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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부활주일 설교
시리즈 제목: 땅을 위한 하늘의 대리인들 13
설교 제목: 아담 안에 있나, 그리스도 안에 있나?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21~22
설교를 위한 묵상:
부활절,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다. 그런데 그 내용은 다양하고 서로 다르다. 어떤 것은 왜곡되어 있다. 나는 이번 설교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의미를 넓은 범위에서 생각해 볼 것이다. 성경 전체를 어떤 배경 이야기로 이해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각각의 배경 이야기 속에서 예수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기대와 소명을 부여하는지를 비교하여 설명할 것이다.
이 설교를 통하여 기존의 신자들은 우리가 배우고 있는 성경 이야기의 전체 구조를 다시금 점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초심자들은 성경이야기가 우리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것을 왜 배워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설교자로서 나의 기대이며 목표다.
나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톰 라이트의 책, The Day the Revolution Began을 발췌하여 읽었다. 그리고 2017년 톰 라이트가 켄우드침례교회에서 강연한 영상과 구글에서 강연한 영상을 들었다.
설교 개요:
1. 한 사람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다
2. 성경 이야기는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3. 성경 이야기를 해석하는 두 가지 틀
4.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 아이처럼 생각했다
5.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에 담긴 비밀
6.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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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사람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절기입니다. 부활절은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이 절기는 세계인의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탄절은 12월 25일이지만 부활절은 해마다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부활절은 음력으로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부활절의 날짜를 확정했습니다. 그 날짜는 해마다 춘분이 지나고 나서 첫번째 보름달이 뜨고 나서 처음 맞는 일요일입니다. 금년도 춘분은 3월 20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 3월 25일에 보름달이 떴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일이 부활절이 됩니다. 부활절은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봄에 있는 절기입니다.
부활절이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새벽예배와 연합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교인들과 이웃에게 계란을 나누었습니다. 부활절 계란은 예쁜 그림이나 포장으로 장식됩니다. 요새는 그런 풍습이 줄어들어 계란 대신에 떡을 하거나 잔치를 하기도 합니다.
어떤 절기가 세대에서 세대로 계속 이어지고 발전하려면 그 절기에 담긴 의미가 새롭게 조명되고 발견될 필요가 있습니다. 의미를 상실하는 절기는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사람은 의미없는 일을 계속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들은 자정에 지내던 제사를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계란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이유도 그 형식이 부활절의 정신을 담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인류는 한 사람의 죽음과 부활을 이렇게 기념할까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 저는 부활절을 맞이하여 이 주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 성경 이야기는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성경 이야기는 어떤 사건에 대한 해석이라는 점입니다.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해석이 뒤따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사건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의미로 기억되고 기념됩니다. 우리의 절기는 그렇게 해서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서 절기를 만듭니다. 우리나라의 국경일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일이 우리에게 중요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가 독립을 위해 용기를 내어 만세를 부르던 사건을 기념하는 삼일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한 사건을 기념하는 광복절이 있습니다. 한반도에 나라가 처음 세워진 사건을 기념하는 개천절이 있습니다. 이렇게 절기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후대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기에 정해집니다.
그러면 부활절은 기독교회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사건이 어떤 점에서 교회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후세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면서 계란을 장식하여 나누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도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부활절 계란은 기독교 2천년 역사 가운데 어느 시점에 시작된 풍습입니다. 성경은 부활의 의미를 그런 식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계란의 부화를 보면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을 보증하는 것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부활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부활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땅에 씨를 뿌리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땅에 씨를 뿌릴 때 알맹이를 뿌리지만 그 알맹이로부터 장래에 형체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썩을 몸으로 땅에 장사되면 장차 썩지 않을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37~44). 이것은 부활에 대한 상징적인 설명입니다. 도무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섭리를 들어 현세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사는 날이 온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그의 서신에서 여러 번 다른 방식으로 설명했습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말씀이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은 성경대로 된 일이라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3~4).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예수님의 부활을 무엇이라고 설명하는지를 잘 살펴보고 그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성경 이야기는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덮어놓고 믿어야 하다는 이야기는 그럴 듯하지만 하나님도 그런 자세를 기뻐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보고 그 이야기에 담긴 진짜 의도에 대하여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 이야기는 어떤 사건에 대한 해석이며 그 해석은 현재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이제 성경 이야기를 해석하는 두 가지 기본적인 틀을 소개하겠습니다.
3. 성경 이야기를 해석하는 두 가지 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할 때는 성경을 인용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이야기나 구절을 통해서 어떤 주제를 설명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성경을 해석하는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틀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성경의 이야기들은 어떤 틀을 가지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주제에 대하여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 이야기는 결국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질문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고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어떤 이야기틀을 가지고 성경을 읽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언제나 거울에 있는 모습이 자기의 전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잘 드러나기도 합니다. 나는 거울 속에 있는 모습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외면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거울이 보여줄 수 없는 나의 진정한 모습은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며 사는 가운데 드러납니다. 그렇게 여러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우리는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이해합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틀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성경을 이해하는 두 가지 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두 가지 외에도 더 많은 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편의상 이 두 가지 틀을 비교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성경을 이해하는 첫번째 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인간은 죄인이며 그 결과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셔서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현세와 내세가 있어서 내세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이야기틀로 성경을 읽으면 성경의 모든 이야기를 그 틀에 맞추어 이해하기 쉽습니다. 즉, 성경 이야기는 결국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을 설명하려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행적이 나온다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모든 이야기에는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신 예수님의 희생을 미리 보여주는 장면이 숨겨 있다고 이해합니다.
