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기 때문에 天使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보라 네가 受胎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主 하나님께서 그 祖上 다윗의 位를 저에게 주시리니 永遠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1~33)고 말씀하시어 저는 無窮히 繼續할 地上의 王으로 오실 것을 明示하였다.
그러기에 헤롯 王이 저를 죽이려하였고 네가 유대人의 王이냐고하는 빌라도의 質問에는 大膽히도 네말이 옳다고 對答하셨다(막 15/2). 저는 유대人의 王으로 오셨길래 이를 이루지 못하고 十字架에 달리는 것을 보고는 그를 嘲弄하기 위하여 「유대人의 王」이라고 十字架 上에 써 붙였던 것이다.
靈肉 아울러 萬王의 王으로 오신 예수님은 肉的 救援은 다음 다시 오셔서 이루실 것으로 남기시고 靈的 救援만을 完成하셨음으로 예수님은 오늘까지 靈的 萬王의 王으로만 계시는 것이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不信을 얼마나 책하셨으며 그들의 背信行爲를 보고 몇 번이나 우셨던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城을 향하여 올라가실 때도 그 城을 보고 울며 「오늘이라도 네가 平安한 일을 알았더라면 多幸하였으려니와 오직 네 눈에 숨겼으니··· 이는 권고하시는 날을 네가 알지못함이라」(눅 19/41~44)고 呼訴하시며 이스라엘의 不信이 결국 그 百姓을 亡하게 할 뿐아니라 심지어 罪없는 城壁에까지 災殃을 미치게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完全救援을 目的 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신 뜻을 알지못하는 까닭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언제까지나 내가 너를 품어야하는가(마 23/37)고 예수님은 自己를 믿어주기를 얼마나 强調했던가. 그러므로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예수 對答하시되 하나님이 보내신 者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8~29)고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만일 그들이 예수님의 所願대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더라면 누가 예수님을 十字架에 내어주었을 것인가.
꺼지는 불도 끄지않으시며 부러진 갈대도 마저 꺾지않으시는 것이 사랑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어든 어찌 구태어 사랑하시는 외아들 예수님을 十字架에 달리게하시고 그 苦難의 예수님을 믿게하여 十字架의 救贖을 믿는 者들까지 또 十字架의 苦難을 겪도록 攝理하실 것인가.
그러므로 예수님 以後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聖徒들이 당하여온 十字架 의 苦難은 살아서 이루려 오신 예수님을 殺害하였음으로 그 罪의 蕩減으로 오는 것이다. 살아서 完全救援하러 오신 예수님은 그들의 不信으로 인하여 죽어서라도 이루기 위하여 十字架를 지시고 苦難의 길을 거쳐 復活하심으로 靈的 救援의 攝理를 完遂하셨으니 우리도 靈的 救援의 惠澤圈 內에 들어가려면 그리스도가 넘은 十字架를 우리 自身도 넘어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져야할 十字架의 苦難도 하나님의 豫定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自身의 不信의 犯罪行爲로 말미암아 오는 것임을 알아야한다. 메시아 誕生하실 때까지의 4 千年 復歸攝理歷史 를 보라! 믿음의 祖上 아브라함 한 사람을 찾기 위하여 하나님은 2 千年을 수고하신 것이 아닌가.
이와같이 4 千年 間 하나님이 하신 일은 마치 農夫가 씨를 뿌리기 위하여 밭을 갈듯이 메시아된 예수님 한 분을 萬王의 王으로 세우기 위한 믿음의 터를 닦아온 것이니 이는 곧 이스라엘로하여금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예수님만은 잘 믿고 保護하여 殺害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攝理임에 틀림없었다.
만일 예수께서 죽어야만 人類를 救援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믿음의 百姓을 찾아세우기 위한 2 千年의 수고는 하실 必要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 以後의 하나님의 選民된 유대人들의 運命은 어찌하여 그렇게도 悲慘하게 되었는가하는 問題도 十字架의 旣定的 解釋으로는 解明되지 않는다.
만일 예수님을 殺害하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 民族은 우선 예수님을 中心하고 새 에덴을 復歸하여 이 中心役事는 世界的으로 擴大되었을 것이니 이 百姓의 幸福이야 누가 감히 測量할 수 있었을 것인가.
