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중 한 번쯤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꾸어보지 않은 분이 얼마나 될까 싶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는 모두 한때 문학도였을지 모른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한다면, 국문학과 외에 대학에 다른 전공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할 정도로 오직 문학만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경제학과에 들어와, 아무것도 모르고 박현채의 <한국 경제의 전개과정>을 집어 들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졸업하면 당연히 공장에 가서 노동운동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던 시절, 아마 시와 소설이 없었다면 나는 질식해 죽었을 것 같다.
자,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런 낭만적이면서도 끈적끈적한 분야에 대해서도 돈과 이윤 그리고 재생산의 잣대를 들이대는, 냉혈한의 경제학자일 뿐이다. 시와 소설을 염두에 두고 몇 주일 동안 이 분야를 살펴봤는데, 불행히도 한국의 통계체계에서 시와 소설, 이런 것들을 가지런히 정리해주는 연감이나 연표는 없는 듯하다. 있는 것은 ‘문학’이라는 단 하나의 포괄적 분류뿐이다. 먼저 독자 여러분에게 양해를 구하자면, 한국에서 소설은 몇 편, 시는 몇 편, 총시장은 얼마, 이윤은 얼마, 이렇게 가지런히 숫자를 뽑아서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도저히 이 분야에서는 그런 분류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는 사실. 그래서 이 분야에서 내가 경제적으로 이해한 것들을 이론적으로 알려드리고 싶다.
일단 추이를 보면, 문학 분야 서적의 매해 발행부수는 1998년 2453권, 2003년에는 2890권으로 가장 높았고, 지난해인 2007년은 2235권으로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 추정치이지만, 전체 시장 규모는 총 매출액 3800억원 정도다. 이 정도가 한국 문학 시장의 규모다. 이 중 한국의 문인들이 인세 형태로 가지고 가는 돈은 총 380억원이다. 잡문을 써서 생기는 약간의 소득, 최인호처럼 아파트 광고에 나와서 생기는 부수익을 제외한다면, 온전히 출판을 통해서 한국의 문인이 벌 수 있는 돈은 이 380억원이 전부이다. 이건 2006년 문예연감 기준이라서, 올해는 아마 이보다 10% 정도 줄어들어 350억원 미만의 소득이 아닐까 싶다. 2008년의 이 부문 절대강자 3명, 황석영·이외수·공지영의 인세를 간단하게 추정해봤는데, 이들 3명이 전체의 10%가량을 가지고 가는 그런 시장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에 다음 그룹까지 포함해서 10명 정도가 그런대로 넉넉하게 생활할 수 있는 시장 구조인 셈이다. 만약 대학의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를 비롯해서, 평론이나 문학이론으로 먹고살 수 있는 다른 장치가 없었다면 한국의 문학 시장은 아마 벌써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글쟁이 연평균 소득 380만원
한국체육대 유임하 교수께서 아주 무시무시한 추정치를 여기에 대입해보셨다(‘2006년 한국 문학의 지표’, 2007 문예연감). 한국에서 ‘프로’ 문학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문인협회, 한국작가회의, 한국펜클럽을 다 포함해서 1만명 정도라고 한다. 이 숫자를 총인세로 나눠보면, 연간 약 380만원쯤 된다고 한다. 문학 부문의 글쟁이들이 연간 기대할 수 있는 평균 소득이 이 정도라는 얘기다. 물론 이 수치는 책을 2쇄까지 발간한다는 기준이라서 어디까지나 추정치이다. 여기에는 국내 저자와 번역물이 다 뒤섞여 있어서, 이것만으로 현실을 판단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자료를 통해 좀더 다른 통계자료를 추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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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백승기 한국 문인들이 인세 형태로 버는 돈은 총 380억원 정도이다. 이 중 이 분야 절대강자인 황석영·이외수·공 | 한국문인협회나 한국펜클럽 같은 곳의 등록 회원 기준으로 하면 시인이 소설가보다 6배 정도 많다. 시인 몇 명에게 한국에서 전업 시인이 몇 명이나 될지 문의해봤더니, 교수나 교사 혹은 출판사 등에서 일하지 않는, 직업적 시인은 3명에서 5명 정도 된다고 한다. 미안한 얘기지만, 경제적 시각으로 보면, 한국에서 시인은 사실상 유의미한 규모로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시인을 빼고, 번역 출간물을 조정해보고, 도시가계 평균임금으로 환산해보니, 한국의 문학 시장은 전업 소설가 약 300명이 먹고살 만한 시장에 불과하다. 그러나 문인단체 세 곳에 속한 소설가 회원은 1370명이나 된다.
자, 이 전업 소설가 300명 정도가 한국 문학계의 맨 상위에서 그런대로 연소득 4000만원 이상 버는 사람들이 된다. 프로 야구선수나 하다못해 프로 골퍼와 비교해도 미약한 규모이기는 하지만, 이 사람들은 그래도 생태계의 맨 위에 있는 최종 소비자 혹은 포식자에 해당한다. 자, 이들의 소설책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뒤에는 문학 계간지 등 문예 잡지(2006년 기준) 48종이 기다리고 있고, 다시 출판사, 배본소, 인쇄소, 소매와 대형 서점 등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수를 헤아리는 게 불가능할 만큼의 문학 지망생과 등단을 기다리는 예비 작가가 줄줄이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마치 파생상품처럼 자신의 소설이 영화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극소수 스타 작가에 국한한다. 또한 영어권 기준으로 2006년까지 68종이 번역 수출되었는데, 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은 것이 대부분이다. 경제학자가 얘기하는 ‘커머셜(commercial)’한 수준을 논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출판사는 부도 직전, 작은 책방은 줄도산
중앙에서 집계하는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 지역 문예지도 존재한다. 이제 서울의 어지간한 구청들은 모두 지역 문화활동을 지원하고 있고, 그 결과 구청별 문예지 출간이 활발해졌다. 매우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이기도 하다. 이 경우에도 역시 지역성이 새로운 돌파구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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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오늘도 수만 명의 젊은 문학 지망생과 예비 작가가 반지하 방과 고시원에서, 아니면 부모 눈치를 보며 컴퓨터 모니터와 씨름한다. 위는 신경숙 작가의 이화여대 초청 강연 장면. | 다시 한번 정리해보면, 출판에서 그래도 가장 ‘돈 되는 것’은 역시 소설인데, 황석영급의 열댓 명 정도가 이런 평판에 어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근근이 먹고사는 형편인 셈이다. 이 몇 사람의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 프로 소설가가 1000명 넘게 활동 중이며, 또 소설가로 데뷔하기 위해 다시 20대 수만 명이 습작을 하면서 오늘도 반지하 방과 고시원, 아니면 부모의 눈치를 보면서 아파트 작은방 같은 곳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형국이다. 이 문학 생태계를 어떻게 더 크고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인가?
당장 내년도를 전망해보기 위해서 자료 몇 개를 찾는 사이, 출판사 몇몇 곳에서는 올해를 넘기기도 어렵다며 당장 부도 직전이라고 소식을 보내온다. 잡지사에서도 광고가 줄어 외부 인사의 연재물을 줄이고 내부 기자의 원고량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작은 책방들도 줄도산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여, 공적자금 딱 100억원만 문학계에 긴급 지원해라. 문인 긴급 생계자금, 출판사 운전자금, 지역 문예지 지원 등등에 더도 말고 딱 100억원만 지원해주시라. 1차 문화 생산자인 문인들, 숨넘어가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