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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모노세끼, 후쿠오카.) 화백회 2026. 6. 24. ~ 27.
{24일 저녁배를 타기 전에 부산여행을 하고 국제여객선터미널로 가기로 한다.}
아래 : 부산 다대포 해변 데크길
아래 : 다대포해수욕장
아래 : 몰운대
아래 : 송도케이블카
아래 : 송도 해안 데크길
아래 : 송도 스카이워커
아래부터는 일본이다.
아래 : 루지코지(유리광사) 주차장인근 식당의 점심식당에서 너무나 작은 단무지, 마치 콩알만 하다.
아래 : 루리코지(유리광사) 5층 목탑
아래 : 모리씨정원
아래 : 해협 (혼슈와 큐우슈우를 연결하는) 關門橋
아래 : 좁고 좁은 일본호텔방의 욕실
아래 : 6월 26일
후꾸오카시내 오호리공원내 스타벅스에서 차 한잔 합니다.
아래 : 히라오다이, 북구주지정공원.
아래 : 고쿠라성
아래 : 고쿠라성에 있는 '미야모토 무사시(27세)'와 '사사끼 고지로'의 결투상
아래 : 고쿠라성 화장실의 남자용
아래 : 고쿠라성 5층에서
아래 : 귀국선 성희호(16,875톤)내에서
아래 : 부산 가까이 일출
아래 : 부산항에 들어간다.
일본 시모노세끼 후꾸오까 여행.
*일정 : 2026. 6. 24.~ 27.
*화백회 : 40명. *단장 : 송재중
*글 : 이형우
6월 24일
오전 09시 30분 황성공원 경주실내체육관 앞에 모두 모였다.
송재중 부하들이 밝고 여행을 시작하는 행복한 기분들이다.
차안에서 점심을 해야 한다고 꼬마김밥을 나누어 주신다.
낮에 부산여행을 하고 저녁에 항구에 가서 배타고 내일 아침에 시모노세끼도착이다.
11시 40분 부산 다대포 해변공원에 도착하여 해변길을 걸었다. 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 트래킹을 하는 즐거움에서 송교주님에게 또 감동이 시작된다.
2시쯤 송도 케이블카에 도착하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리는 곳에서 걸어서 해안 데크길을 걸었다. 스카이워크도 맛을 보니 부산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나? 싶다.
5시에 부산국제여객선터미널 도착
박창순샘 부부가 서울에서 와서 합류하였다. 부군께서 저녁식사를 사겠단다. 내가 공짜 얻어 먹는걸 좋아하는 것을 아시나보다. 감사하다.
9시에 출항. 일본배 '하마유'란다. 아름다운 부산야경을 보면서 선실방에서 술을 마신다.
8인실 넓은 방에 남여 섞여서 자야 하니 여성들은 불편하겠다는 걸 생각하니 내가 더 불편한 거 같다.
매순간 내가 뭔가 더 조심스럽네,
25일(목)
아침식사 후 창밖을 보니 비가 오고 있구나. 우리 화백회에서 지식과 정보에 최고로 달리시는 석경호님이 해협에 있는 작은섬
후나시마섬 (시모노세끼 앞에 작은 섬)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1612년 '미야모토 무사시(27세)'와 '사사끼 고지로'가 결투한 곳.
巌流島(간류지마, 구 船島)
미야모토 무사시 승.
7시 20분 16,000톤의 배는 부두에 접안을 한다.
8시에 입국과정 통과
8시 30분 화백회 40명을 태운 버스가 출발한다. (여기는 下關 시모노세끼이다.)
이보영가이드님의 친절하고 간단명료한 전달력은 베테랑 가이드 같다. 말소리도 좋고 전달력이 분명하다.
버스는 도로를 가는데 비가 엄청 많이 오고 있다.
11시 20분 루리코지탑 주차장옆의 식당에 도착하여 간단해 보이는 점심식사를 하였다. (유리광사)
바로 옆에 루리코지 5층목탑 관람을 한다.
일본의 국보 3대 목탑이고,
높이 31m, 1442년에 오우치가문에서 설립했단다.
일본에서 조형미와 안정감이 가장 우수한 탑이란다.
슬픈 뉴스를 접한다. 방금 끝난 월드컵축구 남아공에게 0:1로 졌단다. 조3위가 되면 곤란한데 ?
