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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 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인생 성공 대신 인생 통달하기>의 줄거리 :
죄인으로 태어나 사는 인생. 그런 내 인생을 통달할 수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내 인생을 통달하는 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과정 전체는 누구나 인생을 어떻게 하면 통달할 수 있을지 그 길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대부분 인생 성공을 향해 달려가느라 인생에 짓눌려 비틀거리며 살고들 있습니다. 인생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통달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든 안 가든 각자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만, 우선 그런 길이 어떤 것인지는 알아야겠습니다.
인생 성공 대신 인생 통달
(여호수아 11:1~23)
1.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2. 및 북쪽 산지와 긴네롯 남쪽 아라바와 평지와 서쪽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3. 동쪽과 서쪽의 가나안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산지의 여부스 족속과 미스바 땅 헤르몬 산 아래 히위 족속에게 사람을 보내매
4.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백성이 많아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5. 이 왕들이 모두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에 함께 진 쳤더라
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 하시니라
본문 중심으로 <인생 성공 대신 인생 통달하기>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인생 성공과 인생 통달은 어떻게 다를까요? 인생 성공은 이 세상적인 바람과 소원을 갖고 각종 장애를 무릅쓰며 이루어 내는 삶입니다. 좀 더 작게 보자면 인생 성공이란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생기는 불만과 부족이 나의 노력이나 과정을 통해서 제거되는 것입니다. 불만이란 결국 바람과 소원으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인생 성공이란 그때그때 부족과 불만이 생길 때마다 다 이루어지며 해소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 성공을 바라지 말고 인생 통달을 바랄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 통달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상관없이 항상 유쾌하며 마음에 막힘이나 거침이 없으며 오류도 없는 삶입니다. 쉽게 말하면 해결해야 할 문제, 바라고 소원하여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문제가 하나도 없는 것이 인생 통달의 삶입니다. 이렇게 인생을 통달한 달인의 경지에 이르는 일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인생 성공은 유쾌함, 거침없음, 막힘없음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바라는 것을 이루었다고 해서 오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이루었더라도 거기에는 엄청난 오류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이미 무엇인가를 바라고 소원하는 것 자체가 오류입니다. 그러므로 인생 성공이란 오류의 인생이자 잘못된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지배하는 삶을 살면서 불만을 갖는다는 것은 오류입니다. 소원과 바람을 갖고, 불만을 해소하려고 노력해서 그대로 되었다 해도 오류는 제거할 수 없습니다. 유쾌함이나 거침없고 막힘없는 삶이 보장되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으로 태어나 인생을 삽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생에서 오류가 없고 문제가 없는 통달한 삶의 경지는 하나님에 의해 얼마든지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제시되었습니다. 그 길을 걸어가느냐 마느냐는 각자의 결단에 달렸지만, 우리는 인생을 통달할 수 있는 길이 어떤 것인지는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 정복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주전 1405년경부터 시작된 정복 전쟁은 7년 정도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진을 쳤고,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정복하고 기브온 사람들과 화친을 통해 가나안 중부 지방을 정복했습니다. 이때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을 중심으로 다섯 왕이 동맹을 맺고 기브온을 공격하자 이스라엘은 이들을 패하게 함으로써 남부 지역 정복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마지막으로 가나안 북부 지역을 정복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세 부분에 걸쳐 정복합니다. 이러한 세 번에 걸친 정복 과정은 우리 인생에 제시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인생에 통달한 달인이 될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앞으로 인생을 통달한 달인으로 살 것인지 말 것인지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인생을 통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중부 지역 정복, 남부 지역 정복, 북부 지역 정복의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북부 지역을 정복하는 내용은 앞선 지역들을 정복할 때와는 사뭇 다릅니다. 우리가 읽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북부 지역 왕들을 메롬 물가에 모이게 하신 후 한 방에 처리하시고 승리를 줍게 하십니다. 이러한 북부 지역 정복 과정의 의미를 또렷하게 알기 위하여 간단하게 중부 지역과 남부 지역 정복의 의미를 복습해 보겠습니다. 이것을 통해 북부 지역 정복이 의미하는 바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며,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인생 통달의 길도 명확해집니다.
중부 지역 정복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는 이 세상에서 어떤 문제나 난관을 만나더라도 우리의 과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더 크게 실감하는 일이었습니다. 아이 성 정복의 특징은 매복입니다. 이것은 문제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의식하여 마음을 다 드렸을 때 나타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신경을 다 쓰면서 하나님을 크게 느끼기 위한 일에 몰두하면, 내가 등 돌리고 내버려둔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이 매복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기브온 사람들과 화친을 맺은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해 주신 메시지는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문제보다 앞서 상대해야 할 대상이시고,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에 주권적 계획을 매복해 두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함으로써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보관한 성막과 성전에서 물을 긷고 나무를 패는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정리해 보자면 중부 지역 정복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신 메시지는 하나님을 크게 실감할 것, 세상 모든 문제에는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이 매복되어 있다는 것, 이러한 하나님을 나의 첫 번째 기쁨과 만족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며 하나님이 주권자라는 사실을 실제 생활 속에서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보존함이란 그 이름이 가리키는 실제 하나님께 내 마음의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을 빤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만 기억하고 의식에서 하나님을 빤히 바라볼 수 없다면, 실제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개념이 되고 종교적 신이 되고 맙니다. 중부 지역 정복은 바로 이러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제시하셨습니다.
