弔詞
고 최희관 목사님,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평소에 사랑하시던 오 장로입니다. 제가 지금 목사님의 상사에 슬픈 뜻을 표하려고 여기 나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세상에 계실 때도 은혜 가운데 복 받고 잘 지내시더니 떠나실 때도 가정의 달 5월의 청명한 날씨에 가족들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 품으로 가시네요. 평소에 아들딸 잘 가르치고 싶다고 욕심부리시더니 큰 사위가 박사 받고, 넝쿨 채 굴러들었습니다. 그가 올해에는 직장을 은퇴하고 우리 교회에서 장로로 충성스럽게 일하고 있습니다. 또 그의 아들 큰 외손자가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박사 받고 귀국, 의사 아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까지 보고 가고 싶으셨다고요? 그러다가는 천국 못 가십니다. 큰 외손녀도 충대에서 박사를 마쳤습니다. 덩달아 큰딸도 상담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학위 중에 있습니다. 온 가족이 모두 박사들입니다. 한 가정에 한 사람만 박사라도 큰 자랑인데 이게 무슨 복입니까? 둘째 딸도 문학박사가 사위로 들어와 목사님을 얼마나 잘 섬기셨습니까? 막내아들은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더니 귀국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의사 며느리와 손녀 셋을 거느리고 행복합니다. 목사님이 부자유스럽게 되었을 때도 생신 때는 온 가족이 자·외손까지 모여 선물을 드리며 얼마나 재롱들을 떨었습니까? 그런 일 때문에 세상을 더 떠나기 싫으셨겠지요. 목사님은 아내 복도 많으셔서 양순하고 양순한 한양순 사모님을 모셨습니다. 목사님은 교회에서 불같은 화를 못 내고 집안에서 사모님께 화를 쏟았는데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고…”라고 작은 소리로 찬양을 읊조리며 사모님은 목사님 분노를 다 풀어 드렸습니다. 그런 사모님이 둔중한 목사님 병시중하느라 혹 쓰러질 때는 아파트 경비원을 부르고 힘들어하셨는데 이제는 놓아 주시는군요.
참 화목한 가정이었습니다. 저는 가정을 잘 다스리시는 목자가 교인도 잘 다스린다고 믿습니다.
큰처남 되신 고 증경 총화장 한완석 목사님이 즐겨 쓰시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고 최희관 목사님은 주의 소명을 받은 뒤 양들을 기르는데 충성하셨습니다. 교회가 수난을 당하고 2, 30명밖에 남지 않은 오정교회에 오셔서 사랑으로 양들을 돌보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기르셨습니다. 그리해서 은퇴하실 때 자랑스럽게 후임 목사님께 이 교회를 넘기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십여 년간 큰 예배당을 짓고 잘하고 계시는 것 같더니, 한순간 말 안 듣는다고 99마리의 양들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우리의 상심은 얼마나 컸으며 그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요. 그러나 훈련된 양들은 인내하며, 지혜롭게 다시 더 훌륭한 목자를 모셨습니다. 그분은 코로나 시대의 비대면 예배에도 성도들을 더 열심히 단합하게 하며 우리에게 ‘주를 향해 자라가는 공동체’로, 하늘나라 백성으로 살게 하고 계십니다.
목사님 제가 1997년경 두례성서연구 대전회장을 수년간 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김진홍 목사님이 전국 지방을 순회하며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대전에서 제가 장소를 얻지 못해 이곳저곳 전전하다 우리 교회 예배당을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씀드렸을 때 목사님은 장로들을 설득하여 3년 가까이 말씀을 전할 장소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때 다른 교회들은 김 목사는 위험인물이어서 교회 예배당을 빌려줄 수 없다고 할 때였습니다. 목사님 말씀을 들으려 회원들이 몰려들었을 때 우리 교회는 자연 홍보가 되었습니다. 어떤 회원들은 장소를 허락한 그 목사 좀 보고 싶다고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어떤 말을 들어야 할지 판단할 수 없을 때 세상의 소음에 동요하지 않고 하나님께 그 뜻을 물으셨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말씀을 설명하고 가르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분이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함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아버지와 어머니, 때로는 형과 누가 되어 교인들을 하나하나 정으로 살피셨습니다. 은퇴 후 후임 목사가 왔을 때 교회를 떠난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도 한결같이 가정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자녀들을 데리고 목사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자기를 만나러 오는 사람을 그렇게 기뻐하고 음식을 사주는 등 무엇인가를 베풀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은퇴 후 몸이 불편할 때도 권사들이 설이나 본인 생일에 인사하러 찾아오는 걸 무척 기뻐했으며 그때는 음식을 준비할 뿐 아니라 빳빳한 새 돈을 바꾸어 세뱃돈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거룩하게 살고 교인과의 거리를 유지하여 교권을 내세우며 聖人과 俗人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소통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건강하실 때는 공설 운동장의 축구경기도 좋아하시고, 맛있는 음식점을 알게 되면 불러서 같이 회식도 하셨습니다. 그분은 결코 “나를 따르라”라는 목회자가 아니었으며 장로들과 함께 同役하는 목사였습니다. 25년간 시무해서 은퇴하면서 은퇴 후에도 사역을 계속하고 싶으니 기도원이나 하나 짓게 해달라고 은퇴 보너스를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옛 교인이 찾아오면 회식을 하며 여러 교인의 안부를 무를 뿐이었습니다.
고 최희관 목사님,
목사님은 세상에서 크게 복 받고 사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세상입니다. 태어나고, 자라고 늙으면 병들고 아파서 죽는 유한한 곳이 세상입니다. 지상에 발을 붙이고 천국의 영주권을 바라보고 사는 성도들도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갈등하고 때론 하나님을 원망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 무거움 짐을 내려놓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소서.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는 천국에서 편히 쉬소서. 가정 걱정, 교회 걱정, 코로나 걱정, 인도 걱정, 미얀마 걱정 다 잊으시고 해도 지지 않는 천국에서 편히 쉬소서. 저도 오늘 오후에는 코로나 접종을 하는데 그것이 병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롭겠습니까? 한 살 위인 저도 곧 따라가겠습니다.
2021년 5월 24일 8시
평소에 사랑을 받던 오정교회 은퇴 장로 오승재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