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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 사람들을 삼가라
오늘 우리가 살펴봐야 할 말씀과 함께 성영님께서 제게(신성엽) 명하신 사명의 측면을 말씀드리고
자 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입장이나 교회의 입장에 대해서 현재 예수님의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성도들과 또 예수님의 교회에 오고 싶어 하는 이들이 사정을 알고 참고하기를 원해서입니다. 인터
넷을 통해 말씀을 듣고 교회에 오고자 하는 이들이 있는데, 찾아올 주소나 전화번호나 안내가 돼
있지 않으니 교회나 저의 사정을 알지 못한 연고로 여러 억측과 함께 오해들을 하고 있습니다. 물
론 그것은 자기 몫이니 내가 마음 쓸 일은 아닙니다만, 이 말씀을 드리는 중에 덧붙여 설명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목회가 무엇인지 알지 않습니까? 그리고 목사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는 분 없잖습
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생각하는 목회가 저의 일이 아닙니다. 목사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돕고 예배를 주관하고 말씀을 가르쳐 믿음을 양육하고, 나아가 전도와 선교 등으로 하나님의 복음
사명을 행하는 일이라는 것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 같은 목회를 위해서 필요한 각 기관을 두
고, 신자들의 양육과 전도나 봉사 등등의 활동을 열심히 하는 이것을 목회라 한다는 것 다 아신
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교회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저를 이런 목회하는 목사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말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목회의 일이 저의 일이 아닙니다. 제게 주신 사명은 사람들을
모아들여, 사람들에 집중하여 목회하라는 위치가 아니고, 믿는다고 하는 이름을 가진 교회들에 하
나님이 보내시는 책망과 말씀을 선포하여 말하라고 세움을 받은 선지자와 같은 역할입니다. 저게
명하신 이 사명에 대해서 처음에는 저 자신이 희미했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게 되었으므로 이제
저는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그 사명의 일이 어디까지인지 저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에 대해서 오해가 없기를 바라서 필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자기 마음에서 나는, 자기가 아는 것들로 변개하고 왜곡하여 전하는 일들로
인하여 사람들의 영혼에 큰 화가 임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을
위해서인 것처럼 만들고 정하고 행하여, 인간 종교처럼 끌어내린 거짓 목사와 교사들과 거짓 그리
스도인들을 드러내어, 경고하라고 세움을 받은 일이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전하여온 말씀들로
깨달을 자는 듣고 깨닫는 기회가 되게 하시려고 세상에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인간 자기에
게로 맞추어 땅의 말씀이 되게 하였고,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가려놓아 예수님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하여, 구원받지 못하도록 이끄는, 사단의 하수인들이 누구인지를 세상 교회들을 향해 말하여
경고하라고, 그것이 제게 주신 사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눌하여 말할 줄 모른다고, 똑똑지 못하여 내세울 것이 없다고, 세상에 대하여는 너무나 미련하여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하는, 오직 나 예수만 바라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내 지혜를 주고, 내 말
을 넣어 경고를 보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뜻을 보지 못하는 눈먼 영적 소경들이, 자기
의 똑똑함을 자기 속에 자랑으로 두고, 세상 지식이 바탕이 되어 가진 능변의 자랑을 자기 속에 두
고 있는 자들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하고 나를 버렸지 않느냐? 오늘날 그와 같은
자들이 또한 하나님이 언제 여자에게서 증거를 받는다 했느냐? 할 것이요, 자기 머리의 똑똑함이
자기에게 자랑이 돼 있고, 세상 지식에서 난 능변들로 자기 능력으로 삼아 스스로 자랑이 되어 있
는 그들은 또한 외모로 너를 판단하여 나의 보낸 말을 버릴 것이니, 이때에 눈먼 자들을 보게 될
것이요, 교만한 자들을 보게 될 것이요, 대적하는 자들을 보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가 받는 율에 떨어질 것이요, 발에 먼지를 떨어버리라 하신 그 뒤에 말씀이 그들에게
로 돌아가리라 하셨습니다.
