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13:23-31 시작과 끝을 기도로
23-31절은 느헤미야의 마지막 사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에는 이방인과의 통혼금지를 내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반하고 자녀들을 낳은 유다인들을 다루는 개혁조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최종 부분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이민자들의 2-3세들은 일본의 경우에는 많은 부분에서 한국어를 잊지 않고 구사할 수 있는 반면에 미국이나 서방 쪽으로 들어가 사는 경우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에 부모들의 조국에 대한 정체성을 볼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그 부분을 언급을 했는데 모친의 나라말은 해도 부친의 나라말은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주시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신앙은 대부분의 경우 모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불신앙인과의 결혼은 자녀들에게 제일 많이 피해를 준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모르는 여자 와 결혼했을 경우 그 당사자는 불행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여자의 신앙을 남자는 따라 간다는 것과 또한 그들의 자녀는 하나님의 대해서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릴 때는 아빠보다 엄마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모델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합 왕은 시돈의 공주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는 바알 숭배자였습니다. 그의 아들 아하시아는 너무도 당연히 바알 숭배자가 되었습니다.(왕하1:2) 그의 아들 뿐 아니라 그의 딸 아하시아의 누이 아달랴도 그의 어미 이세벨보다 더 바알 숭배자가 되었습니다.(왕하11:1)또한 이들의 인생의 말로가 비참했다는 부분도 같았다는 것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입니다.
죄성의 대물림, 불행의 대물림, 불신앙의 배우자를 만난다는 것이 생의 얼마나 큰 비극인지,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들어갈 때에 그 족속을 다 죽이라 했을까?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삶이 비참해 지고 그들의 영혼이 죽을 것을 미리 아셨기에 그랬습니다. 창6장에서도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혼으로 신속히 그 땅은 병들고 사람들의 심령은 부패되어가고 홍수의 물 심판을 자초하는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이 금하는 것은 금해야 합니다. 하라는 것은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창 24:3,4)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창 28:1.2)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 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고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비신자보다 성도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은 더 무섭습니다.
25-27절에 느헤미야는 이방인과의 결혼을 한자들을 크게 책망합니다. 책망뿐 아니라 저주를 합니다. 그리고 모델로 두어 사람을 때리고 머리털을 뽑기까지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택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엄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그냥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더욱 엄중히 처벌하셔서 다른 사람이라도 죄에 빠지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녀라고 방심해서도 안 되고 방종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신 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렘 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계속해서 26절에 느헤미야는 솔로몬의 예를 들어 말씀합니다. 그가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지혜가 출중하여도 말씀에서 떠나 지 맘대로 행동한 결과 그는 아버지의 신앙의 대를 잇지 못하고 나라도 쪼개지는 불행을 자초한 것을 보게 됩니다. 말씀을 거역하는 자는 아무리 초장에 믿음이 좋았던 거목이라도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올라갈 때는 한 걸음씩이지만 내려 올 때는 스키타고 내려옵니다. 솔로몬의 부는 아버지의 기초위에서 자신의 믿음의 고백으로 세워 졌지만 그가 말씀을 떠날 때에 그의 나라는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자 두 나라로 나누어지는 불행이 있었습니다.
마 7:26.27)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27절에서 느헤미야는 죄에 대한 부분을 엄히 다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즉 죄에 관용, 방관은 구별되어 져야 합니다. 성도의 죄를 바라보면서 무조건 관용이 능사가 아님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죄로 인해 지옥 갈 것을 알면서 그를 가만히 버려둔다면 그것은 무 책임한 방치입니다. 또한 믿지 않는 자들에게 외치지 않아서 멸망한다면 그 피 값을 성도에게 찾는다 했을까요?(겔33:6)이는 무책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머리털을 뽑으면서 때리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돌이킨다면 그의 영혼이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말 영혼을 사랑하는 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 24:11.12)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28절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범하고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예외인자는 없습니다. 28절에서 거룩한 직분을 하나님께로 받아 섬기던 대제사장 가문의 손자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출교를 당하는 사건입니다. 느헤미야는 13:4-9절에서는 제사장의 죄를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대제사장의 손자를 내쳤다는 것은 그가 종교개혁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 아버지가 무슨 공로를 세웠고 목사이고 그래서 함부로 해도 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님을 말씀합니다. 오히려 중직자의 집안일수록 본을 보여야 하고 더 겸손해야 하고 그리고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잠 21:24)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ㄱ)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또 하나의 경종은 세상을 사랑하면 믿음에서 파선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아십의 손자는 왜 이혼하기를 거부했을까요? 그의 장인은 산발랏입니다. 그의 위치와 존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짝하고는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딸 하나가 시집을 잘못 가면 그의 인생 하나를 망치지만 며느리를 잘못 맞으면 그의 집안이 망치게 됩니다. 산발랏은 당시의 사마리아의 총독입니다. 세상의 이득을 얻고자 그는 이스라엘의 공동체에서 출교를 당하더라도 산발랏의 사위자리를 포기하지 못한 것입니다. 돈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 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신앙에서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세상에서 권력, 돈, 쾌락에서 한 발짝 물러서지 않으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양 다리를 걸치고는 주님의 나라는 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눅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약 4:4) 1)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요일 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30-31절에서 기도는 성도의 삶의 시작과 끝이 되어야 합니다. 이 책을 이제 끝내려 합니다. 이 책에서 반드시 기억하실 부분은 시작할 때 기도하고 마칠 때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내 맘대로 시작하고 그리고 생각나면 혹은 부딪쳐서 힘들 때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시작할 때 기도하고 끝날 때 기도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단순히 입술의 고백 차원이 아니라 그의 중심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한다는 표현입니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주님을 마시는 것입니다. 교제이기도 합니다.
(대상 16:11)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골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마지막으로 느헤미야는 복을 기원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것은 복을 내가 쫒아 간다고 얻는 것이 아님을 말씀합니다. 복의 근원지가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불법적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성실함과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주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요셉은 우리에게 귀한 모범이 됩니다. (출 23:25.26)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신 15:4-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이제 긴 시간을 맺습니다. 이 성경을 통하여 선민으로서의 영속성, 구원사역의 연속성입니다.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나 범죄 할 때는 징계하십니다. 회개하게 하고 구원하시려고 그러나 돌아서지 않는 다면 멸망입니다. 징계가 올 때에 이 부분을 잘 보시고 깨우쳐 돌어서서 구원을 이루어 천국 가시는 주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긴 여정의 끝을 ...함께 읽어주시고 대꾸로 나눈 지체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