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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강좌 스크랩 루터의 종교개혁과 독일 코랄
비파와수금 추천 0 조회 52 16.04.24 18: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루터의 종교개혁과 독일 코랄

 

 

 

글 : 오소운 목사

 

 

 

1) 루터의 생애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작센 아이슬레벤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한스, 어머니는 마르가레테였다. 한스 루터는 구리 광산에서 일하면서 몇 개의 용광로를 임대해 공장을 운영할 만큼 성공을 거두었고, 1491년에는 작은 마을 의회의 의원직을 했다. 몇 안 되는 루터의 유년기 회상록에 따르면, 그의 가정은 당시의 일반 가정들처럼 경건하고 엄격한 훈련의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엇던 것이다.

 

루터의 학교생활은 특기할 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만스펠트의 라틴어 학교에 다녔고, 마크데부르크에 있는 학교에서 1년 동안 공부했다. 이 학교는 공동생활을 추구하는 형제단이 운영했는데, 이 형제단은 성경연구와 교육에 헌신한 중세의 평신도 집단이다. 15세에는 아이제나흐에서 학교에 다녔다. 그때 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은 훌륭한 친구들과 교제했다.

 

1501년 봄에 그는 독일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학생 수가 많았던 에르푸르트 대학교 인문학부에 등록했다. 학창시절 루터는 오랫동안 심각하게 말하는 버릇 때문에 ?철학자?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만돌린과 같이 생긴 고대 악기인 류트(Lute)를 능숙하게 연주하기도 했다. 1502년, 그는 일반 인문학부 과정을 이수하여 문학사학위를, 1

 

505년 17명의 이수자들 가운데 2등으로 문학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까지 받는 학생들이 극소수였던 당시 그는 부모의 소망을 실현한 셈이다. 다른 많은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한스 루터는 아들이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고, 루터가 법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 기꺼이 값비싼 교과서들을 사주었다. 그러나 아들이 부모와 상의도 않고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隱修者) 수도회에 들어가자 몹시 서운해하였다. 루터가 법학을 버리고 수도사가 된 것은, 그가 친구와 함께 소나기를 피하다가 친구가 벼락을 맞고 즉사하는 것을 보고서였다고 전해진다.

 

2) 루터의 종교개혁 동기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 동기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이다.

ㅡ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이 성구의 참 뜻을 로마 여행 중에 깨달았다. 1510년 11월부터 1511년 4월까지 수도사들이 순례여행을 했는데, 그 코스 중에 하나가 ?성 계단(階段)성당?(Scala Santa)이었다. 이 성당에는 ?빌라도의 계단?, 또는 ?거룩한 계단? 이라는 이름의 28계단이 있었다. 이 돌계단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러 밟고 올라가셨다는 28계단을 로마로 옮겨와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성당을 지어 보존해 오고 있었는데, 당시 신자들은 이 계단을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무릎으로 한 계단씩 기어 올라갔다.

 

특별히 그 계단에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깔아 놓았는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뜻에서, 무릎으로 기어 올라갔다가 무릎으로 기어 내려와야 하는 계단이었다. 루터도 이곳에 이르러 그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올라가다가 갑자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가슴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어올랐던 그 계단을 걸어서 내려왔다. 루터는 그 때까지 사람이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가톨릭의 가르침을 믿었었다. 그러나 이제 성경을 통해서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4년 후인 1515년 11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로마서 강의를 하던 중 루터는, 이 구절의 참뜻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고 이렇게 기록하였다.

 

ㅡ “나는 ‘하나님의 의’ 라는 표현만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고,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심에 있어서 의로우시다’ 라는 의미인 줄로 생각했다….나는 주야로 생각하다가 드디어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은혜와 긍휼을 통하여 주시는 의, 곧 《예수=복음》을 뜻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3) 95개 논제(Ninety-five Theses)

이리하여 마침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신학 논쟁을 위해 비텐베르크의 성곽 교회인 슐로스키르헤 문에 이른바 《95개 논제》라는 문서를 못박아놓았다. 이 사건으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이 글은 당시의 정치적?종교적 상황과 인쇄술의 발명으로 인해 불과 몇 주만에 독일 전역에 알려졌다. 루터는 이 조항의 복사본을 마인츠의 대주교와 브란덴부르크 주교에게만 보냈으나, 다른 사람들이 이 글을 독일어로 번역?인쇄하여 퍼뜨림으로써 면죄부 사건에 관한 단순한 항의에 그치지 않고 서방교회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면죄부(免罪符)란 죄의 대가로 받을 형벌을 돈으로 면제받는 것으로서, 트리엔트 공의회(1545-63)에서 교리로서 규정되었다. 이 면죄부는 교황의 권위로 수여되었고, 공인된 직원들을 통해 살 수 있었다. 교황청의 재정난이 악화됨에 따라 면죄부는 더욱 자주 발행되었고 남용되는 일도 흔해졌다.

