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문화사-여주(驪州)
주(州)가 붙은 지명을 가진 지역은 조선시대 각 지방 중요 거점 도시에 설치된 지방행정의 명칭인 목(牧)이 설치된 곳이었다. 전국에 20곳의 목이 설치되었는데, 모두 지명에 州가 붙어 있다. 목이 설치된 곳에는 지방 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목사(牧使)가 부임하여 넓은 지역을 다스렸다. 경기도에는 네 군데에 목이 있었는데, 여주도 그중의 하나였다. 지명의 앞 글자가 검은 말을 뜻하는 驪(려)인 것을 보면 말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여주는 말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없고 지형과 연관이 있는 전설을 간직한 것이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에 청심루(淸心樓)가 있었던 驪江을 가보면 강에서 말이 나왔다고 하는 전설을 간직한 말바위(馬巖)가 있기는 하지만 여러 기록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여주 지역은 고구려 땅이었는데, 이때는 골내근현(骨乃斤縣)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굴레 끈(勒)의 한자식 표기로 보기도 하지만 이것은 근거가 매우 희박한 주장이다. ‘골내근’에 대해서는 정밀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 경덕왕 때(725년)에는 황효(黃驍)로 고쳤고, 고려 초에는 황려현(黃驪縣)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영의(永義), 여강(驪江), 여흥(驪興), 여성(驪城), 황리(黃利) 등의 지명이 있는데, 글자 상으로 보아서는 모두 말이나 물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지명들이 실제로 말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과 상세한 고찰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주의 지명 중 가장 오래된 것이 ‘骨乃斤’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이해를 올바르게 하는 일은 그 뒤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붙여진 땅이름이 가지는 의미를 밝혀내기 위한 바탕이 된다. ‘骨乃斤’은 ‘骨+乃+斤’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한자의 뜻을 취해서 표기하는 훈차(訓借) 이두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각각의 글자가 이두 표기에서 어떤 용도와 뜻으로 쓰였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骨(뼈 골)’은 사람이나 동물의 몸을 지탱해 주는 골격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하며 죽은 사람의 유골(遺骸)이라는 뜻을 가지기도 한다. 뼈마디가 이어져 있는 모양을 지칭하는 ‘冎(뼈 발라낼 과)’와 살을 의미하는 ‘肉(고기 육)’이 결합한 모양의 글자가 바로 ‘骨’이다. 사람이나 동물에게는 뼈와 살이 같이 붙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뼈는 신체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骨’의 쓰임은 점차 확대되면서 매우 다양한 뜻을 가지게 되었다.
뼈는 사람과 척추동물의 신체를 지탱하면서 내장 등을 보호하는 단단한 조직체이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몸통, 지지 구조, 중심, 중앙, 핵심, 기질, 기개, 마음속 깊은 곳, 강직함 등 매우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뜻을 가진 글자로 쓰임이 넓어졌다. ‘骨’의 확장된 쓰임과 의미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핵심, 혹은 중앙(중심, 가운데, 가라)이라는 뜻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骨’은 사람과 동물의 뼈를 지칭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사물 현상의 중심, 핵심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크게 넓어졌음을 알 수 있다.
중심, 중앙, 핵심 등의 뜻을 가진 ‘骨’이라는 글자는 고구려 이두에서 ‘가라’라는 말을 나타내는 용도로 쓰였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몽골어에서 온 ‘가라’는 ‘검은’, ‘복판’, ‘강한’, ‘큰’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고구려 이두에서 쓰인 ‘骨’은 ‘중앙’, ‘복판’, ‘한가운데’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가라’라는 말은 현재의 지명인 ‘驪(가라말 려)州’에 다시 나타나고 있으니 불가사의할 정도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두 표기에서 ‘乃(이에 내, 또 내, 그대 내)’는 뜻을 빌려서 쓰는 것(訓借)과 소리를 빌려서 쓰는 것(音借) 모두에 쓰인 글자다. 이 글자가 표현의 맨 끝에 오면 우리말로 발음 나는 소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쓰여 그에 해당하는 말의 뜻을 가진다. 예를 들면 우리말에서 ‘내’는 크지 않은 규모의 강을 나타내는 말인데, 이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乃’가 쓰이는 경우 같은 경우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이 글자가 글자와 글자의 가운데에 올 경우는 뜻을 취해와서 ‘곧, 또, 그리고’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쓰인다. 여주의 고구려 지명인 ‘骨乃斤’을 예로 들 수 있다.