오늘날은 성영님이 계시오, 예언이요, 선지입니다. 계시오, 예언이요, 선지이신 그 성영님께서 예
언하라고 전한 말을, 선지자의 경고와 예언을 멸시하고 무시하여, 왜 멸시하고 무시합니까? 자기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뭐라 했든 상관없이 자기와 같은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열심히 행해왔고 자기가 열심히 가르쳐 말하여왔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세워온 것이 잘못되었다고,
자기가 거짓이었다고 말할 선한 양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예언의 말씀이 믿는다 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측정하시는 말씀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십자가에 죄를 못 박고 피 흘린 나의 생명으로 낳은 아들이니, 내 이름을 가지고 말하라
독생자의 확실한 이름으로 말하였음에도 듣지 않는 자, 이 마지막 때 주시는 기회를, 말씀을 듣고
도 외면한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판단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깨닫고 돌이키라 주신 이
경고의 말씀을 얼마나 두려운 마음으로 들었느냐? 얼마나 마음을 다하여 귀를 기울여 듣고 성경의
뜻을 살피며 자신을 돌아보았느냐? 교만하여 귀를 막고 듣지 않은 것처럼 비웃는 것을 내가 보았고
자기의 깨달은 말처럼 하여 자신과 남을 속이며 사람들이 자기에게 집중하도록 소리를 높이며 비
난하는 목소리도 내가 들었다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대하여는 무지하고 가난한 자를 들어, 하나님의 전 뜻을 알게 하였고, 내가 지혜 없다
하는 자를 들어, 내 지혜로서 너희에게 말하게 하였으며, 내가 말할 줄 모른다는 자를 들어, 내 말
을 넣어 말하였으나, 너희의 귀는 들으면서도 교만한 마음을 더 높이니 들을 귀 없음이 드러났도다
하셨습니다. 세상으로 높아진 눈과 세상으로 높아진 지식과 그 지식으로 자라난 너희 말 수단이,
보낸 말씀을 무시하여 밟았도다 하셨습니다. 판단하고 분석하는 너희 머리가 너희를 망하게 하였도
다 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이 원치 아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생명의 기갈로, 평안의 기갈로, 진실한 사랑에 목마른 기갈에 고통받으며, 그 목마름이 극에 달한
유리하는 내 영혼에,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헤매는 사마리아 여자와 같은 나
에게 찾아오셔서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 만나주시고, 성경을 열어 하늘 뜻을 보이시며 말씀해주시고
말씀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을 만나는 그 기쁨에,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감사로 씻고 또 씻
고 씻어드리는 이 여자에게, 성영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앉은 이 기쁨
을! 방향을 잘못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전하고 선포하고 경고하라고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 여자의 성영님으로 증거하는 모든 말로 인하여 하늘이 들썩거릴 정도로 영광을 얻는다 하
셨습니다. 이 말씀 안으로 들어오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또 듣고 새김질하며 돌이켜
믿음의 말씀으로, 생명의 말씀으로, 영적 능력을 갖추는 말씀으로 받아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하늘
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리라 하신,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말
씀의 지식을 따라 믿는, 말씀이 말하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것이, 세상에 태어난 자기의 본
분인 줄을 알아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위해 죽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믿음이 아니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말씀으로 맺은 인격적 관계로 연합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저는 세상에 홍수처럼 넘치는 설교와 말씀이 혹 부족할까 하여 그 힘 보태려고, 그 설교 보태려고
여기 선 것이 아닙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성영님께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말씀뿐만
아니라 내가 알아야 할 나의 길에 대해서 세밀하게 지도하시며 인도하여 오셨습니다. 처음에는 내
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어렴풋했지만, 그때는 희미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성영님의 당부를
잊고 그 경계선을 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겪어보는 것으로 경험하여 깨닫게 하셔서, 나로
내 위치에 대해 확실히 알고 선을 긋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너는 사람들을 삼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거
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일러 당부하셨지만, 저에게는 오래전부터, 제가 말씀을 말하는 이 사명을
행한 얼마 이후부터 사람들을 삼가라고 계속 이르셨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삼가는 것이 어떤 것
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후에는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믿는다는 사람들 일지라도
삼가야 함을 알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제가 이 강단에 서게 된 이후 교회 부흥을 위해서 안타까이 기도할 때가 있었습니다. 성영님께서
나에게 가라고 하셨으면 교회가 소위 말하는 그 부흥이 좀 되게 하셔야 하지 않느냐? 내가 지금
이 길을 가는 것이 분명히 맞는 것이냐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이후 나 자신과 교회를 위해 고민에
빠져 기도할 때에 성영님께서 말씀하시길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다시 말해 '내 은혜가 네게 있
으니 너로 인하여 내가 기쁘다, 너로 인해 족하다'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은 하
는 데 다 세상을 따라가고 물질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 하셨습니다.
