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조선왕조실록 13-14부
😲 조선시대의 언터처블(Untouchables)
케빈 코스트너, 숀 코네리 주연의 ‘언터처블’이란 영화에 대해서 다들 아실것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역작중 하나인 언터처블. 금주법 시대에 미국의 대표적인 갱 알 카포네와 특수수사대와의 한판승부를 보여준 이 작품. 자,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이런 금주법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
그것도 10년이 아니라(미국 금주법 시기는 1919~1929년 까지였다) 무려 50여년이나 있었다는 사실!
케빈 코스트너의 카리스마를 넘어서는 조선의 언터처블을 만나보러 가자.
"잘 들어. 앞으로 조선에서는 술 못 마신다 알았지? 이것들이 말야 배가 불렀어 아주 그냥,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마당에 술을 담근다고? 야이 자식들아 고통분담은 IMF때나 하는 건지 알아? 시도 때도 없이 해야 하는 게 고통분담이야 자식들아! 앞으로 내가 왕하는 동안 술 먹는 놈 걸리면 그길로 칵 모가지야 알았지?“
“아니…저기 전하. 원래 전임 왕들께서도 식량사정이 좋아지면, 금주법도 풀고 그랬거든요? 이게 또 사람이란게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묘한 습성이 있는지라….”
“일단 넌 셧더 마우스 하고, 다들 잘 들어. 술이란거 이거 백해무익이거든? 술 끊어봐라 그게 바로 웰빙의 시작이다. 다 네들 건강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까 잘 새겨듣고, 어쨌든 술 마시지 마. 이상 끝!”
“아니 전하! 그럼 제사상에 올리는 술은 어쩝니까? 제가요… 크흑, 우리 아버님께서 생전에 그렇게 소주를 좋아 하셨는데 흑흑, 살아 생전에 저희 집이 뭐 찢어지게 가난해서 소주 한병 제대로 못 드렸는데…. 흑흑, 죽어서라도 부모님 제상에 소주 한병 올리고 싶습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다 필요 없어. 제사상에도 술 올리지 마!! 술 대신에…그래, 감주 좋다. 밥알도 띄워서 먹으면 좋겠네 몸에도 좋고, 그래 앞으로 제사상에 올리는 술은 감주로 통일한다!"
새로 왕위에 등극한 임금은 즉위하자마자 금주령을 내리게 되는데, 원래 조선시대 왕들은 툭하면 금주령을 내리긴 내렸다.
흉년이 들어 먹고 죽을 쌀도 없는 마당에 술을 빚는다는 거 이거 문제 있다는 생각에 금주령을 내리곤 하였지만, 이내 풍년이 들면 금주령을 해제하고 하였는데, 이번 왕은 좀 달랐다.
말 그대로 ‘술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아무래도 정권초기에 분위기 쇄신용으로 하는 거겠죠?”
“뭐 그렇겠죠? 원래 정권 잡으면 범죄와의 전쟁도 하고, 개혁도 하면서 분위기 한참 띄우면서 시작하는 거니까 좀 지나면 다시 잠잠해 질 겁니다. 한 1,2년 버티면 다시 원상복귀할 겁니다.”
신하들의 이런 생각과 달리 이 임금은 ‘술과의 전쟁’을 1,2년짜리 전시행정용이 아니라 국정과제이자 정권을 건 숙원사업으로 벌이게 되는데, 분위기가 묘하게 진행되자 신하들이 당황하게 된다.
“술 없이 어찌 산다고 이러시나?”
“이거 참 문제예요. 문제 백성들이 지금 아주 난리가 났어요. 술 마시다 걸리면 목이 떨어질 판이니….”
“좀 기다려 봅시다. 전하께서도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니고, 좀 지나면…. 후후후.”
신하들의 이런 생각을 비웃기나 하듯 이 임금은 벽에 X칠 하도록 오래살았으니, 조선왕조 사상 최장기간 임금을 한 영조대왕이 바로 이 강력한 금주령의 주인공이었다.
영조는 무려 53년동안 왕 노릇을 하며 조선에서 술을 없애겠다고 두 팔을 걷어붙이게 된다. 그리고 강력한 의지를 대외에 천명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놓는데, 바로 특수수사대의 창설이었다.