 

능란한 수완을 발휘하여 교황권을 이탈리아의 한 국가권력으로 만든,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Ⅳ, 1471-84 재위)는 ‘면죄부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도 효력이 있다’고까지 말하면서 비싼 값에 팔아 재정을 확보하였고, 양심 있는 신학자들과의 신앙적인 골은 더욱 깊어만 갔다.

 

루터가 95개 논제를 발표한 직접적인 원인은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을 개축하는 데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면죄부를 발행한 일이었다. 독일에서 판매된 면죄부 수익의 절반은 비밀협정에 의해 마인츠의 대주교이며 선제후(選帝侯)인 알브레흐트(Albrecht von Brandenburg, 1490-1545)가, 푸거가(家, 독일의 금융 가문, 필자 주)에게 진 막대한 빚을 갚는데 전용되었다.

 

알브레흐트는 교황이 자신을 고위성직에 앉혀준 대가를 지불하느라 그 빚을 졌던 것이다. 비텐베르크 교회 신자들은 당시 교회 가까이에서 설교하던 테첼에게서 산 면죄부를 루터에게 보여주었다. 이에 격분한 루터는 신앙양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마침내 95개 논제를 썼던 것이다.

 

4) 95개 논제 발췌

내용이 너무 길어 여기 그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1. 우리들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 (마4:17)고 말씀하실 때, 그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 말씀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례전적 참회 곧 사제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고백과 속죄로서 이해할 수는 없다.

3. 그러나 이 말씀은 다만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만일 그 같은 내적 회개가 육신의 정욕의 여러 가지 억제를 외부로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4. 그런고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한에는(참 내적 참회) 형벌이 계속할 것이다. 즉 우리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5. 교황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된 형벌 이외의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힘이나 의지를 가지지 못한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선언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 기껏해야 그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들을 그가 사하는데 불과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도 만일 그의 사죄하는 기능이 업신여김을 당하게 될 때 사함 받았다는 죄는 확실히 그대로 잔재(殘在)한 것이다.

 

22. 사실상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 대해서 어떤 형벌도 사할 수 없다….

23. 만일 누구에게든지 모든 형벌의 전적 사면이 허락된다면, 그러한 사면은 확실히 가장 완전한 사람 즉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질 것이다.

24.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벌로부터 해방된다는 무제한적인 어마어마한 약속에 의하여 공공연하게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26. 교황은 (천국) 열쇠의 힘으로서가 아니고(사실 그와 같은 힘이란 것이 있지도 않지만), 중보기도의 방법으로 영혼들에게 사죄를 허락한다는 것은 아주 잘하는 일이다.

27. ‘헌금궤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뿐이다.

28. 돈이 헌금궤 안에서 딸랑 소리를 낼 때 이득(利得)과 탐욕이 증가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동시에 성직자의 중보기도의 응답 여부는 하나님의 선한 뜻에만 달려 있는 것이다.

 

32. 면죄부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사면을 일컬어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되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특별히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36. 어떠한 그리스도인이고 진심으로 자기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부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

37.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죽은 자나 산 자나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영적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43.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필요한 사람에게 꾸어 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도 선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4.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을 베푸는 일로써 성장하고 그 인간은 선을 행하는 사람보다 선하게 되지만, 면죄부로써는 인간이 보다 선하게 되지 못하고 다만 형벌로부터 보다 자유롭게 되는 것뿐이다.

45. 가난한 사람을 보고도 본체만체 지나쳐버리고, 면죄부를 위해서 돈을 바치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6. 풍부한 재산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자라면, 자기 가족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저축할 의무가 있으며(딤전 5:8), 결코 면죄부 때문에 돈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0. 만일 교황이 면죄부 설교자들의 행상(行商) 행위를 안다면, 주께서 자기 양의 가죽과 살과 뼈로써 성 베드로 성당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것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을 기뻐하실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 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1. 어떤 면죄부 설교자들에게 돈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에게, 교황은 필요하다면 성 베드로의 성당을 팔아서라도, 또는 그 자신의 재산을 다 털어 갚아 주려고(당연하기는 하나)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2. 면죄부로 구원받는다고 믿는 것은 헛된 것이다. 비록 판매위탁자가, 아니, 교황 자신이 그 증서에 대해서 자기 영혼을 걸고 보증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75. 교황의 면죄부에는 굉장한 능력이 있어 ‘하나님의 어머니’(성모 마리아)를 능욕한 인간까지라도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 빠진 생각이다.

76. 그와 반대로 교황의 면죄부가, 가장 작은 죄라 할지라도, 그 죄책에 관하여서는 없이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주장한다.

 

86. 오늘날 제일 부자의 재산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가난한 신자의 돈을 긁어낼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자기의 돈으로 성 베드로 성당쯤은 세울 수 있지 않은가?

88. 또한 교황이 신자들에게, 하루에 한번 주는 사면과 은총의 참여를, 하루에 백 번 준다고 한다면 교회는 얼마나 더 큰복을 받게 되겠는가? (면죄부에는 단 한 번만 사죄된다는 것이 표시되어 있다).