이후 또 말씀하시기를 네가 쭉정이들을 놓고 눈물로 기도하는 것 원치 않는다고 하셨고, 이후에 또
엄히 명하시기를 아무나 붙잡고 내 이름으로 기도하지 말라, 아무에게나 내 이름으로 손 얹어 안수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안수하고 기도한다 하여 그가 믿음 되는 것 아니다 하셨습니다. 과거에 믿
음 되게 하려고 붙잡고 기도한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기도해주면 하나님이 그에게 믿음을 줄까 하
여, 그가 믿음이 될까 하여 여러분, 우리 생각에 영혼 하나 예수님 믿어 구원받는 것이 얼마나 귀
합니까? 그러니까 안 하면 내게 책임이 있을까 하여, 스스로 내 마음에 속아서 기도해주는 일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손 얹어 기도하여 병의 나음을 얻었어도, 기어코 믿음이 되지 않는 경우들을 보아왔습
니다. 때문에 성영님이 금하신 것을 이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고, 나 자신에게 속는 것에 놓여나
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듣기에 거부감이 든다고 해도 사실을 말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성경이 말
씀하는 믿음이 뭐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믿음이 되지 않으면, 다 종
교인에 속해있는 것일 뿐입니다. 적당히 세상도 좋고 예수님 믿는 것도 지옥 안 가고 구원받으니
좋다 하여 양다리 걸치듯이 하는 것을 성경은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교회를 위
해서,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하여 십일조 봉사 예배 생활 다 열심히 충성 되게 했어도 여전히 세상
이 좋아 마음을 세상에다 발 걸쳐놓듯 하는 것이면 아직 예수님 안에 들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럽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그래서 내게 있는 것 아낌없이 하나님을 위
해 바치고 섬기고 있는데, 사랑의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세상 것에 발 좀 걸쳐놨다
고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하시는 하나님이 아무려
면 그렇게 인정 없이 난 너 모른다 하시겠냐? "나는 나를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믿어"라는 말
로 자기 위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면 진짜 세상과 세상 것은 싫어지게 돼 있습니다. 세상 쳐다
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진짜 사랑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싶어서 마음이 안
달이 나고, 오직 예수님께 초점을 두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보이게 되어 있고 세상은 보
이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면, 세상은 하나님과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신
과도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세상이 좋아 보이고 사람이 이룩한 세상 문명
발전의 것들이 좋아 보이면 그것은 아직 예수님 안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
는 것, 자기 편리한 대로 갖다가 합리화시키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하니까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말하고들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것을 빌미 삼아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면서 하나님 믿는 너는 왜 사랑이 없느냐? 하고 비난하고
책 잡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 사랑의 정의를 깨닫지 못한 무지로
인해 "아 정말 사랑해야 하는데 왜 나는 사랑이 없지"하고 기가 죽어서 그 사랑 행하려고 세상으
로 유혹하는 일들로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이시다'하는 것은 영벌에 처한
죄인을 살리시려고, 십자가에다 그 아들 독생자를 달아 죽게 하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 사
랑을 거절하여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불의한 자
거짓된 자들을,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자고 끊임없이 유혹하는 자들에게 비위 맞추며 함께 그들 뜻
에 동조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는 그 사랑의 정의를
여러분이 좀 바로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 사랑의 종교'라고 너무 생각 없이 말들 하는데, 도대체 기독교가
왜 종교입니까? 세상은 기독교를 향하여 종교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당신 종교가 뭐냐고 물어
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은 종교도, 종교하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 세운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자기보다 월등한 것을 의지하려고 만들어 세운 것을
종교라고 합니다. 만일에 기독교인이 자기의 믿는 바를 종교라고 말한다면 그 스스로가 종교인이
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종교인은 하나님을 아는 것 같지만, 자기 머리로 아는 하나님일 뿐, 참 하
나님은 모르는 그야말로 종교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뜻을 그같이
종교라고 말한다면, 그 스스로가 성영님의 밝음의 지혜를 받지 못한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는 종교
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 것이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믿는 것이지, 종교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믿는다고
말해야 합니다.