1시에 출발
1시 40분 모리씨정원 도착
넓은 부지, 우거진 숲, 크고 아름다운 나무들, 그리고 약간 비가 오는 시원한 날씨. 한 가문의 저택 치고는 너무나 넓고 화려하다. 물과 나무라는 자연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곳이다.
그런데 한국관광객은 전혀 보이지도 않은 이런 곳을 송교주님은 어떻게 알아낼까? 그러니까 화백교교주님이지 ?
2시 50분 기타큐우슈우(北九州)로 출발
가이드 이보경씨는 계속, 말인지? 설명인지? 마이크소리가 항상 요란하다. 드디어 내일 쇼핑에 간다고 사야될 물건 선전도 요란하네?
5시 30분 고속도로 단노우라휴게소에 도착.
이곳은 본토인 혼슈와 큐우슈우를 연결하는 다리 밑에 있는 휴게소이다.
전망대에서 해협을 본다.
기타큐우슈우로 달린다.
계속 비가 많이 온다.
오늘 계획된 일정에서 비로 인해서 몇 개를 취소도 했고 고속도로가 폐쇄되어 국도로 다닌다고 시간지체도 많았다.
이번 여행은 아무래도 비 때문에 지장이 많겠다.
7시 10분 AZ호텔 도착
저녁식사는 이호텔 1층식당에서 식사 후 좁은 호델방에서 휴식을 가진다.
아! 일본은 참 마음에 안든다.
참! 불편하다.
호텔식당의 뷔페도 몇 개 안된다.
호텔방이 너무 작다.
욕실도 너무 좁다.
방안의 냉장고도 더 작다.
1회용 칫솔 치약도 더 작다.
TV모니터도 작다.
내가 수 많은 나라에 호텔방을 다녀보았으나 이번 일본의 이호텔 처럼 작은 방은 처음본다.
움직이기가 불편하다.
욕실의 샤워기면도 작다.
그러나 물수압은 세구나.
변기에 물을 내리니 와 이래 많이 오래 나오노?
26일(금)
상쾌하게 일어났다.
창밖은 태풍이 지나간 고요한 공기, 맑은 공기, 바람없는 공기, 거리에 거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작은 화면의 TV를 켜보니 월드컵에서 일본의 승승장구장면이 자랑스럽게 나온다.
어제 우리는 졌다.
심술이 나오는구나.
8시에 출발할려니 또 부슬부슬 비가 온다.
9시 10분 후쿠오까시내의 오호리공원도착 스벅에서 따뜻한 말차
9시 50분 이제 면세점쇼핑센타로 간단다. 가는 도중 이보경가이드는 계속 말을 한다. 그야말로 건강이 어쩌고, 일본약, 일본음식에 대해서 계속 열강을 한다. 심지어 와사비에 대해서도 계속 황당한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여기는 배울 만큼 배우고 세상을 아는 사람들 집단이다. 가이드가 하는 물건사라는 세뇌교육, 마치 토탈의학박사인 것 처럼 요란한 설명을 한다.
ㆍ와사비는 무조건 먼저 잡으세요.
ㆍ무슨 약은 빨리 잡으세요.
ㆍ한국에서 의사 처방대로 고혈압 당료약 먹지마라.
ㆍ무엇은 한국에서는 잘못 만들고 일본에서는 옳게 만든 것이다.
ㆍ작은 면세점이라는 점포에 들어가니 어슬픈 한국관광객들 우글거린다.
ㆍ 참 한심한 해외여행 현실하다.
우리가 아무리 36만원짜리로 왔다하지만 말이야.
ㆍ 한국의 식품 의학도 세계적인 수준인데 어찌 우리 것을 이렇게 폄하하면서 일본제가 제일이라고만 30여분간 떠들 수 있는가?
ㆍ마치 한국인들은 일찍 병이 걸려서 죽고, 일본인들은 병이 안걸려서 장수하는 것 처럼 말을 한다.
ㆍ한국의 암수술과 완치치료율이 세계최고수준인데 말이야!
ㆍ된장 김치 등 한국의 전통음식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말이야!
ㆍ 추어탕, 돼지국밥, 된장과 상치, 칼국수 잘 먹는게 만병통치약이다.
ㆍ 어 휴 ~~~~
11시에 점심 먹으러 출발한다.
