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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강좌 제3강-1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01 -
법화경 비유품 - 사리불 수기장.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사리불이 수기를 받는 장이다.” 이런 뜻입니다. 앞으로 수기라는 말이 자주 나올 텐데, 수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법화경을 일명 수기경이라고도 할 만치 법화경에는 수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또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시고 나서 열반에 드신다고 예언을 하셨기 때문에 이 수기는 부처님 열반과 상관관계가 아주 깊습니다.
수기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최후로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앞으로(경전 말대로는) 얼마만한 세월이 지난 뒤에 성불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요.
그 이야기를 안 하면 미결로 남는 것이지요. 부처님의 교화사업이 미결로 남기 때문에 그래서 부처님 교화의 완결을 보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기가 많은 겁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제자들은 법화경에서 전부 수기를, 호명을 해서 수기를 받는 사람도 있고, 호명하지 않고 500아라한을 한꺼번에 수기하기도 하고, 그것이 500제자 수기품이라고 있지요? 그 다음에 또 2000명을 수학무학인기품이라고 해서 거기는 2000명을 한꺼번에 수기하는 예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넘어가면 저 앞에 방편품에서도 대체적인 뜻은 已成佛道(개이성불도)라고 이렇게 해서, 사실은 모든 불교와 인연을 조금이라도 맺은 사람이라면 다 이미 불도를 이뤄 마쳤다. 이렇게 해서 그것이 전체적인 큰 뜻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부연해서 보다 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확실하게 심어 주고자 하는 그런 뜻으로 수기를 주는 형식을 밟고 있어요.
형식을 밟는 것도 사리불은 여기서는 제일 첫째가는 제자입니다.
첫째 아주 최상근기 한 사람을 선택해놨어요. 최상근기를 수기를 주면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금방 보겠지만, 아주 상세하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갈수록, 그 다음에 사대성문이 또 중근기라고 해서 가섭ㆍ목련ㆍ부루나ㆍ가전연. 이렇게 해서 네 명의 제자들은 중근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수기를 주는데 그 사람들은 약간 생략이 돼요.
사리불보다는 그것이 아주 생략이 많이 됩니다. 그 다음에 또 다른 사람들 수기줄 때도 특별한, 예를 들어서 부루나 같은 이라든지 아니면 저 뒤에 가서 제바달다 같은 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은 조금 특별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그래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 외에는 생략이 아주 심합니다. 한꺼번에 이름 하나로 500명을 똑같이 수기를 주기도 하고, 2000명을 똑같이 수기를 주기도 하는 그런 식으로 수기가 발전해가요.
그것은 이 수기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형식이다. 궁극적으로 우리 본래인의 차원에서 다시 말해서, 궁극적인 차원에서 보면 모두 한결같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부처라고 하는 그런 것을 무턱대고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해 버리면 이것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러지 않아도 5000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는데, 만약에 처음부터 제가 이야기하듯이 그렇게 이야기해 버리면 이것은 선후도 안 맞고, 또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말씀을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할 것이고, 하기 때문에 그래서 절차를 밟아가는 그 배려가 아주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을 법화경에서 볼 수가 있어요.
그냥 뭐 이렇게 설해놓은 그런 수기가 아닙니다 보면요.
그러면 우선 사리불 수기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문으로 설하다 그렇게 했는데 장문과 게송. 법화경의 구성은 늘 그렇지요. 장문으로 설하고 그것을 다시 부연하거나 좀 더 보충 하거나 아니면 생략하거나 하는 그런 뜻에서 게송으로 또 다시 설하게 되고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사실은 게송부터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러다가 “뒤에 장문이 보완이 됐다.” 경전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학설도 있습니다만...
