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2010년 12월 22일자(286호)
<기획회의>가 만난 사람 - 한상수 (사)행복한아침독서 이사장
글_장동석(북칼럼니스트 9744944@hanmail.net)
“책을 좋아하는 아이와 싫어하는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많이 접해 본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을 뿐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한상수 이사장이 자주 하는 말이다. 책을 접하기만 한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책과 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한상수 이사장의 굳은 믿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현재 전국적으로 아침독서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학교의 비율은 약 60%를 넘는다. 최근에는 영유아를 위한 아침독서운동을 전개하면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부터 호응까지 얻고 있다.
한편 아침독서운동을 벌인지 만 5년이 된 올해 5월에는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으면서 활동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그만큼 빨라진 행복한아침독서의 보폭은 내년을 기대하게 만든다. 행복한아침독서 한상수 이사장은 소탈했다. 꾸미지 않았고, 과장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담담하게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미래를 준비하는 듯 보였다.
독서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다
장동석(이하 장) - 몇 해 전 일산에서 어린이도서관과 관련한 인터뷰 후 공식적인 인터뷰는 두 번째다. 어떤 변화들이 있는지 먼저 알려 달라.
한상수(이하 한) - 이 일(행복한아침독서)을 전업으로 시작한 것이 2004년이다. 어린이도서관연구소로 시작했고, 행복한아침독서는 2005년부터 시작했다. 다행이도 어린이도서관과 관련한 일은 잘 하는 분들이 많다.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행복한아침독서는 전혀 새로운 독서운동이라서 올인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 - 벌써 5-6년 되었다. 행복한아침독서의 이제까지의 성과를 조금 설명해 주는 게 좋겠다.
한 -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초반 반응이 좋았다. 열심히 하시는 선생님들이 나오면서 빠른 속도로 확산된 것이다. 그러면서 학교 독서 교육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일종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랄까. 기존의 독서 교육은 독후감을 쓰는 등 독후 활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독후 활동을 하지 말자, 오로지 아이들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주는데 만족하자고 주장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만 책을 읽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선생님들이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부모가 함께 책을 읽으면서 롤모델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학교에서도 교사들이 시키는 것에 그치지 말고 같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두 가지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런 핵심적인 내용들에 교사들이 공감하면서 함께 책을 읽다 보니 책이나 신문에서만 보았던 사례들을 자신들이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이다. 책을 안 읽는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면서 교사들 사이에 “이거 괜찮다, 허상이 아닌 진짜다”라는 공감대가 조금씩 형성되었다. 교사가 열정을 자기고 꾸준히 할 때, 아주 쉬운 방법을 제시하면서도 충분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일종의 파장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본다.
독서를 통한 교육 격차 해소
장 - 아이들이 가장 많이 생활하는 학교 현장에서 일어난 변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본다. 이런 의미와 함께 속으로 품었던 더 깊은 의도도 숨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한 -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독서를 통해 교육 격차를 해소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내건 캐치프레이즈가 “모든 아이는 책 읽을 권리가 있다”였다. 우리가 다 바꿀 수는 없어도 모든 아이들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기회만은 최대한 열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일을 책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책을 만날 기회를 사회가 제공해야 한다. 모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밖에 없으니까 현실적인 측면에서 타깃으로 삼은 것이기도 하다.
장 - 그렇다면 행복한아침독서를 시작하기 전에 했던 어린이도서관 운동과는 어떤 차별성이 있는 건가?
한 - 실제로 도서관 운동을 해보니까 오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독서 환경이 좋은 아이들이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올 수 있는 여유와 환경이 되는 아이들이 오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관심을 가졌던 아이들은 거의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는 누구나 다닌다. 그런 점에서 모든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는 것은 의미가 있다.
행복한아침독서도 소외 계층 아이들의 독서 환경 개선을 위해 지역아동센터와 그룹홈에 책을 보내는 사업을 하고 있다. 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책을 제공하는 ‘희망의 책 나눔’ 운동도 펼치고 있다. 이건 내 개인적 경험이기도 한데, 시골에서 성장했는데 내 책이 없었다. 도서관 책도 좋지만 나만의 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은지는 절실하게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지난해에는 1명당 20권을, 올해는 225명에게 10권씩 책을 전달해 주었다.