 

92. 그런고로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평안도 없는데 ‘평안, 평안’하고 부르짖는 예언자들은 다 물러가라. (겔13:10 16, 렘6:14, 8:11, 살전5:3).

93. 그러나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십자가, 십자가’ 하고 부르짖는 모든 예언자들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94. 그리스도인은 형벌이나 죽음이나 지옥을 통하여서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르도록 훈계 받아야 한다.

95. 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위안에 의해서보다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데 더욱 깊은 신뢰를 가지게 하라(행14:22).

 

이에 놀라고 화가 난 마인츠의 대주교는, 마침내 1517년 12월 루터를 제지시켜달라는 청을 담은 문서를 교황청에 보냈다.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신학자 한 사람은 루터의 글을 반박하는 논문을 작성하여 1518년 1월 프랑크푸르트에서 도미니쿠스 수도회 청중들에게 발표하였다. 루터는 자신이 제기한 문제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을 알고 95개 조항에 대한 설명을 실은 장문의 라틴어 문서를 1518년 가을에 출판했다.

 

2. 루터의 독일 코랄(German Chorale)

만난을 헤치고 부패한 가톨릭을 개혁한 루터는 먼저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을 한다. 그때까지 성경은 라틴어로만 발행되어 미사 때에는 사제들이 라틴어로만 읽고, 라틴어를 모르는 회중들은 뜻도 모르는 채 듣고만 있었다.

 

1) 찬송은 ?복음의 소리?(viva vox evangelii)

루터는 사제의 전유물인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1522년에 비텐베르크에서 신약전서를 출판했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 제2판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다. 뒤이어 출판한 구약은《브레스키아 히브리어 성경》(The Brescia Hebrew Bible, 1494)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다. 이리하여 1500 여년 동안 성경도 없이 사제의 하는 말만 믿고, 소경이 끌려 가 듯이 신앙생활을 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직접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구약의 시편을 번역하다가 독일어 회중찬송가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4세기 라오디게아 교회 총회에서 회중들의 찬양을 금지한 법령이 아직도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미사에 참예한 회중들은 사제가 읽는 라틴어 성경을 듣고, 찬양대가 부르는 라틴어 찬송을 뜻도 모르는채 듣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루터는 시편의 내용을 바탕으로 독일어 찬송가를 작사?작곡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회중에게 돌려준 루터는 이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찬양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찬송가를 제작하게 된 것이다. 제1부에서도 언급하였지만, 1523년 루터는 스팔라틴 목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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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는 강한 성이요> 최초 악보

 

 

― 나는 예언자들과 초대교회 교부들의 모범을 따라, 회중을 위한 독일어 찬송을 만들어서, 노래란 매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속게 살아있게 하기를 원합니다.

 

루터가 생각하는 찬송가란 ?살아있는 복음의 소리?(viva vox evangelii)였다. ?수직적인 하나님 찬양?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고 찬양하는 수평적인 복음의 소리?였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모세에게, ‘내가 한 일을 노래로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최초?유일의 찬송가 작사와 교육 명령?에 부합되는 것이다. 성경을 보자.

“이제 이 노래를 적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 부르게 하여라. 이 노래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가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증거할 것이다.” (신 31:19).

 

인류 최초의 찬양 기사를 보아도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며 찬양하는? 노래이다.

ㅡ 그 때에, 아론의 누이요 예언자인 미리암이 손에 소구를 드니, 여인들이 모두 그를 따라 나와, 소구를 들고 춤을 추었다. 미리암이 노래를 메겼다. ‘주를 찬송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던져 넣으셨다.’ (출 15:20).

 

2) 어거스틴과 성인(聖人) 찬양

우리나라 찬송가 학자 중에는 ‘어거스틴의 망령(亡靈)’에 사로잡혀서 ?수직적인 찬송만이 찬송가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찬송가 개편 때마다

“수평적인 찬송가는 찬송가가 아니다. 다 빼야 한다”

 

라고 강력히 주장하지만, 작업의 진도만 늦출 뿐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는 수평적인 찬양’을 어찌 뺄 수가 있겠는가. 그리스도교 역사상 수평적인 찬송을 다 빼어버린 찬송가란 이 지구상엔 없다.

 

개혁교회를 자처하면서 왜 루터의 찬송가 정의인 ‘찬송은 살아있는 복음의 소리’라는 말은 받아들이지를 않고, 부패했기 때문에 개혁을 당한, 옛 가톨릭의 성자 어거스틴의 주장 중의 ‘일부’만 따르는지 모르겠다. 어거스틴이 시편 148편을 강해하면서 내린 찬송가 정의, ‘찬송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란 구절은 그의 찬송가 정의 중의 일부이다. 그는 그 말 바로 다음에 이렇게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 그러므로 찬송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어거스틴은 계속하여 말한다. “70인역 성경을 보면(14절에), ‘훔노스 파시 토이스 호시오이스 아우투’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무슨 뜻일까? ‘모든 주님의 성인(聖人)들에게 찬양을?’이라니…, 이 말은 ‘모든 주님의 성인들이 찬양을 받게 하라’, ‘모든 주님의 성인들이 찬양을 하게 하라’는 뜻이 아닌가.”

