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에서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만족시켜줄 만한 카약의 종류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 보았고, 그런 카약 중에서도 어떤 재질이 적절하겠는지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그럼 이번 이야기에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과연 어떤 크기(Specs)의 카약을 골라 타면 좋을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남에게 지고 싶지 않은 본성이 있는데, 특히 뭔가를 타고 노는 레저 스포츠에서는 더 그런 경향이 심한 듯 합니다.
처음엔 그저 슬슬 유람이나 하고 낚시나 하면서 즐기겠다고 카약을 타기 시작 했지만 좀 탈만해지면 '좀더 빠른 카약은 없을까?' 싶어 여기저기 알아보게 됩니다.
누가 하루에 몇 십 Km를 갔네, 최고 속도가 얼마가 나왔네, 누가 어디서 개최된 동호인 대회에서 1등을 먹었네, 뭐 이런 글들이 올라오면 유난히 조회수가 급증합니다.
그만큼 많은 카약커들이 카약의 질주 속도에 관심이 많은 듯 합니다.
특히 남자들!
헐 스피드?
카약은 배(Boat)이고 배는 저마다 고유의 속도를 갖도록 설계되죠.
이른바 헐 스피드(Hull Speed)란 것으로 카약이 질주하기 시작하면 뱃머리(Bow)가 수면 위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이 순간부터 카약은 배수형(displacement) 모드로 접어든다고 말합니다.
이때부터 뱃머리 아래 수면에서부터 카약의 선체 측면을 따라 파도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좀 더 힘차고 빠르게 저어 속도를 올리면 그만큼 더 큰 파도가 형성되고, 엄청난 속도로 질주한다면 카약의 선체(Hull)를 따라 형성되는 파도의 한 파장(wave length)이 카약의 흘수선(Waterline) 길이와 거의 같아지는 국면에 접어들게 되는데 바로 그 순간의 카약의 질주 속도를 일컬어 헐 스피드(Hull Speed)라고 부릅니다.
흘수선이란 카약에 사람이 올라탔을 때 카약의 선체가 물에 잠기는 깊이를 따라 앞에서 뒤로 길게 형성되는 선 길이를 말합니다.
여기에 짐을 실었을 때와 싣지 않았을 때 길이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고, 같은 카약이라도 무거운 사람이 탔을 때와 가벼운 사람이 탔을 때의 길이도 다를 수 있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카약의 질주 속도가 헐 스피드에 도달하게 되면 카약의 선체는 마치 한 파장의 가운데에 갇히게 되는 형국이 되어 더 이상 빨리 달릴 수 없게 됩니다.
물론 누가 어떻게 어떤 힘으로 젓느냐에 따라 그 최고 한계속도까지 갈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타고 있는 카약이 과연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지 궁금하십니까?
선체 디자인 측면에서 볼 때 카약의 헐 스피드는 흘수선의 길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헐 스피드(knot) = 1.34 x √흘수선 길이(Feet)
이렇게 측정된 카약의 헐 스피드가 자신이 타고 있는 카약이 달릴 수 있는 최고 속도가 되겠습니다.
이 말은 곧 카약커의 파워, 지구력, 바람, 물살, 파도 등 무수히 많은 변수가 있다손 치더라도, 아무리 죽어라 저어 봐야 이 헐 스피드 이상 달릴 수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잔잔한 수면에 카약을 띄우고 올라 탑니다.
줄자로 자신이 올라탄 카약의 선체가 물에 잠겨있는 선의 길이를 재면 됩니다.
실제로 이걸 재는 분이 있을까 싶은데....
여기서 아마 무릎을 탁 치는 눈치 빠른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전통적인 배의 모양은 앞 부분이 약간 뾰족하게 위로 올라가 있어 배의 전체 길이보다 흘수선은 짧은 편입니다만, 이 흘수선을 확장하면 헐 스피드가 더 나올 수 있음을 착안해 만든 카약들이 있습니다.
바로 스프린트용 카약입니다.
서프스키나 플랫워터 스프린트, 와일드워터 카약들이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런 카약들은 기본적으로 남보다 더 빨리 달리려고 만든 카약들이라서 길이도 길지만 선체 폭을 줄일 수 있는데까지 줄여 놓은 탓에 균형을 잡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죠.
이런 카약들 역시 헐 스피드는 이 공식의 한계를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자! 그럼 이제 좀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카약의 길이가 길수록 빠른 것은 사실입니다만 흘수선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무리 카약이 아무리 길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은 이해되시죠?