“금주령의 확고한 실행을 위해 형조와 한성부의 수사대원들을 뽑아 태스크 포스팀을 구성한다. 이 금주 단속 특별 수사대의 이름은 금란방(禁亂房)이라 하고 이들을 통해 건전문화 창달과 조국 근대화에 앞장서며 민족중흥…은 아닌거 같고, 어쨌든 술마시는 놈들은 다 때려잡는다!”
영조시대의 금주령은 해가 갈수록 더 정도가 심해져갔다.
그러나 어디 이게 지도자의 의지 하나만으로 끝이 날 문제겠는가?
이미 술맛을 알아버린 사람들인데?
더구나 영조가 그렇게 믿었던 태스크 포스팀 금란방 단속반원들은 언터처블의 케빈 코스트너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으니,
“아니! 주모. 내 그렇게 안봤는데 어떻게 벌건 대낮에 그것도 한성바닥에서 술을 판단 말이요? 나라의 국법이 지엄하거늘, 안되겠어, 여봐라 당장 이 여인을….”
“아이고 포교나리. 이년이 먹고 살길이 막막해서 술 지게미 좀 걸렀을 뿐입니다요. 한번만 한번만 봐주십시오. 그리고 이건 얼마 안 되지만 가다가 국밥이라도 한그릇….”
“아니 이년이 감히 우리 금란방을 어찌 알고!”
“아이고, 포교나리 잘못….”
“이 여편네가 큰일 낼 사람일세, 감히 우리 특수수사대를 어찌 알고! 우리는 이깟 엽전 몇푼에 넘어가는 금란방이 아니야!”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나리,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이깟 엽전 몇푼에 넘어가는 그런 치졸한 관원들이 아니라니까!”
“예예 나으리 명심하겠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이깟 엽전 몇푼에 넘어가는 그런 관원이 아니라니까!”
“…”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우리는 이깟 엽전 몇푼에 넘어가는 관원이 아니라….(원빈 말투로) 얼마면 돼? 그까짓거 얼마면 넘어올수 있는거야?”
영조가 그렇게 믿었던 금주단속 테스크 포스팀은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지게 되는데, 과연 영조의 금주령은 성공할 수 있을까? 영조와 술과의 한판승부의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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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부 계속
믿었던 금란방(禁亂房)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영조는 적잖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신하들은 이틈을 비집고 들어와 금란방의 개혁을 주장하게 된다.
영조도 어쩔 수 없이 이에 수긍을 하는데, 신하들 여기에 힘입어 금주령의 완화를 계속해 주창하게 된다.
영조로서는 수세에 몰리게 되는데,
“이 자식들, 딱 한 녀석만 걸려봐. 아주 그냥 요절을 내줄테니까.”
영조, 이를 부득부득 갈기 시작했다.
이 타이밍에 걸리는 공무원 말 그대로 ‘시범케이스’가 되는 것이다.
모든 공무원들 이런 영조의 ‘노림수’를 읽고 YS시절의 트레이드 마크인 복지부동자세를 취하는데, 아뿔싸 떡하니 한명이 걸려들게 된다.
“전하! 남병사(南兵使 : 남도병마절도사를 일컫는 말로 종2품 무관직이다) 윤구연이 집에서 몰래 술을 빚어 술판을 벌인다 하옵니다! 전하의 지엄하신 영이 내린지가 언제인데,
장수된 자가 이리 방자하게 술판을 벌이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공무원들의 기강 확립을 위해 윤구연을 파직 시키는 것이 옳은줄로 아옵니다!”
이말을 들은 영조 옳타꾸나 하면서 오바를 하는데,
“이 자식 딱 걸렸어! 내가 그렇게 술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장군씩이나 되는 놈이 술판을 벌여? 이 자식 너 오늘 죽어봐라. 어이 당장 달려가서 윤 뭐시깽이를 당장 잡아 들여라!”
영조, 그길로 선전관을 보내는데 이때 선전관이 증거로 들고 온 것이 술항아리였다.
문제는 이 술 항아리에 있는 술이 금주령 이전에 빚은 술이라는 것이다.
