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욕생경’ 강습회가 열리던 지난 6월28일 봉선사 운하당에서 제자들의 지적을 듣고 있는 월운스님.
“여러 사람 의견 수렴하면, 더 좋은 역경 될 수 있다”
학계에서 제자가 스승의 논문을 심사, 평가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불경’(不敬)이다. 하지만 대강백 월운스님(봉선사 조실)은 달랐다. 스님은 당신이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경전 강평을 스스로 제자들에게 맡겼다.
오자(誤字), 탈자(脫字)에서부터 비문(非文), 비논리적 주장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평가하도록 했다. 지난 몇 개월간 스승의 명(命)을 받아 스승의 역작을 완전히 ‘해부’(?)한 제자와 평가를 받는 위치에 선 스승이 지난 6월28일 남양주 봉선사에서 만났다. 봉선사 운하당에서 하루 종일 열린 강평회에는 스승과 제자뿐만 아니라 인연 있는 스님 신도들도 모여 큰 관심을 나타냈다.
월운스님이 번역한 경전은 <인본욕생경(人本欲生經)>. 후학들이 무척 어렵고 까다롭게 여기는 경전이었다.
강평회에 앞서 월운스님은 그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이 경이 어렵다는 말은 젊을 적부터 들었다. 몇몇이 번역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는 말이 나돌았다. 도대체 이 경이 얼마나 어렵기에 그토록 야단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이 경을 찾아 훑어보았더니 이른바 ‘삶은 호박에 이빨’이었다. 다시 한글대장경을 찾아 읽어보아도, 주석이라고 첨부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려서는 서당에 좀 다녔고, 출가해서는 한평생 경을 만졌다는 사람으로서 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럴수록 자책하는 자세로 새겨도 보고, 번역도 해보았다. 그러나 대충 알고 넘어가면 된다는 오랜 우리의 관습이 번번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럴수록 아직껏 자신에게 충실치 못했던 자신을 경책하면서 꾸준히 문의(文義)와 문맥의 흐름을 찾는 것으로 참회행을 삼았으나 늘 여의치 않아 손을 떼려고 했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봉선사 능엄학림 학장 정원스님은 “만사가 귀찮을 80을 넘기신 노구를 무릅쓰고 번역했다”고 말했다. 월운스님은 지난해 9월 1차 번역과 강화를 집필하고 제자들을 모아 연찬회를 가졌다.
완벽한 번역 · 공동연구 의지 반영
제자들, 스승의 역작 완전히 ‘해부’
제자들 지적 즐겁게 받아들여 보완
이번 강화회(講話會)는 책을 발간하기 전 마지막 점검 과정이었다. 몇 차례 평가회를 가진 원고는 제방에서 강의중인 문하생, 강백, 외래교수, 역경사 등 30여명에게 보내 탐구토록 했다. 제자들은 한 단락씩 맡았다. 가령 법주사 강원의 정산스님은 제1단에서 4단까지, 양산의 반산스님은 21단에서 24단까지 맡는 식이었다. 신규탁 연세대 교수는 총평을 담당했다.
<사진> 지난 6월28일 봉선사 운하당에서 열린 ‘인본욕생경’ 강습회 현장.
강평회에는 복천사 보문스님, 영축사 학봉스님, 지둔사 각진스님, 통도사 율원 덕문스님, 백양사 한주 응각스님, 청암사 승가대 학장 지형스님, 강사 상덕스님, 중강 수법스님, 그리고 불경서당 최윤옥 윤옥선 씨 등도 참석했다. 또 파주 보광사 초격스님, 동화사 주지 화암스님, 석굴암 도일스님 등 인근 사찰 주지스님들도 자리를 지켰다.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강평’이 열렸다. 총평을 맡은 신규탁 교수는 “인본욕생경이 소승 삼장으로 보이는데 방등경부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이유, 생멸문만 보이는데 진여문을 언급하는 까닭” 등 몇 가지를 질의했다. 각 단락을 맡았던 제자들은 주로 오자 탈자 비문 등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월운스님은 제자들이 지적할 때 마다 꼼꼼히 기록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스승의 글을 지적한다는 사실이 몹시 부담스러운 듯 조심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 지적하겠다고 나섰다. 월운스님은 이해 못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물으며 제자들의 지적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지적과 보완 문답은 한여름 오후 내내 이어졌다.
이번에 월운스님이 강평회를 개최한 것은 번역에 완벽을 기하겠다는 뜻에다 공동으로 연구하던 풍토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도 깃들어 있다. 정원스님은 “예부터 지식인들의 사교 개념은 이문회우(以文會友) 이우보인(以友輔仁)이었다. 학문으로써 사교의 목적을 삼고, 사교를 통해 자기의 인격을 승화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의 글을 상대방에게 보여 숨김없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낙을 삼았고 상대방의 글을 소신껏 평가해주는 것으로 지인의 도리를 다라는 우정으로 여겼다. 교계에서도 강론(講論)이라 하여 경론을 또래들이 모여 발표하고 결과를 가지고 선생님께 가서 재가를 받았다. 역경에서도 경 하나를 몇 사람씩 공동연구한 뒤에 토론을 거쳐 통일안을 찾았다하니 이는 혼자 보다 여럿이 힘을 모으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라진 전통을 살리고자 이런 강습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다른 제자들도 한결같이 “스승님께서 강평회를 여신 것은 후학들에게 경전을 보는 눈을 열어주시고 경전을 번역할 때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면 더 좋은 역경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몸소 보여주시기 위한 가르침으로 안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