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신문에 수록 (GBN방송)
나팔꽃
박수현
당신의 손목은 무사한지요
보드랍게 깍지 끼어 건네던 손길이 어디로 가나요
지난여름 여리고 따듯한 우주의 새끼들을
슬하에 풀어 기르던
그 푸성귀처럼 푸른 힘 이제 어디로 가나요
당신의 슬하에 고요가 깊어지고 있어요
저것 좀 보세요 사방 흰 중환자실
손등의 힘줄에도 당신의 덩굴손들이
있는 힘을 다해 기어 오르네요
막무가내로 기어 오르네요
당신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어요
당신은 이제 입술을 닫았는데
조곤조곤 당신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이 가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당신의 손목을 덩굴손처럼 부여잡아요
당신에게 안부를 전하려면
나는 저 작고 까만 씨앗들을 얼마나 모아야 할까요
얼마나 높이 허공의 사다리를 디디고 올라
씨앗들을 뿌려야 꽃의
새끼들이 먹먹하게 피어 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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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
지난여름 나팔꽃을 키웠다. 지지대를 세워 베란다 망에 붙여 기어오르게 했다. 줄을 휘감고 천장까지 다다른 무성한 덩굴손은 바람이 불면 레이스처럼 하늘거렸다.
드디어 징검징검, 초록 계단을 오르내리며 남보랏빛 어린 방들이 생겨났다. 꿈결에 모닝 글로리, 트럼펫 소리도 들렸다. “아침을/부여잡고 돌아보는 /황홀한 내연內緣”처럼 베란다의 크고 작은 꽃송이를 세는 것으로 코로나 펜데믹 속 하루를 시작했다.
초가을, 꽃자리엔 씨앗이 맺히고 점점 줄기는 누렇게 말라가자 문득 마지막 때 엄마 손등의 희미한 핏줄이 떠올랐다. 엄마와 나팔꽃은 모두 온힘을 다해 우주의 새끼들을 슬하에 품고 키워낸 것 같아서 서럽고 애틋했다.
얼마나 까만 씨를 모아 뿌려야 저곳 엄마께 안부 전할 수 있을까?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나팔꽃 손목은 튼튼한가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