사람이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러 나오는 것도 무엇인가 의지하고 싶어서, 무엇인가 믿는 것은
있어야 한다는 자기 신심(종교심)에 끌려 나와 믿는다 하는 것이면, 그것 또한 종교 믿으러 나온
종교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 믿음은 하늘이 무너져도 될 수가 없습니다. 만일에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 믿음을 배우지 않고, 성경을 모르고 믿는다 한다면, 여전히 신심에 의
하여 길드는 종교인에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종교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은 성
경 몰라도 기도 많이 하면, 열심히 목사님이 하라는 것 순종 잘하면, 좋은 일 많이 하고 봉사 열
심히 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맞는 믿음이요 신앙인 줄 알고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착각에 빠
져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또 하나님의 복음이 종교로 전파되는 것입니다. 하
나님께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 자식 낳게 해주시라고 태문 열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태문
열어서 잉태케 해주신다. 아들 달라 기도하면, 딸을 달라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하는 것
들 다 그런 종교인들에게서 전파되는 저주받을 다른 복음입니다. "아니 성경 보니까 하나님이 아
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태문 열어주셨고 이삭의 아내도 태문 열어주셨고 그 뒤에도 자식 못 낳는
여자들 태문 열어주셨던데......,"
그것은 육체의 혈통이나 잇고 자기 핏줄을 세상에 내놓으려고 하는, 또는 자기 노후대책용으로 자
식 낳으려고 하는 그런 인간 육체의 혈통을 잇게 하는 일을 위해서 열어주신 것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야 할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그같이 육
체의 혈통 잇기 위한 육체의 사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신앙의
혈통을 통해서 오셔야 하므로, 육이 거쳐야 하는, 육을 통과해야 하는 하나님의 연단으로 시험을
거친 그들에게 사모하게 하여 태문을 열어 신앙이 이어가도록 한 것입니다.
제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이야기만 하나 하겠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 이야기
는 수없이 듣지만, 참으로 우리가 신앙이면 신앙에서 나타나야 하는, 본받아야 하는 사라의 믿음
에 대해서는 덮어진 채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므로, 사라의 믿음을 드러내 말씀을 드려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사라는 애굽의 바로에게 불려가 바로의 한눈에 든 여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12장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이 같은 사건이 사라에게 두 번이나 있게 되는데 또 한 사건은 창20
장에 나옵니다. 창12장은 애굽의 왕 바로이고, 창20장은 그랄(블레셋) 왕 아비멜렉입니다. 바로는
애굽 왕의 공식 호칭이고 아비멜렉은 블레셋 왕의 공식 호칭입니다.(창26장)
여러분, 블레셋 하면 누가 생각납니까? (골리앗) 골리앗은 가드 사람인데 전쟁 용사로 차출된 장
군입니다. 키가 구척장신, 2m 90cm입니다. 제가 150이니 어떻게 됩니까? 한번 계산해보세요. 저의
키 두배 정도이니 제가 그 얼굴을 쳐다보려면 어떻게 봐야 할까요? 고개를 뒤로 바짝 젖히고 천정
을 보듯 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가 얼마나 장신인지 비교해보라는 뜻입니다. 블레셋 하면 항시
이스라엘 백성에 가시 노릇을 했던 이방 족속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나이 75세였고
백 세에 이삭을 낳고 175세까지 살았습니다(창25:7). 사라는 아브라함보다 10살 아래였고 65세에
하란을 떠난 이후에 바로 왕과의 사건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사건 이후 20년이 지난 때 창
20장에 아비멜렉 사건이 있게 됩니다. 그때 사라가 나이 85세에서 90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
고 90세에 이삭을 낳고 127세까지 살았습니다(창23:1).
