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살사리듬과 공산혁명이 공존하는
백민석의 <교양과 광기의 일기>를 읽고
2020.2. 향기 이영란
늘 쓰려고 생각하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조금씩 쓰고 있다 하더라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 언제나, 어김없이, 늘, ‘아! 글이란 무엇일까? 먹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맛 없어도 참고 먹을 수 있을텐데’, ‘이 엉기고 생기다 만 생각들을 어떻게 글로 만들어 정연하게 조립해 낼 수 있을까?’, ‘아~ 컴퓨터 의자 위에 앉는 것보다 청소가 훨씬 나아’ 아무리 반복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글일 것이다. 아~ 안 쓰고 도망가고 싶다......
나1 :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일단 쓰기부터 하자, 릴렉스...... 쉽게 부담없이’
나2 : 웃기고 있네. 쓸 때마다 그 소리. 네가 써 봐! 그게 되는지! 그런 도움 개뿔도 안 되는 원론적인 이야기는 집어 치워!
그날 밤 일단 성질 드럽고 목소리 큰 나2가 승리했다.
다음 날, 나1은 조용히 모니터 앞에 앉았다. 성질이 괄괄하지만 글을 쓰는 데는 행동력 있는 나2의 참여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를 달랠 수 밖에 없다. 오늘은 좀 누그러져 있는 게 예감이 좋다.
나2 : 하려면 좀 더 제대로 하던지...... 글 쓴 지가 언제인지 원. 너도 좀 더 부지런해야 한다구.
나1 : 알았어. 실은 나도 할 말은 없어. 그래도 내 경험상 미룰수록 생각만 거창해지고 시작은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힘을 모아서 해 보자.
나2 : 나도 그렇게 성질을 내고 싶은 건 아니야. 글을 쓰다보면, 마치 우물을 파내려 가다 물이 지나가는 관에 구멍을 낸 것처럼 푹 패여 들어가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그 때부터는 저절로 쓰여지는 느낌이 들잖아. 그 맛에 쓰기도 하는데, 다만 그 지점을 만나기가 어려워서, 성질이 나서 그런거지.
나1 : 나도 네 진심을 모르는 건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먹는 건 날이 선 감정을 부드럽게 꺾을 줄 아는 지혜를 갖추는 일이라 생각해. 어쨌든 나는 네가 고마워.
지금부터 나오는 글은 지지리도 의견이 안 맞는 나1,2가 뜻을 모은 것들이다.
책을 읽고 나면 쿠바에 대해 중요한 무언가를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까지 하지는 않았으나, 쿠바를 더 회뿌옇게 색칠해서 내미는 작가의 글을 읽고는 당혹스러웠다. 나의 글은 <교양과 광기의 일기>를 읽은 그 다음의 이야기라 말할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사람을 만나고 그 인연에 따른 이야기가 생길 것이다. 작가에게 선택된 나라는 쿠바였는데, 왜 쿠바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작가가 쿠바에 간 이유를, 오늘날 나를 포함한 우리가 쿠바에 가고싶어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대한민국을 여행하기 위해, 혹은 알아보기 위해 단군이 세운 고조선부터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발해, 고려, 조선,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그 후의 현대사까지 세세하게 알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지난한 역사를 거쳐 온 DNA가 우리에게 새겨져 있겠지만, 그것은 감기바이러스만큼이나 눈으로는 절대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다. 누가 봐도 우리는 2020년, 눈부신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며 세련된 자본주의와 점점 더 안정화되어가고 있는 정치제도를 가진 나라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DNA이든 바이러스이든 우리가 눈으로 확인한 바 없는 세포들이지만,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은 우리를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사회가 신봉하는 이념, 개인이 추구하는 신념 같은 것들은 실체를 확인한 바 없고, 남녀 간의 사랑이나 자식에 대한 절대적인 애정 같은 것들은 스킨쉽이나 포옹을 할 때 잠시 곁에 머물다 갈 뿐이지만 존재를 규정 지을만큼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나라의 역사를 함께 거슬러 읽어내지 않으면, 아무런 정보가 없는 사람을 앞에 두고 보는 것처럼 막막하게 느껴진다. 학생이나 어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이력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나는 그를 제대로 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의 이런 습관은 상대를 제대로 대하기 위한 노력이라 이야기하고 싶지만, 실상은 그러한지 확인할 수는 없다.