四 사리불 수기장(授記章)
1 장문으로 설하다
舍利弗(사리불)아 汝於未來世(여어미래세)에
過無量無邊不可思議劫(과무량무변불가사의겁)하야
供養若干千萬億佛(공양약간천만억불)하고
奉持正法(봉지정법)하며
具足菩薩所行之道(구족보살소행지도)하야
當得作佛(당득작불)하리니
號曰華光如來應供正徧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
佛世尊(호왈화광여래응공정편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
부천인사불세존)이리니 國名離垢(국명이구)요
其土平正(기토평정)하야 淸淨嚴飾(청정엄식)하며
安穩豐樂(안온풍락)하고 天人熾盛(천인치성)하며
琉璃爲地(유리위지)에 有八交道(유팔교도)어든
黃金爲繩(황금위승)하야 以界其側(이계기측)하며 其傍(기방)에
各有七寶行樹(각유칠보행수)하야 常有華果(상유화과)하며
華光如來(화광여래)가 亦以三乘(역이삼승)으로
敎化衆生(교화중생)하리라
舍利弗(사리불)아 彼佛出時(피불출시)에 雖非惡世(수비악세)나
以本願故(이본원고)로 說三乘法(설삼승법)하나니
其劫名大寶莊嚴(기겁명대보장엄)이라 何故(하고)로
名曰大寶莊嚴(명왈대보장엄)고 其國中(기국중)에는
以菩薩(이보살)로 爲大寶故(위대보고)니라
彼諸菩薩(피제보살)이 無量無邊不可思議(무량무변불가사의)라
算數譬喩(산수비유)로 所不能及(소불능급)이요
非佛智力(비불지력)이면 無能知者(무능지자)니라
若欲行時(약욕행시)어든 寶華承足(보화승족)하며
此諸菩薩(차제보살)은 非初發意(비초발의)라
皆久植德本(개구식덕본)하야
於無量百千萬億佛所(어무량백천만억불소)에
淨修梵行(정수범행)하야
恒爲諸佛之所稱歎(항위제불지소칭탄)하며
常修佛慧(상수불혜)하야 具大神通(구대신통)하고
善知一切諸法之門(선지일체제법지문)하며
質直無僞(질직무위)하야 志念堅固(지념견고)한
如是菩薩(여시보살)이 充滿其國(충만기국)하리니
舍利弗(사리불)아 華光佛壽(화광불수)는
十二小劫(십이소겁)이니 除爲王子(제위왕자)하야
未作佛時(미작불시)며 其國人民(기국인민)의
壽八小劫(수팔소겁)이니라
華光如來(화광여래)가 過十二小劫(과십이소겁)하야
授堅滿菩薩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수견만보살아뇩다라삼먁삼보
리기)하시고 告諸比丘(고제비구)하대
是堅滿菩薩(시견만보살)이 次當作佛(차당작불)하면
號曰華足安行多陀阿伽度阿羅詞三藐三佛陀(호왈화족안행다타아가
도아라하삼먁삼불타)라하리니 其佛國土(기불국토)도
亦復如是(역부여시)니라
舍利弗(사리불)아 是華光佛滅度之後(시화광불멸도지후)에
正法住世(정법주세)는 三十二小劫(삼십이소겁)이요
像法住世(상법주세)도 亦三十二小劫(역삼십이소겁)이니라
舍利弗(사리불)아 汝於未來世(여어미래세)에, 그대는 미래세에
過無量無邊不可思議劫(과무량무변불가사의겁)하야. 무량무변 불가사의 겁을 지나서 供養若干千萬億佛(공양약간천만억불)하고, 약간 천 만억 부처님께 공양하고, 奉持正法(봉지정법). 正法을 奉持하며 具足菩薩所行之道(구족보살소행지도)하야, 보살이 행할바 도를 구족해서
當得作佛(당득작불)하리니, 마땅히 부처 지음을 얻으리니,
號曰 華光如來ㆍ應供ㆍ正徧知ㆍ明行足ㆍ善逝ㆍ世間解ㆍ無上士ㆍ
調御丈夫ㆍ天人師ㆍ佛世尊(호왈 화광여래 응공 정편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이라 하리라.
10호 구역이지요. 여래10호라고 해서 이것은 여래가 되면 누구든지 열 가지로써 그 덕과 지혜와 능력. 이 모든 것을 열 가지 이름으로 수식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이름 가지고는 표현이 아무래도 부족하지요.
그래서 열 가지 이름으로 이렇게 구체적으로 드는 것입니다.
國名離垢(국명이구)요, 國名. 나라이름은 離垢고,
其土는 平正(기토평정)해서 淸淨嚴飾(청정엄식)하며, 아주 깨끗하게 장엄이 됐을 것이며, 安穩豐樂(안온풍락)이라. 아주 편안한 나라가 되고, 아주 풍족하고 즐거운 나라. 그리고 天人이 熾盛(천인치성)이라. 아주 훌륭한 사람들, 天人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아주 뛰어난 사람들ㆍ훌륭한 사람들이 熾盛. 아주 많아요. 그리고
琉璃爲地(유리위지)에. 琉璃로 땅이 되고, 有八交道(유팔교도). 八交道. 우리는 네거리. 아니면 5거리. 6거리. 그 정도 하지요?
여기는 얼마나 번화한 도시인가 하면, 8거리라는 것입니다. 서울도 8거리로 되어 있는 데는 거의 없어요. 기껏해야 4거리 6거리 정도는 볼 수 있습니다. 그만치 번화한 도시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黃金爲繩(황금위승). 황금 줄로써 길 가에 전부 줄을 쳐서, 以界其側(이계기측)하며, 人道와 車道와 그리고 사람이 고행하는 길과 이런 것들을 전부 나누어 놨다.
其傍(기방)에, 그 옆에는 各有七寶行樹(각유칠보행수)라.
七寶로된 行樹. 가로수가 있다. 行樹는 가로수입니다.
常有華果(상유화과)하며, 항상 꽃과 과일이 있고,
華光如來(화광여래)가 亦以三乘(역이삼승)으로써 敎化衆生(교화
중생)한다. 그러니까 성문승ㆍ연각승ㆍ보살승. 근기에 맞추어서 중생을 교화한다. 이런 뜻입니다.
舍利弗(사리불)아 彼佛出時(피불출시)에, 저 부처님이 出時함에
雖非惡世(수비악세)나, 비록 惡世는 아니지만,
以本願故(이본원고)로, 本願을 쓴 고로 說三乘法(설삼승법)하나니,
三乘法을 說하나니, 이것은 本願이라고 하는 것은 뭔가 하니, 모든 중생들을 근기 따라서 한 사람이라도 놓치지 않고 다 제도해야 되겠다.
그래서 三乘法을 설한다는 것입니다. 아예 一乘法을 설하면 좋지요.
저 앞에 방편품에서 보았듯이 일승법은 최고 법이니까요. 삼승법은 방편법이고요.
그런데 예를 들어서 일승법만을 이야기하기로 하면, 근기가 안 된 사람들은 전부 물러섭니다. 그래서 우리가 방편을 써서 포교도 하고, 설법도 하고, 중생교화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너무 방편이라는 미명하에 계속 방편만 가지고 세월을 보낼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방편을 쓰고는 그 다음에는 그야말로 일불승으로 회향을 해줘야 되는 것이지요.
