년 사이 나라가 떠들썩 했던
대형참사로 얼룩진 15년 세월을 가장 가까이서 함께한 탓일 것이다.
마침 내가 DNA 감식기법을 미 연방수사국(FBI)에서 연수를 받고 국과수에
유전자감식센타를 신설 하면서 마치 우리 국과수의 DNA감식기법의 능력을 평가라도
하려는 듯 대형참사가 2년 간격으로 계속 발생하는구나!
1993년 서해페리호 침몰사건을 시작으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7년“괌 대한항공기 추락사고, 1999년 화성씨랜드어린이 화재참사,
2002년 김해 중국민항기 추락사고, 그리고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2003년)까지
나는 정말 일복이 터진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한 시간들이었다.
사고원인은 모두가 나라의 안전불감증,그 이면에는 어두운 돈이 잘못 쓰임으로 비리와
부실 투성이의 정상이 아닌 비정상이 판치는 나라였던 것이 다 드러나지 않았던가?
정치와 경제와는 거리가 먼 나로서는 DNA감식법을 우리나라 최초 도입하면서
오로지 과학자적인 양심을 생명으로 DNA연구와 감식을 주업무로 우리나라 과학수사 발전을
위해 얼마나 국내외적으로 많이 뛰었는가?
이처럼 엎친데 덮친 식으로 대형참사가 발생할 때 마다 DNA감식에 의한 신원확인
총 책임이 나에게 맡겨져 심신이 숨막힐 정도로 나의 어깨를 짓누르곤 했지!..
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유가족의 애끓는 슬픔을 애도하며, 현장에 가서 그들을 위로하면서
실험에 정확성과 신속성을 발휘하는데 최선을 다해 왔었지!.
대형참사는 국가의 엄청난 경제적인 피해, 그리고 보상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인명피해는 물론
유기족들의 씻을 수 없는 마음 상처는 나라의 막대한 경제적 피해로 매번 돌아오지 않았는가?
아예 시신조차 찾지 못한 유가족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
시신이 심하게 부패되고 오염되었거나, 아예 시신이 가루가 되어 찾지못한 그 많은
유가족들의 슬픔을 헤아리기에는 그 어떤 좋은 방법이 있을리 없다.
정부는 급속히 제정한 한시적으로 “사망 인증 위원회”를 결성하여 시신 한점 찾지 못한
가족들을 유가족으로 인정하는 절차를 밟아 시신없이 합동장례를 치루어야하는 애끓는
유가족들의 심정은 무어러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게 그렇게 사건은 종료되곤 했었지!
< 4 >
나는 평범한 과학수사 종사자로서 역대 과거 정권들은 매번 그같은 대형참사를
당하면서 모두가 참사의 주요 요인은 비리와 부실로 판명났는데 그 대처가 미흡했는지
대형참사의 재발이 2년 간격으로 계속되지 않았는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정부의
태도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DNA 감식 신원확인 총괄 책임자로서 엄습해 오는 자괘감을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
다만 어찌할꼬나! 어찌할꼬나! 절로 튀어 나온 독백이었지!
15년이란 세월을 보내면서 진작 막았어야 하는 대형참사가 계속 발생했기 때문에
오늘의 세월호와 같은 비극적인 참사가 또 발생한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역대정권이 대형참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깊은 반성을 해도 부족함이 너무 큰 것
아닌가?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하고 모든 책임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데 급급한
정치인들이 목소리만 크면 이기는 시대는 이미 옛날 옛적에 소멸되고 없어졌는지를
알고나 있는지!
< 5 >
이같이 국가적인 큰 재난을 법과학적으로 해결해온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현재는 비록 서울분소가 되었지만, 양천구 신월동에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과학수사
연구소가 존재한다는 것, 양천구의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일 아닌가!.
신월동 터가 좋아 지금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격상되면서 본원이 강원도
원주시 반곡동에서 더 큰 발전을 위한 용트림을 하고있는 것에 찬사와 격려를 보낸다.
요즈음 내 몸과 마음은 세월호의 어린 생명들을 잃은 슬픔으로 과거의 대형참사들이
머리에 떠올라 회상을 하면서, 마치 직업병인양 악몽에 시달리는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극복하기에는 너무 힘이 드는 것, 나이 들어보니까 건강한 노인으로 정상회복이 쉽지 않다는
진실을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곳 조차 없는 내 심정을 누가 알리오! <끝>
첫댓글 홍재숙 님! 시로 고쳐 보았는데 너무 긴 것 같습니다.
하기야 "연작 자유시" 라는 시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개관적으로 읽으시고 삭제할 문단 (중복 된것, 불필요한 것 )은
과감하게 빼버려도 될 부문은 지금 당장 내 눈에는 안 들어 옵니다.
김종상 선생님께 보내서 수정을 요청하면 어떨까요 ?
이처럼 길어도 받아 드릴 수 있는 글이라면 그냥 올려야 내용의
앞뒤가 맞는다고 생각됩니다. 고견을 주세요!
문우님들! 안녕하시겠지요!
저의 "자유 연작시"라고 생각하고 긴 글을 썼는데 읽어 보시고
고견들을 주시면 어떤 말도 다 수용하겠습니다.
참 최박사님의 역사가 살아있는 곳이네요.
강서문협에 올리겠습니다.
행사 때 낭송하실 때 두 문단 정도로 낭송하시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일을 하셨네요. 이렇게 글로 표현하면 하소연이 되지 않을까요.
박사님,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