무슨 말이냐 하면 카약의 용적에 비해 자기 체중이 너무 가벼워서 카약이 거의 수면에 살짝 떠 있다시피하게 되면 흘수선이 상대적으로 짧게 형성되므로 기대했던 만큼의 헐 스피드(질주 속도)를 낼 수가 없는다는 것입니다.
잔잔한 물에서는 그냥 미끄러지는 느낌이 상쾌해서 좋고 아주 안정적이다라고 느껴질테지만 정작 달려보면 실제 달리는 속도는 별로라는 것이죠.
평수에서 보았을 때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정도로 잠겨야 흘수선이 제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정작 진짜 문제는 이런 상태(거의 살짝 떠있는)의 카약을 타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기 시작하는 경우입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부분이 더 많다보니 그만큼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어 이리저리 떠 밀리게 됩니다.
파도가 높아질수록 흘수선이나 물과의 접촉 면적이 훨씬 줄어들게 되니 직진성은 급격히 떨어지고 마치 미친 말처럼 마구 요동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카약의 적정 체중에 맞게 탄 카약커는 바람에도 덜 떠밀리고 파도에도 덜 요동칩니다.
자기 체중에 오버해서 카약을 선택해 타시는 분들은 이른바 멘붕 모드로 접어들게 됩니다.
최대 용적?
한편, 우리가 타는 절대 다수의 카약 메이커들에서 출시되는 카약들을 보면 거반 북미, 유럽, 오세아니아 등 우리보다 체격이 큰 서양인들을 타킷으로 한 카약들입니다.
물론 급류 카약처럼 디자인 설계에서 체중적 요소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되는 카약들은 기본적으로 상품 설명서에 적정 체중을 표기해주는 친절함(?)도 엿볼 수 있지만 급류 카약카약들 외에은 적정 체중 그런 것 따위는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저 최대 용적(Max Capacity)이 얼마다라는 식으로 소개할 뿐이라서 구매자 입장에서 보면 이게 자기가 타도 괜찮은건지 여간 고민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부터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백인 남성의 표준 체형을 보면, 키 177.5 cm 체중 89.6 kg이나 되고 백인 여성은 키 163 cm에 74.3 kg이나 됩니다.
그러니 체중만 놓고 봐도 한국인 표준 남성의 체중이 백인 여성보다 적게 나갑니다.
20년 전만 해도 여성들은 카약을 잘 타지 않아 여성을 위한 카약이 거의 없었지만 요즘은 여성을 타킷으로 한 카약 모델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요.
카약 모델을 소개하는 문구에 "For ladies and smaller kayaker'라는 문구가 보인다면 바로 저 같은 한국인 남성의 표준 체형(173 cm, 69 kg)인 카약커에게 적당한 스펙임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인 중에서도 키는 작을지 몰라도 체중만큼은 서양인 못지 않게 나가는 분들도 제법 많습니다.
키가 작은 탓에 좌석 높이가 낮아 패들링에 불편이 있긴 하겠지만 그 정도야 얼마든지 손 봐서 타면 되는 것이니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자신에게 너무 큰 스펙의 카약을 타는 것은 결국 속도 경쟁에서의 불리함과 공연히 다루기 힘듬을 자초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카약은 남보다 좀더 빨리 달리고 싶고 좀더 멀리 힘을 덜 들이고 타고 싶다면 자신에게 맞는 적정 용적(Capacity)의 카약 중에서도 제일 긴 것을 타면 됩니다.
그렇게 카약이 적절하게 물 속에 잠김으로써 최대한 흘수선 길이를 최대한 길게 얻을 수 있는 카약을 고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 투어링이나 씨 카약처럼 캠핑 장비를 싣고 다닐 가능성이 큰 카약들은 과연 최대 용적이 얼마나 되는 카약을 사용하면 좋을지 오늘 딱 갈켜 드리겠습니다.
카약의 최대 용적(kg) - 카약의 무게(kg) - 적재물의 총 무게(kg) = 적정 사용자 체중(kg)
여기서 적재물의 총 무게라 함은 패들 구명조끼 스프레이스커트를 비롯한 모든 카약 장비, 여벌 옷, 텐트 침낭 등 캠핑 장비, 식수와 식량 등 카약에 실리게 되는 모든 것의 무게를 말합니다.