쿠바가 속한 남아메리카는 기록문화가 발달하지 못해 그 융성의 증거를 유물과 유적으로 밖에 확인할 수 없다. 스페인의 피사로에 의해 허무하게 멸망한 잉카제국과 그 후 스페인과 포르투칼에 의해 통치되던 시절에 이어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시기까지, 그 내력을 읽어내고 나서야 눈이 떠질 수 있었다. 20세기에 들어 남미대륙은 경제적 이익만 더욱 더 교묘하게 착취해 가던 미국 정부에 빌붙은 어용정치인이 대부분 정권을 잡고 있었다.
쿠바 역시 그런 나라 중의 하나였으나,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바티스타 어용정권을 몰아내고 쿠바혁명을 성공시킨다. 붉은 색으로 사전 두께만큼인 체 게바라 전집을 감히 읽어볼 엄두는 꿈에도 내보지 않았고, 대신 어린이들을 위해 쉽게 풀어쓴 만화책으로도 얼마든지 그 정도의 객관적 정보는 얻어낼 수 있었다. 두 인물 모두 사회주의를 신봉한 인물이었는데 체 게바라는 남미 곳곳을 두 발로 여행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낱낱이 훑은 사람이었고, 카스트로 역시 혁명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둘은 조직을 장악하고 민심을 얻어 혁명에 성공했다.
혁명 이후 둘의 삶은 갈라서게 된다. 게바라는 쿠바에서 국립은행 총재, 공업장관 등을 역임, 개혁을 이끌어내며, 안정된 위치의 삶을 누릴 수 있었으나, 게바라는 쿠바 혁명을 거점으로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혁명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카스트로는 쿠바 혁명의 성과를 유지하는데 매달려 있었고, 그 이후 52년간 쿠바를 1인 권력체제를 유지하며 통치했다. 52년간......
체 게바라는 그 후 콩고 내전을 돕기 위해 참가하였다가 볼리비아 혁명을 돕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미국은 쿠바 사태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볼리비아 혁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좌시하지 않았다. 체 게바라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현대적인 무기와 장비, 군사를 지원했다. 볼리비아 공산당의 비협조, 농민들의 지지를 끌어내는데 실패한 게바라 일행은 미군에 생포되어 사살되었다. 1967년, 서른 아홉 살의 나이로.
미국의 코 밑에 있는 나라로, 1959년 혁명을 단행하면서 미국기업이 쿠바에서 소유하고 있던 모든 자산을 몰수하였다. 그로인해, 1960년대 초 미국과의 모든 경제교류가 단절되었고 54년간 국교단절, 경제봉쇄정책도 함께 취해졌다. 쿠바와 교류했던 소련도 1991년 공산권 국가가 붕괴하면서 경제는 더욱더 어려워졌다.
카스트로는 초인적 열정과 날카로운 지성을 겸비했고 탁월한 정치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52년이라는 숫자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교육기회와 시설을 크게 확대했고, 의료시설 혜택의 기회와 부, 소득을 재분배했다. 쿠바의 모든 교육과 의료혜택은 무료로 제공되었다. 모든 시민에게는 고용이 보장되는 동시에 노동은 시민의 의무가 되었다.
그러나 카스트로가 집권하는 동안 쿠바의 경제는 인구성장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여러 측면에서 비효율적이었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쿠바에서는 대부분의 생산수단을 정부가 소유하고 있었다. 52년이라는 숫자 안에 비효율과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 모든 보도매체들을 정부가 통제하였으며, 이들은 대부분 정부의 견해를 반영하였다는 내용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강대국, 그 중에서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에 대항하여, 허수아비 정권을 무너뜨리고 미국의 자산을 당당히 몰수하여 국유화 시킨 나라가 쿠바이다. 민심의 지지를 기반으로 그 어떤 외부세력의 지원도 받지 않고 혁명을 성공시킨 극히 드문 나라가 쿠바이다. 큰 덩치에 절대 쫄지 않고, 미국과 적대관계였던 소련을 끌어들여 방어용 미사일 기지를 설치한 나라. 오랜 기간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에도 공산국가의 도움을 받아 경제를 유지해 왔지만, 공산당 1당 독재의 폐해보다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생태농업 등 느린 발전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쿠바라는 나라를 입에 오르내리게 했다. 미국과 끝까지 적대적 감정을 풀지 않았던 피델 카스트로와는 달리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집권한 후 오바바 대통령 재직시였던 미국과 2015년에 국교를 정상화하게 된다.
