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비(腹非)-①구국의 명장 주아부에게 모반죄를 씌워 죽이다. 복비(腹誹)라는 말이 있다. 복비(腹誹)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마음속으로만 꾸짖거나 비판하는 것’을 일컫는다. 정치적으로 반대파나 못마땅한 사람을 척결하는데, 겉으로 뚜렷한 잘못이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 흑심을 품었거나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죄를 묻는 경우 이에 해당된다. 이 복비에 대하여 「좌전」에 이렇게 전한다. ‘한 사람을 척결하는데 이유가 없어 근심할 일은 없다. 예로부터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자 한다면 그에 합당은 이유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말은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죄일지라도 복비로 다스린다면 죄가 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중국 서한(西漢) 초기의 주아부란 장군은 구국의 영웅이었다. 한나라 경제 때 오초 7국의 난이 발생하였다. 이는 유 씨 황족의 권한 축소를 진행하던 것이 빌미가 되어서 유 씨 황족이 내전을 일으킨 난이었다. 반란 세력이 강하여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였다. 경제는 명장 주아부를 대장군으로 삼아 토벌하도록 했다. 주아부는 주도면밀한 작전으로 반란군을 일거에 진압하였다. 이 공으로 주아부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라는 승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주아부는 강직하면서 융통성이 부족하여 경제 황제와 자주 부딪혔다. 그의 직언은 때로는 한계를 넘어섰다. 거기다가 경제가 생각하기에 주아부의 공이 높이 칭송되어가니 황제의 권위가 점차 약화되는 느낌이었다. 경제는 차츰 주아부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주아부의 공이 높아가니 황제가 불편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황제는 주아부를 제거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주아부는 자신의 죽음에 대비하여 자식들이 장례용품을 장만하였다. 이 과정이 문제가 되어서 정위(요즘의 검찰총장)의 문초를 받게 되었다. 정위는 주아부가 황제에 대한 모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계속 문초하였다. 주아부는 단순한 장례용품을 장만한 것이라고 아무리 항변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황제의 뜻을 알고 있는 정위는 계속 문초를 하여도 마땅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한밤을 지내며 고민한 정위는 놀라운 판결을 하였다. “그대가 이승에서 모반하려고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죽은 후 저세상에서는 반드시 모반할 것이다. 그러니 그대는 모반죄를 진 것이다.” 정위의 이 말을 들은 주아부는 무슨 뜻인지 깊이 깨달았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죄를 뒤집어씌우자면 어찌 핑계가 없겠는가?” 주아부는 더이상 항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옥에 갇혀 5일간 단식하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 나라를 구한 명장이 왜 이런 최후를 맞이했을까? 권력자의 앞에서 자신의 공을 돋보이게 되면 권력자의 심기는 불편해진다. 부하의 공이 자기보다 높아 보이므로 자신의 공적이 폄하되기 쉽기 때문이다. 주아부는 황제의 앞에서 공을 믿고 끝까지 곧게 직언을 하고 황제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모든 군주는 충신을 원하면서도 하는 일에 토(吐, NO, 문제 제기)를 다는 부하를 싫어한다. 그렇다고 토를 전혀 달지 않으면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군주의 심신이 흐려져 정사가 어지러워진다. 그러나 그 토를 다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군주 앞에서 지혜롭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신하는 오래 살아남는다. 그것은 자신의 공적은 늘 숨기고 군주 앞에서 겸허하게 행동하는 일이며 말과 행동을 항상 신중하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군주 앞에서 사사건건 토를 다는 신하는 나중에는 불편한 존재가 된다. 또 그런 과정에서 군주는 권력의 위기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치적에 걸림돌로 여기게 된다. 따라서 모든 권력은 집권하고 있는 동안에는 걸림돌을 불편해하고 제거하려 한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디까지 행해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군주가 업적을 이룬 똑똑한 신하는 곁에 두는 것은 그가 똑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똑똑함을 이용하여 자신의 업적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기 위한 욕망 때문이다. 그것을 망각하면 머지않아 공이 많은 신하는 군주의 눈 밖에 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군주의 시대가 아닌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상황이다. 