「일어나 빛을 發하라 大槪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榮光이 네 위에 비치었음이라··· 네 눈을 들어 四面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되 네 아들은 遠方에서 오고 네 딸들은 안겨오리라···
바다의 豊盛함이 네가 돌아오고 列邦의 財物이 네게로 옴이라 허다한 약대가 네 境內에 遍滿하리니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도 올 것이고 스바로부터 사람이 다 金과 油香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傳播하며···
異邦人들이 네 城壁을 쌓을 것이요 그 王들이 너를 奉仕 할 것이니··· 네 城門이 항상 열려 晝夜로 닫기지 아니함은 사람들이 네게로 列邦의 財物을 가져오고 그 王들을 이끌어옴이요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百姓과 나라는 滅하리니 그 百姓들은 반드시 全滅되리라···
네가 列邦과 列王의 養育을 받기를 어린 아이가 젖 먹듯하여··· 내가 金을 가져 銅을 代身하며 銀을 가져 鐵을 代身하며 銅으로 나무를 代身 하며 鐵로 돌을 代身하며 和平을 세워 官員을 삼고 義를 세워 看役者를 삼으리니··· 네가 네 城壁을 救援이라 칭하며 네 城門을 讚頌이라하고···
오직 여호와 네게 永久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榮光이 되리니 네 해가 다시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함은 여호와 네 永久한 빛이 되실 것이요 네 슬픔의 날이 마침이로다···
수효 적은 者가 千을 이루고 弱한 者가 强國을 이룰지니 때가 되면 나 여호와 속히 이루게 하리라」(사 60장). 그러나 저들은 예수님의 實體를 사탄에게 내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 하나님의 榮光이 뜻이 땅 위에 이루어졌을 것인가.
하늘의 恩賜는 물론 좋은 것이다. 그러나 끝날에는 自己에게 貴하다는 것으로 審判을 받을 것이니 恩賜를 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堪當못할 때는 그 恩賜로써 審判을 받을 것이다. 이스라엘 民族이 받은 恩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程度다. 그러나 그들이 이것을 堪當치 못하여 예수님을 殺害하고나니 그들에게 주셨던 恩賜는 그들을 呼訴하여 마침내 民族的인 悲運과 싸우면서 오늘까지의 2 千年동안 설움의 歷史路程을 밟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十字架의 豫言은 왜 있었던 것인가를 알아보자. 하나님만을 믿고 살아야할 人間祖上이 이미 不信으로 墮落되어 사탄 圈內에 떨어졌음으로 人間들이 하나님의 攝理에 대하여 믿고 아니믿는 것은 各自의 自由意志에 달려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세우시사 이스라엘을 引導하여 가나안까지 復歸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하나님의 祝福을 길이 누리도록하려 하심이 하나님의 豫定이었으나(출 3/8) 百姓들이 하나님을 背信하는 立場에 설 때에는 사랑으로 택하사 사탄 世界에 내어주시어 永遠한 世界의 國民으로서 가져야할 갖은 試鍊을 다 겪게하시어 길러놓으신 選民이라할지라도 그들을 全滅하시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남기셨던 것이다(민 26/65).
이와같이 뚜렷한 하나님의 豫定과 約束이 있을지라도 이를 받드는 百姓들이 뜻 가운데 서지 못할 때에는 세워진 豫定도 約束도 이루어지지않은 例는 이스라엘 歷史를 통하여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한 救援의 攝理로 이 例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신 目的은 물론 아담의 墮落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創造理想世界를 復歸코자하심이었으나 百姓들이 不信으로 돌아가면 十字架를 져야할 것도 豫知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豫言도 두 方面으로 하신 것이니 첫째는 보내신 메시아를 이스라엘이 믿으면 이사야 書 9章과 11章 및 60章 에 記錄된대로 메시아는 다윗 王의 位를 가지고 公平과 義로움으로 全人類를 引導하여 에덴동산으로 完全復歸 함으로 지금 우리가 聖經말씀에 의하여 바라고 있는대로의 千年王國은 그 때에 이루어졌을 것이요 둘째는 만일 믿지 아니하면 이사야 53章의 記錄대로 十字架의 苦難을 당한다는 것이다.
不幸히도 이스라엘의 不信으로 인하여 前者의 第 1 次的 攝理는 이루어지지않고 後者의 十字架에 의한 第 2 次的인 攝理만이 이루어지게 되었음으로 2 千年 後에 다시 오셔서 第 1 次的인 攝理를 完遂하시려는 것이다.