其劫名大寶莊嚴(기겁명대보장엄)이라. 그 劫의 이름은 大寶莊嚴이라. 何故(하고)로 名曰大寶莊嚴(명왈대보장엄)고? 무슨 까닭으로 이름을 大寶莊嚴이라고 하는가? “큰 보배로 장엄 됐다.” 이 말이지요.
其國中(기국중) 以菩薩(이보살)로 爲大寶故(위대보고)니라. 그 나라 가운데서 보살로써 큰 보배를 삼는 까닭이다. 참 세상이 잘 되려면 이래야 되는 겁니다. 무슨 남대문이 보배이고, 불국사 석굴암 불상이 보배이고 그런 것이 아니고, 보살로써 보배를 삼아야 됩니다.
훌륭한 사람들ㆍ뛰어난 사람들ㆍ봉사정신이 아주 뛰어난 사람들.
보살은 그것 아닙니까? 봉사정신이 뛰어난 사람들로써 큰 보배를 삼는다.
세상이 제대로 되려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彼諸菩薩(피제보살)이, 저 모든 보살이 無量無邊不可思議(무량무변불가사의)라. 算數譬喩(산수비유)로써 所不能及(소불능급)이요,
非佛智力(비불지력)이면, 불 지혜가 아닐 것 같으면
無能知者(무능지자)니라. 능히 그 숫자를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참, 그런 보살정신이 충만하고 보살행으로 아주 열심히 사는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숫자가 많을 것 같으면 그 나라는 평화롭고, 정말 행복하게 사는 나라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요는 사실은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고 또 가정과 한 단체를 즐겁고 행복하게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데는 보살행하는 사람이 많아야 돼요. 보살행하는 사람이... 그것 없으면, 남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집안은 불행하고 그 단체는 불행하고 그 나라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건 것들도 우리가 그 劫의 이름은 大寶莊嚴이다. 왜? 大寶莊嚴이라고 했는가? 보살행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大寶莊嚴이다. 보살을 큰 보배라고 생각한다.
무슨 다이아몬드가 저 남산만 한 것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보배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억 만년 된 무슨 골동품이 수억 만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보배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안 앞바다에서 고려청자를 여러 수억 만개를 건졌다 해도 그것을 보배로 삼지 않고, 사람. 훌륭한 사람. 그것도 남을 위해서 봉사정신이 투철한, 보살정신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 그것을 보배로 삼는다.
참 우리가 여기 배워야할 점입니다. 이런 점이요.
若欲行時(약욕행시)에는, 만약에 어디를 걸어 다니려고 할 때는
寶華承足(보화승족)하며, 보배 꽃으로써 발을 받들고, 또
此諸菩薩(차제보살)은 非初發意(비초발의)라. 초발심보살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皆久植德本(개구식덕본)이라. 다 오래 전부터 덕의 근본을 심은 사람이다. 그래서 於無量百千萬億佛所(어무량백천만억불소)에, 무량백천억 부처님처소에서 淨修梵行(정수범행)이야.
범행을 청정하게 잘 닦아서 恒爲諸佛之所稱歎(항위제불지소칭탄)이라. 그래서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항상 찬탄을 받았다.
그래서 常修佛慧(상수불혜). 부처의 지혜를 항상 닦아서
具大神通(구대신통)하고, 大神通을 갖추고
善知一切諸法之門(선지일체제법지문)하며, 一切諸法의 문을 善知. 잘 알며, 質直無僞(질직무위)라. 사람이 정직하고 순박하고 거짓이 없다. 그래야지요. 특히 공무원이 그래야 되고ㆍ교육자가 그래야 되고ㆍ종교인이 그래야 됩니다. 質直無僞. 정말 중요한 말입니다.
質直無僞한 것. 정직하고 성실하고 거짓이 없고 志念堅固(지념견고). 뜻과 생각이 아주 견고한 如是菩薩(여시보살)이, 이와 같은 보살이
充滿其國(충만기국)이니라. 그 나라에 가득 했다.
舍利弗(사리불)아 華光佛壽(화광불수)는, 화광부처님의 수명은
十二小劫(십이소겁)이니 除爲王子(제위왕자)하야 未作佛時(미작
불시)니라. 왕자가 되가지고서 부처가 되기 이전. 그것은 제 한다 그랬어요. 부처가 되고 나서 十二小劫을 살게 될 것이다 그랬습니다. 華光佛壽. 화광부처님의 수명은 12소겁인데 그 전에 俗人 때, 왕자 때는 계산 안 한다 그랬어요. 이것이 우리가 중이 되고 나서부터 승랍을 계산하는 것. 사실은 이것하고도 연관이 있습니다.
그 전은 우리가 아무리 세속나이가 많더라도 나이로 치지 않는 것이지요.
其國人民(기국인민)의, 그 나라의 人民의
壽八小劫(수팔소겁)이니라. 수명은 八小劫이니라.
華光如來(화광여래)가 過十二小劫(과십이소겁)하야, 十二小劫을 지나서 授堅滿菩薩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수견만보살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 그러니까 堅滿菩薩에게 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 깨달음을 얻는다 하는 수기를 주고 告諸比丘(고제비구)하대, 여러 비구들에게 告하되 是堅滿菩薩(시견만보살)이 次當作佛(차당작불)하면,
앞으로 마땅히 부처를 지을 것 같으면 號를 曰華足安行多陀阿伽度阿羅詞三藐三佛陀(호왈화족안행다타아가도아라하삼먁삼불타)라하리라.