이런 이야기틀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바라보면 그것은 결국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으므로 우리의 모든 죄, 아니 인류의 모든 죄가 사해지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므로 우리도 부활하여 영생을 누릴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기독교회가 전통적으로 성경을 이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이야기 틀에 맞추어 우리는 성경을 읽고 전도도 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으며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우리의 전도에서 핵심 메시지가 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수님을 믿었고 그 이야기를 찬송하고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난 8년동안 저에게 새로운 이야기틀로 해석된 설교를 들으셨습니다. 그것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지음을 받아 이 세상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생각대로 살면서 이 세상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 인간을 부르셔서 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일에 초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절정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일에 온 인류를 초청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가 태어났으며 교회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면서 살아갑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처음부터 계획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마지막에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하실 때까지 구원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세상을 치료하고 회복하는 일에 동참합니다.
이런 이야기틀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바라보면 그것은 우리 인간을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인간의 죄와 사망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므로 이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그 은혜와 지혜를 받아 자신에게 주어진 가정과 지역을 가꾸고 돌보면서 보람이 가득하고 영광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어 얻게 되는 새로운 삶이며 구원입니다.
4.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 아이처럼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어렸을 때에는 어린 아이처럼 생각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립니다. 교우들과 함께 금요일 밤에 오산리기도원에 다녀오는 길에 문득 하늘에 뜬 커다란 달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 달이 왜 저렇게 큰가 하면서 지구의 멸망이 가까이 왔나?’ 하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 달을 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이인성 장로님은 어린 시절에 배운 노래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달 따러 가자’는 곡인데 윤석중 씨가 가사를 적었습니다:
달 따러 가자
윤석중 작사, 박태현 작곡
1.
얘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
장대 들고 망태 메고 뒷동산으로
뒷동산에 올라가 무등을 타고
장대로 달을 따서 망태에 담자
2.
저 건너 순희네는 불을 못 켜서
밤이면은 바느질도 못한다더라
얘들아, 나오너라 달을 따다가
순희 엄마 방에다가 달아드리자
그렇게 운전을 하면서 오다가 문득 달을 다시 보았을 때 달은 하늘에 더 높이 솟아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말했습니다. ‘달이 원래 크기로 돌아왔네요~’ 그때 저는 지평선 가까이에 있는 달이 더 커 보이는 이유에 대하여 대기권에 있는 수증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나중에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인간의 착시현상이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같은 달을 보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 다른 해석을 합니다. 그 해석은 저마다 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자기의 이야기틀을 반영합니다. 저는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설명하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종말론에 입각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달을 바라보면서 손주들과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린 분도 있습니다. 이렇게 낮게 떠 있는 달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은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틀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성경을 이해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설명해 드린 성경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틀은 성경을 이해하는데도 영향을 주지만 그 해석을 믿고 사는 우리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앞의 이야기를 따라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가 느낀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인간의 최고 목적은 죄를 용서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번째 이야기틀에 따라 성경을 읽고 살아가면서 제가 느낀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존귀한 존재이며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이 본래적으로 의도하신 대로 피조세계를 잘 다스리고 관리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이야기틀에 따라 살 때 저는 오로지 저 자신에 집중하면서 살았습니다. 제가 죄를 짓지 않아야 하고 제가 세상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어떻게 되든지 결국 망할 것이기 때문에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신앙생활은 교회 중심으로 세상과는 일정 거리를 두면서 사는 것으로 형성됩니다. 이 세상의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가지기는 어렵습니다.
두번째 이야기틀에 따라 살 때 저는 저 자신과 이웃의 관계에 대하여 좀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부르시고 은혜를 주신 것은 저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유익이 될 일을 하라고 하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과 세상을 좀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더불어 힘을 합해야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하고 용기를 구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 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얼마나 복되고 보람이 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구원을 이 세상에서 벗어나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장성하면서 저는 구원을 달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그 선한 일을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5.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에 담긴 비밀
이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도 언젠가는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성경 이야기를 처음부터 종합하여 생각해 보면 다른 의미가 드러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21~22
이 말을 다시 정리하면,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렀으며 한 사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와 유사한 말을 합니다. 거기에도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가 나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로마서 5:17~19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로마서에는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정죄에 이르렀다고 하며 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담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에덴에서 쫓겨나고 더 이상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세상의 축복을 위한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에 형이 동생을 죽이고 죄악이 점점 늘어가는 세상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보는 세상이 그런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말은 단지 목숨이 다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처음부터 인간에게 예비하신 그 선한 일을 하는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할 때 살았지만 죽은 목숨이라는 말이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다는 뜻이며 그것은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이제 의인이 됩니다. 이 말은 그가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은혜와 지혜를 받아 그의 삶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만들고 가꾸기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살맛 난다’는 말은 구원받아 살아가는 신자의 삶을 표현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말은 아담의 삶을 따라 살면 살았으나 죽은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삶에 대하여 말할 때 ‘죽을 맛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삶, 살맛 나는 삶, 기쁨 가득한 삶입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이미 이런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친지들과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합니다. 그 길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열려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모시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셔서 의롭다함을 얻으시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새로운 삶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6.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이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을 배움으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연습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무섭고 두려운 분으로만 이해한다면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 불편하겠지요. 사실 성경을 배우면서 우리가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고 좋으신 분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이해할수록 사람은 다른 사람과 더 잘 지낼 수 있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종교인들을 보면 그들이 생각하는 신은 매우 엄하고 무서운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는지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엄하고 두려운 하나님을 생각하던 시절에 저는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대했습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자녀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분임을 깨닫고 더욱 알고자 노력합니다. 그만큼 저의 삶도 부드러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께 순종하셨을 때 우리는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하기도 하고 의인이 되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어떻게 우리를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그것이 성경대로 된 일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배우면 하나님이 왜 인간을 지으셨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에 대하여 어떤 계획을 가지고 일하시는지도 알게 됩니다. 그런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과 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어떤 이야기틀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