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괄호 안의 ㉠에 공통으로 들어갈 인명을 쓰고, 1930년대 조선학진흥을 주장한 (가)와 (나)의 필자들이 ㉠의 저서를 모아 편찬한 출판물의 이름을 쓰시오. [2점]
(가) 16일은 조선 학술사상(學術史上) 태양 같은 존재이신 ( ㉠ ) 선생의 탄일(誕日)이오, 금년은 마침 그 가신 지 백년이 된다. …(중략)… 조선 현하 특수문화 건설공작을 고심(苦心) 평의(評議)하는 지금에 있어 이 조선 제학(諸學)의 집대성을 한 ( ㉠ ) 선생의 경륜과 포부를 재음미하고 신인식하고 아울러 이를 천하 식자(識者)에게 일명(日明) 선양하는 것은 …(중략)… 당면한 도정(途程)에서 그 자연과 역사에 뿌리 깊은 원천을 박은 문화의 하천을 소통및 관개(灌漑)하는 뜻깊은 실천공작으로 되는 것이다. - 『조선일보』 1935년 7월 16일-
(나) 조선 근고(近古)의 학술사를 종계(綜系)하여 보면 반계(磻溪)가 일조(一祖)요, 성호(星湖)가 이조(二祖)요, ( ㉠ )이/가 삼조(三祖)인데 …(중략)… 전인(前人)의 창(創), 계(繼)한 뒤에 나서 박관간취(博觀簡取), 착열정택(錯列精擇)의 공(功)을 진(盡)한 이가 그 집성의 미를 향유함이 또한 무괴(無怪)타 할 것이다. - 『동아일보』 1935년 7월 16일- |
[세상의 모든 역사 한국사 813쪽] 1930년대에 들어 박은식과 신채호의 영향을 받은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등은 ‘조선학 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식민사관에 맞서 우리 민족을 보존하는 데는 민족정신과 민족의 얼을 지키는 일이 핵심이라고 보았다. 나아가 연구의 관심 분야를 한국학 전반으로 확장함으로써 조선학 운동이 확대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들은 1934년에 여유당전서의 간행을 계기로 조선학 운동을 전개하여 실학에서 자주적인 근대 사상과 우리 학문의 주체성을 찾으려고 하였다. 이 운동은 민족과 민중을 함께 중요시하면서 우리의 민족 문화가 갖고 있는 고유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정약용 ㉡여유당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