그러니까 이것은 아주 생략을 해버렸어요. 왜냐? 사리불이 나중에 부처가 되어서, 부처가 된 사리불이 그 다음 또 열반할 때 마지막에 견만보살이라는 분에게 수기를 주는 것. 말하자면 부처님이 최후로 하실 일이 무엇인가? 바로 그것입니다. 수기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일생을 살다가 눈을 감을 때에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예를 들어서 세속에 재산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들 같으면, 말하자면 자식들에게 재산 나눠 주는 것이 수기일 것입니다.
법을 우선으로 하는 집안에는 법을 일러주는 것이 우선일 겁니다.
법 중에는 뭔가? 수기라고 하는 법이 제일가는 법이다 하는 것입니다.
왜냐? 부처가 된다고... 성불하려고 하는 집안에 모인 사람들인 까닭에,
“부처가 된다.” 라고 하는 이 사실이 어떤 법 중에도 제일 우선하는 법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석가모니부처님도 그렇게 했고, 또 여기 사리불이 열반에 들 때 마지막으로 견만보살에게도 그렇게 하고요. 과거 문수보살의 말씀에 의하면, 저 앞에서 보았듯이 일월등명부처님도 그렇게 했고, 모두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을 우선으로 하지 않는 志士. 정말 뜻을 우선으로 하고 사는 사람들은 예를 들어서 그 뜻을 널리 펴는데, “진력을 하라.” 라고 자식들이나 제자들에게 아마 마지막으로 당부할 것입니다.
각자 살아온 그 삶에 따라서 수기 주는 것. 마지막으로 일러주는 말씀이 아마 다를 겁니다. 마지막으로 일러주는 말씀이 무엇인가? 이것을 가지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느냐? 이것도 우리가 판가름 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눈을 감으면서 가장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 그가 누가 됐던지 간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말 무슨 말을, 마지막 숨 넘어가는 순간에 무슨 말을 일러줄 것인가?
이것 참 중요한 것이지요.
其佛國土(기불국토), 그 부처님의 국토는 亦復如是(역부여시)니라.
사리불하고 똑 같을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舍利弗(사리불)아 是華光佛滅度之後(시화광불멸도지후)에
正法住世(정법주세)는, 정법이 세상에 머무는 때는 三十二小劫(삼십이소겁)이고, 像法住世(상법주세)도, 상법이 세상에 머무는 세월도 亦三十二小劫(역삼십이소겁)이다. 正法. 正法. 우리가 “정법구현”그러지요? 자꾸 말세가 되니까 정법은 참 미미하고 아주 삿된 법. 이런 것들이 판을 치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염려해서 정법을 이렇게...
정법은 그야말로 부처님이 깨달으신 아주 올곧은 법. 그것이 그대로 세상에 존재해야 된다는 것이고, 像法은 무엇니까? 이것이 닮을 상자입니다. 비슷하다 하는 것. 형상은 닮았다. 그럼 외형은 닮았어요. 외형은 닮았는데 말하자면 내용은 정법에 미치지 못한다 하는 것입니다.
正法ㆍ像法 그 다음에 末法이거든요. 여기는 말법은 이야기도 없습니다.
법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입장입니다. 이것을 어떤 시간적인 차이를 두고 보면 이러한 이야기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초발심에도 있었듯이, 누가 말세를 근심하리요? 각자 자기하기 나름이다. 정말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때가 무슨 2009년도냐? 무슨 기원전이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 이야기 초발심자경문에 있었지요.
자 이렇게 해서 법화경에 수기라는 말이 많은데, 제일 첫째 사리불에게 수기 주는 내용이 이렇게 해서 종결을 지었습니다만, 그러나 수기라고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저 방편품에서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라고 하는 그 다섯 글자 속에 다 있습니다. 제가 아주 역설 했듯이 손 한 번 든다든지, 나무불 한 번 한다든지, 童子들, 아이들이 장난삼아 모래를 쌓아놓고 이것이 불탑이다 하는 그런 것만으로도 皆已成佛道라고 하는 그 의미가 무엇인가? 이것은 사람, 사람의 본래인의 입장에서, 궁극적인 차원에서, 밖으로 드러난 이런 현상적인 것을 가지고 보면 누구나 그만그만하지요.
하지만 절대적인 차원ㆍ궁극적인 차원ㆍ본래인의 차원에서는 이것은 이대로 정말 위대한 존재입니다. 조금도 무슨 수행하고ㆍ다듬고ㆍ공덕을 짓고ㆍ무슨 부처님을 친견하고ㆍ이것하고 전혀 관계없어요.
그런 조건 전혀 관계없이 아주 위대한 존재입니다. 그것 발견한 것이지 딴 것 아닙니다. 성불이니 견성이니 부처님이 깨달았다느니 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가 본래로 갖추고 있는 만인에게 평등한 그 아주 위대한 궁극적 가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주 궁극적 가치. 그것 그냥 ‘아 이거구나.’ 하고 무릎 딱 치면 그일 뿐이지 다른 것 없어요. 공덕 쌓고 복 쌓았다한들, 그 몇 푼어치 되겠습니까? 그것은 유위법입니다. 아주 有爲法이라고요.
