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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나는 친구들과 고등학교 졸업여행을 가던 중 불행한 사고를 겪었다. 지금도 잘 알려진 일명 강원도 산길 여고 수학여행 버스 추락 사고 말이다. 그 사고만 생각하면 1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그때의 상황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정말 신기한건, 고등학교 2-6반 시절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고 그때 그 사고만 정확히 기억한다. 트라우마 때문에 학생 시절에 좋은 추억들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 너무 허무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수학여행 시즌이 다가오자 공부에만 찌들어 살았던 친구들도 활기를 되찾아 일주일 전부터 신나 있었다. 나 또한 시험준비에 바빠서 무기력해 있었던 감정을 버리고 신나서 어쩔줄 몰랐다. 여고라 그런지 벌써부터 수학여행때 뭘 가져가서 짐은 어떻게 쌀지, 돈은 얼마 가져가서 선물은 뭐 살지, 밤에 얼마나 재미있게 놀수 있을지 고민하고 앉아있다. 그리고 버스 자리를 뽑는데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서 싸우고 다치고 아주 난리가 아니었다. 드디어 대망의 수학여행 당일!! 교실에 모이자마자 너무 놀랐다. 마지막 졸업여행이라고 과하게 꾸미고 온 친구랑, 명품으로 둘러싼 친구, 엄마 백과 선글라스를 몰래 뺏어서 온 친구들 등등 여러 가지 유형의 친구들이 있었다. 여행갈 때 정말 불편한 짧은 치마를 입고 온 애들도 있었다. 누가 빨리 모이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평소에 최선을 다해 늦어서 오는 친구들이 제일 빨리 와서 친구들을 화장시켜주고 있었다. 흡사 연예인들이 자주 다니는 메어크업 샵처럼 말이다. 나도 분위기를 타서 화장도 받고 이번 여행만을 위해 사로 산 선글라스도 꼈다. 약 1시간 정도 서로 들뜨고 신나서 화장도 해주고 몰래 가져온 간식들을 공유하며 수다를 떨었다. 우리보다 더 들뜨신 선생님이 등장해서 각종 안전수칙들을 설명해주셨다. 우리들은 안전수칙들을 듣는중 마는중 했다. 버스 타러 이동하기 전, 나는 우리반 친구들과 화장실에서 화장을 한번 더 확인하고 다른학교 애들한테 자랑할 SNS 에 올릴 거울샷을 찍었다. 그리고 이사가는 듯한 캐리어를 끌고 버스에 올라탔다. 맨 뒤에 타서 친구들과 신나게 떠드며 몰래 간식을 먹으며 가고 싶었지만 자리뽑기에 실패해서 앞자리에 시아와 타게 되었다. 창문으로 보이는 다른 반 친구들과 안녕 인사를 나누고 출발했다. 우리반 애들은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각자 미리 전날에 다운로드받은 여행 노래 리스트를 틀고 노래를 신나게 부르며 춤도 열정적으로 췄다. 나도 옆자리 친구와 선생님 몰래 간식을 나눠먹고 애들이 튼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며 머리를 흔들었다. 선생님도 신나시는지 우리와 같이 즐기시다가 관광지를 열심히 다니기 위해 체력을 아껴야 한다며 노래를 끄고 얼른 자라며 소리치셨다. 약 1시간동안 신나게 스트레스 받았던 것들을 해소하며 1시간동안 파티를 즐기다가 점점 지쳐가는 친구들이 생겨나면서 쿨쿨 자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몇몇 장난꾸러기 친구들은 선생님과 애들이 자는 사이에 안전벨트도 메지 않고 장난 칠 준비를 시작하였다. 미리 가져온 펜을 준비하여 일어나서 자는 친구들 얼굴에 낙서를 하고 인증하기 위해 소리없이 웃으며 사진도 맘껏 찍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장면을 다 봤을 기사님은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애들은 오히려 더 잘 됐다며 더 장난을 쳤다. 자는 친구 얼굴에 여러 가지 물건들을 어디까지 올라가나 확인해보고, 자는 친구 코에 입냄새를 풍겼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등등 이상한 장난들을 많이 쳤다. 정말 위험하긴 했지만, 너무 재미있는 장난이었다. 출발한지 2시간이 되어서 겨우 많은 애들이 잠들었다. 나는 잠을 자서 체력을 충전시키고 싶었지만 잠이 뜻대로 오지 않았다. 