쿠바에 대해 가지는 사람들의 경외심은 자신들은 감히 대들거나 맞설 생각을 못해보았던 거인에게 반항한 정의로운 일진에 대한 대리만족이었을까? 그러면서 자신의 나라 민중들의 삶을 책임져 나가는 모습, 각종 경제봉쇄로 인한 자구책이었지만 느리게 발전하면서 오히려 도시농업이나 자연생태를 보존하는 모습에 대한 부러움이었을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모습도 있었던 것 같다. 쿠바의 낮이 지금까지 체 게바라로 도배를 하면서 팔고 있다면, 쿠바의 밤은 어떠한가?
중남미 국가들이 그렇듯 성이 개방되어 있으며 중고등학생들 간에도 미혼모가 흔하여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기를 낳은 게 그다지 흠이 되진 않을 수준이다. 그런 이유도 있고 미녀들이 유명한데다가 쿠바가 빈국이라서 매춘을 하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현지인들 기준에서 크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매춘업이 상당히 발달해있다. 사실 쿠바에서 매춘은 불법이지만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어느 정도 봐주고 있는 면이 있는 것이다.
나무 위키
쿠바에 오는 외국 관광객들은 어디서나 쉽게 거리의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외국인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면 어디든지 매춘여성들이 포진하고 있는 탓이다.(중략)
아바나 시내에는 족히 수천명이 넘는 매춘여성이 있다. 여기에 ‘바라데로’나 ‘산티아고 데 쿠바’ 같은 다른 관광도시까지 고려하면 쿠바의 매춘 규모는 더욱 커진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언제라도 매춘에 나설 수 있는 여성이 그 몇 십 배에 이른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체면을 여지없이 구길 만한 수준이다.
한겨레21 1999년 09월
가보지 않아서 알 수 없는 일이고, 가 본들 여자인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듯 싶지만, 20년이 넘은 기사이지만 잠시 참고를 하고, 나무위키에 나온 내용까지 포함해 보면, <교양과 광기의 일기>에 등장하는 다나이스를 이해하는 좀 더 넓은 정보가 될 수 있을 듯 싶다. 다나이스의 어머니, 다나이스가 굳이 아버지를 찾지 않았던 행동, 그녀와 같은 일을 하는 여자들이 퍼즐 맞춰지듯 어느정도 아귀가 맞아 들어간다.
내가 읽은 수많은 책처럼 이 책 역시 손으로 물을 받아내는 것처럼 잠시 머물다 무엇이 남았는지 모르게 사라진 책이지만, 이 책이 아니었다면 쿠바를 그리 열심히 들여다 볼 일은 훨씬 뒤로 미루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남성(근) 중심적 사고방식이 강하게 읽혀진 부분부터는 거부감이 생겨 읽는 일을 한동안 멈추었다. 그러나 남성 역시 고(苦)와 고(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두 자아를 오가는 것 역시 남녀를 구분할 일도 아니다. 다나이스가 러시아인 아버지를 만나는 일 역시 드라마틱하지 않아서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화자가 백인 마스터를 패 준 일은 실제인지 환상 속에 일어난 일인지 분간되지 않는다.
책에 대한 소회(所懷)가 빈약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 소모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동안 오랫동안 함께 말레콘(방파제)을 걸었다. 작가가 다닌 시간적 공간적 동선이 하도 감질나서 쿠바 역사와 나라 전체를 헤집어 볼 수 있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다중의 나를 살피는 시간, 둘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도 작가의 일에서 참고할 수 있었다. 살사 춤의 격렬한 리듬과 낭만의 사람들이 닫힌 체제인 공산주의 사회를 통과해 온 시간을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단한 삶은 쿠바에서도 다르지 않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