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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계간 제주작가 스크랩 아이리스 자포니카와 함께
김창집 추천 0 조회 100 12.04.25 07: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 녀석이 우리 화단에 피기 시작한지는 꽤 오래되었고

4월이 다 가는데도 계속해서 피워대고 있다.

아마도 제주 땅이 잘 맞는지

여기저기 길가 화단과

공터에서도 계속 번져나간다.

 

 

제주작가 봄호는 ‘공감과 연대’라는

편집으로 인천작가회의의 작품을 실었었는데

지난번에 내보내지 못한 작품을

이 꽃과 같이 올린다.  

 

 

♧ 거문오름을 오르다 - 천금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4·3위령성지를 지나

무덤가에 피는 꽃들 보며

태극길로 불려지는 거문오름을 오른다

오름 능선 분화구내에 있는 삼나무숲

긴꼬리 딱새 한 마리 날아간다

선흘 수직동굴과 화산탄 용암협곡을 지나

9개 능선 용의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돌과 흙이 유난히 검은 신령스러운 산

그러나 그곳엔 현지 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간직한 숯가마터와

일제강점기와 4·3사건에 이르는

제주 근대사의 고난과 슬픈 역사가 있다

숨골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나무들은 저희 뿌리끼리 얹혀서 살아가고 있다

식나무, 때죽나무, 팽나무,예덕나무, 붓순나무

한줌의 흙도 나무도 꽃도

그냥 흙이 아니요 나무가 아니요

꽃이 아니구나

어느 곳을 가나 산담을 두른 무덤들

제주는 하나의 커다란 무덤이다  

 

 

♧ 제대로 한번 살아야겠다 - 정세훈

 

인천작가회의 고문 강태열 시인 장례식장

문상 드리러 간 자리

이게 얼마만이냐고

무려 이십여 년 만이라고

시인 김사인 형이 반가워한다

볼이 들어가고 턱뼈만 앙상했던 지난날

내 얼굴 모양을 양손으로 그려 보이며

야위었던 얼굴이 통통해져 좋아졌다며

 

김사인 형 앞에

내 좋아진 얼굴을 보여주기까지

공장에서 일했을 때나

공장을 떠나 있었을 때나

오직 온갖 병치레로부터

살아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수정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로 상승시킬 때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따뜻한 자본주의로 상승시킬 때

자본주의가 상승되어 갈수록

소외된 이들은 더욱 소외되어갈 때

오직 온갖 병치레로부터

살아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공장에 있을 때 이십여 년

공장을 떠나 이십여 년

병든 사십여 년을 버티어 살아났으니

오십 나이를 훌쩍 넘겨버리고

육십 나이를 바라보는 뒤쳐진 삶이지만

제대로 된 시 한편 쓰듯 살아야겠다

 

다 같이 행복한 성장을 추구하는

노동과 자본이 서로 공생을 이루는

나라 경제는 성장하는데

민중은 갈수록 힘들어지지 않는

돈더미가 대기업에게만 쌓이지 않는

나만 배부르겠다고 하청공장 핍박하지 않는

노동을 기계로 취급하지 않는

비정규직 만들어 여벌 부속품처럼 버리지 않는

삶을 제대로 한번 살아야겠다  

 

 

♧ 천막농성장 - 조혜영

   --부평 지엠대우 천막 농성장에서

 

얼어붙어 건드리면 툭 부러질 것 같은

나이어린 전경들 앞에

농성자들이 피워주는

드럼통 장작불이 타오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삿대질에 발길질 욕설을 해대고

용역깡패 설쳐대도 나 몰라라 하더니

농성이 길어질수록 매서운 한겨울 추위를

함께 이겨 보려는 속셈인지

볼이 빨갛다

 

 

다시 새벽이 오고

고공 크레인에 오른 동지들도

찬바람에 꿈쩍 않고

단식으로 불규칙한 숨을 몰아쉬는

지회장님도 몸을 구겨 접고 농성장을 지킨다

 

규찰대동지들은 차 한 잔으로 농성장을 지키고

전경들은 찬 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랜다

꿈쩍도 않고 돌아가는 공장 굴뚝 연기와

정문 앞을 쉴 새 없이 오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무심한 발걸음 속에서도

공장으로 들어가 기계 앞에 설 날을 위해

또 하루의 투쟁을 이어가는

정문 앞 천막농성장  

 

 

♧ 색칠하기 - 이성혜

 

  20층이 이사를 갔다 경비실 앞 빈터에 삼년 전에 장만한 가구들을 작은 동산

처럼 쌓아놓고……한 가족의 공간을 빛내며 숨결을 나누던 붙이들의 무너지는

눈빛! 사이로 남의 물건에 별 관심 없던 통로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육층이 큰

벤자민 화분 2개를 챙긴다 삼층이 아들과 함께 책상과 의자를 옮기고 옆 통로

아기엄마가 체리목 식탁세트를 들어낸다 경비 아저씨가 TV를 시험해 본다 원

목 삼단책꽂이 2개를 골라 노란 스티커를 떼어내다 묻는다 -대단한 명품가구

사가나 봐, 이 괜찮은 걸 다 버리게 -갑자기 너무 작은 데로 이사를 가서……

떠난 자의 버려진 절망을 나누는 축제, 소곤거리는 소리가 유리병을 불듯 웅웅

울린다

  책꽂이에 흘러넘치던 책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시간이다 20층은 반 너머 버

리고 간 가슴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을까 약을 바르듯 긁혀 패인 책꽂이모서리

에 갈색 크레파스를 칠한다  

 

 

♧ 십일월의 트레이닝 - 정민나

 

오전에 한 곳 보고 이곳으로 뛰어왔어요

애는 안에서 시험 보느라 용을 쓰는데

달려온 차 안에서 엄마는 고요하잖아요

저 안개의 운동장이 기다리는 시간

어제만 해도 뜨거운 햇빛 속에서 공을 빼앗느라 휘익 몸을 던졌던

은행나무는 고요하잖아요

잘못하면 떨어지는 크리스마스

빨강 노랑 파랑 방울들도 고요하잖아요

회오리바람은 다 어디로 불어갔는지 앞에서 걸어가던 아이들

공연히 주루룩 슬라이딩 하는 골대 앞

초저녁달님도 고요하잖아요 입시 수능은 끝났는데

나뭇잎이 기억하는 비와 바람 하나씩 찝어도

한 해의 트레이닝은 고요하잖아요

떼구르르 굴러가는 모래알 크리스마스

트리는 이제부터 반짝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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