잠을 자고 싶어도 잠이 안와서 결국 졸업여행 전날 용량이 꽉 찰때까지 다운로드 받았던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평소에 공부 때문에 보지 못했던 많은 드라마들을 한거번에 봐서 오랜만에 힐링하는 것 같았다. 한참 드라마를 보며 웃고 마음 졸이면서 빠지고 있다가 버스가 계속 돌길을 밟아 덜그럭 덜그럭 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창밖을 한번 봤다. 이상하게 우리반이 타고 있는 버스를 제외하고 아무 차도 없는 깊고 험준한 산길로 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숙소가 산이 많은 강원도여서 그러려니 하려고 했다. 하지만 계속 뭔가 찝찝하고 이상해서 다른반 친구들에게 혹시 산길을 타고 숙소에 가고 있냐고 문자로 물어봤다. 그런데 이상하게 문자가 잘 안보내졌다. 계속 시도한 끝에 겨우 문자가 보내졌다, 놀랍게도, 다른반 친구들은 고속도로를 타고 숙소에 가고 있었고, 우리반 버스만 위험하고 험준하고 깊은 산길로 가고 있었다. 문자 전송도 원만하지 않고, 위험한 돌길을 밟으며 지나가고, 바위들을 겨우 지나치며 가는 상황이 너무나도 수상했다. 마침 나는 버스 앞자리에 타서 기사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 기사님, 우리반 강원도숙소까지 안전하게 잘 가고 있는거 맞아요? ” 기사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너무 수상하고 이상해서 용기를 내고 한번 더 물어보았다. “ 기사님, 우리반 숙소까지 안전하게 잘 가고 있는거 맞아요? 아까 물어봤는데 대답이 없으셔서요...... 자꾸 위험해보이는 산길로 가는 것 같아서 무서운데......... ” 또 내말을 무시하셨다. 또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운전하시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그냥 포기했다. 한참동안 생각에 잠기다가 내가 너무 의심병 환자인가 싶기도 하다가, 몇 년 전에 일어난 엄청난 큰 배 사고 사건 때문에 다시 또 생각해보았다. 너무 의심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온갖 잡생각을 하다가 에이 설마 나는 아닐거라 믿고 결국 나도 잠이 들었다. 한참동안 위험한 산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지다가, 나를 일어나게 할 만한 사건이 시작되고 말았다. ‘ 끼익... 끼익.....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쾅! ’ 소리가 났다. 맨 뒷자리에 타고 있던 5명의 친구들이 ‘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 라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 퍽. ’ 하고 쓰러졌다. 쓰러진 친구들은 머리 충격으로 인해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버스는 큰 바위에 박아서 뒤집혀 있었고, 뒷자리에 타던 친구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소수의 아이들은 넘어져서 머리를 박음과 동시에 골잘상을 입었다. 나 또한 옆으로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진듯한 느낌을 받았다. 맨 뒷자리 가운데자리에 앉은한 친구는, 정중앙 사이로 엎어진 상태로 피를 심각하게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정말 끔찍했다. 마치 부산행에 나온 좀비 무리처럼. 모두 다 너무 놀란 상태로 깨어나서 상황파악도 못한채 다친 애들부터 살폈다.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있는지 확인한 후 심폐소생술을 시작하였다. 그 장면을 본 뒷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자신들은 다친줄도 모른채 “ 기사님!!!!! 지금 맨 뒷자리에 앉은 친구들이 쓰러졌어요오!!!!!!! 빨리 구급차 불러주세요오!!!!!! ” 라며 소리를 질러댔다. 버스기사님은 어딜 봐도 보이지 않았다.기사님을 계속 소리지르며 불러보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앞자리 친구들은 창문을 깨서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뒤집힌 버스를 탈출하기 위해 나와 몇몇의 친구들은 유리창을 깰만 한 도구들을 찾아보았다. 선생님과 몇몇의 친구들은 쓰러진 애들부터 처치하고 구급차를 불렀다. 비상용 망치를 발견해서 유리창을 깨고 겨우 밖에 나온건 성공했다. 