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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악인의 어리석음(시편 14:1~7)
* 본문요약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하며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합니다.
여호와께서 혹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굽어살피셨으나,
다 치우쳐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습니다.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피난처가 되시니,
악인에게 억압되어 고통당하는(포로 된) 자들을 돌이키실 때에 이스라엘이 기뻐할 것입니다.
찬 양 : 399장(새 546) 주의(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379장(새 204) 주의 말씀 듣고서
* 본문해설 :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썩었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모든 사람을 굽어살피시며
지각이(지혜가)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혹은, 언제나 깨달으랴 저 무지한 자들)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인들과 함께 계시니
악을 행하는 자들이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리로다.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계획)을 부끄럽게 하나(비웃었으나, 좌절시키나)
오직 여호와는 그들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 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1절) :
그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실천적 무신론’이라고 합니다.
신앙 생활은 하는데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자입니다.
- 지각이 있어(2절) : 마스킬
지각이 있다고 번역된 ‘마스킬’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고 찾는다’는 뜻으로
이 땅의 사람 중에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를 찾고 계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 다 무지하냐(4절) : 야드우
무지하냐(야드우)는 ‘선악을 구별하는 분별력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6절) :
여기에서의 ‘가난한 자’는
악인에게 압박을 받아 가난하고 비천하게 된 의인을 가리킵니다.
악인들이 의인의 충고를 무시하고 의인의 선한 계획을 끝내 좌절시켰다는 뜻입니다.
- 포로 된 곳에서(7절) :
여기에서 포로 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이 악인에게 억압되어 고통과 핍박을 받는 상태를 가리킵니다(calvin).
* 묵상 point
1. 두 가지 무신론자
시편 14편 역시 다윗이 악인들에게 압박과 고통을 당하는 중에
하나님께 드린 탄원의 기도입니다.
이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찾는 자와 찾지 않는 자를 구분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여기에서의 악인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그들은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이방인과 같은 자들인데,
정작 자기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 중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 지적 무신론자 : 주님을 믿지 않는 교회 밖의 사람
지적 무신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교회 밖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전혀 믿지 않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어떤 심판의 말씀을 하신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마음에 찔림을 받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자기들이 어떤 죄를 지었든 간에
그 죄의 일로 마음에 번민이나 갈등 역시 전혀 하지 않습니다.
혹시 번민을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명예가 실추될까 염려할 때뿐입니다.
2) 교회 안의 무신론자 :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1절)
그러나 시편 14편에서 말하는 자는 교회 안의 무신론자로
신앙생활은 하는데 그 마음에 하나님은 없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신학자들은 실천적 무신론자라고 말합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알고 있고, 그 입으로도 주님을 믿고 있다고 고백도 하는데
그가 하는 짓을 보면 교회 밖에 있는 믿지 않는 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의 무신론자(실천적 무신론자)의 전형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➀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
분명히 교회에도 열심히 다니고, 예배와 봉사는 물론
성경공부 모임이나 기도 모임까지 빠짐없이 참여하는 사람 중에도
무신론자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조금 고상한 최미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새로운 학문을 깨우칠 때 기쁨을 얻는 것처럼
신앙생활에 대하여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마다 가슴 벅찬 기쁨을 느끼지만,
그저 그것뿐입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습니다.
일은 일이고 신앙은 신앙입니다.
일과 신앙이 완전히 별개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든지,
자기의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그저 일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고,
신앙은 좋은 음악을 들을 때처럼 자신에게 고상한 품격을 주니
그렇게 조금 고상하게 살아갈 뿐입니다.
이런 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무신론자입니다.
➁ 그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
그의 일에서뿐 아니라
그가 바라고 계획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습니다.
그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자기의 고상한 취미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가 바라고 원하는 것 역시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자기의 마음을 충족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
앞으로의 꿈과 계획 역시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기는 하지만 땅의 것을 구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든지, 하나님께 감사한다든지 하는 것이 없습니다.
➂ 그가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
처음부터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으므로
그가 저지르는 죄에 대한 죄책감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두려움이나 슬픔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이러다 하나님께 버림받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주일 예배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대한 의무는 끝났으니,
더 이상 나의 사생활에는 간섭하지 말라는 투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➃ 신앙과 생활을 별개의 일로 생각하는 자들
사람이 취미활동을 가지고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직장의 일이라면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 직장 상사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하지만,
등산이나 달리기와 같이 취미활동이라면 며칠 못했다고
누구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조금 아쉬울 뿐입니다.
신앙생활을 이런 방식으로 하는 사람들,
죄를 범했을 때에도 그저 조금 아쉬울 뿐인 사람들,
이렇게 신앙과 생활을 별개의 일로 생각하는 이런 사람들 역시 무신론자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교회 안의 무신론자(실천적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2. 교회 안의 무신론자의 위험 : 자기가 그리스도인인 줄 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적어도 머리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지적 무신론자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 아주 많은 사람이 실천적 무신론자들입니다.