20분 쯤 와서 점심식사,
12시에 출발 히라오다이로 1시간반을 가야 한단다.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간다
1시 40분 히라우다이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여기가 일본인가? 싶을 정도로 깊은 산골오지이다.
올라가는 길에 비가 많이 온다.
일본의 국립공원이라는 히라우다이에 일본인 한 명도 없는데 한국에서 온 우리 화백회만 산길을 올라간다.
3시 10분 출발
고쿠라성 (小倉城) 또 비가 많이 온다.
성건물내로 들어가보니 5층 꼭대기까지는 500엔. 신선재샘과 같이 내가 돈내고 우리 둘만 5층까지 갔다 왔다.
4시 40분 또 출발. 이제 국제여객선터미널로 간단다.
5시 40분 시모노세끼국제여객선터미널 도착. 말이 국제터미널이지 한국인 이외에는 아무 국민도 없다.
완전 한국 국내선 터미널과 같다.
터미널대합실은 80년대 명절날 한국의 어느 터미널과 같구나.
이제 여행의 막바지에 왔다.
모두들 큰배에서 술생각 또는 사우나할 생각들이겠지
한국배 성희호(16,875톤) 108호에 자리를 잡았다.
저녁을 먹고는 카페에서 웃고 또 웃는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여행의 피로를 웃음으로 덮었다.
27일(토) 아침이다. 부산항의 시설들을 보면서 여행을 마치자.
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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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석경호님이 만든 자료집
루리코지 오층탑(瑠璃光寺 五重塔)
일본 야마구치현 야마구치시 코잔쵸(山口県山口市香山町)의 코잔 공원(香山公園) 내에 위치한 국보급 건축물로, 일본 3대 명탑 중 하나로 꼽히는 무로마치 시대의 대표적인 목조 건축 걸작입니다.
1442년(가키츠 2년, 嘉吉2年)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건축의 걸작, 오우치 가문의 영주였던 오우치 모리하루(大内盛見)가 오에이의 난(応永の乱)에서 전사한 형 오우치 요시히로(大内義弘)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습니다.
1952년 日本国宝(にほんこくほう)로 지정,
현존하는 일본 5층탑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비례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높이는 약 31.2m이며,
그 특징은,
① 지붕 비율이 매우 아름다움, 아래층은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우아하게 줄어듦
② 히와다부키(檜皮葺, 노송나무 껍질로 이은 지붕)
히노키(檜, Japanese Cypress) 사용
수백 년이 지나도 견고하다함
③ 균형미
일본 건축미의 대표작으로 평가
[山口와 오우치(大内) 가문]
루리코지의 배경에는 오우치 요시히로(大内義弘), 오우치 요시타카(大内義隆)로 대표되는 오우치 가문이 있습니다.
15~16세기에는 조선, 명나라(明), 일본, 무역을 장악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야마구치는 서쪽의 교토[西の京(さいのきょう)]라고 불렸습니다.
인근에는 메이지 유신의 발판이 된 인물들이 모의했던 '친류테이(枕流亭)' 등 역사적 장소들이 함께 있습니다.
모리정원(毛利庭園, もうりていえん)
모리정원(毛利庭園, もうりていえん) 은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県)의 명문 무가인 모리 가문(毛利氏)과 관련된 일본식 정원입니다.
한국 관광객들이 흔히 말하는 "모리정원"은 대개 모리씨 정원(毛利氏庭園 もうりしていえん)을 의미합니다.
메이지 시대 1898년경에 조성됐고,
그 특징은,
① 연못 중심 회유식 정원
池泉回遊式庭園 (ちせんかいゆうしきていえん)
② 일본 전통 다이묘 정원 양식
③ 배산임수 구조
④ 계절별 풍경이 뛰어남
모리 가문(毛利氏)은 전국시대의 영웅 毛利元就(もうり もとなり)가 창건한 명문 무사 가문입니다.
삼본의 화살(三本の矢, さんぼんのや)은 전국시대의 명장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 もうり もとなり)가 세 아들에게 형제간 단결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해 들려준 유명한 교훈입니다.
어느날 모리 모토나리는 세 아들을 불렀습니다.
장남: 모리 다카모토 (毛利隆元)
차남: 깃카와 모토하루 (吉川元春)
삼남: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小早川隆景)
그는 먼저 아들들에게 화살 한 개씩을 주고 꺾어 보라고 했습니다.
