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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중앙을 향하지 말고 중앙이 되라>의 줄거리:
隨處作主(수처작주) 立處皆眞(입처개진). 중국 당나라 때 임제선사의 교훈으로, 어디에 처하든 주인이 되면 서있는 곳 모두가 불국토라는 뜻이지요. '중앙' 혹은 '중심'을 향한 열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식을 줄을 모릅니다. 모든 사람은 변방에서 중앙을 향하여 경쟁적으로 쇄도하고 있지요. 그러나 선민은 인간세상의 이미 있는 중앙을 향하여 돌진하지 않습니다. 선민이 제1계명을 지키는 곳, 그곳이 어디든 바로 하나님의 역사 주관의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중앙을 향하지 말고 중앙이 되라
(에스더 10:1~3)
1.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본토와 바다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2. 왕의 능력 있는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중앙을 향하지 말고 중앙이 되라>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중앙을 향하지 말고 중앙이 되라’
1960년대 초중반에 걸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상호가 있습니다. 1등과 2등은 ‘국제’와 ‘중앙’이고 3등은 ‘제일’이라고 합니다. 두 개를 함께 쓰는 경우도 있어서 지금도 평택에 가면 미군부대 주변에 있는 시장을 국제중앙시장으로 부릅니다.
‘제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일모직, 제일은행, 제일무역, 제일학원, 제일교회 등 곳곳에 제일이라는 상호가 있습니다. ‘국제’라는 말은 일제식민지하에 있던 우리나라가 독립하면서 국제적인 차원을 의식하여 국제화가 화두가 되며 오랜 시간 사용되어 온 말이었습니다. 미국화가 곧 국제화였지만 국제시장, 국제극장, 국제상사, 국제학교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중앙’이라는 말도 엄청나게 많이 사용했는데 중앙시장, 중앙일보, 중앙대학, 중앙교회, 중앙극장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 개의 상호를 통해서 변방으로부터 중앙을 향하여 가고자 하는 열망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이름을 노골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 열망자체가 식은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그러한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흐름을 타고 이름을 지을 뿐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안에서 만의 일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항상 변방에서 중앙을 향해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경쟁적으로 돌진하고 쇄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모든 사람의 삶은 변방에서 중앙을 향하게 됩니다.
사법고시 같은 경우도 폐지냐 존속이냐 말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의 사법고시는 고등학교 졸업자도 응시하여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는 등용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변방에서 중앙으로 진출하고 싶은 열망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없어진다면 굉장히 서운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당나라 승려인 임제 선사가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처하는 곳을 따라서 주인이 되면 서있는 곳 모두가 진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의 진리는 부처가 되는 것이기에 불국토가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있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있는 모든 곳이 불국토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말에도 “앓아누운 주인이 열 머슴 몫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인이 아무리 앓아누워 있더라도 마음 없이 일하는 열 머슴보다도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복음적으로 바꾸어보자면 ‘처한 모든 곳에서 제1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 역사의 중심지가 된다.’라는 말입니다.
선민은 제1계명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생활화를 하는 것은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제1계명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의 정의는 내 마음의 공백을 채울 수 있으리라 믿어지는 대상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 마음에 기쁨과 만족을 줄 수 있으리라 믿어지는 대상이 곧 신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종교의 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의 신은 마음에 기쁨과 만족을 준다고 믿어지는 대상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동원되는 것일 뿐 진짜 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제1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만이 내 마음에 진정한 기쁨과 만족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처하는 곳마다 표현하는 것입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시장이든 정치판이든 제1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선민은 그 주변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통치의 중심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의 삶의 특징은 기존에 존재하는 인간 세상의 중앙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자리에서 제1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주변을 통치하시는 통치의 중심지가 저절로 되기 때문에 중앙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선민인 사람이 제1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선민이 제1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내용적으로는 선민이 중심이 되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지신 계획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펼치시지 못한다는 점에서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중심이 될 경우 하나님의 역사는 대부분 내게 고난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평강과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위해서는 가는 곳마다 제1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더서의 마지막 부분으로 아하수에로 왕의 강성함과 모르드개를 비롯한 유다인들의 평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하수에로 왕의 강성함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전하고자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또는 왕의 인격적인 차원에서 왕후 와스디를 폐한 것을 미루어 짐작컨대 상당히 변덕스러웠지만, 유대인의 생명을 보존한 공이 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상을 내리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도 아닙니다.
에스더서 전체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선민을 선민답게 하시기 위해서 위기를 만드시고 극복하도록 제1계명을 지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장에서는 선민 됨을 되찾은 부림절을 만들어서 기념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1계명을 지키는 자들의 위치로 되돌아온 유다인들의 평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아하수에로 왕의 강성함을 앞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강성함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 강성함의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모르드개를 등용하고 유다인의 말살위기를 해결하는 주역이 됨으로서 그 결과 강성함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모르드개와 에스더 그리고 유다인들이 제1계명을 지키는 현장인 페르시아를 통치해 나가셨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페르시아의 왕이지만 실제로 그 강성함의 비결은 유다인들에게 있었고, 그들이 페르시아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고 이렇게 해서 에스더서가 끝나게 됩니다.
