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을 배운다. 초청강연회
김복현 전 익산문화원장 초청강연회
“세계문화유산 등재,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지난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결정하였다. 익산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 공주의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 부여의 관북리 유적·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터, 나성 등 8곳이 등재 목록에 들어갔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뒤 6년만의 결정이다. 이번의 세계유산 등재는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자연유산인 제주도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제외하면 문화유산으로는 10번째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적은 경주석굴암·불국사,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서울종묘, 창덕궁과 수원화성,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조선왕릉, 화회마을과 양동마을, 남한산성이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와 국내의 관심이 해당지역으로 쏠리고 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이 지역을 방문할 것이라 예상된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손님을 맞이하면 실망감만 줄 것이다.
좋은정치시민넷은 7월 6일 김복현 익산시(전)문화원장을 모시고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익산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듣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다음은 김복현 원장의 강연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익산은 10년 전부터 원광대 최완규 교수를 중심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을 하였다. 처음에 익산은 4군데를 목록에 등재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추진을 하였다. 익산을 중심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익산은 옛날 모습이 그대로 있어서 가능성이 높았다. 중간에 공주․부여와 함께 백제문화유적으로 등재하자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익산은 두 곳, 공주 두 곳, 부여는 4곳이 결정되었다. 왜 익산이 두 곳 밖에 안 되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되면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미륵사 석탑을 입체화 하여 간판을 만들자고 주장한 바 있다. 미륵사지에 관광객들이 방문하면 사진 찍을만한 곳이 없으니 만들어 보자고 주장을 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반영되지 않고 있다.
전라북도에서 도와준 것이 없다. 문화관광부나 문화재청에 도와달라고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 이제는 6천억 원이 내려온다고 하니까 기다리고만 있다.
미륵사지 박물관도 작년에 용역만 하고 사업이 추진되지 않고 있다. 예산을 확 보하여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 진행되지 않고 있다. 국립박물관을 스토리를 넣어 만들어야 하는데 아쉽다.
기차를 타고 익산역에 내리면 눈을 둘 곳이 없다. 아무것도 볼거리가 없다. 미륵사에서 나온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
백제문화유적지구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익산에서 시작을 하였는데 공주 부여만 그 혜택을 누릴 것 같다. 부여는 정림사지 일대를 세계문화유산 단지로 만들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익산은 대책이 없다. 미륵사지를 가면 찬바람만 분다. 행정이 지역정치권과 함께 노력을 해야 하는데 아쉽다.
미륵사지 석탑에서 사리장엄이 발견된 것이 2009년 1월이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보로 지정받지 못하고 초라하게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전에 국보로 지정되었어야 했다. 사리장엄을 국보로 만들기 위해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노력을 해야 한다.
백제문화유적은 일본인들이 좋아한다. 백제가 고대문명 선진문화국임을 잘 알고 있다. 성왕의 45대손인 임성태자 일행이 몇 년 동안 익산을 방문 적이 있다. 쌍릉에 와서 제사를 지내고 간 적도 있다. 이들은 쌍릉이 조상의 진짜 묘라고 생각한다. 능산리에 있는 성왕 묘는 가짜 묘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일본에 백제 후손이 1000만 명 이상 산다고 한다. 1917년 일제가 쌍릉을 파헤쳤다. 묘에서 나온 유물을 다 가져갔다. 임성태자 45대손이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오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가지 못하고 있다.
아픈 역사지만 중앙동에 가면 아직도 일제 건축물들이 남아있다. 현 신안장(여관) 뒤에는 25채의 일본인 가옥이 있었다. 일제시대 때는 그곳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아직도 일곱 채의 건축물들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신안장 뒤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사장집이 있었다. 지금도 빨간 벽돌담이 있는데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것이다. 벽돌은 현재 문화재단으로 쓰고 있는 익옥수리조합(1930년 건축 등록문화재 제181호) 건물의 벽돌과 같다. 전북대학 익산캠퍼스에 있는 구 이리농림학교 축산과(1932년 건축. 등록문화재 제178호)건물의 벽돌도 마찬가지다.
8년 전에 동양척식주식회사 사장의 딸이 온 적이 있다. 해방 전까지 이리소학교(현재 중앙초)에서 교사를 했다고 한다. 당시 26세로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면서 자국으로 들어갔는데 90이 다되어 가족들과 함께 익산을 방문한 것이다. 자기가 다닌 소학교, 집 등을 찾아보고 싶어서 온 것이다. 남아있는 일본인가옥을 익산시에서 매입을 했으면 좋겠다. 가옥을 수리해서 국내외 관광객을 위한 숙박 시설로 사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일본은 백제 땅을 그리워한다. 부여, 공주보다 익산에 대한 기억이 더 있다고 한다. 세계문화유산만 되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옛날 자료를 찾아 정리해서 외부인들에게 잘 보여주어야 한다.
미륵사지에 가면 누가 환영을 하나. 장사하는 사람이 있나.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세계인들이 와서 실망만 하고 가면 안 된다.
금마 마룡지에 생가터를 만들어야 한다. 생가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주인이 땅을 팔지 않아 추진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옆 다른 자리에 라도 생가터를 만들어야 한다. 생가를 만들어 무왕 영정을 전시해서 관광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용샘도 복원해 놓아야 한다.
당장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야기도 만들어야 하고 먹을 수 있는 자리도 만들어야 한다. 먼저 국내나 익산부터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 홍보물도 다시 만들어야 한다. 포장을 하더라고 화려했던 역사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용역팀에게 맡겨 만들어야 한다. 보석박물관과 연계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
내년에는 새로운 것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것이다. 1년에 지나면 관심은 시들해진다. 관심이 있을 때 홍보 및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다음은 강연이 끝나고 나온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세계문화등재가 되었다고 팡파르를 울렸는데 내실이 없다. 유적을 관람할 수 있는 동선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정표 등을 정비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음악회, 사진전시회, 사진 콘테스트 등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
익산역에 내리면 왕궁리 유적이나 미륵사지에 접근할 수 정보가 없다. 역이나 터미널에 홍보판을 설치한다든지 블로그, sns 등을 활용하여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첫댓글 익산역에서 우리 지역을 알려내는 사업을 준비중이라고 들었어요.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한 정보도 같이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