화살 한 개 → 쉽게 부러짐
다음에는 화살 세 개를 묶어 주고 꺾어 보라고 했습니다.
화살 세 개 → 쉽게 부러지지 않음
그러자 모토나리가 말했습니다.
"한 사람의 힘은 약하지만, 형제가 힘을 합치면 누구도 쉽게 무너뜨릴 수 없다."는 교훈으로 유명합니다.
오호리공원(大濠公園, おおほりこうえん)
오오리공원은 일본 후쿠오카의 대표적인 도심 호수공원으로, 후쿠오카성을 방어하기 위한 해자(濠)를 활용해 조성된 아름다운 수변공원입니다.
오호리공원(大濠公園, おおほりこうえん, Ohori Park)은 후쿠오카시(福岡市, ふくおかし)의 중심부에 있으며 면적은 약 40만㎡ 규모이다.
"오호리(大濠)"는 큰 해자(濠, moat) 라는 뜻입니다. 원래 이곳은 Fukuoka Castle 의 외해자 역할을 했습니다. 에도시대(江戸時代)에는 성 방어시설이었고, 이후 시민공원으로 정비되었습니다.
중앙에 큰 호수가 있으며 여러 섬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둘레 약 2km의 산책·조깅 코스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후쿠오카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식 공간 중 하나입니다.
볼거리는,
① 일본정원(大濠公園日本庭園, おおほりこうえんにほんていえん); 1984년 오호리공원 개원 50주년 기념으로 조성된 전통 회유식 정원으로 연못, 폭포, 차실(茶室) 등이 있음니다.
② 노가쿠도(能楽堂, のうがくどう); 일본 전통 가면극인 노(能) 공연장으로 도쿄 국립 노가쿠도와 유사한 구조이다.
③ 후쿠오카시 미술관(福岡市美術館, ふくおかしびじゅつかん); 달리(Dalí), 미로(Miró) 등의 작품 소장 되어있다.
④ 보트하우스; 백조보트와 로잉보트 체험 가능하여 호수 경관 감상 명소이다.
1601년경 구로다 나가마사가 후쿠오카성 축조하여 해자로 사용했다.
구로다 나가마사(黒田 長政, 1568~1623)는 일본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활약한 다이묘(大名)이자 후쿠오카번의 초대 번주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도와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그는 단순히 무력뿐만 아니라,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를 배신하게 만들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승리를 확정 지은 핵심 참모였습니다. 그 보상으로 지쿠젠국(현재의 후쿠오카 현 서부)을 영지로 하사받았습니다.
오호리 공원과 깊은 역사적 연관성이 있는 인물로, 후쿠오카성을 축조하고 현재의 후쿠오카시 기틀을 마련한 핵심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축성한 후쿠오카성 터(마이즈루 공원)는 현재 오호리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는 나가마사가 설계한 성의 구조가 오늘날 후쿠오카시의 지형과 도시 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합니다.
그가 건설한 후쿠오카성은 근대 도시 후쿠오카가 탄생하는 기초 인프라가 되었으며, 당시 축성 기술(석축 및 수로 공학)은 매우 논리적이고 전략적인 토목 공학의 산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히라오다이(平尾台, ひらおだい)
히라오다이(平尾台, ひらおだい)는 일본 규슈(九州) 최대 규모의 카르스트 지형 석회암 고원으로, 기타큐슈(北九州市)의 대표적인 자연 명소입니다. "일본 3대 카르스트" 중 하나로 꼽힙니다.
고쿠라성(小倉城)에서 자동차로 약 30~40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약 3억 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층이 빗물에 녹아 침식되면서 독특한 지형 형성되어, 초원 사이에 흰 석회암이 솟아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해발 300~700m에 펼쳐진 석회암 카르스트(Karst, カルスト) 지형입니다. 초원 위에 하얀 석회암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양떼처럼 보인다고 하여 양 떼의 초원(Sheep flock plateau, 羊群原 - 요군바루)이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주요 볼거리로 센부츠 종유동, 일부 구간은 물속을 걸어 들어가며, 메카리 종유동에서는 다양한 종유석 관찰 가능하며, 전망대는 고원 전체를 한눈에 조망가능하다.