에스더서의 문제는 제1계명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제1계명을 지키지 않음으로서 선민 됨은 말살위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모르드개가 제1계명을 지키기 위해 하만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나고, 민족의 말살위기가 생기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 중에서 유다인 전체가 선민의식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선민의식을 되찾아서 제1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생겨난 페르시아는 사방으로부터 조공을 받게 되었음을 통하여, 유다인이 하나님 통치의 중심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인간세상에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현상적 차원을 염두에 두면, 세상의 중심은 미국이나 중국 같은 강대국들에게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보문제가 이번 대선의 중요한 논쟁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안보가 정말로 미국의 사드 같은 것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김정은이 한 순간 정신이 나가서 행동한다면 사드가 얼마나 있든 말든 핵무기는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안보는 선민들이 얼마나 제1계명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고, 또한 어느 정도로 몰입해서 지키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알고 있는 우리들이 대한민국 역사 흐름의 중심점입니다. 각 정당의 대표들이 이루고 있는 정치판이 중심이 아닙니다. 그로부터 대한민국의 역사흐름이 결정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늘 에스더 10장은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강성해지고 전 세계의 절반이나 되는 영역을 지배하며 조공과 세금을 받고 있지만, 결국 그 판세를 결정하고 있었던 것은 제1계명을 지키는 모르드개와 에스더 그리고 유다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셔야 하는데 이것이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로 활동하셨던 나사렛 지역은 유다 땅의 변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세상의 눈에는 결국 중앙 진출에 실패한 정치가이자 종교가였을 뿐입니다. 그 당시 로마제국 내의 변방이었던 유다사회의 중앙으로도 진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사렛 청년이 마음을 전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실 정도로 티끌만한 기쁨이나 만족거리조차도 찾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마음의 기쁨과 만족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에게서만 찾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을 중심으로 세계의 역사는 하나님에 의해 통치되고 섭리되며 이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역사는 주전과 주후로 나뉘게 되었듯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주님을 중심으로 이 세상을 이끌어 나가고 계십니다.
내가 중심이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대기업 계열사의 일개 과장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변방인 나사렛에서 사시던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몰입함을 통해 세계역사의 중심이 되셨던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내가 과장자리에서 승진이나 성과를 기뻐하는 대신에 하나님으로 기뻐한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잘 되지 않습니다. 체감이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승진이 됐을 때의 기뻐하는 마음을 몰아내고, 승진이 안 됐다면 그로 인해 서글퍼진 마음을 십자가에서 죽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의 동선을 따라서 마음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겠다고 하는 동안에 회사와 그룹전체까지도 하나님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우리가 제1계명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길은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내 마음은 자꾸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들을 통해서 기쁨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슬퍼하고 근심하고 걱정합니다. 조금 얻을 것 같으면 기뻐질 것 같다가도 또 그 기쁨을 상실해버립니다. 이러한 모든 마음의 상태를 날마다 순간마다 십자가에서 죽이면서 예수님의 동선을 따라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하늘에서 아버지로 기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도 그렇게 기뻐하기 위해 제1계명에 충실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중심으로 주변을 통치해나가실 것입니다. 이 때의 증거가 바로 오늘 본문에서 유다인들에게 주어졌던 평강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결국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의 울타리 역할을 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내가 제1계명을 지키기 위해 혼신을 다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또 다음날도 그런 나를 지키실 여건을 만드실 것입니다.
내일은 대통령선거입니다만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제1계명을 지켜나간다면, 우리 육체의 연관성의 범위에 포함된 자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퍼져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대한민국이 평강으로 이끌어져 나가는 것이지, 누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서 평강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시면서 투표권을 행사하시되 더 중요한 것은 선민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에게 드러내주신 이유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돈 건강 자녀 승진 결혼 등으로 기뻐하고 슬퍼할 때에 오직 하나님만을 기쁨과 만족으로 추구하게 하심입니다. 이러한 선민의 특권을 사용할 때에 대한민국의 안보와 운명조차도 좌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1계명을 깊이 지킬 때에 우리의 믿음에 의해서 김정은 정권이 좌우지 될 수 있는데 멋지지 않습니까? 에스더 10장은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십자가 생활화에 목숨을 거는 하루가 되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하나님만으로 만족과 기쁨을 얻는 제1계명을 지키는 선민들이 가는 곳마다 선민의 특권을 발휘하여 이 땅이 하나님의 통치의 중심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