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가요(Popular Song :大衆歌謠)의 연혁
한국에서는 1885년 미국의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종교사업과 교육사업(배재학당 ·이화학당 등)을 시작하면서 찬송가의 보급과 더불어 ‘창가(唱歌)’라는 신식 노래가 등장하였다. 창가의 어원은 운문형태의 문학에서 비롯되었다. 일반적으로 ‘노래부르기’를 말하는데, 초창기는 시형(詩型)이 다분히 일본의 것을 모방한 듯한 5 ·7 또는 7 ·5조 등의 음절을 기본으로 하는 신시조의 유행시대였다. 한문문화권(중국 ·일본 ·한국)에서 통속적인 유행가를 대중가요라고 지칭하는 것은 한국뿐이다.
◆ 번안가요 대중매체 수록을 기준으로 보자면,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창작에 간여한 유행창가로 음반에 수록된 최초의 노래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일축레코드에 수록된 박채선·이류색이 부른 「이 풍진 세월」이다. 당시 창가집에 「탕자자탄가」, 「청년경계가」 등의 제목으로 악보가 수록되어 있고, 해방 후에는 「희망가」라 불린 이 노래는, 미국의 노래가 일본으로 이입되어 새로운 가사로 불려지고, 다시 조선으로 들어와 새 가사가 붙여진 경우이다. 이 시기에 일본 노래 「카추샤의 노래」, 「장한몽가」, 「시드른 방초」 등이 우리말 가사로 음반에 수록되어 있으나, 가사가 번역이거나 이와 다를 바 없는 번안가사이다. 그에 비해 「이 풍진 세월」, 「자라메라」, 「사의 찬미」 등은 외국 악곡에 우리나라 사람이 창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가사가 붙여져 있다는 점에서 한국대중가요사의 첫 자리에 놓일 만하다. 이 중 음반 취입으로는 「이 풍진 세월」이 가장 이르며, 1926년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는 취입 후 윤심덕과 김우진의 동반자살 사건이 센세이션을 일으켜 조선어 대중가요 음반의 생산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희망가 ● 장사익 (7:43) ● 임영웅 (4:56) ● 이선희 (3:27) ▲ 사의 찬미 ● 윤심덕, 이미자 & 김수희 (파일 하단에) ◆ 창작가요(신민요) 작사뿐 아니라 작곡까지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노래로 음반에 수록된 첫 작품은 1928년(이하 연도는 음반 출발을 기준으로 함) 「낙화유수」와 같은 해 트로트 양식을 보여준 「세 동무」가 김서정의 작곡으로 출반되고, 전래의 민요 어법에 서양음악이 적극적으로 결합되었다는 점에서 신민요의 출발로 볼 수 있는 창작자 미상의 영화주제가 「아리랑」(1929)이 출반되면서 우리나라 사람의 창작으로 이루어진 대중가요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 트로트 양식 트로트 양식의 노래는 이후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의 적」(1932, 일명, 「황성 옛 터」), 고복수의 「타향」(1934, 일명 「타향살이」)을 거쳐 1935년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에서 양식적 관습이 대체로 정돈되었고, 이후 「연락선은 떠난다」의 장세정, 「애수의 소야곡」의 남인수, 「나그네 설움」의 백년설, 「알뜰한 당신」의 황금심 등의 인기 가수들을 낳으며 오랫동안 한국대중가요사의 주도적인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작곡가로는 전수린, 손목인, 박시춘, 김해송, 이재호 등이 인기를 얻었으며, 작사가로는 왕평, 박영호, 조명암, 박노홍 등이 활발히 활동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