장 - 학교가 아닌 학급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것도 특별한 의도가 있는 건으로 보인다.
한 -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당시 학급 문고에 대한 인식 자체가 척박했다. 그런데 아침독서운동의 기본은 학급문고다. 학교 도서관에 가는 것도 습관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해결책은 바로 아이들이 늘 생활하는 장소로 책을 가져가는 것이다. 그게 바로 학급이다.
아이들이 학교 다음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는 장소가 어딘가. 바로 교실이다.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도 여러 난관이 있었는데, 교실로 정하고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여기에 교사와 학부모들이 동참했고, 어떤 분들은 자비로 책을 사서 학급에 비치하기도 했다. 학급문고에 대한 일대 인식의 전황이라고 할까.
교사 중심으로 일어난 일본의 아침독서운동
장 - 아침독서운동은 잘 알려진 대로 일본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한 : 아침독서를 처음 접한 것은 2000년 을 통해서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2부작에서 일본의 아침독서운동이 5분 정도 소개되었다. 그리고 2002년 무렵 출판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이 쓴 <출판저널> 기사를 통해 구체적인 정보를 얻었다.
당시 도서관 운동을 하면서 가졌던 아쉬움이 있었는데, 사비 털어서 도서관을 하는데 정작 필요한 아이들은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민하다가 정보를 더 찾아보고 바로 일본에 갔다. 아침독서운동을 소개하는 책을 10여 권 구입하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다녔다. 대부분 소책자 형태로 나온 것들이었는데, 방법도 간단하고, 충분히 우리나라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겠다 싶었다.
장 - 아무리 그래도 일본과 우리나라 현실은 여러 가지 차이가 있지 않았겠나?
한 - 일본은 아침독서운동이 철저하게 교사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교사가 해야 할 운동이니까 처음에는 망설여지기도 했다. 물론 그 사이에도 일본 사례를 충분히 축적하고 있었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례를 담은 책을 내면 우리 선생님들도 “우리도 한 번 해볼까”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 <아침독서 10분이 기적을 만든다>를 번역해서 출간했다. 책만 던져놓으면 효과가 떨어지니까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 여기까지 왔다.
사실 책을 내면 교사들이 열심을 낼 줄 알았다. 민들레처럼 아래로부터 운동이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교육청에서 관심 가지면서 위아래로 같이 시작되었다. 책을 내고 일주일 지났는데 대구교육청에서 연락이 왔다. 대구시내 모든 교장선생님과 독서교육 담당 교사, 학부모 대표를 모았으니 아침독서운동에 대한 강연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큰 체육관에 1000여 명이 모였는데, 이미 교육감이 책을 몇백 권 구입해서 교장선생님들에게 다 읽고 오라는 지시를 내린 터라 이해도가 높았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다른 지역으로 퍼지면서 시작되었다.
장 - 현장 중심으로 일을 하는데, 다녀보면 지역이나 학교 등의 편차는 없는지 궁금하다.
한 - 편차가 왜 없겠나. 그런데 그 편차는 단지 교사 마인드의 편차다. 학교 전체가 운동에 동참하지만 기본적인 단위는 학급이다. 담임교사가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험 당일도 아침독서를 하는 교사가 있고, 소풍 때도 하는 교사가 있다. 그렇게 하니 안 될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떤 교사들은 학교에서 하라고 하니까 억지로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뻔히 시간만 잡아먹는다. 열심히 하는 교사는 자기 돈으로 학급 문고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렇게 좋은 학급 문고가 500-700권이 있는데, 어떻게 안 되겠나.
우리로서는 그렇게 열심히 하는 교사들과 네트워크하고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교사들에게는 학급문고를 꾸준히 보내준다. 우리는 “열심히 하는 교사는 충분히 지원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이제까지 10만 권이 넘는 책을 학급문고로 보냈다. 책을 보내는 기준도 엄격하다. 교사가 어떻게 아침독서운동을 실천하는지, 또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담은 보고서를 늘 받고 있는데, 경쟁률이 무려 5 대 1이다. 열정적으로 하는 교사들에게는 책이 안 갈 수 없다. 그럼 교사에게 힘이 되고 학교에서도 화제가 된다. 출판계의 도움도 컸다. 책을 후원해 주는 출판사들 덕에 사실 여기까지 온 것이다.