바로가 사라의 아리따움을 보고 사라와 혼인하려는 뜻을 가졌고, 아비멜렉은 사라를 그냥 취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자기 목숨 부지하려고 거짓말로 자기 아내 사라를
팔았다. 아브라함이 자기 살려고 범죄 했다. 아브라함이 실수했다. 이런 이야기나 하라고 하는 사
건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섭니다. 인간의 관계,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윤리와 도덕의 잣대
로 재고 잘못된 것을 찾아서 이야기하라는 사건들이 아니라는 것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라가 워
낙에 아름다우니, 바로의 눈에 들어 아브라함이 그 남편이라고 하면, 아브라함이 자기를 죽일까 봐
겁이 나서, 자기 목숨 부지하려고 사라에게 이복 누이라고 속이라 했다는 것으로 그 사건의 뜻을
풀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 소경의 말입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의 일, 하나님과 하나님 사
람과 사단과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으로서, 영적인 사건을 다룬 이야기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섭니
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분명한 섭리 가운데 거쳐야 했던 영적인 사건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인본을 깨끗이 내려놓고 영적인 눈 좀 떠서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좀 보라고 대충의 말
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창12:11에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그곳에 들어가 봅니다. 아브
라함이 그 아내 사래더러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사라가 겉 미모
가 아름다워서, 외모가 뛰어나게 아름다워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니 여러분! 사라가 이 사건
이후 20년 뒤에 85세를 지난 나이에 아비멜렉이 무조건 취하려고 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그때 당시는 사람의 수명이 지금의 약 두 배 정도가 되었으니, 사라가 한 87세 정도라 치고
제가 지금 예순넷이니까 그럼 저하고 몇 년 차이가 됩니까? 23년입니까? 그러면 그때 사라가 나 정
도의 모습이라고 칩시다! 차이가 23년이니 나 정도면 맞지 싶은데...., 그러면 여러분이 저를 보기
에 아리땁다고 생각됩니까? 웃지 말고 솔직히 대답해보시자고요? 아니 나라의 왕이, 세상에 여자가
없어서, 저같은, 더구나 나이든 할머니 같은 여자에게 청혼하겠습니까? 그러면 나보다 10살 정도
더 아래로 보인다고 칩시다. 54세 정도 되신 분들 손 좀 한번 들어보실까요, 과연 한 나라의 왕이
청혼할 만한 아리따운 미모를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지 좀 보자고요.
아브라함이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한 것은 바로 미모를 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특별한 여인이라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나 알기에 그대는 하나님께 특별히 택함을
받은 여자라"라고 하는 뜻이라는 말입니다. 창12:1-3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
지라 하신 말씀을 아브라함이 들었지 않습니까? 사라도 들었고 거기 누가 또 들었겠습니까? 사단도
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가 하나님께서 그 언약하신 일에 조력자로서의 배
필로 세움을 받은 특별한 여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같이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
인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 당시 사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리따운 여인입니다. 죽는 그 순
간까지 사라는 아리따운 여인이에요. 성경에서 아리땁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역사에 쓰임을
받는 선택받은 여자라는 뜻으로 보면 됩니다. 아셨습니까? 형편이나 상황이 어찌 되었든 영적
배경이 그렇다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그리고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고 말한 그다음에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
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
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했습니다(창12:12-15).