하지만 전부다 유리조각에 다쳐서 정상적인 사람들이 없었다. 구급차와 여전히 통화가 원활하게 되지 않았다. 쓰러진 애들은 점점 창백해지고, 구급차는 전화를 해도 네트워크가 잘 안잡혀서 20분간 절망의 시간을 보냈다. 산길의 정보조차 모르는 상황에 산에 있어서 네트워크조차 잘 안잡힐 때, 다같이 힘을모아 지도를 이용해 산길의 정보를 알아내었다. 여러차례 전화를 해본 끝에, 겨우 전화연결이 되었다. 친구들과 선생님은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너무 무서워서 계속 울었다.다친 애들을 보살피며 제발 구급차가 빨리와서 쓰러진 애들을 살려달라고 울면서 하늘에 빌었다. 사고 난지 1시간, 구급차를 부른지 약 20분만에 구급차가 도착하였다. 그때, 한 구급대원분이 정말 무거운 말을 전했다. “ 이 친구들, 오래 살지는 못할 것 같아요....... ” 이럴 리가 없다. 분명히 몇시간 전만해도 신나게 춤추면서 잘 놀았고, 재밌는 장난도 쳤다. 이렇게 친구들을 빨리 보내주고 이별할 수는 없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버스에 탔던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제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친구들의 모습을 본거일지도 모른다. 몇분뒤에 경찰차도 와서 사고현장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수라장이 된 길에서 열심히 취재하시고 계셨다. 이 슬픈 현장에서 실시간 뉴스를 보도하는 것이 진짜 화가 나고 이해가 안되었다.몇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레기들이 득실득실 하다. 쓰러진 친구들부터 먼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 다음 골절상을 입은 친구들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나와 시아는 경찰조사에 도움을 주었다. 경찰조사 중에 교통사고를 낸 기사님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너무 정신없는 와중 도망간 것 이었다. 진짜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 왜 교통사고를 내고 도망간 것일까......? ’ 나와 시아는 경찰조사와 부서진 버스를 끝까지 처리할 때 까지 지켜보고 친구들이 실려간 시내에 있는 병원으로 이동했다. 이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마음의 무거움을 견디며 차를 타고 이동했다. 날씨는 이 상황을 모르는걸까, 놀러가기 정말 좋고 해가 쨍쨍했다. 차에서 내림과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아니길 빌며 들어갔지만..... 어느정도 예상할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2명의 친구가 병원침대 위에 흰색 천이 덮여져 있었다. 너무나 충격적이여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냥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보이지도 않았다. 무슨 상황인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몇분간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내 인생에서 눈물을 가장 많이 흘렸다. 몇시간 뒤, 이 소식을 접한 우리학교 교직원들이 오고, 부모님들도 왔다. 두 친구의 부모님은 너무 슬퍼서 숨도 못 쉬면서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도 구석에서 겨우 참고 있던 눈물을 또 다시 흘렸다. 선생님들이 중상을 입은 친구들 빼고는 전부 다 집에 돌려보냈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한 친구들도 전부 다 귀가조치 시켰다. 그래서 또 버스에 타게 되었지만 진짜 무서웠다. 모든 집들이 다 부서지고 망가져서 핸드폰 밖에 남는게 없었다. 핸드폰도 고장난 애들도 있었다. 누군가가 말 없이 울기 시작했는데, 그게 전부 다 퍼져서 눈물 바다가 되었다. 슬픔을 삼키고 친구들에게 나와 시아가 경찰조사를 하는 동안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한참동안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다가 한 친구가 설명해주었다. “ 너희 둘 없었을 때, 쓰러진 친구들이 진짜 생각도 하기 싫은만큼 끔찍한 모습을 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어. 