2010년 5월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다
장 - 최근 사회적 기업으로 역할의 범주를 확장하고 있다. 어떤 과정을 통해 사회적 기업으로 정착하게 된 것인가?
한 - 지난 5월 사회적 기업이 되었다. 5주년 행사를 하면서 행복한아침독서의 1기 활동은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도약하는 2기를 만들기 위해서 이런저런 사업을 기획하다가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사실 행복한아침독서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사실 큰 NGO들은 회비로 운영되지만 그 외의 NGO들은 사회적 역할에 비해 직원들이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떠나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역량 있는 중견들이 운동에 매진할 수 없기 때문에 이건 분명 손실이다.
시민운동도 지속가능해야 한다. 내부 인력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애초부터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했다. 사회적 가치인 독서운동을 하면서도 수익도 되는 신문을 발행한 것이다. 물론 수익만을 위해서 신문을 발행한 것은 아니지만 광고를 통해 그것을 어느 정도 만회하려고 한 것이다. 광고비를 통해 행복한아침독서가 자체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두 가지 모두 유효했다고 본다. 수익만을 위한 사업을 진행한 적은 없지만 수입을 도외시하면서 사업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 즈음 <보노보 혁명>을 보면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세계적인 흐름이고,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2년 정도 준비하고 올해 5월에 등록했다. 그러면서 내 역할도 독서운동가에서 사회적 기업가로 비중이 점점 옮겨가고 있다.
물론 경계선이 애매하고 아슬아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익 창출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은 없다. 일부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독서운동단체가 서점 등을 통해 수익 창출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것인데, 우리가 부도덕한 수익 모델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당하다. 서점은 리퍼도서만을 판매한다. 출판사에도 이익이고, 독자들에게도 이익이다. 다 버려지는 책들인데, 환경에도 긍정적이다. 물론 수익만을 위한 모델은 앞으로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방향성은 계속 모색할 것이다.
장 - 현재의 상황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꽤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 보면 더 차별성을 두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어가 아닌가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 사실 지금 나는 순수 독서운동가는 아니다. 출발은 같았지만 뭔가 좀 다르다는 이야기는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이나 한국적 현실에서 보면 그것을 경계 짓는 일, 즉 독서운동의 엄숙주의와 순수주의를 극복해야지 않겠나 생각한다. 행복한아침독서에서는 나도 한 사람의 월급쟁이일 뿐이다.
장 - 기업의 후원이나 네트워크도 이 일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원인데, 이런 부분들은 어떻게 뚫고 있나?
한 - 중요한데 거의 안 되고 있다. 초창기만 하더라고 출판인회의나 출협에서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관심 없다. 출판계와 독서운동단체는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파트너다. 독서운동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면 할수록 책 읽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그러면 출판시장이 확대된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조금 부족한 게 현실이다. 물론 행복한아침독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출판계의 지원 덕이다. 광고와 책 후원 등 절대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독서운동단체들도 출판시장을 확대하는데 나름 공헌을 하고 있다. 요는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돕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윈윈하는 것이다.
나는 독서운동단체가 출판계의 일방적인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 윈윈할 여지가 많다. 출판사들이 나서서 스스로 독서운동을 하기는 쉽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출판문화 발전과 출판사의 매출 확대에 독서운동단체들이 충분히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물론 독서운동단체들이 단기적인 매출 확대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서운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좋은 독서가’라 자랄 수만 있다면 폭넓은 구매층이 될 수 있다. 386세대들이 아직도 구매력이 있지 않은가. 아이들이 학급문고로 아침독서로 하고, 그런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하면서 좋은 독서가로 자라는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보다 더 출판시장의 확장을 가져오는 일이 또 있겠는가.