 

그가 인용한 시편 148편 14절은 우리 성경에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한글 개역】

ㅡ 저는 모든 성도 곧 저를 친근히 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거리로다. 할렐루야!

【표준새번역】

ㅡ 찬양은 주의 모든 성도들과, 주님을 가까이 모시는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마땅히 드려야 할 일이다. 할렐루야!

【공동번역】

ㅡ 당신 백성의 영광을 드높여 주셔서, 당신을 가까이 모신 이 백성, 이스라엘 후손들, 당신을 믿는 모든 신도들에게 자랑이로다.

 

어거스틴은 우리 성경에 ?모든 성도?, 혹은 ?모든 성도들?이라 번역한 말을 ‘모든 성인(聖人)에게 찬양을 드리고’, ‘모든 성인들과 함께 찬양을 드리라’ 라는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하여, 성모찬양과 성인 찬양의 길을 열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십계명에서 제2계명을 빼어 ?우상숭배?의 길도 열어놓았다. 가톨릭에서는 ?본래 10계명에 번호는 없다?라고 궁색한 변명을 하는데, 그러면 제2계명에 해당하는 말씀은 왜 삭제하였는가. 가톨릭은 어거스틴의 이 주석을 따라, 성모 마리아는 물론, 그들이 시성(諡聖)한 이른바 ?주님의 성인(His Saints)?들에게도 찬양을 드리고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찬양을 드리고, 어떤 우상에게도 경배를 드리는 것을 죄로 여긴다.

 

3) 루터 찬송가의 뿌리

루터는 음악가였고 음악 애호가였다. 그는 고대 악기인 류트(Lute)를 썩 잘 연주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악에도 일가견이 있었고 작곡 실력도 상당 수준이었다. 그는 찬양의 중요성을 깨닫고 독일어 찬송가를 만들었는데, 평생 그는 37편의 찬송을 작사?작곡하였다. 이 중에는 콘트라팍타(Contrafacta)나 패러디(parody) 찬송가가 포함되어 있다.

그가 만든 찬송가는 다음의 네 개에 뿌리를 두고 있다.

 

1523년은 루터에게 기념할 만한 해였다. 신약성경을 다 번역하고, 구약성경에서 모세5경을 번역한 그는 시편을 번역하다가 회중 찬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찬송을 작사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가 평생 지은 시편 찬송은 37편에 이른다. 그가 처?으로 발간한 찬송가에는 38편이 들어 있는데, 이것을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A. 11편은 라틴어 찬송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요,

B. 4편은 종교개혁 이전의 독일어 찬송을 수정한 것이며,

C. 7편은 시편으로 창작한 것이요, (이중에 ?내 주는 강한 성이요?가 들어 있다.

D. 6편은 성경 여러 곳에서 따서 운문화한 것이요,

E. 10편은 Kyrie 등 전래된 찬송들이다.

 

A. 공인된 라틴어 찬송가

라틴어 시퀀스(Sequence)에서 나온 곡과 가사와, 플레인 찬트와 그레고리오 성가도 포함시켰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의 전통적인 음악 유산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그 자료들을 재구성하여 루터교 음악으로 썼기 때문에, 라틴어 가사는 모르지만 곡조에 익숙해진 신자들은 쉽게 찬양을 할 있었던 것이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A. Translations from the Latin.

From Latin Hymn:

1. Christum wir sollen loben shon.

2. Der du bist drei in Einigkeit.

3. Jesus Christus unser Heiland, Der von.

4. Komm Gott Sch?pfer , heilinger Geist.

5. Nun komm der Heidenheiland.

6. Was f?rchs du Feind Herodes sehr.

From Latin Antiphons:

7. Herr Gott dish loben wir.

8. Verleih uns Frieden gn?diglich.

9. Wir glauben all an einen Gott.

Partly from the Latin, the translated stanzas being adopted from Pre-Reformation Versions:

10. Komm, heiliger Geist, Herr Gott.

11. Mitten wir im Leben sind.

B. Hymns revised and enlarged from

Pre-Reformation popular hymns.

12. Gelobet seist du Jesus Christ.

13. Gott der Vater wohn uns bei.

14. Gott sei gelobet und gebenedeiet.

15. Nun bitten wir den heiligen Geist.

C. Psalm versions.

16. Ach Gott vom Himmel, sieh darein.

17. Aus tiefer Noth schrei ich zu dir.

18. Ein' feste Burg ist unser Gott.

19. Es spiricht der Unweisen Mund wohl.

20. Es wolt uns Gott gen?dig sein.

21. W?r Gott nicht mit uns diese Zeit.

22. Wohl dem, der in Gottes Furcht steht.

D. Praphrases of other portions of

Holy Scriptures

23. Diess sind die heiligen zehn Gebot.

24. Jessia dem Propheten das geschah.

25. Mensch willt du leben seilich.

26. Mit Fried und Freud ich fahr dahin.

27. Sie ist mir lieb die werthe Magd.

28. Vater unser im Himmelreich.

E. Hymns mainly Original.

29. Christ lag in Todesbanden.

30. Christ unser Herr zum Jordan kam.

31. Ein neues Lied wir heben an.

32. Erhalt uns Herr bei deinem Wort.

33. Jesus Christus unser Heiland, Der den.

34. Nun freut euch lieben Christengemein.

35. Vom Himmel hoch da komm ich her.

36. Vom Himmel kam der Engel Schaar.

In addition to these see notes on:―

37. F?r allen Freuden auf Erden.

38. Kyrie eleison.

 