정말 드라마에서 볼법한 심장충격기를 사용해서 3명은 겨우 살수 있었는데, 두 친구는 이미 떠난 상태였어. 모두다 충격을 받았나봐.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소리도 안 내고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 그 다음 통곡을 했지. 골절상을 입은 애들은 그 소식도 모른채 치료 받다가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숨도 못쉬면서 울었어. ”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줄줄 나왔다. 그리고 정말 시끄러웠던 친구들도 몇시간동안 말 한마디를 꺼내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다. 평소에 절대 데리러 와주지 않는 엄마가 나를 데리러왔다.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평소에 관심도 없던 가족들이 살아줘서 고맙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그날 밤,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잠이 오지 않았다. 정말 괴로웠다. 머릿속에서 사고가 난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평소에 멘탈이 너무나 강한 사람이었지만 이 사고를 겪은 후 몇 개월간 불면증에 시달리고 약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트라우마 극복으로 살아갔다. 3명의 친구들은 장시간 수술을 받다가 뇌사 상태에 빠져 있어서 학교에 오지 못했고, 살아남은 친구들은 정신과 병원을 다니며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들은 버스사고를 내고 도망다니는 가해자를 찾는데 노력을 했다. 그리고 가해자 버스기사와 소송을 준비하며 시회에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이 사건을 알리는데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가해자 버스기사를 조사해보려고 했지만 개인정보들이 턱없이 부족해서 찾는데 너무 어려웠다. 어떻게 그렇게 잘 도망다니는지 모르겠다.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공부와 정신건강에만 집중하라고 하셨지만, 너무 마음이 무거웠다. 마치 돌이 내 마음속에 얹어있는 것처럼. 나는 회복이 많이 빠른편이었다. 약을 먹으며 치료에만 집중해서 겨우 회복이 가능했지만, 큰 충격에 아직까지도 말을 하지 않고 우울해보이는 표정을 하며 살아가는 친구들도 있다. 그리고 트라우마로 가득찬 나의 머리가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의 기억을 점점 잃어갔다. 사고 현장만 정확히 기억나고 나머지는 무엇을 하며 살아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1년이 지나고,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되었다. 2-6반 친구들과 각자 흩어지고 어쩔수 없이 공부에만 집중해야만 했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친구들이 자주 생각나서 괴로웠지만, 시아와 정신을 달래면서 같이 공부를 하며 극복해냈다. 어느날, 세상을 떠난 친구의 부모님께 전화가 왔다.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찾아냈다고. 부모님들은 당장 강남경찰서로 달려갔다. 엄청나게 속상한 채 그 사람에게 온갖 욕을 쓰고 울부짖었다. 나도 학원 끝나자마자 시아와 경찰서로 달려갔다. 놀랍게도 몇 개월 전 수상한 버스기사와 얼굴이 거의 일치했다. 나와 시아는 경찰관님께 저 사람이 맞다고 소리질렀다. “ 저 사람 맞아요!! 제가 그때 똑똑히 봤어요!! ” 버스기사님은 답답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푹 숙여있었다. “ 저사람이 가해자 맞네!! 여보세요 이 양반,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뭐 한겁니까!! 왜 그랬는지 당장 얘기 안해요?!?! 인생 그렇게 사는거 아닙니다. 한번뿐인 인생 제대로 사셔야죠!! 개념없게 살지 마시고!! 지금 증인이 있잖아, 얼른 안말해!! ” 부모님들은 거의 싸울 기세로 버스기사가 앉아있는 의자를 발로 차고 때렸다. 곧이어 학원 끝난 친구들이 와서 무슨 상황이냐고 하며 달려왔다. 