그래서 달마대사가 -양무제가 그렇게 공덕을 많이 쌓았어요. 수십만 명의 스님들을 장학금을 대줘 가지고 스님생활하게 하고, 강원에 보내고 승가 대학에 보내고 다 그랬다고요. 그리고 탑을 수천 개를 세우고 절을 수천 개를 세우고, 양무제가 해인사 같은 절을 수천 개를 세웠다고요.
중국 천하에 그 국력이 오죽합니까? 그런 국력을 가지고 천자가 마음대로 하니까요. 그렇게 하고 불교공부를 많이 해가지고 왕궁에서 국가행정 다 중지하고, 예를 들어서 청와대 같으면 거기의 모든 직원들, 각부 장관들 다 모아놓고 당신은 가사장삼 탁~ 걸치고 경을 강설하는 겁니다.
뭐 나라일이 어떻게 되든지 관계없이 경을 강설해요.
당시에는 나라도 평화로웠겠지요. 그래서 佛心天子라고 그렇게 부를 정도로 그런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말하자면 인간의 그 위대한 본성에 는 뜨지 못 했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유위법. 절을 짓고ㆍ스님들 장학금 대주고ㆍ탑 세우고ㆍ그 수십만ㆍ수백만 스님들을 공양. 다 국가 돈으로 먹여 살리고 하는, 이와 같은 큰 공덕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마스님으로부터 “小無功德이다.” 공덕 전혀 없다. 우리가 본래로 갖추고 있는 그 위대한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그 공덕. 기존의 공덕. 거기에 비교할 것 같으면 이것은 게임도 안 된다 이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금강경에서 자주 보았듯이 七寶의 무더기를 항하강의 모래 숫자처럼 많게 쌓아놓고 그걸 가지고 세상에 보시를 했다 손치더라도 금강경의 그 이치를 터득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는 그런 이야기 여러 번 나오지요. 수십 번 안 나옵니까? 바로 그 점입니다. 이것은 쌓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쌓아서 되는 것은 양무제가 생각하는 그런 공덕이고, 그런 수행이고, 본래 조금도 그야말로 더 할 것도 없고 감할 것도 없고, 더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하는 바로 그 인간의 본래성. 본래인의 그 가치에 눈을 뜨고, 거기에 말하자면 초점을 맞추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그것을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린 아이가 장난삼아 탑을 쌓아도 皆已成佛道라고 하는 것. 그것 보고 시종일관하는 소리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안목입니다.
또 법화경의 안목이고요. 이것 놓쳐 버리면 불교 헤맵니다.
어디로 헤맬지 몰라요. 그저 계속 무슨 뭐 공덕 지어야 되고ㆍ수행해야 되고ㆍ계율 지켜야 되고ㆍ그것 뭐 지키는 사람은 살아남을 사람이고ㆍ안 지키는 사람은 전부 죽어야할 사람이고, 그런 법은 없잖아요.
계율이라고 하는 것도 제정해 좋은 것이지요. 佛家에서 제정해 좋은 것일 뿐이고, 나라마다 다 각각 다르고요. 그것은 전부가 有爲法이거든요.
그것은 유위법. 그러니까 불교에 대한 안목을 법화경을 통해서 우리가 터득해야합니다. 중요한 것이지요.
그 다음에 게송은 중송이니까 생략합니다.
2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舍利弗來世(사리불내세)에 成佛普智尊(성불보지존)하면
號名曰華光(호명왈화광)이라 當度無量衆(당도무량중)하야
供養無數佛(공양무수불)하며 具足菩薩行(구족보살행)과
十力等功德(십력등공덕)하야 證於無上道(증어무상도)하리니
過無量劫已(과무량겁이)하야 劫名大寶嚴(겁명대보엄)이요
世界名離垢(세계명이구)니 淸淨無瑕穢(청정무하예)하야
以瑠璃爲地(이류리위지)하고 金繩界其道(금승계기도)하며
七寶雜色樹(칠보잡색수)에 常有華果實(상유화과실)하며
彼國諸菩薩(피국제보살)은 志念常堅固(지념상견고)하고
神通波羅蜜(신통바라밀)이 皆已悉具足(개이실구족)하며
於無數佛所(어무수불소)에 善學菩薩道(선학보살도)하나니
如是等大士(여시등대사)는 華光佛所化(화광불소화)라
佛爲王子時(불위왕자시)에 棄國捨世榮(기국사세영)하고
於最末後身(어최말후신)에 出家成佛道(출가성불도)니라
華光佛住世(화광불주세)는 壽十二小劫(수십이소겁)이요
其國人民衆(기국인민중)은 壽命八小劫(수명팔소겁)이라
佛滅度之後불멸도지후()에 正法住於世(정법주어세)는
三十二小劫(삼십이소겁)이니 廣度諸衆生(광도제중생)하리라
正法滅盡已(정법멸진이)에 像法三十二(상법삼십이)라
舍利廣流布(사리광유포)하야 天人普供養(천인보공양)이니
華光佛所爲(화광불소위)가 其事皆如是(기사개여시)라
其兩足聖尊(기양족성존)이 最勝無倫匹(최승무륜필)이니
彼卽是汝身(피즉시여신)이라 宜應自欣慶(의응자흔경)이니라
五 사중팔부가 환희하다
1 장문으로 설하다