한편, 남부 지역의 정복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을까요? 남부 지역 정복은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은 것으로부터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을 중심으로 한 다섯 왕에게 기브온을 공격하게 하셨습니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기브온을 공격한 사건은 내가 하나님께 집중하면 매복하고 있던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남부 지역 정복 과정은 내가 만나는 모든 문제의 배후에 매복되어 있는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이 실제로 이루어짐의 양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은 이스라엘이 맺은 관계의 대상들을 향해 뻗어나갑니다. 내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서는 마치 핀셋으로 집어내듯이 문제만을 해결하시지 않습니다. 내 삶의 문제와 관계된 대상들로부터 이어지는 다른 관계까지도 고려하십니다. 심지어 우박이 내리고 해와 달이 멈췄던 것처럼 날씨나 천체의 움직임까지 고려하시면서, 내 인생의 문제에 대하여 준비해 두신 주권적 계획을 수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기브온을 공격한 다섯 왕의 동맹군을 무찔렀고, 더 남부로 내려가면서 다섯 왕과 인접해 있는 다른 성읍의 일곱 왕들까지 무찔렀습니다. 관계의 관계를 이어가는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의 수행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내가 인생에서 만나는 문제에 감히 손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씨와 천체의 움직임과 관계의 관계까지 다 고려하셔서 주권적 계획을 매복시켜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고려하시기 때문에 내가 함부로 문제에 뛰어들 수 없습니다. 직접 해결하려 했다가는 모든 걸 고려하셔서 세워두신 매복된 계획에 근본적으로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부 지역 정복 과정은 바로 이러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가 문제를 대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북부 지역 정복을 통해 삶에서 만나는 문제들에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북부 지역의 모든 왕들을 메롬 물가에 모이게 하신 뒤에 한방에 몰살시키십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발생하는 모든 문제와 어려움과 난관과 변수를 한자리에 다 모아서 이미 한 방에 다 죽이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북부 지역 정복이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와 난관과 어려움이 왕들로 비유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들이 내 신경을 빼앗아 가고 내 마음을 정복하기 때문입니다. 재정 문제, 건강 문제, 가족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들은 내 신경을 빼앗고 마음을 정복합니다. 예를 들어 자식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때 마음을 정복함이란 내 마음의 기쁨과 만족과 평강이 자식 문제에 좌우되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발생한 문제에 마음의 기쁨과 만족과 평강이 좌우되는 상태가 마음을 정복당한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나의 신경을 빼앗고 마음을 정복하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다 한자리에 모아서 한 방에 몰살시키십니다. 메롬 물가의 사건이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북부 지역 정복이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메시지를 정리해 봅니다. 내 인생의 나머지 기간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나의 신경을 빼앗고 마음을 정복하려는 왕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왕들을 십자가 자리에 모아놓고 한방에 다 죽여버리셨습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그 승리를 주워 담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승리를 줍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문제는 다양합니다. 배우자가 왕일 수 있고, 자식이 왕일 수 있고, 건강이 왕일 수 있고, 돈이 왕일 수 있고, 정치가 왕일 수 있고, 국제 정세가 왕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내 신경을 빼앗고 마음을 정복합니다. 이와 같은 모든 문제나 난관이나 어려움이나 관심거리들을 한자리에 모아 죽인 사건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제 나는 승리를 줍기만 하면 됩니다. 북부 지역 정복으로 비유되는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문제를 바라보는 의식을 바꿔야만 합니다. 삶을 대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메롬 물가의 사건은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마지막 문제까지 다 모아서 한 방에 없애버리신 십자가 사건의 비유입니다. 이 십자가 사건에 맞추어서 살기 위해서는 내가 만나는 생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들을 다 모아서 죽인 사건이기에 승리를 내 것으로 삼으려면 문제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겪는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재정 문제, 가정 문제, 건강 문제, 미래 문제 같은 것들로 정리될 것입니다. 그런데 본래대로라면 이러한 문제의 크기는 티끌 같은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내 마음에서 몸보다 더 가까이 계십니다. 내 마음이 본래대로 하나님의 크기를 느낀다면 몸으로 만나는 생활 문제나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크기와 비교하자면 문제의 크기는 티끌의 티끌도 되지 못합니다. 문제도 있음이고 하나님도 있음인데 본래대로 하나님 있음의 크기를 실감한다면 문제는 상대적으로 너무 작게 느껴져서 문제로 여겨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티끌이 얼굴에 붙었다고 기겁하거나 두려워 떠는 사람은 없습니다. 티끌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파악해야 하는 문제의 본질입니다.
