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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정희대통령은 소학교시절부터 만 16세정도까지 구미의 상모교회를 다녔다고 합니다. 주일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하는 주일학교에 열심히 다녔고 교회연합회에서 개최하는 웅변대회와 동화구연대회에 입상을 하는 등 활동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박정희는 청소년기를 넘어선 이후 교회를 다니지 않았고 무신론을 신봉하며 사회주의 활동을 하며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인생 말년에는 불교신자인 아내 육영수여사의 영향으로 불교사찰에 혜택을 주는 정책을 많이 펴기도 했습니다.
고 김일성주석도 어린 시절 주일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탄압자라는 악명을 얻었지만 김일성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김형직은 1911년 미국의 기독교 단체가 만든 미션 스쿨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였을 정도로 기독교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강반석은 창덕학교 교장 강돈욱 장로의 둘째 딸이며 칠골교회 집사였던 사람이었습니다. 반석이란 이름도 성경(베드로가 盤石이란 뜻)에서 따온 것입니다. 金日成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매주 교회에 나갔다. 주일학교에서 김일성의 외할아버지 강돈욱은 성경을 가르치고, 그의 육촌동생 강양욱은 소년 김일성의 주일학교 담당 교사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유년주일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독실한 신앙을 가진 것처럼 살았던 사람들이 았던 사람들이 청년, 장년이 되었을 때 독재자로 이름을 날리며 기독교를 박해하는 삶을 살게되었을까? 이들에게 주일학교와 교회교육은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이런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 그들이 성장과정에 기독교와 이별하게 되었는 지 우리는 잘 알 수는 없습니다만 정확한 사실은 그들이 배우며 다녔던 유년주일학교와 신앙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깨닫고 변화되어야할 참된 신앙의 가치관과 그리스도를 믿는 참 신앙을 주일학교 교육을 통해 그들은 체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어떤 마음 가짐으로 자녀들을 가르칠 것인지 우리의 자녀들이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복된 것인지를 깨닫고 우리 모두가 참된 스승으로 우리의 자녀와 우리의 인생 후배들에게 전수할 수 있기를 다짐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는 선생님들의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가 어떤 선생이 될 것인가를 독려하는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생님의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로, 기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3절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물론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정상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 교육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았을 때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학교 교육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론적인 것이 강한 느낌을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학원은 실제적인 가르쳐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면 학교 교육은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서 모두를 가르쳐야 하지만 학원은 단기간에 효과를 내어야하기에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어떻게 하면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지 번호를 찍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든지 과정을 생략하더라도 문제유형을 보고 답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학원선생님이 이 중에 없기 때문에 지금은 편하게 설교할 수 있는데 만약 학원선생님같은 성도가 있으면 이렇게 말씀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학원은 어떻게든 고득점을 받는 방법만을 가르쳐주는 곳이라면 학교는 이런 저런 과정과 함께 인성을 가르쳐주는 곳입니다. 학원은 학생이 언제든지 떠날 수 있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단기간에 효과, 효능을 보여줘야합니다. 그러기에 학원선생님은 답을 찍는 기술, 돈을 버는 기술, 다른 사람보다 잘 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요즘 학부모님들이나 학생들이 학교 선생님에게는 감사하는 것이 줄어들고 학원선생님을 존경하며 더 따르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스승의 날인 15일을 재량휴업일로 정하고 기념행사는 물론 수업을 하지 않는 학교가 꽤 있다고 합니다. 스승의 날에 전해지는 촌지와 과도한 선물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합니다. 그런데 학원들에서는 학생들이 스승의 날을 맞아 학원 선생님에게 작은 선물을 전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은 “아직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스승의 날’을 공개적으로 ‘촌지주는 날’로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이야기했고 “스승의 날만 되면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아예 스승의 날을 없앴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상당수의 학교가 ‘촌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스승의 날을 전후해 학부모님이 개별적으로 교사를 방문하는 것을 삼가달라’는 식의 가정통신문을 보냈고 스승의 날에 기념식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경기 안양의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은 “학교에서 ‘선물을 하지말라’고 공지했지만 사실 학생들 스스로 선물을 하려고 나서지도 않는다”며 “그냥 학교에서 카네이션을 사서 달아주는 행사가 전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반면 촌지와 선물에 대한 부담이 없는 학원선생님들은 ‘스승의 날’을 기다리는 표정입니다. 학생들도 학교 교사보다도 학원 선생님들을 더 친근하게 여기고 작은 선물을 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천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김모(여·47)씨는 “매년 학생들로부터 작은 선물을 받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라며 “비록 사교육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스승의 날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에도 우리의 유익, 우리의 사욕을 위해 존재하는 스승, 선생님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돈을 모았을 때 그 돈으로 다른 보답을 받기를 원하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오로지 학생들을 돈으로 생각하고 돈이 되면 좋은 학생, 돈이 안되면 나쁜 학생으로 취급하는 선생님들이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며 어느 누구에게나 선생님같은 존재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돈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 돈을 최고가치고 생각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스승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생님의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둘째로, 참된 가치를 가지고 자기 임무에 충실한 선생님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7절입니다.