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괄호 안의 ㉠에 공통으로 들어갈 인명과 괄호 안의 ㉡에 공통으로 들어갈 단체명을 순서대로 쓰시오. [2점]
| 동아일보 1935년 8월 24일자에는 “탈주한 ( ㉠ )의 극적 활동”이라는 제목 아래, “경성제대(京城帝大) 연구실 관사가 금번 공산운동의 총본영”, “탈주한 총지도자격의 ( ㉠ )와/과 미야케[三宅] 교수・정태식(鄭泰植) 등이 악수” 그리고 일본인 교수가 참여한 점이 “조선공산운동의 초유사(初有事)”이며, “취조 중의 서대문서(西大門署) 2층에서 도하(跳下) 탈주”하였다는 기사가 실렸다. ‘( ㉠ )그룹’은 서울 및 경기도 지역에서 비밀 노동자・농민・학생 조직을 결성하였고, 이를 토대로 당재건운동을 전개하였다. 함께 활동하였던 이관술은 출옥 후 박헌영과 ( ㉡ )을/를 조직하였다. 일제 말 활동하였던 ( ㉡ )은/는 반제적(反帝的)・반전적(反戰的) 성격을 지닌 단체와 통일전선을 수립하자는 인민전선전술을 채택하였다. |
<해설>
∙ ㉠이재유
∙ ㉡경성콤그룹
[신뿌샘 7권 현대 49쪽]
국내의 사회주의자들이 조직한 반일 통일 전선 조직으로는 경성콤그룹, 공산주의자협회, 스딸린단, ‘자유와 득립’ 그룹 등이 확인된다. 특히 이재유 그룹을 이은 경성콤그룹은 8‧15 직후 박헌영을 중심으로 재건된 조선공산당의 기반이 되었다.
[시민의 한국사 2권 240쪽]
중일전쟁 발발 이후에 국내 민족운동을 대표하는 조직은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전개한 경성콤그룹이었다. 경성콤그룹은 이재유 그룹의 이관술(李觀述)・김삼룡(金三龍)을 중심으로 1939년 4월 지도부를 형성했고, 1940년 2월 출옥한 박헌영(朴憲永)을 지도자로 삼아 공식 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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