예수께서 十字架의 受難을 豫言하실 때 이것을 挽留하는 베드로를 보고 「사탄아 물러가라」(마 16/23)고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不信으로 인하여 이미 十字架의 苦難의 길이 決定된 後인 까닭이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온 이스라엘 民族은 예수님을 背反한 後부터는 하나님의 原理的 主管을 받아야할 立場에 다시 非原理的인 사탄 主管圈內에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와같이 예수님에 대한 不信으로 인하여 사탄과 하나된 이스라엘 民族과 그를 둘러싼 全人類를 하나님 품으로 옮겨놓기 위하여는 그의 蕩減條件으로서 全人類를 總合한 價値的 存在인 예수님을 代身으로 사탄에게 내어주지 않을 수 없이 되었다. (예수를 中心한 復歸攝理 參考 )
예수님은 이와같이 十字架의 苦難을 통하지 않고는 靈的 面만의 救援攝理도 할 수 없음을 아시고 이 目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는데 베드로는 이 길을 막으려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러한 責妄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十字架 上에서 殞命하시면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셨으니 이것도 救援의 全體的인 攝理의 完遂를 말씀하심이 아니요 저들의 不信 으로 인하여 이미 決定하고 指向하여온 十字架의 靈的 救援攝理가 다 이루어졌다함을 意味한다.
이로써 十字架의 믿음에 의한 救援은 靈的救援뿐이요 肉的 救援은 再臨하셔서야 이루어질 다음 時代의 攝理로 남아졌다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法을 섬기고 肉體로는 죄罪 의 법을 섬긴다」(롬 7/25)고 하심도 十字架의 救援은 靈的救援 뿐이요 육은 아직도 사탄 主管圈內에 있다함을 實證하는 말씀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예수께서는 그가 完全復歸 使命者로 오신 目的을 當時에 公布하시지 못하셨는가 예수님은 十字架의 別世를 앞두고 사랑하는 弟子들에게까지도 弟子들이 堪當치 못할 것을 念慮하여 吐露하시지 못하고 남기고 가신 말씀이 여러 가지로 있었다(요 16/12). 그러나 이것은 將來일로 聖神을 통하여 가르쳐 주시마고 約束하시고 떠나셨다.
예수께서 오셨던 目的도 當時에는 敎示하실 수 없는 秘密이었다. 로마 帝國 壓政과 유대 敎人들의 핍박 가운데서 싹트기 시작한 基督敎가 純福音 運動만 가지고도 그러한 悲慘한 길을 걸어내려온 것이다. 만일 예수께서 基督敎 王國 建設을 標榜하셨더라면 유대 敎人들의 謀略과 로마 執政者들의 彈壓이 어떠했을 것인가는 足히 推想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수를 中心한 王國 (사 9/6~, 계 12/5~, 눅 1/31~33)은 政治의 힘이나 武力이나 다른 人間的이 어떠한 條件으로도 될 것이 아니요 오직 全能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眞理의 能力으로만 될 것은 再論할 餘地도 없는 바이지만 當時의 로마 帝國으로서는 이것을 容認하고 放任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헤롯 王은 王이 났다는 東方博士의 말만을 듣고도 그를 죽이기 위하여 예루살렘의 幼兒들을 虐殺하였거든 어떻게 예수께서 自身이 萬王의 王으로 오신 뜻을 밝힐 수 있었으랴. 그러므로 이 時代와 環境에 있어서 堪當 못할 말씀은 弟子들에게까지도 밝힐 수 없었던 것이요 弟子들도 역시 이러한 事實을 알았다할지라도 記錄으로써 밝힐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人類歷史 以後 오늘까지 하나님의 품 속에 秘密로 감추어졌던 事實 을 밝히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攝理와 一面만을 聖書의 文字에 의하여 알아왔지만 그 全體的 攝理가 밝혀진 오늘에 있어서는 兩面의 事實을 다 알게되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께서 地上에 오셨던 目的을 몰랐다.
따라서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目的을 알지못하도록 유대땅으로 遍歷하시면서 안타까워 외치신 그의 말씀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면서 祈禱하시던 그의 心情도 十字架 上에서 吐露하신 그 애타는 遺言의 말씀도 알지 못하였다.
이제 예수님을 新郞으로 맞아야할 新婦된 우리들이 新郞의 心情도 모르고 어떻게 그를 新郞으로 맞을 수 있을 것인가. 傳統的 固陋한 信仰觀念에 執着되어 그리스도의 새로운 말씀을 들으려하지도 않는 유대敎人을 향하여 예수님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으라」(눅 5/38)고 외치셨다.
사랑하는 兄弟들이여!
譬喩나 象徵이 아니면 나타내시지 아니했던 하늘의 秘密이 밝히 나타날 때 그를 받아들일 마음의 터는 되어있는가.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天國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고(마 18/3) 지혜롭고 슬기있는 者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시는(마 11/25) 하나님은 스스로 섰다하는 者는 넘어질가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 스스로 섰다하는 者가 되지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