저의 경우는 재보니까 대략 40 kg 정도 되더군요.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카약의 폭은 이제 막 카약을 시작하는 초심자 입장에서 볼 때 굉장히 중요한 선택의 포인트라 할 수 있는데요.
폭이 지나치게 좁아 균형을 잡는 것 조차 힘들다면 카약킹이 재미있게 느껴지기 보다는 스트레스만 잔뜩 받게 만들어 오기가 나서 계속 타는 것 아니면 지례 포기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초심자가 상급자 수준, 아니 중급자 수준의 카약을 선택하거나 경험하게 만들거나 그런 카약을 추천하는 것은 그 초심자에게 보다 나은 힐링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아닌 멘붕과 고통의 세계로 몰아 넣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는 처사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처음 카약을 타는 초심자 입장에서 폭 70 cm 이하의 카약도 약간 불안정하게 느낄 수 있으며, 62 cm 이하의 카약은 상당히 뒤뚱거리는 카약이 될 수 있으며 57 cm 이하의 카약은 불안에 떨 수 밖에 없어 경치 구경은 커녕 물 속 구경만 수 없이 경험하게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 균형 감각이 금방 좋아질테니 걱정 말라고 말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의 균형 감각은 제각각이니까요.
저는 한국인 남성 표준 체형에 아주 근접한 체형(174cm, 70kg)인데도 제가 타는 씨 카약은 서양에서는 거의 여성용이나 체격이 작은 남성용 스펙의 씨 카약을 타고 있습니다.
제가 타는 씨 카약을 살짝 소개하면 길이 4.88 m(16피트), 폭 58 cm, 무게 25 kg, 최대 적재량 136 kg의 스펙을 갖고 있는 Zephyr(제퍼) 160이란 폴리에틸렌(PE) 재질의 카약입니다. (아래 사진)
제가 속도에 더 관심이 있다면 같은 용적이지만 길이가 15 cm 더 길고 폭은 3 cm 가 좁은 Tempest(템페스트) 165를 타는 것이 더 좋겠지만, 저는 속도보다는 항해 중에 무거운 DSLR 카메라를 꺼내 들고 풍경 사진을 자주 찍는 편이고 다량의 캠핑 용품을 좀더 여유 있게 싣고 카약도 좀 편하게 다루고 싶기 때문에 폭이 조금 더 넓은 이 모델을 가장 즐겨 탑니다.
폭도 제법 넓어 웬만해선 잘 흔들리지 않아 그야말로 편하기론 나무랄데가 없거든요.
카약 코칭을 하는 입장에서도 초심자들이 지나치게 길고 폭이 너무 좁은 카약을 타면서 불안에 떨고 다루는데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참 안쓰럽게 느낍니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카약킹에 대한 재미를 채 느끼지도 못하고 얼마 못가 카약킹을 접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카약킹을 중도에 포기하는 분들이 과연 다른 이들에게 카약킹이 어떻더라고 전파하게 될까를 상상해보면 더욱 가슴 아픕니다.
그래서 초심자(패들링 기술 수준이 2스타 미만인) 여러분께 각별히 조언을 드린다면, 여러분이 지금 당장 경주에 참가하실 것이 아니라면 구태여 너무 길고 너무 좁은 카약을 선택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카약킹이 정말 재미있다고 느껴야 할 시기랍니다.
가끔은 좀 시원하게 달려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느긋하게 노를 저으면서 유람을 즐기면서 카약을 타는 시간이 정말 기다려지는 그런 시기를 맞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훗날 경주에 참가하시고 싶다면 그건 그때가서 선택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혼자 앞장서 내달려봐야 결국 함께 출항한 동료들과 같이 목적지에 갑니다.
그리고 당연히 함께 랜딩해야 합니다.
내내 누군가를 뒤따라 가는 입장에서는 심리적으로 참 힘듭니다.
아직 근력이나 지구력이 부족하며 카약 조종 기술마저 미숙한 초보자들은 앞장 서서 가기도 힘들지만 그런 위치에 설 능력도 안되니 당연히 계속 뒤에서 따라가는 입장에 서게 되겠죠.그래서 더 힘든 겁니다.
처음엔 서로 다른 길이와 폭의 카약을 타는 카약커들이 함께 어울렸을지 몰라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스펙을 가진 카약커들끼리 어울려 다니게 됩니다.
누구는 이것을 두고 '지들끼리 놀러 다닌다'고 불평할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같이 다녀야 하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