회사에서 큰 업적을 이룬 부하 직원을 상사는 늘 곁에 두고 아꼈다. 그것은 부하기 인간적으로 좋아서라기보다는 부하의 재능과 공적을 끝까지 활용하므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때문이다. 그것을 망각하면 상사에게 미움을 받고 퇴출당하게 되기 쉽다. 따라서 회사에서도 살아남아서 원하는 지위를 가지려면 상사 앞에서 겸허하면서 상사에게 보이지 않게 자신의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보든 사람은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는 속성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명장 주아부가 저승에서도 모반할 것이란 죄를 씌워 죽인 고사에서 우린 두 가지 의미를 새길 수 있다. 하나는 아무리 공적이 뛰어나도 군주 앞에서(상사 앞에서) 드러내지 않는 겸허함을 터득하는 일이다. 아울러 군주(상사)의 공적을 모나지 않게 돋보이게 하는 일이다. 둘째는 권력자가 어떤 사람을 밉게 보면 어떤 죄든 만들어 그를 제거하려 하는 것이 권력이 속성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를 제거하므로 통치의 기강을 바로 잡으려는 특성을 지닌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대대적인 사정이 시작되었다. 당시의 적폐 청산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한 역사와 정치 바로 세우기의 명분으로 이루어졌다. 적어도 문재인 정부는 그것을 표방하였다. 하지만 그 진행 과정에서 억울함이 발생하였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관련자 모두는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현대 정치에서 공무원이 적폐를 자행했다는 해당 부서에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를 받는 경우가 그렇다. 박근혜 정부 시절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추진한 전․현직 공무원 13명과 민간인 4명 등 17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수사 의뢰하고 현직 교육부 공무원 6명은 징계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등 고위직과 과장급 이하 실무자 4명까지 포함되었다. 문재인 정권 초기에 주요 사업이었던 적폐 청산 위원회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노동계 출신 인사들이 대거 들어가 공무원 사회를 뒤흔들기도 했다. 이들은 2-3개월씩 활동을 연장하며 조사를 이어가기도 했다. 실제로는 크지 않은 일에까지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사정의 칼날을 겨누기도 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이 적폐인지 아닌지는 알길 없다. 또한 상부의 지시에 의해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한 공무원에 대한 징계가 옳은 것인지도 문제가 된다. 직권남용은 해서는 안 되지만 그 죄는 씌우기가 참 좋은 죄이기도 하다. 최근엔 조국의 달 조민씨의 대학 입학 취소까지 발생하면서 조국은 재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발언을 계속해 오고 있다. 거기다가 윤석열 정부 장관 지명자의 청문회에서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문제가 조국 판박이라고 날선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복비일까? 아니면 증거가 확실한 범죄 행위일까? 일말의 의혹이 있다 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일까? 심각한 수준일까? 복비와 복비가 아닌 것의 가름은 분명하다. 첫째는 그 죄가 드러난 확실한 증거가 있느냐으 문제이다. 둘째는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상부의 지시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행한 것이냐 아니면 스스로 의사에 의하여 행한 것이냐에 따라 달리 취급되어야 한다. 그리고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현대 법치국가에서는 3심제를 적용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죄가 있다고 기소된 몇 명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죄가 억울하면 대법원까지 가면 되고 정작 억울하면 재심을 청구하면 된다. 그런데도 복비 논란은 늘 있다. 정치적 행위의 본말은 늘 권력 다툼이란 것이 중심에 있기 때문 아닐까? 새로 들어서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복비 논란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대정동 논란부터 김혜경씨 법인카드 논란 등 온갖 의혹이 난무하였다. 대장동 사건을 포함한 이들 사건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 수사를 하여 판결이 나더라도 이재명과 그 지지자들은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라는 논란을 일으킬 것 같다. 그러면 또 혼란이다. 이 땅에 진정한 사법 정의가 수립되는 날이 곧 국민 대통합의 날일 수 있을 것 같다. 윤석열 정부가 그것을 이룬다면 성공한 정부가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