爾時四部衆(이시사부중)인 比丘比丘尼(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와 天龍夜叉(천룡야차)와
乾闥婆阿修羅(건달바아수라)와 迦樓羅緊那羅(가루라긴나라)와
摩喉羅加等大衆(마후라가등대중)이
見舍利弗(견사리불)이 於佛前(어불전)에
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수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하고
心大歡喜(심대환희)하야 踊躍無量(용약무량)하며
各各脫身所著上衣(각각탈신소착상의)하야
以供養佛(이공양불)하며 釋提桓因(석제환인)과
梵天王等(범천왕등)은 與無數天子(여무수천자)로
亦以天妙衣(역이천묘의)와 天曼陀羅華(천만다라화)와
摩詞曼陀羅華等(마하만다라화등)으로 供養於佛(공양어불)하니
所散天衣(소산천의)가 住虛空中(주허공중)하야
而自廻轉(이자회전)하며
諸天伎樂百千萬種(제천기악백천만종)이 於虛空中(어허공중)에
一時俱作(일시구작)하며 雨衆天華(우중천화)하며
而作是言(이작시언)하사대 佛昔於波羅奈(불석어바라나)에
初轉法輪(초전법륜)하시고
今乃復轉無上最大法輪(금내부전무상최대법륜)이로소이다
爾時四部衆(이시사부중)인, 그 때 사부대중인
比丘ㆍ比丘尼(비구비구니)와 優婆塞ㆍ優婆夷(우바새우바이)와
天龍ㆍ夜叉(천룡야차)와 乾闥婆ㆍ阿修羅(건달바아수라)와
迦樓羅ㆍ緊那羅(가루라긴나라)와 摩喉羅加等ㆍ大衆(마후라가
등대중)이 見舍利弗(견사리불)이 於佛前(어불전)에,
사리불이 부처님 앞에서 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수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수기 받음을 보고 心大歡喜(심대환희)하야. 마음이 크게 환희해서 踊躍無量(용약무량)이라. 뛸 듯이 기뻐하는 것이 한량이 없이 뛰었다 그 말입니다.
各各脫身所著上衣(각각탈신소착상의)야, 전부 입고 있는 옷을 이렇게... 그러니까 기쁨의 표현입니다. 너무 환희로울 때 그렇게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옷을 벗어놓고 전부 부처님께 공양하는 겁니다.
옛날에 인도사회에, 지금도 천민들은 옷 얻어 입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옛날에 옷이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부처님께 옷 바치는 것이 최고의 공양입니다. 그러니까 티벳 사람들 목에다 천 걸어주는 것도 천이 워낙 귀하니까 천을 목에 걸어주면 그것으로 옷을 기워 입기도 하고 뭣도 하고, 그것이 일종의 공양입니다. 그래서 그런 예가 있고,
여기도 所著上衣라. 자기가 입고 있던 것. 젖이 드러나든지 말든지 입고 있던 윗옷을 벗어 가지고 以供養佛(이공양불)하며, 부처님께 공양 올렸다 이 겁니다. 가장 소중한 공양. 그러니까 이런 것을 통해서 그 당시인도사회의 여러 가지 풍속도 알 수가 있다 하는 것입니다.
釋提桓因(석제환인)과 梵天王等(범천왕등)은 與無數天子(여무수
천자)로, 無數天子로 더불어 또한 亦以天妙衣(역이천묘의). 아주고급, 아름다운 옷과, 이것도 하늘에서 내린 그런 뜻으로 보지 마세요.
이것 아주 고급스러운 것을 하늘天 자로 표현했습니다.
경전에 거의 그래요.
天曼陀羅華(천만다라화)와 摩詞曼陀羅華等(마하만다라화등)으로
供養於佛(공양어불)하니, 부처님께 공양하니
所散天衣(소산천의)가, 흩은바 아주 훌륭한 옷들이
住虛空中(주허공중)하야, 허공중에 住해서
而自廻轉(이자회전)이라. 저절로 빙빙 돌더라 이 말입니다.
諸天伎樂百千萬種(제천기악백천만종)이 於虛空中(어허공중)에
一時에 俱作(일시구작)이라. 온갖 악기가 한꺼번에 그냥 음악을 연주하고,
雨衆天華(우중천화)하야, 하늘에서 꽃이, 아주 좋은 꽃들이 하늘에서 그냥 비 내리듯 하며, 而作是言(이작시언)하사대 佛昔於波羅奈(불석어바라나)에, 부처님이 옛날, 佛生가비라ㆍ成道마갈다ㆍ說法바라나 이러지요? 바라나 = 베나래스 거기에서 初轉法輪(초전법륜)하시고, 처음에 법륜을 굴리시고, 그리고 나서 지금 거의 50년, 40년이 훨씬 더 지난 今乃復轉無上最大法輪(금내부전무상최대법륜)이로소이다.
지금에 와서 이에 다시 무상최대의 법륜을 굴린다.
이것은 왜 이렇게 표현했느냐? 부처님의 첫 법문이 따지고 보면 가장 가치가 있고, 그것은 테이프를 끊은 것이니까요.
시작이 반 이라고 해서 初轉法輪이, 법륜의 수준이 높다는 뜻이 아니고, 처음 입을 뗐기 때문에, 처음 입을 떼서 오늘 날까지 왔다 이 겁니다.
그리고 부처님도 이제 마지막 설법하시는 것이니까, 그래서 첫 법문과 마지막 법문을 이렇게 특별하게 기록을 한 것입니다.
부처님께 공양한 것도 예를 들어서, 성도하고 처음공양. 성도할 때 처음에 공양 한 것. 그리고 순타가 마지막으로 공양 올린 것. 이것을 경전에서 특별히 기록하듯이, 법문도 이렇게 특별히 기록한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 다음에 게송으로 거듭 설한 것은 생략하겠습니다.