그러면 여러분 애굽의 배후에는 누가 있습니까? 사단입니다. 사단이 창12:1-3에 하나님께서 아브라
함을 부르시고 언약하신 말씀을 들었을까요, 듣지 않았을까요? 언약의 말씀을 다 들었기 때문에,
애굽 사람들과 애굽 왕에게 사라가 심히 아리따운 여인으로 보이게 하여 사라를 취하게 한 것입니
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사단이 창3:15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
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
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이루시는데, 사라가 그 구속사의 일에 하나
님의 택함을 받은 특별한 여인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라를 취하여 아내로 삼아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와서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하셨으니 사단이 지금 '아, 그러면
이 여자이겠구나' 생각하고 사라를 왕의 아내로 삼아 자기가 취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정식으로 혼
인하면 누구의 사람이 됩니까? 혼인한 남자의 사람이 되는 거잖습니까? 영적 이해가 좀 됩니까?
그러니까 사라에게는 세상을 거머쥘 보장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세상 왕의 정식 아내가 되어 세
상의 부귀영화와 권력을 모두 취할 보장된 기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라는 그것을 모두
거절했습니다. 거절했다니까 속마음은 아니면서 내숭 떨고 "아니 나는 그런 것 싫어" 했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어떠세요? 우리는 내숭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아유 난 아무것도 없어도 예수님
만 계시면 돼" 입의 말은 그래도 실제로 가진 것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고 마음에 물질에 대한 애
착, 계산이 차 있으면서, 어떻게 될까 봐 내일에 대한 염려에 붙들려 살면서, 안 그런 척 내숭 떨
고 말로만 예수님만 계시면 된다고 하는 모습들은 아닙니까? 그렇기에 마13장에서 말씀하는 길가
요, 돌밭이요, 가시 떨기의 모습이지 않으냐는 말입니다. 믿음은 그런 내숭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간사함입니다.
사라가 내숭 떤 것이 아니라 애굽의 왕궁의 화려함이나 세상의 어떤 부귀와 영화가 사라의 마음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눈에 들지도 보이지도 않았다는 말입니다. 화려한 왕궁 그곳이 자기의 있어
야 할 곳도, 거할 곳도 아닌 것을 사라 자신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궁으로 불려갔지만, 그 마
음이 가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자기 남편 아브라함에게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
시할 땅으로 가라 하시고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
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 말씀을 좇아 떠나온 아브라함에게 가 있
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약속을 좇아 남편과 함께 나그넷길 가기
를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남편은, 하나님께서 벗이라 칭한 남편은(대하20:7, 사41:8, 약2:23) 곧 주와
같았던 것입니다(창18:12, 벧전3:6). 사라가 남편을 주라고 한 것- 남편이 하늘이니까- 아내는 땅
이니까, 그래서 주라고 했다고 이런 귀신 씻나락 까먹는 말이나 하라는 뜻 아닙니다. 그래서 주와
같은 남편에게 사라의 온 마음과 눈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보이신 것
입니까? 우리의 주가 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신랑 되신 분이 누구에요? 우리가 세상에 사
는 동안 오직 우리 주 예수님께 온 마음과 눈을 두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국의 어미가 돼야
할 사라의 신앙이 이처럼 먼저 주와 같은 아브라함의 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받
은 시험은 곧 하나님께 받은 믿음의 시험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허락하심 안에서 사단을 상징하는
세상의 왕(애굽 왕)에게도 시험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아셨습니까? 그러므로 사라는 곧 주와 같은 남
편에게만 마음과 뜻을 두었기에, 바로 왕에게서 자신을 지키는 것에 지혜로움과 담대함이 있었던 것
입니다. 바로의 청을 거절할 때 왕의 자존심을 건들지 않고, 오히려 왕이 사라에게 다스림을 받는