영유아를 위한 행복한아침독서
장 - 애초에 운동의 방향이 초중고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는데, 영유아 신문인 <책둥이>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
한 - 아침독서운동을 하다 보니 초등학교 1학년에서부터 아이들의 차이가 많이 난다. 초등학교 입학 전 독서습관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확대할 필요를 느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독서교육을 중요한 교육 과제로 인식하고, 그림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교사들에게 조심스럽게 소개하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장기적으로 “우리 유치원은 아침독서운동을 하고 있다”라는 말이 유치원 선정의 중요한 기준이 되도록 만들고 싶다. 유치원 원장들끼리 좋은 그림책을 구비하는 선의의 경쟁도 만들어 보는 게 목표다. 내년에 <유치원 독서교육 길잡이>(가제>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사회적 기업이 되면서 아파트 도서관을 확대하는 운동도 시작했다. 300세대 이상 아파트는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입주 후에는 거의 운영이 안 된다. 우리가 조성부터 운영, 지원까지 할 수 있는 틀거리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유치원과 아파트 도서관 등의 사업이 확장되면 결국 지속적으로 책을 구입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출판시장 확대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점에서 독서운동단체와 출판계의 윈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장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영이 어려운 것은 사실인데, 어떻게 상황을 돌파할 것인가?
한 - 장기적인 숙제다. 우리는 자력갱생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기업이나 정부의 지원을 염두에 두고 운영하면, 지원이 끝났을 때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플러스 알파’로 생각하고 일한다.
장 -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는데, 복안은 무엇인가?
한 - 조직의 대표의 역량이기도 하고 직원들의 역량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금씩 내가 가진 노하우와 권한을 위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다 보니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출판뿐 아니라 다른 업종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배우는 것이 많다. 또 외국의 모델을 많이 참고하고 있는데, 미국의 Room to Read나 TFA(Teach For America)가 배울 점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100% 후원에 의존한다. 이같은 일은 한국에서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자체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한국적인 모델을 세워나간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이런 일들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책을 보내는 일을 하고 싶다. 현재 탈북한 어린이들이 많은데 언어의 차이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통일이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책을 보내서 언어적 이질감을 줄이는 독서운동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이런저런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기회가 언젠가는 오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장 - 독서운동가 입장에서, 그리고 사회적 기업가 입장에서 한국 출판계가 당면한 문제는 뭐라고 보는가?
한 - 협업 혹은 연대는 사라지고 나라도 살아남자는 의식이 팽배한 게 가장 아쉽다. 도서정가제 문제, 인터넷 서점, 오픈마켓 문제 등에서 좀더 일찍 연대하고 공동으로 대처했다면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독서운동단체와 출판계만 봐도 그렇다. 독서운동단체들은 출판계에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출판계는 독서운동단체들이 뭔가 해달라고만 한다고 말한다. 서로를 파트너로 생각하고 함께 짐을 지는 고마운 존재로 여기기보다는 자기 입장에서만 본다. 장기적으로 보면 독서운동단체와 출판계는 같은 편이다. 출판문화를 향상시키는 동류의식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 정책은 일관되지 못하고, 전문가도 없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사안임에도 누구 하나 나서서 말하지 않는다. 도서관 예산 확보 등 현안이 산적한데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한다. 그런 역량이 있는 인사들도 많은데, 연대가 되지 않으니 허사다. 조국 교수가 <진보집권플랜>에서 말한 것처럼 출판계도 이런 사회적 방향성을 조율할 수 있는 접착제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거시적 안목에서 준비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답보 상태인 것이 아쉽다.
행복한아침독서 한상수 이사장은 독서운동가에서 사회적 기업의 대표로, 다시 사회 혁신가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박원순 변호사가 말하는 소셜 디자이너로도 해석할 수 있는 일이다. 혼자서는 많은 일을 할 수 없지만 그가 말한 연대와 공감을 통해서라면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리라,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한상수 대표는 “우리 사회가 이처럼 변한 것은 우리 책임도 있으니까 좀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사회가 변모할 수만 있다면, 또 우리 출판계와 독서운동계가 연대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위해 언제든 뛸 준비가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지금도 배움을 늦추지 않고 있고, 더 나은 자료를 찾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는 향후 10년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키우고 세우는 일에 매진하겠다는 각오다. 그가 벌인 새로운 일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