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난 적이 있나요?
비가 내리는 지난봄 어느 날 오후였다. 다 읽지도 않은 책을 서둘러 반납하기 위해 웨스트라이드 도서관에 갔다. 대출 기간을 한 달이나 넘겨 빨리 반납하라는 독촉 때문이었다. 창구 앞에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몇 명의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는데, 그중 손에 ‘사려 깊게 치매 환자 볼보기 (Thoughtful Dementia Care)’란 책을 들고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상황이 지금 반복되고 있는 것 같은 기시감(dejavu)이 들었다. 혹시, 우리가 걸어왔던 인생길이 한때 서로 교차하고 부딪힌 적이 있었을까?
“저기 잠깐만요, 혹시 우리 전에 만난 적이 있나요?”
“잘 모르겠네요. 처음인 것 같아요. 미안합니다, 그런데 왜요?”라는 이어지는 대답에 정신이 들면서 민망한 순간이 이어졌다. 그녀의 현재와 나의 현재는 동일한 시간대가 아니었다. 속으로 그녀가 나를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초기 치매 환자쯤으로 여겨 주기를 바랐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순간 착각했어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디서 본 듯한 기억 속의 그 사람을 떠올리려다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생각도 나지 않는데 뭘 착각했단 말인가? 그러다 희미한 기억 속의 가름한 그녀의 얼굴이 의식의 수면으로 떠오르는 순간 마침내 웃음이 나왔다, 아니 울음이 날 뻔했다. 잊혔던 기억은 33년 전, 내가 호주로 출국하던 날, 그녀가 김포공항에 나타나지 않은 시간에 멈춰 있었다.
헤어진 옛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경험한다는 당혹스러움에 관한 것이다. 기시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프랑스의 철학자 에밀 부아락(Emile Boirac, 1851-1917)은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미 보았다’는 의미의 Déjà vu란 용어를 만들어 냈지만, 이미 플라톤 시대에 데자뷰 현상을 전생의 증거로 보았다는 기록이 있던 것을 보면, 이런 현상은 꽤 오래전부터 알려진 것 같다.
신경학의 이중 처리 이론에 따르면, 오감을 통해 입력된 정보는 뇌의 서로 다른 두 개의 부위에서 동시에 처리된다. 만약 이 두 곳에서 약간의 시차가 발생하면, 현재의 경험을 두 개의 개별 이벤트로 해석하여 친숙한 느낌이 들게 된다.
뼈가 부러지면 골절상이라고 하듯이, 기시감은 기억 결함의 한 형태라는 뻔한 설명은 진부하다. 차라리 “기시감은 평행 우주로 통하는 창”이라는 이론물리학자 Michio Kaku (미치오 카쿠) 박사의 연구가 더 호기심을 갖게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다른 우주 속에 존재하는 나는 다른 선택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샛길로 빠진 인생길에서 백일몽을 꾸는 데 익숙해진 나는 지금 거실에 앉아 기시감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부엌에서는 양파가 섞인 음식 냄새가 풍기고, 어항 속에는 민물 열대어가 느린 속도로 흐느적거리고, 휴대전화의 알림음이 들리며, 피부에 닿는 햇빛이 고양이 입 주변 수염처럼 부드럽다. 이러한 오감을 통한 모든 정보는 뇌에서 단일 이벤트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도서관에서 일어난 해프닝은 아래에 기술한 것들과 무관하다.
우리는 ‘TIME’이라는 시사영어 공부 대학 동아리에서 만났다. 신군부의 엄혹한 통치 속에서 최루탄 가스와 함께 장터국수와 만두를 먹었고, 유행하던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를 함께 불렀다. 지금은 사라진 경의선 기차를 타고 능곡 들녘을 지나 백마역에 내려, 지하 카페의 시낭송회에도 같이 갔다.
잠깐 헤어지는 줄 알았지만, 운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탑승 게이트로 들어갈 때까지 무수히 뒤돌아봤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나는요 비가 오면
추억속에 잠겨요
외로운 내 가슴에 남몰래 다가와
사랑을 심어놓고 떠나간 그사람을
그댄 낙엽지면 무슨 생각하나요
나는요 둘이 걷던
솔밭길 홀로 걸어요
솔밭길 홀로 걸어요
나는요 정말 미워하지 않아요
추억은 현실을 기만하는 왜곡된 기억이다.
양지연 / 수필동인 ‘캥거루’에서 활동, 독일 괴테대학 박사 (생물정보학), 카톨릭 의대 연구 전임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