고쿠라성(小倉城, こくらじょう)
일본 성의 "부채의 곡선" 은 보통 오기노 고바이(扇の勾配, おうぎのこうばい) 라고 부릅니다.
부채(扇) 모양의 경사라는 뜻입니다.
성의 돌담(石垣, 이시가키)이 아래는 완만하고 위로 갈수록 급격하게 휘어지는 형태 옆에서 보면 일본 전통 부채(扇)를 펼친 모습과 비슷하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 특징은,
① 방어 효과
적이 기어오르기 매우 어려움
사다리를 세우기 힘듦
위로 갈수록 경사가 급해짐
② 지진에 강함
일본은 지진이 많음
곡선 구조가 하중을 분산
돌담 붕괴 방지
③ 미적 효과
일본인은 기능뿐 아니라 아름다움도 중시
성 전체가 우아하고 위엄 있게 보임
가장 유명한 돌담(石垣,いしがき)의 부채 경사(扇の勾配,おうぎのこうばい)는 히메이지성, 오오사까성에서 볼 수있다.
고쿠라성(小倉城, こくらじょう) 은 일본 규슈(九州)의 관문인 기타큐슈시(北九州市)에 있는 성으로, 1608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에도시대(江戸時代)에는 고쿠라번(小倉藩)의 중심이었으며, 1866년 제2차 조슈정벌(第二次長州征討) 당시 소실되었습니다. 현재의 천수각(天守閣)은 1959년에 재건된 것입니다.
센고쿠 시대 말기인 1569년 중국 지방(中國)의 패권자였던 모리 가문이 규슈 진출을 위한 거점으로 삼으며 성을 쌓았습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 평정(1587년)을 거쳐 모리 가쓰노부(毛利勝信)가 영지를 다스렸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이, 1600년)에서 공을 세운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 ほそかわ ただおき)는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공을 인정받아 부젠국(豊前国, ぶぜんのくに) 및 일부 지역 약 39만~40만 석을 하사 받아 입성한 후, 1602년부터 1608년까지 본격적으로 거대한 성곽과 성하마을(城下町, Jōkamachi)을 건설했습니다. 당시 규슈에서 손꼽히는 거대한 규모였습니다.
1632년 호소카와 가문이 구마모토로 이봉된 후, 오가사와라 다다자네(小笠原忠真)가 입성하여 메이지 유신기까지 약 230년간 오가사와라 씨족 10대의 거성으로 기능했습니다. 이 시기 유명한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가 가신의 스승으로 고쿠라에 체류하기도 했습니다.
고쿠라성 앞바다에는 간류지마(巌流島, がんりゅうじま)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1612년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와 사사키 고지로(佐々木小次郎)의 전설적인 결투가 벌어졌습니다. 일본 검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대결로 평가됩니다.
1837년 화재로 천수각이 한 차례 소실되었다가 일부 재건되었으나, 1866년 제2차 조슈 정벌(막부와 조슈번의 군사 충돌) 당시 조슈군의 진격을 앞두고 고쿠라번의 군대가 스스로 성에 불을 지르고 퇴각하면서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건축적 특징은 4층보다 5층이 더 크게 설계되어 외관상 4층, 내부 구조상 5층으로 보이는 독특한 ‘카라즈쿠리(唐造り, Karazukuri)’ 양식의 천수각과 인공 가공을 최소화한 ‘노즈라즈미(野面積み) 방식의 자연석 돌벽(석축)이 특징입니다.
1866년 조슈번과의 전쟁 과정에서 소실되었다가, 1959년(소와 34년)에 천수각이 재건되어 현재는 역사 전시관 및 고쿠라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원자폭탄과 고쿠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1945년 8월 9일 미국의 두 번째 원폭 목표는 고쿠라(小倉) 였습니다.
그러나, 구름, 연기, 시야 불량 때문에 목표를 확인하지 못했고 대체 목표였던 나가사키(長崎)에 원폭이 투하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는 고쿠라의 행운(小倉の幸運)이라는 표현도 남아 있습니다.
[성의 명칭들]
天守閣(てんしゅかく), 本丸(ほんまる,중심 구역),
二の丸(にのまる,제2 방어구역), 三の丸(さんのまる, 제3 방어구역), 石垣(いしがき,석축), 堀(ほり,해자), 狭間(はざま,총·화살 구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