담대함과 지혜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로 세상과 육을 따르지 않는 신앙이, 사단의 권세를 이기는
권세를 펼 수 없게 하는 능력임을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라를 바로의 손에서 놓이게 하신 것은 사라의 신앙을 보신 까닭입니다. 사라가 하나
님의 언약을 이루시는 데 있어, 하나님의 밭이 될 그 시험에서 시험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
단에게 자신을 내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의도에서 보면, 바로와 아비멜렉의 두
번에 걸친 시험은 사라의 완전한 승리, 즉 신앙의 승리임을 의미합니다. 둘이라는 것은 증거의 수
입니다.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증거의 수입니다. "주를 의뢰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하리로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이런 신앙의 뜻을 알지도 못하는 육의 사람들이, 육을 위해 믿는다고 하는 이런 종
교인들이, 기도하면 다 들어주셔! 기도하면 태문 열어주셔! 아기 못 낳던 사라도 노년에 하나님이
아들 주셨어! 하는 것이 도대체 해당키나 하는지 좀 생각을 해보라는 말입니다. 자기 육의 욕구들
을 채우려고, 육신의 정욕들에 끌려 기도한다고 하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인가 말입니
다. 이런 육체의 정욕에서 나는 육의 것은 누가 주인입니까? 사단이 주인입니다. 만일에 그런 것
들을 기도했더니 응답주셨다 한다면 그것은 누가 들어준 것일까요?
이미 말씀드린 바 있지 않습니까? 불임 중인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 나와서 자식 낳게 해달라고,
말 그대로 태문 열어달라고 사라에게, 리브가에게, 통곡으로 기도한 한나에게 태문을 열어 자식을
주셨으니, 하나님! 나에게도 잉태의 복을 주시라고 애걸복걸 기도하니 결국은 귀신이 그 태로 들
어가 잉태케 하여 같이 태어나는 것들을 내게 보이셨다고 말했지 않습니까? 믿는다는 사람들이 과
학을 빌려 인공 수정이라는 방법으로 아기를 가지려고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죄
를 짓는 것임을 보이셨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이 같은 것들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될 자가 태어나 장성했을 때 사단
이 그에게 들어가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태로 들어가 사람처럼 나오리라는 것, 아마도 지금
태에서 나와 길러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단 자신이 태에 잉태시켜고 그와 하나가
되어 태어나리라는 것, 이미 세상에 나왔을 수도 있고, 자기의 때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적그리스도가 세상에 나왔느냐? 하는 것은 현재 미지수이긴 하나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는 제가 확실히 깨닫는 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종교인들을 보고 막7:8,9에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했습니다. 마16:23에 예수께서 베드
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
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사단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영님께서는 오늘날 믿는다고 해도, 예수님 밖에서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는 종
교인들로 넘쳐나고 있으니, 성영님이 세우신 종이라고 하는 사람들부터도 너무나 없는 그런 어둠의
때니, "너는 사람을 삼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람들을 삼가지 않으면 내가 해를 입는다"하셨습니
다. "너는 오직 나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선택받은 것이니, 성영님께서 주시는 말씀만 말하는 자가
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삼가지 않으면 사단이 권리를 가지고 나에게 해 끼치러 들어온다고, 그 통로를 내가 내주는
것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나의 사명이 영적인 하나님의 뜻을 다루는 일로, 이것은 하나
님의 말씀에 대해 깊은 것을 다루는 특별한 선지자적 사명인데, 여기에는 사단의 정체와 그의 일까
지 다 들추어서 알려주는 일이라서,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야 듣고 믿음의 지식으로 받아 사단에
게 속지 않는 믿음이 되면 되는 것이지만, 저는 실제로 사단과 그 영들과 전투를 벌이며 말씀을 전
하는 것이기에, 만일에 내가 사단에게 틈을 주게 되면 말씀이 훼방을 받고 내게도 해를 끼치고 들
어온다고, 해를 당하게 된다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저의 이 말을 알아듣는 귀가 있기를 바라지만, 알아듣지 못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저를