4) 세속 곡조에 찬양 가사를 붙인 것

루터는 세속 노래나 민요 가락을 차용하여 거기다 찬송 가사를 붙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Tune Name이 Innsbruck이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막시밀리안 I세(Maximilian Ⅰ)가 1495년, 수도인 인스부르크를 떠나 비엔나로 옮길 때, 그 아쉬움을 노래로 만들어 당시 독일인들이 애창하던 노래로서 독일인이라면 다 잘 아는 속가(俗歌)이다. 루터는 “인스부르크여, 나 그대를 떠나야 하리”(Innsbruk, Ich muss dich Lassen)의 가사를 한 단어 Insbruck만 운율에 맞춰 O Welt(세상)로 고쳐 “오 세상이여, 나 그대를 떠나야 하리”(O Weld, Ich muss dich Lassen)로 개작하여 찬송가에 넣었던 것이다. 곡조는 하인리히 이삭(Heinrich Isaak, Isaac라고도 씀, 1445-1517)이 작곡하였는데, 우리 찬송가에는 새찬송가 55장, 청년 찬송가 50장에 루터의 가사가 아닌 게르하르트(Paul Grhardt) 목사의 ‘저녁 찬송’ 가사에 그 곡조가 실려 있다. 그러나 일본《讚美歌21》에는 루터의 가사와 이삭의 곡조 그대로 채택되어 있는데(569장), 그 가사의 1절만 소개한다. 후대에 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가사는 다음과 같다.

 

今やこの世に 別れを告げて

旅立ちゆく。

惠みのみ手に すべてをゆたね

永遠のみ國へと。

 

나 이제 이 세상에 결별을 선언하고

순례의 길 떠나가네.

은총의 주의 손에 모든 것 다 맡기고

영원한 나라로 가네.

 

유행가를 살짝 고쳐 부르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초에 있었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로 시작하는 송민도의 유행가 가사 중 ?그대?를 ?주님?으로 살짝 바꾸어, 서울의 어느 성당에서 청년들이 기타를 치면서 이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나 혼자만이 주님을 알고 싶소.

나 혼자만이 주님을 갖고 싶소.

나 혼자만이 주님을 사랑하며

영원히,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소.

 

나 혼자만을 오 주여 사랑해 주.

나 혼자만을 오 주여 생각해 주.

나 혼자만을 오 주여 믿어주고

영원히, 영원히 변함 없이 사랑해 주.

 

그러나 이를 들은 어느 신부가 “?나 혼자만이 주님을 알고 싶다?란 표현은 비 성서적이라서 안 된다. 모두 알게 해야지.” 라는 지적이 나와 중지했다는 얘기를 당시 전해들은 기억이 난다.

오늘날 우리가 ?수난 찬송?의 대표작으로 꼽는 ‘오, 거룩하신 주님(O, Sacred Head now Wounded)’(통찬 145장)이란 찬송은 하슬러(Hans Leo Hassler, 1564-1612)가 1601년에 작곡한 ‘내 마음이 어지러운 것은 그 어여쁜 처녀 때문’이라는 유행가 가사를 떼어버리고, 성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 1091-1153)의 수난 명상시를 붙인 것이다. 바하는 그의 불후의 명작 《마태 수난곡》에서 이 가락을 도처에서 반복함으로써, 그 유행가 가락은 오늘날 일약 세계적인 수난 찬송이 된 것이다. 즉 거룩한 찬양 가사인 ‘몸’이 속된 가락의 ‘옷’을 입음으로써 그 가락도 따라서 거룩해진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벌레만도 못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이것이 성육신(成肉身)의 기적이 아닌가.

 

루터의《종교개혁의 전투가》로 유명한 찬송가 384장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ug ist unser Gott)는 시편 46편에서 영감을 받아 쓴 찬송이다. 현행 우리 찬송가에는 루터의 찬송이 이것 하나 뿐이지만, 일본《讚美歌 21》에는 22, 50, 63, 86, 160, 229, 246, 317, 341, 377, 569(Insbruck) 등 10여 편이나 수록되어 있다. 이런 역사적인 찬송을 우리도 온 세계 성도들과 함께 부르고 싶다.

 

샬크(Carl Schalk)는 그가 편집한《Key words in Church Music에서 루터의 가사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

 

“루터의 찬송 시들은 섬세한 시어로 잘 다듬어진 예술적 시라기보다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호소력이 있는 서민적 언어를 구사하여, 구원의 진리를 객관적으로 표현한 신앙 시이다.”