‘斤(도끼 근)’은 손잡이가 있는 도끼(斧)의 머리를 본뜬 글자다. 원래는 건축에서 목공이 쓰는 도구의 하나였는데, 나무를 자르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사람의 머리를 자르는 무기로 쓰이기도 했다. 도끼는 생활상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서 창, 칼 같은 것보다 빨리 생겼기 때문에 도구와 무기 중에서도 으뜸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글자는 머리, 꼭대기, 날카로움, 맹렬함, 공격, 부딪침 등의 뜻을 가지게 되면서 쓰임이 크게 확대되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볼 때 ‘骨乃斤’은 ‘가운데에 있는 으뜸 고을’이라는 뜻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측면에서 그만큼 중요한 지역을 지칭하는 이름이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주 지역은 신라 때 지방의 전략적 요충지에 설치한 십정(十停) 중 하나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은 고구려 때나 신라 때나 여주가 그만큼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주 땅이름은 신라 경덕왕 시대인 725년에 ‘黃驍’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완전히 한자식 지명으로 된다. 얼핏 보아서는 ‘骨乃斤’과 ‘黃驍’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생각될 수 있지만 실제로 두 명칭은 같은 뜻이다. 고구려 때의 지명이 가진 뜻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신라 사회의 문화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 바로 ‘황효’이기 때문이다.
‘黃(누를 황)’은 사람의 모양, 흙의 색, 옥을 찬 모양, 얼굴이 누렇게 되는 병 등을 지칭하는 것에서 왔다는 다양한 주장이 있으나 그 어원을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글자 중의 하나이다. 다만 중국 문화에서 오색(五色), 오행(五行), 오방(五方)이 서로 연결되는 오행설이 생겨나면서 중앙, 핵심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굳어졌고 그것이 핵심적인 뜻으로 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신라가 당나라와 교류하면서 그 문물을 받아들일 때 들어왔다고 할 수 있는데, 경덕왕 시대에 이르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황효’에서 ‘黃’은 ‘중앙’이라는 뜻이 되어 ‘骨’과 같은 것이 된다. ‘驍(날랠 효)’는 훌륭한 말, 날쌔다. 용맹함, 뛰어남, 으뜸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므로 ‘황효’는 ‘중앙의 으뜸 고을’이 된다.
여주의 땅이름은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黃驪’로 바뀌는데, 한편으로는 ‘黃利’로 부르기도 했다. 이 글자는 검은 말(黑馬), 검은 용(黑龍), 뛰어남, 우두머리, 으뜸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므로 ‘驪’는 ‘驍’와 비슷한 뜻으로 쓰여서 ‘黃驍’의 의미를 계승한 것이 된다. ‘黃利’에서 ‘利(이로울 이)’는 빠르다, 용맹하다, 강하다, 뛰어나다 등의 뜻이 있으므로 ‘驍’와 비슷한 용도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말기에 오면 ‘驪興’으로 바뀌는데, ‘興’이 일어나다, 뛰어나다, 좋다 등의 뜻이 있으므로 ‘驪’가 중앙, 가운데를 나타내는 것으로 쓰였고, ‘興’은 ‘驍’와 같은 용법과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주’라는 땅이름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고려, 조선이라는 시대를 지나면서 풍수지리 사상을 바탕으로 문화가 형성되면서 그것이 지명 전설로 만들어졌고 말(馬)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각색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여주시 영월 공원 아래 물가에서 황마와 흑마가 나왔다는 바위인 마암(馬巖)이나 신륵사에 머물던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사나운 말을 길들였다는 이야기 등은 모두 풍수지리설에 근거를 둔 지명 전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지명인 ‘驪州’는 조선시대 전기부터 쓰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의 의미가 참으로 흥미롭다. 천년을 넘게 돌고 돌아서 다시 고구려 시대의 지명인 ‘骨乃斤’이라는 땅이름과 같은 뜻은 가진 것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자전에서는 ‘驪’를 ‘가라말 려’로 풀이하고 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가라’는 ‘검은’, ‘중앙’, ‘복판’이라는 뜻을 가지는 몽골어인데, 조선시대를 지나 현대까지도 그것이 그대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므로 ‘여주’는 ‘우리나라에서 중심을 이루는 강변 고을’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첫댓글
저희 부모님들께서 사용했던 가라 몰(말)
오랫만에 듣습니다. 제주 학우들과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無時不習 가족 모두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