예를 들어 재정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도 있음입니다. 그런데 재정 문제라는 왕에게 신경을 뺏기고 마음을 정복당합니다. 이때 진짜 문제는 재정 문제가 아닌 바로 나입니다. 본래대로 말하자면 내가 문제입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있음을 본래대로 느낀다면 문제나 어려움은 티끌처럼 여겨져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문제에 신경을 다 빼앗깁니다. 문제가 내 마음을 정복하고 있습니다. 기뻐하고 행복하기 위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완전히 문제에 정복되어 식민지가 되어버린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보실 때 문제는 나입니다. 삶에서 발생한 문제들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풍랑 만난 사건을 떠올려 봅니다. 일엽편주 위에서 광풍을 만났을 때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에 질려 살기 위한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잠을 주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단잠을 주무실 수 있었던 이유는 광풍은 예수님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문제가 아니라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문제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광풍을 문제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문제는 광풍이 아닌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었다면 광풍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연합하지 못하고 광풍 때문에 공포에 질려서 아우성을 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삶에는 보이는 문제가 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있음입니다. 그런데 보이는 문제를 내 마음이 실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실감하려면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보이는 문제는 육체의 오감을 통해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육체의 오감이 아닌 믿음으로 실감해야만 합니다. 믿음이 없다고 하신 말씀을 풀어보자면 ‘너희는 육체의 오감으로 광풍을 실감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실감하기 위해 믿음이라는 제6의 감각을 작동하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신 셈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진짜 문제는 나입니다. 문제에 신경을 빼앗기고 마음이 정복당하는 내가 문제입니다. 예수님께 광풍은 있으나 없으나 똑같았습니다. 예수님께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었습니다. 이 상황을 우리에게 적용해 봅니다. 내가 예수님과 연합했다면 재정 문제가 있는 것과 없는 것, 건강 문제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미래의 걱정거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똑같아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크게 느껴진다면 예수님과 연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북부 지역 정복을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왕들의 지배력을 없애야 합니다. 문제나 어려움이나 난관이나 변수들의 지배력을 없애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나 변수나 어려움에 신경을 빼앗기고 마음이 정복된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돈 문제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면 돈 문제라는 왕의 지배력이 지속되는 상태입니다. 돈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 신경을 빼앗기고 돈 문제가 해결되어야 내 마음이 기쁘다고 여기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지 말고 돈 문제라는 왕에 의해 지배된 나 때문에 주님이 죽으신 것을 인정합니다. 그럼으로써 돈 문제라는 왕의 지배력을 끝내는 것입니다.
자식 문제로 걱정된다면 자식 문제라는 왕이 내 신경을 빼앗고 마음을 정복한 상태입니다. 그 상태를 얼른 깨달아 십자가에서 나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음을 인정하여 자식 문제라는 왕의 지배력을 끝내야만 합니다. 이것을 반복해 나갈 때 참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전에는 엄청난 문제로 느껴졌던 일들이 술술 넘어갑니다. 풍랑 만난 배에서 예수님이 잠을 주무셨듯이 문제를 의식조차 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전에는 태산처럼 느껴졌던 문제가 동산처럼 느껴지고 언덕처럼 느껴지고 점점 평지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하는 여러분들 중에는 이미 느끼고 계실 것입니다. 옛날 같으면 이렇게 편안하게 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그런데 십자가 생활화를 하는 동안 제법 마음의 편안함을 느낍니다. 북부 지역 정복이 의미하는 대로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서 승리를 주워 담는 일에 숙달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이 숙달될 수 없다면 하나님의 주권은 멈추고 원하시는 대로 주권을 행사하실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마지막 부분을 보면 아낙 자손을 물리쳤음이 담담하게 언급됩니다. 아낙 자손은 거인 족속으로서 가데스 바네아 정탐 사건에서 온 이스라엘을 겁에 질리게 한 장본인이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열 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믿음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가나안 진입이라는 하나님의 주권 행사는 미루어지고 38년 동안을 광야에서 배회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아낙 자손이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스라엘은 그만큼 인생에 통달한 상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북부 지역 정복 마지막에 짤막하게 이겼음을 기록할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 아낙 자손 때문에 38년 동안 가나안 정복이 미루어졌던 것을 생각하자면 대단한 변화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크게 느껴지는 생활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 정탐에서 보았던 아낙 자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낙 자손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크게 보는 이스라엘이 문제였습니다. 말썽만 부리는 자식을 보면서 저러다 망하겠다는 걱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말썽을 부리는 자식이 아니라 그 자식을 크게 보는 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자식이 잘못된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크게 실감하면 그런 자식도 사랑스럽고 어여쁘고 불쌍하게 여기며 무턱대고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북부 지역 정복에서 이루어진 한방의 승리처럼 내 인생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와 어려움은 예수님 안에서 다 죽어버렸습니다. 문제라는 왕들이 나를 지배하려 할 때, 내가 예수님 안에서 죽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기에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나 난관도 나를 지배할 수가 없다.’라고 인정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문제의 지배력은 사라집니다. 여러분의 자질이 어떻든, 학력이 어떻든, 능력이 어떻든, 여러분 모두는 각자의 인생에 통달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긋지긋하게 나를 옭아매고 있는 인생 성공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벗어나서 인생 달인의 길을 걷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내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발생할 모든 문제를 끌어안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심으로, 시시각각 문제와 어려움의 왕들이 나를 정복하려 할 때마다 승리를 줍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