 

한편 줄리앙은 이렇게 루터를 평가했다.

 

ㅡ 루터는 독일의 암브로스이다. 그의 찬송은 단순하고, 힘있고 대중적인 교회 곡조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것은 담대함을 불어넣어 확신을 주며, 그의 ?믿음으로 의에? 이르는 기쁜 마음을 주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신학이요 경건이다.

 

5) 가사는 몸, 곡조는 옷이다.

루터는 과감하게 콘트라팍타 찬송을 만들었다. 이미 불려지던 노래의 가사를 딴 가사로 바꿔 부르는 것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있어 왔는데, 루터는 거룩한 찬송가 가사를 민요나, 가곡이나, 유행가 가락에 붙여서 교회에서 부른 것이다.

 

이런 예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아코디언을 들고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김 아무개 목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죄수들이 다 아는 유행가 곡조에, 자기 자신이 복음 가사를 붙여서 죄수들과 함께 노래하며 전도를 하였는데, 아주 좋은 반응을 보였고 결신자도 많았다. 그는 자기의 작사 한계를 깨닫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과 한신대학 학장을 지낸 고 김정준(金正俊, 1914-1981) 목사에게,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 30 여곡을 골라, 그 곡에 복음전도 가사를 붙여달라 해서 콘트라팍타로 만든 그 노래를 들고 수감자들에게 전도하여, 많은 죄수들을 주께로 인도하였던 것이다. 가사는 몸, 곡조는 옷이다. 가사는 생수, 곡조는 그릇이다. 어떤 옷을 입든 그 사람은 그대로이다. 어떤 그릇에 생수를 담든 생수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그 모양만 변한다. 이게 가사와 곡조의 관계다. 물론 옷이 깨끗해야 그 사람이 품위를 유지하고, 그릇이 깨끗해야만 물이 오염되지 않는다. 그러나 옷이나 그릇 모양새로 곡조 사용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옹졸한 생각이라 생각한다.

 

6) 독일 코랄의 특징

이런 루터의 찬송가를 사람들은 코랄이라 부른다. 코랄의 특징은 수평적?선율적이 아니라, 수직적?화성적이라는 것이다. 루터의 독일 코랄이 우리나라에서 잘 안 불려지는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화성적인 음악보다는 선율적인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가락이 아름다워야 좋아하며, 같은 가락이라 하더라도 4분 음표 위주로 된 4박자 계통의 코랄 가락보다는, 리듬이 세분된 가락, 셋잇단음표가 많은 가락, 3박자 계통의 가락을 좋아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다. 그러니 여간해서는 코랄에 접근하려 들지를 않는다. 그 증거로 속칭《개편 찬송가》에는 찬송가학적으로 좋은 코랄이나 옛 헬라 찬송가를 많이 넣었었는데, 통일 찬송가를 만들 때 다 도태되고 말았다.

 

7) 루터의 찬송가 제작?출판

루터가 만든 찬송가는 그의 절친한 친구로서 당대에 유명한 음악가인 요한 발터(Johann Walther, 1496-1570)와 루프(Konrad Ruoff)의 도움으로 출판되었다. 발터는 1496년 투링기아(Thuringia)의 콜라(Cola, 혹은 Kahla)에서 태어났다. 1524년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Ⅲ, 별칭은Frederick the Wise)는 발터를 찬양대 지휘자로 임명했다. 프리드리히 3세는 작센의 선제후(選帝侯)로서 신성 로마 제국의 제도개혁에 참여했으며, 마르틴 루터가 1521년 로마제국에서 추방당한 후 그의 생명을 보호해준 종교개혁 지지자였다.

 

루터가 1523년에 첫번째로 발행한 찬송가인《새로운 영적 찬송가》(Neue geistlich Ges?nge)는 4부로 되어 있는데, 현대의 악보와 같이 통합된 피아노 보표는 아니다. 루터가 만든 4부 찬송가는 각 성부가 따로 묶여 있기 때문에 각 권은 각각 해당 성부를 부르는 사람이나 그룹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쉽게 말하면 ?파트별 찬송가?라 하겠다. 이 찬송가는 학생들이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합창할 때 쓰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찬양대는 회중이 제창을 하면 다음 절을 4부로 불렀다. 이 때 회중은 합창을 듣는다. 이렇게 찬양대의 합창과 회중의 유니슨이 어우러진 예배는 정말로 활기찬 찬양 예배였다.

루터의 두번째 찬송가는 1524년에 출판된《몇 편의 그리스도교 노래》(Etlich Christriche Lieder)인데 흔히《성가 8곡집》(Achtliederbuch)으로 불린다. 여기에는 루터가 지은 찬송 4편을 포함해 8편의 코랄이 들어 있다.

 

세번째로 1529년에 루터가 출판한 찬송가는《영적 찬송가》(Enchiridion geistlicher Gesenge)인데, 여기에는 26 편의 코랄이 들어 있으며, 가정이나 교회에서 쉽게 사용하도록 만든 회중 찬송가로서 단선율의 곡조찬송가이다.

