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광주대교구 형제 자매 여러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사람이 되어 오시는 주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한 여러분 모든 가정에 예수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무한하신 하느님께서 유한한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위대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하늘과 땅이 만나고, 영원과 순간이 만나며, 창조자 하느님께서 피조물의 시간과 공간의 한계 안으로 들어오신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고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우리와 소통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교회라는 공동체로 초대받은 것은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처럼 우리도 이웃을 찾아가고 세상의 낮은 곳을 향하도록 초대받은 것입니다. 이는 이 세상이 지닌 '고통과 슬픔, 기쁨과 희망'을 우리 교회 공동체의 것으로 삼고 함께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압제 아래 정치적으로 자유를 빼앗기고 경제적으로 수탈을 당하면서 그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작고 여린 어린아기의 모습으로 구세주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강력한 황제를 상대하기에는 너무도 가냘픈 모습이지만 세상의 방식이 아닌 평화와 비폭력의 모습으로 용서와 사랑을 가르칠 주님께서 오십니다. 가난한 목수를 아버지로 두고 세상에 태어나실 땐 변변한 집도 없이 마구간에서 목동들의 인사를 받으며 세상과 마주하십니다.
어린 예수님의 다가올 인생을 알기에 천사들의 찬양이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명처럼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기에 우리는 주님의 사랑받는 사람으로서 기뻐합니다. 낮은 곳을 찾아오시는 아기 예수님처럼 우리 스스로를 낮추지 않고서는 세상과 소통하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높아지고 싶고,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삶의 전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지구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가 아닌 이겨야만 하는 경쟁자들로만 보입니다. 그런데도 아기 예수님의 모습은 가난도 경쟁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이 목동들의 인사를 받으며 방긋방긋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오십니다. 세상은 아직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고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바로 용서와 사랑임을 잘 알고 있지만, 실천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내 형제와 내 이웃을 받아들이는 일이 바로 해방이며 자유이고, 구원으로 향하는 여정임을 알면서도 아기 예수님처럼 웃지 못하고, 슬픔 가득한 모습으로 내일을 걱정하며 미래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제가 광주대교구 교구장으로 첫 번째 맞이하는 이 성탄과 함께 친교를 나누고 소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의견을 함께 나누며 소통하는 것, 마음을 함께 나누며 교감하는 것은 우리가 참으로 하나가 되게 하고, 공동체가 되도록 이끕니다. 우리는 그동안 3개년 '특별전교의 해'를 지내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느님 백성'인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가 함께 모여, 우리가 살아가는 교회가 진정으로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 있는지, 세상에 복음을 제대로 선포하기 위해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함께 논의했습니다.
논의하는 과정과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의견들을 경청하면서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는 성령의 활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결정하며 걸어왔다면 불가능했을 '하느님 백성의 대화' 안에서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고 어울리며 대화하는 가운데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만들고자 하시는 공동체가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하느님을 알아보았다."는 어느 신자의 고백처럼 이제 길을 찾고 방향성을 찾은 것 같아 행복합니다. 예수님처럼 낮은 곳에서 세상의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으로 백성의 소리에 경청하며 정진하는 것이 빛고을 광주가 함께 만들어가는 교회론입니다..
이제 소외되고 슬픔 속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 이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젊은이들, 그리고 '공동의 집'인 지구가 울부짖으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소리를 듣고, 새 생명으로 다가오신 주님을 향한 믿음 안에서 희망을 찾아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바로 우리 마음 안에서, 그리고 그 마음이 있는 가정과 삶의 현장 안에서 '오늘, 다시' 태어나십니다. 이번 성탄이 우리 빛고을 광주 교구민 모두에게 새 희망을 심어주고, 진정으로 기쁜 생명과 친교와 소통의 축제가 되길 함께 기도합니다.
"하느님께 영광, 사람들에게 평화!"
2022년 12월 25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옥현 진시몬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