즉, 윤구연이 금주령을 어긴 것은 아니란 것인데, 누구 하나 시범케이스로 걸리면 제대로 ‘박살’내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영조에게 이런 ‘사소한’일이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이 자식, 너 내가 뭐랬어? 술 마시지 말랬지? 국가시책으로 술 마시지 말라면, 공무원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할 거 아냐? 어쭈, 눈 안깔어? 이게 누구한테 눈을 야리는거야!”
“전하…. 소인이 원래 눈이 째져서 그런 것입니다”
“그걸 지금 믿으란 거야? 눈이 째졌으면 쌍꺼풀 수술을 하던가, 눈꺼풀 위에 스카치테입을 붙이던가 해야지, 어디 임금앞에서 눈을 부라려? 안되겠어 이 자식 전혀 반성의 기미가 안보여. 이 자식 당장 총살시켜!”
영조 작심하고 윤구연을 시범케이스로 삼으려 한 것이다.
윤구연의 사형언도 소식을 듣자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삼정승이 총출동해 윤구연의 구명에 나서는데,
“전하 종2품이면 차관보급입니다. 일국의 차관보를 아무 증거도 없이 무턱대고 죽인다면, 전하의 이미지상….”
“어쭈, 언제 네들이 내 이미지 걱정했냐? 이것들이 아예 3종세트로 개기네? 네들 다 옷벗어! 오늘부로 네들 해고야. 나갈 때 호조에 들러 퇴직금 정산하고, 책상 오늘내로 다 빼!”
영조, 이 참에 제대로 시범케이스를 보이려 했다.
삼정승이 말한번 잘못 꺼냈다가 다 짤리자, 이번엔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이 삼사가 합심해서 영조에게 재심을 요청하는데,
“이것들이 이젠 아예 세트메뉴로 덤벼드네. 네들이 배가 불렀구나. 네들도 다 옷 벗어라. 어이 도승지, 애네들 퇴직금 정산 해주고 빨랑 대궐에서 나가라 그래라!”
그 뒤로도 윤구연에 대한 재심을 요청하는 신하들이 벌떼같이 덤벼들었지만, 영조는 이를 다 묵살하고 그대로 윤구연을 참형에 처하게 된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하나 윤구연의 사형집행을 영조 스스로가 했다는 것이다.
영조는 남대문 앞으로 직접 나가 망나니 처럼 칼을 뽑아 들고는 직접 윤구연의 목을 따 버린 것이다.
“내 임무는 윤구연의 목을 따는 것이다!”
영조는 그렇게 생각했었나 보다.
자, 일국의 차관보의 목을 직접 따버릴 정도로 강력하게 금주령을 시행했던 영조.
여기서 슬그머니 의문점이 생기는 것이 그럼 영조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을까?
이 의문을 풀어줄 단서가 조선왕조실록에 살짝 나오는데, 영조 12년 4월 24일의 기록이다. 영조의 석강(夕講 : 야간경연을 말한다. 조선시대 임금은 경서를 배우는 경연經筵이란걸 하루 세 번 했는데, 조강, 주강, 석강이 그것이다.
경연은 경서를 공부하는 듯이 보이지만 신하와 임금의 정치토론장이 되곤 했다)이 끝난 뒤 조명겸이 영조에게 말하길,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말을 가만히 들어 보니, 전하께서 술을 끊을 수 없다고들 합니다. 신이 그 거짓과 참을 알지 못하지만 오직 바라건대, 조심하고 염려하며 경계하도록 하소서.”
조명겸 은근히 영조에게 우리는 못 마시게 하고 혼자 술 마시는 거 아니냐고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영조의 답변이 걸작인데,
“내가 목이 마를 때에 이따금 오미자차를 마시는데, 남들이 가끔 소주로 의심했나 보다.”
영조는 그렇게 술인지 오미자차인지 모를 음료수로 목을 축이며, 가열차게 금주령을 시행하였다.
말 그대로 언터처블이 되어 반백년동안 조선 땅에서 술과의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은 실패하게 된다.
인간이 술을 모르고 있었다면 모를까, 이미 맛을 봐버린 상황에서 술을 금한다는 것은 어려웠던 것이다.
오죽하면 금주령을 말하는 왕 자신조차 술인지 오미자차인지 헷갈리는 정체불명의 ‘음료수’를 마셨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