 

발터는 1524년에《Geistliches Gesangbuchlein》이란 찬송가를 내었는데, 30곡 중 23 곡이 루터의 작곡이다. 이 책은 흔히《비텐베르크 찬송가》라고 부른다. 이것은 찬양대를 위한 다성부 코랄집으로서 플랑드르 악파의 모테트 양식으로 편곡되었고, 주된 가락은 테너 성부에 있다.

 

1529년에 클루크(Joseph Klug)는 루터의 공인 하에 50 곡을 담은《개편 찬송가》(Geistliche Lieder auf gebessert)를 출판하였는데, 앞서 나온 찬송가들보다 많이 불려졌다. 여기에는 저 유명한 ?내 주는 강한 성이요?가 수록되어 있는데 오늘날 곡조와 약간 다르다. (악보 참조).

발터가 편집한 이 찬송가에서 통일 찬송가에 채택된 찬송은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단 한편 뿐이나, 다른 찬송가에 채택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성가(성공회, 1965 : 63B, 227, 258;

②청년찬송가(생명의 말씀사, 1959 : 16, 23, 28, 50, 162;

③새찬송가, 1963: 164, 181(루터 작사), 191;

④개편찬송가, 1967: 11, 17, 37, 77, 125, 344, 5, 9, 61, 81, 103, 128(루터 작사), 155, 301, 334, 341, 367, 384, 413, 466, 511, 537.

 

마지막으로 1545년에 루터의 손을 거쳐 출판된 밥스트(Valentine Bapst)의 찬송가《Geystliche Lieder》에는 120 편의 찬송 가사와 97편의 곡조가 들어 있는데, 루터의 찬송이 28곡 수록되어 있다. 이 책 서문에서 루터는 이렇게 쓰고 있다.

ㅡ 시편은 말한다. “새 노래로 주를 찬양하라. 온 땅이여 주를 찬양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구속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에 가득 차도록 우리의 심령을 만드셨다. 이를 믿는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 자, 찬양하지 않는 자는 신약의 복음을 믿지 않고 구약의 기쁨 없는 율법에 매인 자이다.

 

루터는 찬송을 철저히 복음과 연관을 지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그를 ?복음찬송의 아버지?라고 일컫는다. 이런 독일 코랄 찬송들은, 당시에는 반주 없이 유니슨으로만 불렀으나, 나중에는 회중의 유니슨에 찬양대의 다성부 합창이 뒤따랐고, 주후 1600년 이후에 이르러 소프라노에 가락을 둔 4성부 오르간 반주가 규정되어, 회중은 오늘날과 같이 소프라노의 멜로디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8) 바하(Johann S. Bach, 1685-1750)와 독일 코랄

루터의 독일 코랄을 논하면서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를 뺄 수는 없을 것이다. 서양문명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알려진 바하는, 독실한 루터교 신자로서, 음악에 대하여 신앙적인 언급을 많이 하였고, 평생 교회 그늘에서 교회음악을 작곡하고, 오르간을 연주하며 살았다. 그의 오르간 연주는 당대는 물론 21세기인 지금도 경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였다.

그의 연주에 대한 이런 글이 있다.

 

ㅡ 바하가 라이프치히로부터 키셀(Cassel)로 초대되어 오르간 연주를 했을 때였다. 그는 페달을 발에 날개라도 달린 듯 잽싸게 밟았으며, 그가 만드는 오르간 소리는 풍요로워, 청중의 귀에 천둥 소리처럼 울려 퍼지며 마음을 꿰뚫는 것이었다. 카셀의 공작 프리드리히(Frederick)는…연주에 놀라 탄성을 연발하더니, 연주가 끝나자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는 값진 보석 반지를 빼어 바하의 손가락에 끼어주었다.

 

바하는 같은 시대인들 사이에서 뛰어난 하프시코드 연주자, 오르간 연주자, 오르간 제작자로 존경받았지만, 평생을 독일에서 살며 작곡과 연주생활을 하였다. 음악사의 전성기를 살았던 그는 이전 시대의 작곡가들이 발전시킨 주요양식과 형식, 민족적 전통들을 종합해 풍부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유명한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세 아들들도 음악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어려서 그는 아버지에게 현악기 연주의 기초를 배웠다. 그가 겨우 10살이었던 1695년경 양친이 모두 죽자, 오르간 연주자였던 맏형 요한(1671-1721) 밑에서 자랐다. 어린 바하는 다시 미하일교회 부속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했으며, 목소리가 좋아 1700년까지 소년 천양대로 교회에서 찬양을 하였다. 뤼네브르크에 있는 동안. 방대한 최신 교회음악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던 그곳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했고, 1703년 8월에는 18세의 어린 나이로 오르간 연주자에 정식으로 임명되었다.

