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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가리 찢어진 삶을 잇는 ‘뇌 수술’
안식일은 기분 전환이 아니라, 존엄성을 망각하여 찢어진 삶을 수선하는 ‘뇌 수술’과 같습니다.
3. ✨ 영원한 현재를 사는 삶: 제8요일과 시간의 대리인
안식일은 신부처럼 극진히 맞이하는 시간의 성소이며, 이 거룩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영원과의 실제적인 접촉을 경험합니다.
네샤마 예테라: 여분의 영혼
안식일이 시작될 때 우리에게 임하는 ‘네샤마 예테라(Neshamah Yeterah)’는 ‘여분의 영혼’이자 ‘창조의 첫날 빛’입니다.
시간의 대리인과 제8요일의 혁명
헤셸이 말하는 ‘영원한 현재(Eternal Now)’는 그리스도인의 ‘제8요일(주일)’ 사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헤셸의 『안식』은 우리에게 “당신이 지금 보내는 한 시간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시 84:10). 안식일의 올바른 준수는 헛된 공간의 집착에서 벗어나,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시간 속에서 우리 존재의 가치를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가장 필수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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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셸의 『안식』 토론 질문 5가지
1. 시간 vs. 공간의 우선순위와 현대인의 삶
헤셸은 현대 문명이 끊임없이 공간(소유, 성과, 물질)을 정복하고 축적하는 데 집착하지만, 정작 거룩함은 시간(안식, 영원)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합니다.
토론 질문: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직장 문화, 기술, 교육 등)는 어떻게 ‘공간의 노예’로서의 삶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있습니까? ‘시간의 성소’를 우선하는 삶을 살기 위해 개인과 공동체가 포기하거나 새롭게 설정해야 할 구체적인 생활 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2. ‘영원한 현재(Eternal Now)’의 신학적 의미와 실천
헤셸은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개념을 인용하며,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지금 살아있는’ 영원한 현재라고 설명합니다 (눅 20:38).
토론 질문: 만약 우리의 삶과 사랑했던 이들의 존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지금’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실체라고 믿는다면, 죽음, 과거의 실수,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우리의 일상적인 시간 개념에 묶여 있던 문제들은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습니까?
3. 안식일의 목적: 쉼이 아닌 ‘뇌 수술’의 도전
헤셸은 6일간의 노동이 안식일을 위한 ‘수단’이며, 안식일 자체가 삶의 ‘목적’이자 완성이라고 선언합니다. 나아가 안식일을 “갈가리 찢어진 삶을 수선하는 뇌 수술”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토론 질문: 성과와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현대 사회에서, ‘노동을 쉼의 수단으로 보는’ 헤셸의 관점을 수용하는 것은 어떤 실제적인 어려움이 있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안식일(또는 쉼의 시간)을 단순한 재충전이 아닌, 삶의 목적을 점검하고 영혼을 수선하는 치열한 영적 행위로 만들 수 있습니까?
4. ‘시간의 대리인’으로서의 역할과 일상 성화
헤셸은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을 ‘시간의 대리인’으로 정의하며, 영원(하나님)의 가치(사랑, 정의, 거룩함)를 6일간의 공간 세계에 투여하여 세상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토론 질문: 안식일/주일을 통해 받은 ‘여분의 영혼(네샤마 예테라)’의 통찰과 ‘멜로디’를 어떻게 나머지 6일의 일(공간의 사물/자음)에 투영할 수 있을까요? 특히 우리 사회가 직면한 불의나 낡아지는 문제에 맞서 ‘하나님의 정의’라는 영원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투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5. 안식일 탐내기: 소유에 대한 욕망으로부터의 해방
헤셸은 안식일과 같은 거룩한 시간을 ‘탐내는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소유(공간의 사물)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역설합니다.
토론 질문: 거룩한 시간(안식)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물질적 소유(공간)에 대한 욕망을 압도하고 정화할 수 있는지 헤셸의 논리를 분석해 봅시다. 당신의 삶에서 ‘무엇을 탐낼지’에 대한 선택을 바꾼다면, 당신의 소비 습관이나 삶의 목표는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고 예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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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운 말로 푸는 헤셸 『안식』 토론 질문 5가지
1. 바쁘게 사는 우리, 무엇에 더 목숨 걸고 있나요?
헤셸은 돈, 집, 물건 같은 ‘공간’에만 집착하면 삶이 덧없고 힘들어진다고 했어요. 정작 중요한 건 쉬는 시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라고 했고요.
쉬운 질문: 요즘 당신은 (혹은 우리 사회는) ‘돈 벌기’와 ‘잘 쉬기’ 중 어디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나요? 혹시 ‘바쁘게 일하느라’ 정작 누려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2. 돌아가신 할머니는 정말 ‘과거’의 사람일까요?
헤셸은 하나님 앞에서는 아브라함이나 야곱도 ‘지금, 여기’ 살아 있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건 우리의 착각일 뿐, 영원한 시간 속에서는 모든 게 현재라는 거죠.
쉬운 질문: 내가 너무 사랑했지만 먼저 떠난 사람(가족, 친구)이 사실은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3. 안식일은 ‘푹 쉬는 날’일까요, 아니면 ‘나를 고치는 날’일까요?
헤셸은 안식일은 그저 노동 후 재충전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찢어진 마음을 수선하는 뇌 수술’ 같은 치열한 ‘삶의 목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쉬운 질문: 당신은 주말(안식일)을 ‘다음 주에 더 잘 일하기 위한 날’로 씁니까, 아니면 ‘내 인생의 방향을 점검하고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날’로 씁니까? 후자처럼 쓰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멈추고 무엇을 해야 할까요?
4. ‘착한 기운’을 세상에 퍼뜨리는 방법은?
헤셸은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좋은 기운(여분의 영혼)’을 세상(일상)에 퍼뜨리는 ‘시간의 전달자(대리인)’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쉬운 질문: 주말에 교회나 성당, 혹은 혼자만의 쉼을 통해 얻은 ‘평화, 용기, 사랑’ 같은 좋은 마음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일터’나 ‘학교’, ‘가정’에 어떻게 티 나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
5. 쉬는 것을 ‘탐내는’ 게 왜 중요할까요?
헤셸은 ‘거룩한 쉼(안식)’을 간절히 바라고 탐낼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의 좋은 물건이나 돈을 ‘탐내는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쉬운 질문: 혹시 남들이 가진 물건이나 능력(공간)을 부러워하느라 마음이 힘든가요? 그 대신 ‘온전한 쉼’을 얻는 것(시간)을 더 간절히 원하고 집중하면, 남과 비교하는 마음이 정말 사라질까요?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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