회개 없는 은혜를 원합니다.
회개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갈등과 번민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냥 은혜받은 감동만 받기를 원합니다.
소위 종교적 감상주의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실천적 무신론자들은 다음과 같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1)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 없도다(1절)
일과 신앙을 별개로 여기고 있으니 죄책감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신앙생활을 그저 고상한 감상에 젖기 위해 하는 것이었으므로
공연히 마음 불편하게 하는 회개나 뉘우침 따위는 하지 않기로 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으니 세상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한 자들에 불과합니다.
진심으로 애통하며 회개한 적이 없으니 죄를 그냥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죄를 그냥 갖고 있으니
믿음 없는 자와 똑같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2)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2절)
신앙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는다고 할지라도 자기 개인의 일을 위해서만 찾습니다.
질병이나 돈이나 직장이나 가정의 일과 같은 것을 위해서만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주시는데,
그의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 제목인 하나님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도 때로 기도를 많이 하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하나님도 천국도 없습니다.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3절)
세상에서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향락과 음란에 젖어 살더라도
신앙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후회나 죄책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는 거룩한 마음을 갖고
교회 밖을 나가는 순간 더러운 마음에 가득한 상태가 됩니다.
죄와 은혜, 선과 악, 거룩함과 음란함,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이 둘이 함께 있음에도
아무런 번민도 갈등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기에는 참으로 편리한 사람들입니다만,
하나님 앞에서는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 언제나 깨달으랴 저 무지한 자들(4절)
우리는 이 기도를 하는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탄식의 소리를 듣습니다.
“언제나 깨달으랴, 이 무식한 자들아!
그들이 떡 먹듯이 죄를 범하면서도 여호와를 부르지 않는도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거룩한 감정을 얻기만을 바라는 자들,
천국에는 가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은혜로운 자라는 평가를 받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무식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결국 믿지 않는 자와 똑같이 멸망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묵상 : 이런 자들이 바로 시편에서 말하는 악인입니다.
겉으로만 고상한 척하는 이런 사람들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악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자기들이 어떤 사람인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죄의 용서는 받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교회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은혜를 받았다는 고상한 감상에 깊이 빠지기를 원하는 자들,
이들이 바로 저주받을 악인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3. 의인의 피난처가 되시는 여호와
1)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여호와는 그들의 피난처 되시도다(6절)
이런 자들은 일과 신앙을 별개로 생각하니
심지어 살인을 하고도 곧바로 예배에 참여하여 “거룩 거룩 거룩”하는 찬양을 부릅니다.
과거 중세 시대의 교회들이 그렇게 했고, 백인들이 흑인 노예들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다가 어려움에 처한 자들의 선한 계획을 부끄럽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인들일지라도
그 의인들이 자기들의 이익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의인들에게 악을 행합니다.
그렇게 악을 행하고도 아무 거리낌 없이 곧바로 은혜로운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
이들이 악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참되게 섬기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악인들에게 짓눌려 괴로움을 당하는 그들의 가련한 처지를 살피십니다.
지금은 이들이 세상에서 힘도 없는 나약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높이실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7절)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온이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천국의 생명을 내리십니다.
3)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 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7절)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 된 곳에서 돌이키십니다.
여기에서 ‘포로’는 전쟁에서의 포로가 아니라
세상의 악한 자들로부터 억압과 핍박을 받는 고난의 자리를 가리킵니다.
혹은 죄를 벗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가련한 인생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죄를 범하고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자들은 악인이지만,
똑같이 죄를 범했더라도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통스러워하며
애통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포로 된 자리에서 돌이키게 하십니다.
4)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7절)
그렇게 죄를 고통스러워하고 애통하며 부르짖는 중에
주께서 그들을 포로 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진정한 기쁨을 얻게 됩니다.
주께 용서받은 자가 느끼는 참된 기쁨입니다.
단지 육체의 욕망만 만족시키는 기쁨이 아니라
영혼까지 만족하게 하는 깊고 충만한 기쁨입니다.
● 묵상 :
그러나 이런 충만한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죄를 고통스러워하며 애통해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 우리는 죽음 같은 번민과 근심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아픔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갈등이라는 광야를 지난 후에 얻게 되는 참된 기쁨을 생각하고 참고 견디십시오.
그리고 내 모든 것을 주께 맡기십시오.
주께서 나를 포로 된 곳에서 건지십니다.
* 기도제목
1. 일과 신앙을 별개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2. 세상의 일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더 바라고 원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3. 주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을 얻기 위해
죄를 회개하는 아픔을 견디고 지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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