이해 못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명하신 것은 성영님이시니 저는 성영님의 명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동안 제가 사람을 삼가지 않은 일로 인하여, 여러 차례 악한 영들에 공
격을 당한 예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고 한 예만 든다면, 저의 전하는 말씀
이 다른 목사들과 같지 않다고, 또 교회의 운영을 다른 교회처럼 하지 않는다고 뒷전에서 비방하
고 흉보다가 그들이 다른 교회로 옮겨갔는데, 가서 교회 생활은 열심히 잘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났는데 그 사람들이 그동안 어떤 병이 들어 수술받고 나았다가 또 병이 들어 수
술받고 나으면 또 다른 병들고 하는 그런 악순환 속에서, 이제는 아예 치료 불가한 고약한 뇌암으
로 병이 깊어져 죽을 날 기다리는 중에 불현듯 제 생각이 났다고, 와서 기도 좀 해주시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 염치없음에도 불구하고 전화하는 것이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정말 인정상 거절할 수 없어 가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복음의 말을 주며 안수하여 기
도해주고, 다시 또 오겠다고 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월요일 오후 늦게 다녀왔는데, 화
요일부터 어지러움이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동안도 여러 차례 어지럼 증세를 겪은 일들이 있기
는 했지마는 기도와 깨달음으로 하루 이틀로 해결되곤 했었는데, 그때는 토요일까지 그 증세를 겪
으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어지러움이 어떠했는가 하면, 그냥 마구
머리가 휘어잡아 도는 겁니다. 나는 서 있는데 머리는 땅에 처박히는 것과 같은 겁니다. 나는 걸
어가는데 머리는 땅에 처박히는 것과 같은 느낌과 현상으로 서 있을 수도, 걸어 다닐 수도 없는
그런 심한 어지러움이었습니다. "왜 제게 이런 어지러움이 있습니까?" 다른 때는 기도하면 깨닫게
해주셔서 바로바로 해결되었지만, 이번엔 답이 없으셨습니다.
저 스스로 거기와 관련을 짓지 못했고 왜 그런 것인지 다른 이유는 생각은 안 나고 또한 성영님께
계속 물어도 묵묵부답이셨고 명령하고 기도해도 회복이 되질 않았습니다. 저는 그들을 기도해준
것과 연결해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영혼들을 긍휼히 여겨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요,
우리의 할 사명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있
었기에 연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토요일이 되고 주일이 돌아오니 마음이 급하여 성영님께 제가
회개해야 할 일이면 회개하게 해주시고 깨달아야 할 일이면 깨닫게 해주시라고 종일 호소를 했습
니다. 그랬더니 밤이 돼서야 비로소 열어 깨닫게 해주셨는데, 제가 그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손
얹어 기도했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이미 사단의 소유인 그들에게 손 얹고 기도하니 악한 영들이 권리를 가지고 나를 공격했다는 것입
니다. 영계에도 법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사람이 죽기 전에는 믿고 구원받을 기회가
있는 줄 알았어요. 사람이 죽는 그 순간까지 기회가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특히
그들은 다른 교회와 같지 않다고, 다른 교회처럼 하지 않는다는 불평을 하다가 떠나 나가 이미 사
단의 것, 사단의 소유로 돌아갔는데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돌이켜 볼 줄 모르고(돌이켜
볼 수도 없지만) 죽음 앞에 놓이니, 기도 받으면 나을 것 같다는 그 요행의 마음으로 내게 기도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단의 것으로 인침을 받은 것인데, 그것은 영적 세계
의 법칙인데, 내가 그것을 건드렸으므로 공격을 당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아마도 몇 번은 더 기도하러 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히 회개하게 되었고, 어지러움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이런 경우를 제가 여러 차례 겪었습니다. 긴 이야기가 돼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고
다음으로 하겠습니다. 나를 늘 견책하시며 기름 부음으로 양육해주신 성영님께 감사 올려드리는
것으로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2014년 (1) 사람들을 삼가라.p311-p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