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은 24절기(節氣)의 하나인 입춘(立春)으로 시작되는데 눈, 얼음, 서리가 녹아 내려
빗물이 된다는 우수(雨水)와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으로
이어지면서 봄기운은 점점 무르익게 된다.
24절기는 태양이 움직이는 궤도인 황도(黃道)상의 위치에 따라 춘분(春分)점을 기점으로
하여 1년 주기인 360도를 15도 간격으로 나눈 24개의 점에 해당하는 절기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음력이 아닌 양력 기준이며 농사(農事)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봄이 되어 개나리, 수선화 등 봄꽃이 만발했는데도 아직 추위가 여전 할 때 우리는
‘봄이 왔는데 봄 같지 않다’고 말하고 이를 문자그대로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라며
어떤 일을 할 시기는 왔는데 상황은 별로 좋지 않을 때 이 고사성어를 흔히 사용한다.
이 말은 중국 당나라 때 동방규(東方虬)라는 시인이 쓴 시 ‘소군원(昭君怨)’의 구절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자연의대완(自然衣帶緩) 비시위요신(非是爲腰身)
저절로 허리띠가 느슨해지니 몸매를 가꿔서가 아니라오
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시의 주인공에 얽힌 슬픈 사연이 있다. 이 시의 제목은
‘昭君(소군)의 怨望(원망)’이라는 뜻인데 ‘소군은 왕소군(王昭君)이라는 여인을 의미 한다
그녀는 전한(前漢) 시대 (기원전 1세기) 마지막 황제인 원제(元帝)의 궁녀로서
중국 고대의 4대 미인 중 한 사람으로 뽑히는 절세 미녀였다.
왕소군은 북방 오랑캐 흉노와의 화친의 조건으로
흉노의 왕에게 원제의 딸인 공주가 보내지게 되었는데 공주 대신
그녀가 강제로 보내져서 낯선 이국(異國)땅에서 왕녀로 살다 생을 마감하였다.
이 고사성어가 유래하게 된 동방규의 시는 이국 오랑캐 땅에서
고향을 그리며 외롭게 살아가야 했던 그녀의 애절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얼굴만큼이나 착한 마음씨를 가진 왕소군 덕분에 두 나라는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고 또한 한(漢)나라의 의복과 농경 문화가 흉노에게 전해지기도 했다.
중국의 초절정 미인 세사람은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불리웠으나
(西施 서시, 貂蟬 초선, 楊貴妃 양귀비)
왕소군은 흉노에 시집감으로써 나라에 오랫동안 평화를 가져왔다 해서
이들 세 미인과는 달리 애국지색(愛國之色)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왕소군이 어찌나 미인이었는지 흉노 땅으로 가는 길에 말에서 비파(琵琶)를 들고
연주를 하였는데 지나가던 기러기가 비파 소리에 맞추어 부르는
왕소군의 노래소리와 그녀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잃고 날갯짓을 잊는 바람에 땅으로
떨어졌다는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에서 낙안(落雁, 기러기가 떨어짐)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王昭君 왕소군 (17세기, 도쿄 국립박물관)
한국에서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사건 이후 1980년 봄,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씨 등 세명의 김씨가 정치 전면에 나서며 민주주의 시대가
곧바로 올 듯하였으나 예기치 않은 신군부(新軍府) 세력이 등장하여 기대가 무너졌다.
그때 김종필(金種泌) 씨가 당시의 현실을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라고 표현하여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膾炙,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림) 되었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 보면, 연말이 되어 다른 사람들은 회사에서 보너스를 두둑히
받았는데 자기는 보너스를 아주 얄팍하게 받았을 때 받긴 받았는데 제대로 받은 것
같지 않다는 서운한 마음을 춘래불사춘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