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삶을 여기서
<황정은의 ‘연년세세’를 읽고>
2024.5.더불어
어느새 초록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내게 다가오는 문장들을 떠올려 보는 시간이 참 좋았다. 이렇게 좋은 걸 한동안 잊고 지냈다.
주인공 순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국전쟁을 겪고 분단국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쩔 수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래서 선택을 하는 삶이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부모의 삶은 비록 선택지를 자신이 결정할 수없는 삶이었지만 해를 거듭하며 세월을 지나오면서 자식들의 삶만은 자신을 위해 온전히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해져왔다.
가족이라는 혈육으로 연결된 관계는 끊으려 해도 끊을 수가 없는 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족관계 속에서 기쁜 일도 맞이하지만 힘들고 괴로운 일들도 맞이하게 되고는 한다.
가족들의 사정을 무시한 채로 나의 행복만을 위한 삶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들려오는 나만 행복한 게 너무 이기적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가족들의 사정을 일일이 내가 나서서 도움을 주기에는 너무 버거운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 속에서 결정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된다.
내가 가족들의 사정을 봐주는 쪽을 택한다면 가족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도움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 안에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나의 행복만을 위한 쪽을 택한다면 가족들로부터 도움을 받기가 힘들어질 것이고 내 마음 안에는 약간의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중간의 길을 택할 수는 없는 것일까.
책속에서 순자의 삶은 자신이 살고 싶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그 속에서 확실하게 있었던 일이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마음 안에 분명 선명하게 남아있는 아프고 후회되는 일들이 존재하고 있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용서할 수 없었던 지난 일들과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원망의 대상이 될수도 용서 받지 못할 일들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순자의 큰 딸 영진 또한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의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엄마인 순자가 편하게만 사는 것이 아니다. 딸과 같은 집에 살면서 직장 일을 하는 딸을 대신하여 살림을 한다. 순자 또한 그 속에서 불편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엄마인 순자와 딸 영진은 마음 안에 서로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간직하고는 있지만 말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로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
순자의 작은 딸 세진은 그래도 가족들의 바람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가며 살아가는 쪽을 택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엄마인 순자를 위해 시간을 내고 도움을 주고는 한다.
순자의 막내아들 만수는 가족의 도움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서 다른 나라로 떠나서 살아간다. 비록 그 삶 또한 녹록치 않지만 그래도 자신이 살고 싶은 쪽을 택했기에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와 내 가족들의 관계 그리고 가지를 뻗어나가서 나의 친족관계와 내가 맺어왔던 인간관계들까지도
어쩌면 가족 모두와 아무런 불편한 마음 없이 좋은 관계로만 지낸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실은 크고 작은 일들이 존재하고 서로를 미워하기도 또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세월을 건너가면서 살아가는 일이지 않을까한다.
중요한 사실 하나는 우리의 삶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더라도 원망만 하고 슬퍼만 하기 보다는 그 삶 속에서 어떻게든지 내가 행복한 길을 찾아서 살아내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