여기 비유품인데 비로소 화택의 비유가 나옵니다.
유명한 화택의 비유지요. 이것은 법화경에 나온 비유이지만, 세속에서도 많이 인용을 하고 “三界火宅이다.” 또 이 세상은 “불난 집과 같다.”
아주 뭐 조사스님이나 그 외 이 현실을 부정적으로 볼 때,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을 부정적으로 볼 때 제일 많이 인용하는 것이 바로 화택의 비유입니다.
2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爾時諸天子(이시제천자)가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야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昔於波羅奈(석어바라나)에 轉四諦法輪(전사제법륜)하사
分別說諸法(분별설제법)의 五衆之生滅(오중지생멸)이러니
今復轉最妙(금부전최묘)인 無上大法輪(무상대법륜)하시니
是法甚深奧(시법심심오)하야 少有能信者(소유능신자)니다
我等從昔來(아등종석래)로 數聞世尊說(수문세존설)이나
未曾聞如是(미증문여시) 深妙之上法(심묘지상법)이니다
世尊說是法(세존설시법)하시니 我等皆隨喜(아등개수희)니다
大智舍利弗(대지사리불)이 今得受尊記(금득수존기)하시니
我等亦如是(아등역여시)하야 必當得作佛(필당득작불)하와
於一切世間(어일체세간)에 最尊無有上(최존무유상)이니다
佛道叵思議(불도파사의)라 方便隨宜說(방편수의설)이시니
我所有福業(아소유복업)과 今世若過世(금세약과세)에
及見佛功德(급견불공덕)을 盡廻向佛道(진회향불도)하노이다
六 화택(火宅)의 비유
1 사리불이 법을 청하다
爾時舍利弗(이시사리불)이 白佛言(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하
我今無復疑悔(아금무부의회)호니 親於佛前(친어불전)에
得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득수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니다
是諸千二百心自在者(시제천이백심자재자)는
昔住學地(석주학지)에 佛常敎化(불상교화)하사
言我法(언아법)은 能離生老病死(능리생노병사)하고
究竟涅槃(구경열반)이라하시거늘 是學無學人(시학무학인)도
亦各自已離我見(역각자이리아견)과
及有無見等(급유무견등)으로 謂得涅槃(위득열반)이러니
而今於世尊前(이금어세존전)에 聞所未聞(문소미문)하고
皆墮疑惑(개타의혹)이니다
善哉世尊(선재세존)하 願爲四衆(원위사중)하사
說其因緣(설기인연)하사 令離疑悔(영리의회)케하소서
爾時舍利弗(이시사리불)이, 그 때, 사리불이
白佛言(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하 我今無復疑悔(아금무부의회)라. 저는 지금 더 이상 의심이 없습니다 말입니다.
親於佛前(친어불전)에, 친히 부처님 앞에서
得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득수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記주심을 얻었습니다. 또
是諸(시제), 이 모든 千二百心自在者(천이백심자재자). 1200 아라한들이지요. 마음이 자재한 사람들은
昔住學地(석주학지)에, 옛날 항상 배우는 입장에 머물렀을 때에
佛常敎化(불상교화)하사, 부처님이 항상 교화하사
言我法(언아법)은, 말씀하시기를 我法은 能離生ㆍ老ㆍ病ㆍ死(능리
생노병사)하고, 나의 법이라고 하는 것은 生老病死를 떠나고
究竟에 涅槃(구경열반)을 얻는 것이다 라고 하거늘,
-昔住學地라고 하는 말이, 한참 배우고 있을 때, 초학자일 때, 이 말입니다.
옛날에 배움의 지위에 있을 때에, 그 때 生老病死를 떠나고 究竟에는 涅槃을 얻는다 라고 이렇게 늘 부처님이 말씀하셨는데,
是學無學人(시학무학인)도, 여기에 배우고 있는 사람이나 배운 것이 끝난 사람도 亦各自已離我見(역각자이리아견)과, 또한 자기에 대한 소견과 그리고 及有無見等(급유무견등). 상대적인 견해, 있다 없다ㆍ너다 나다하는 그런 어떤 모든 존재의 상대적 견해, 편견이지요. 그러한 것들을 이미 떠난 것으로써 謂得涅槃(위득열반)이라.
“열반을 얻었다.” 하더니, 그렇게만 공부했는데, 이것이 여기까지가 예를 들어서 생로병사를 떠나서 열반을 얻는다. 그리고 누구나 다 有ㆍ無등의 아견과, 有ㆍ無등의 견해를 떠나서 “열반을 얻었다.” 이것이 일반불교입니다. 보통불교에요. 그런데
而今於世尊前(이금어세존전)에, 지금 세존 앞에서
聞所未聞(문소미문)하고, 듣지 못한 바를 들었어. 그 동안 듣지 못했던 것을 들었어. 그럼 그 다음 딴 불교입니다.
皆墮疑惑(개타의혹). 그리고는 전부 의혹에 떨어졌습니다.
聞所未聞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皆已成佛道입니다.
예를 들어서 南無佛 한 마디 한 것만으로도 다 이미 부처를 이뤘다라고 하는 것. 여러분 생전에 법화경 말고 그런 소리 어디서 들어봤어요?