경찰서는 완전 아수라장이었다. 버스기사는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버스기사의 개인정보와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드디어 나왔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셈이다. 이름은 강선범, 나이는 56세, 경기도 안산시 거주, 가족은 이혼한 아내만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분은 딸이 하나 있었는데, 딸이 몇 년전 현장체험학습을 가던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억울함을 다른 학생들에게 풀기 위해서 일부러 사고를 내었다고 한다. 사고를 낸 뒤, 이름없는 산에 도망을 가서 몇 개월간 살았다. 경찰관들이 여러군데를 수사하다가 이 분을 발견해서 체포했다. 부모님들은 소송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몇시간 뒤, 강선범의 개인정보들이 전국 뉴스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굴은 가해자 인권 보호 때문에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개같은 나라. 몇십년이 지나도 가해자 인권 보호 법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뉴스에서 계속 이런 일들을 많이 보면서 화가 나고 남 일이다 하고 넘어갔었는데 정말 실제로 겪어보니 분노를 참을 수 없었고, 지난 날의 나를 반성하게 되었으며, 이 감정과 사건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했다. 강선범이 임시 감옥에 수감되는 동안 2-6 친구들은 공부에만 집중했고, 수능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수능 몇 달 전부터 어떻게든 강선범을 평생 옥살이를 하게 만들러고 노력하시는 부모님들과 아직까지도 끔찍한 트라우마로 말을 입 밖으로 절대 꺼내지 않는 친구들, 후유증으로 계속 고통에 시달리는 친구들에게 전혀 신경을 안쓰고 피나는 노력을 하며 공부를 했다.너무 미안했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었다. 나는 S대 경영학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시아는 Y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다른 친구들도 좋은 대학교에 많이 진학할수 있었다.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부모님들 소송준비를 같이 도와드렸다. 그리고, 드디어 첫 재판이 시작되었다. 제발 노력한 만큼 결과가 왔으면 좋겠다. 강의를 빼먹고 세상을 떠난 친구들의 부모님이 피해자 석, 강선범이 피의자석, 트라우마로 말을 한동안 하지 못했다가 겨우 말을 할수 있게된 친구가 증인석, 나머지는 배심원석에 앉았다. 재판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리고, 피해자와 피의자가 검사, 변호사와 함께 등장하였다. 그리고 오늘 우리를 책임져주실 판사님이 입장하고, 양 측 인사와 선서를 했다. 강선범이 했던 잘못들과, 그에 대한 증거, 결과 등을 꼼꼼히 모은 자료들을 읽어 나갔다. 조금 긴장 되긴 했지만 이길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크고 돌이킬수 없는 실수가 나오고 말았다. 증인석에 앉은 친구가 그때 그 상황이 다시 떠올라 공황장애가 온 것이다.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찜찜하게 재판이 끝났다. 결과는 징역 3년으로 끝났다. 우울한 채 나온 우리들은 바로 2번째 재판을 준비해야한다. 강의까지 빼고 왔는데 정말 허무했지만 용기를 낸 사람들을 생각해서 애써 쓸쓸한 마음을 접었다. 몇 개월동안 다시 재판 준비를 도와드리며 어느덧 대학교를 거의 졸업할때가 다가왔다. 긴 듯 짧은 듯한 시간 동안 벌써 취업한 친구들도 있고, 여전히 대학교를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다. 2차 재판이 시작되고,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재판을 지켜보았다. 1차 재판과 마찬가지로 잘 이어가는듯한 느낌이 들더니 이번에는 강선범이 변호사를 잘 고른 바람에 1차재판과 비슷하게 결과가 나왔다. 하. 이제 마지막 재판만을 바라보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