 

바하는 특히 오르간 음악에 몰두했다. 1705년에는, 덴마크의 유명한 작곡가요 오르간 연주자인,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 -1707)의 연주를 듣기 위해, 한 달 동안의 휴가를 얻어, 뤼베크까지 300㎞나 되는 거리를 걸어가 마침내 그의 연주와 음악을 들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1724년 6월까지에는《요한 수난곡, St. John Passion》을 작곡하였고, 6월부터는 칸타타를 작곡하기 시작, 52곡이나 되는 《코랄 칸타타》를 작곡했다. 이어서 그는 3년 동안 칸타타에 전념하여, 축일과 축일예배에 필요한 교회음악 대부분을 쓰게 되었다. 1729년에는《마태 수난곡, St. Matthew Passion》을, 1731년에는《마가 수난곡, St. Mark Passion》,《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Christmas Oratorio》,《승천 오라토리오, Ascension Oratorio》등 대곡을 작곡하였다. ?마태 수난곡?에는 ?오 거룩하신 주님?의 멜로디가 반복되도록 작곡하였다.

 

9) 바하의 작곡 철학

바하는 자기 나름의 작곡 철학이 있었다. 돈독한 신앙을 가진 바하는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음악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영혼의 소생(蘇生)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이 하는 일은 재창조의 기쁨일 뿐이다.”

그는 또, ‘음악은 감정의 표현 능력이 있는데, 고통?기쁨?분노?사랑?질투?미움 등도 음악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런 기법으로 작곡을 하고 연주도 하였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기쁨은 우리 생명의 영이 확장되는 것이기 때문애, 크고 확장된 음정(interval)으로 가장 잘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슬픔이란 우리 몸의 바로 그 미세한 부분들이 수축하는 것이므로 가장 좁은 음정을 사용하는 것이 적당함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음악적으로 쉽게 말하면, 이 말은 기쁨을 나타내는 곡조는 도약적(跳躍的)인 진행으로 나타내고, 슬픔을 나타내는 곡조는 높낮이의 변화를 적게 주는 순차진행(順次進行) 형식으로 나타낸다는 말이다.

 

이의 예를 들어보자. 찬송가 115장 ?기쁘다 구주 오셨네?는 헨델의 가락을 빌려 로웰 메이슨이 패러디한 곡조인데, 기쁨의 찬송답게 멜로디가 높은 음에서 ?도시라솔파 미레도?로 내려왔다가, ?솔랄라 시시도?로 올라간다. 이후는 펄쩍펄쩍 뛰듯이 가락이 진행되는데, ?도 도시라솔 솔파미, 도 도시라솔 솔파미? 그리고 ?미미미미미파솔 파미레레레레미파? 하고 잔잔한 가락이 진행되다가, ?미레 도도라 솔파미파 메레도?로 옥타브 도약을 하고 끝맺는다.

한편 슬픔의 노래를 보자.

 

역시 메이슨이 그레고리오 가락을 편곡한 147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진행만 한다.

 

?도도레미레미 파미레미? ?미미미파미레 도시도레?

?도도레미레미 파미레미? ?미미미레도 레미레도?

 

바하의 경우를 보자. 그의 오르간 소곡집(Orgelb?chlein)에 수록된 ?아담의 죄를 통하여?(Duruch Adams Fall)의 서곡은, 찬송가 멜로디를 베이스의 불협화음의 하강하는 무거운 음정들로 작곡하여, 절망과 타락과 공포의 감정을 나타내었다.

 

위에서 예를 든 115장을 한번 분석해보자.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늘에서 주님이 내려오시듯, 멜러디가 고음에서 한 옥타브를 쏟아져 내려온다.

?만 백성 맞으라?

이 땅의 인간들이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반기는 형상이다.

?온 교회여 다 일어나?

힘찬 고음에서 세상을 향해 외치는데, 같은 가락이 반복된다.

?주 찬양하여라 주 찬양하여라?

옆 사람에게 속삭이듯, 조용히 호소하는 멜로디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주 찬양 찬양 하여라?

속삭임이 끝나고, 찬양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옥타브를 뛰어 올라간다.

 

바하의 이런 기법은 100년이 지난 1797-8년에 작곡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Die Sch?pfung)에서 웅장하게 증명된다. 전3부 32곡으로 된 ?천지창조?는, 제1주 제11곡 ‘네째날 해와 달을 창조하시는 부분’인데, 우주의 첫 일출(日出) 장면은 장엄하기 그지없이 작곡되었다. 하이든의 가장 영감이 충만한 너무나도 감동적인 표현이다. 하이든은 일출 장면을, C에서 한 음씩 위로 천천히 크레센도하며 e까지 10도를 올라가는 가락으로 표현했다. 각 소절마다 새로운 악기가 관현악을 연주하는데, 마지막 음에 가서 압도적인 포르티시모 이후 피아니시모로 변한다. 찬란한 태양의 광채는 부점 리듬으로 나타낸다.

그 직후, ‘조용한 밤이 몰래 들어오는’ 묘사는, 전체 관현악에 의한 낭랑한 음향 이후, 피아니시모로 처리하였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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