못 들어봤지요? 聞所未聞이야, 그 동안 듣지 못했던 바를 들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니, 그것이 어떻게 성불이냐? 어째서 그것이 성불이냐? 고 손 한 번 들고, 나무불 한 마디하고 아이들 모래 쌓아놓고 탑이라고 하는 그것이 어떻게 성불이냐? 皆墮疑惑입니다. 전부 의혹에 떨어졌습니다.
善哉世尊(선재세존)하, 선재라 세존이시여 願爲四衆(원위사중)하사,
원컨대 사부대중을 위하여 說其因緣(설기인연)하사 그 인연을 설하사
令離疑悔(영리의회)케 하소서 의혹과 뉘우침을 여의도록 해주십시오.
이것을 사리불이 부처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자기야 그렇다 손치지만, 자기 한사람을 위한 공부가 아니니까요.
다른 사람도 뭔가 이해가 돌아가야 하니까요. 제일 문제가 지금 그 동안 듣지 못했던 열반이라든지ㆍ유 무의 견해를 떠난다든지ㆍ아견을 떠난다든지ㆍ이것은 그냥 흔해빠진 공부입니다. 그까짓 것은 너무너무 많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것은 정말 당치도 않게 부처님 앞에서 손 한 번 들고, 망상 부글부글 끓는 그 마음, 뭐라고 했지요?
散亂心(산란심)으로 그랬잖아요. 散亂心으로...
우리들의 현재. 우리의 상태 그대로, 뭐 공부하면서도 딴 생각하고, 절하면서도 딴 생각하고, 예불하면서도 딴 생각하고, 화두 들고 한 시간 앉아 있는데 그냥, 예를 들어서 100분 동안 앉아 있으면 99분은 딴 생각하고, 겨우 1분 화두 한 번 챙겼다 말았다 하는 그런 정도의 심리 상태를 사지고도 부처님 앞에 꽃 한 송이 올렸다.
그런데 皆已成佛道라 이 겁니다. 이것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 아닙니까? 그렇게 용맹정진하고 高峰獨宿(고봉독숙). 저~ 높은 산에서 홀로 끓여 먹어가면서, 一種食하면서 그렇게 해도 이것이 도대체가 뭐가 보일 가망이 없는 사실인데, 그런데 천하에 쉬운, 꽃 한 송이 올린 것만으로도 皆已成佛道라고 했으니 이것 사실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입니다.
그래서 듣지 못한 바를 들었다. 그래서 전부 의혹에 떨어졌다.
이것 도대체 진짜 부처가 나와서 하는 소린지? 아니면 마군이가 저렇게 부처모습을 짓고 하는 소린지? 아니면 이것이 진짜 불교인지? 그 동안 우리가 정말 불교에 진지한 마음을 가지고, 불교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뭔가? 어느 것이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인가?에 대해서 정말 알고 싶었던 그런 사람이라면, 이러한 문제가 정말 의혹으로 남아 있어야 되는 것이지요. 큰 의문으로요. 그래서 그런 대중들의 심리를 사리불이 감안을 하고 부처님께 사부대중들을 위해서 그런 의혹을 좀 떠나도록 이렇게 “설명해 주십시오.”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이제 세존의 설법이라고 해서,
2 세존의 설법
爾時(이시)에 佛告舍利弗(불고사리불)하사대
我先不言諸佛世尊(아선불언제불세존)이
以種種因緣(이종종인연)과 譬喩言辭(비유언사)로
方便說法(방편설법)은
皆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개위아뇩다라먁막삼보리야)아
是諸所說(시제소설)이 皆爲化菩薩故(개위화보살고)니라
然舍利弗(연사리불)아 今當復以譬喩(금당부이비유)로
更明此義(갱명차의)호리니 諸有智者(제유지자)는
以譬喩得解(이비유득해)니라
爾時(이시)에 佛告舍利弗(불고사리불)하사대, 그때에 사리불에게 고하사대 我先不言(아선불언) 내가 먼저 말하지 아니 했던가?
諸佛世尊(제불세존)이 以種種因緣(이종종인연)과 譬喩言辭(비유언
사)로써 方便으로 說法(방편설법)한 것은 어떤 말을 했던지 간에 그것은 皆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개위아뇩다라먁막삼보리야)아?
최상의 깨달음을 위한 것이라고 내가 먼저 말하지 아니 했던가?
是諸所說(시제소설)이, 모든 설한바가
皆爲化菩薩故(개위화보살고). 모두가 최고의 수준에 있는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까닭이니라. 보살들을 교화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유치원생 교화하면 초등학생 돼야 되고, 초등학생 가르치면 중학생 돼야 됩니다. 부처님의 마음은 그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최고의 수준에 있는 보살들을 교화하기, 부처되기 바로 직전에 있는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것. 사실은 이것이 부처님이 본래 하고 싶었던 교육입니다. 하는 수 없어서 저 유치원생 데리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지 부처님의 본의는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皆爲化菩薩故. 다 보살을 교화하기 위한 까닭이니라.
然舍利弗(연사리불)아, 그러나 사리불아 今當復以譬喩(금당부이비유)로, 지금 마땅히 다시 비유로서 更明此義(갱명차의). 이 도리, 이 이치가 도대체 어떻게 된 심판인가 하는 것을 다시 밝히리라.
諸有智者(제유지자)는 以譬喩得解(이비유득해)니라. 이것도 유명한 말입니다. 모든 지혜 있는 사람은 비유로써 이해를 한다. 참 멋지지요?
그래서 여러분, 설법할 때ㆍ강의할 때 비유를 잘 들어야 됩니다.
비유를 아주 적절한 비유를 들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