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스승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스승으로서의 지식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는 수사학을 배우고 말하는 기술을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의 티칭능력과 지식전달 능력은 뛰어난 사람입니다. 사실 선생님으로서 제일 필요한 것은 자신의 지식을 제자들에게 잘 전달하는 능력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학교 선생님, 공교육을 담당하신 선생님들이 조금 분발해야하는 부분이 있음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학교선생님보다 학원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르는 경향이 늘어나는 우려속에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뉴스거리가 최근 어느 일간지에 게제되었습니다. 이 일간지에 따르면 공교육이 무너져간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선생님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선생님을 장래희망으로 꿈꾸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고등학생 118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스승의 날 감사의 표시를 학원 선생님(11%, 132명)보다 학교 선생님께 하겠다는 응답자(89%, 1048명)가 훨씬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입니다. 감사카드나 작은 선물 또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스승의 날 파티로 학교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더욱이 이 조사에서 가장 고무적인 것은 한 동안 학교 선생님이란 직업을 가지고 싶은 학생들의 숫자가 줄었다가 이번 조사에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란 직업에 대해서 ‘매우 좋다’는 의견이 27%, ‘약간 좋다’ 41%, ‘보통이다’라는 의견이 26%로 나타냈고 장래의 직업으로 선생님을 희망한 학생이 72%(848명)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을 제자들에게 잘 전달해야합니다. 한 동안 학교 선생님들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학원으로 학생들이 밀려난 것이 아닙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복음의 전달자, 스승이 되었다고 말을 할 때는 단지 권위로 위에 서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성경의 지식, 복음의 핵심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라고 하는 사람이 학생들보다 지식이 없으면 학교에서는 무시를 당하고 권위를 찾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선생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지식이 없고 믿음에 분명히 서있지 않으면 참된 스승의 위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성경의 지식과 교회의 역사와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잘 알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생님의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셋째로, 자기 역할보다 더 뛰어넘어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선생님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의 뛰어난 과거와 현재의 우수한 능력으로 제자를 키우는 스승이 아닌 아버지같은 스승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세운 모든 교회의 지도자들과 복음을 통해 만나서 자신의 제자가 된 사람들에게 영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으며 복음을 전파해 나갔습니다. 스승은 지식을 전달하며 살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 어떻게 하면 일을 잘 할 수 있는 지, 일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떻게 하면 아들, 딸이 넘어지지 않고 참된 길, 바른 길로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강원도 홍천군 동면에 가면 동화중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에 심재원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의 별명은 ‘빨래하는 과학선생님’입니다. 왜 그런 별명이 생겼을까요? 농촌 학교의 특성상 제자들의 부모님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며 새벽부터 바쁜 일손을 놀리며 일을 하시는 분들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바쁜 농번기가 되면 제자들의 교복에 때가 끼어 꼬질꼬질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지저분한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제자들을 호되게 나무랬는데 아무리 야단을 쳐도 제자들의 교복은 더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긴 심선생님은 학생들을 따로 만나 왜 옷을 빨아 입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제야 농촌지역 학생들의 사정을 이해하게 됐다고 합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기 시작한 후 심 선생님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바쁜 부모들을 대신해 제자들의 교복을 빨아 주는 일이 되었고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심 선생님은 매주 화요일마다 학생들의 교복을 빨아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학생들과 함께 교복을 빨면서 대화를 주고 받는 친구같은, 엄마같은 관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관계덕에 제자 강현수 학생은 과학경시대회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며 우수한 학생이 되었고 그 밖에 많은 학생들도 선생님을 따르며 교우관계와 학업에 있어 모범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어떤 학생은 선생님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토피가 심한 친구에게 아침마다 연고를 발라주며 따뜻한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면 친구이자 엄마와 같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선생님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최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의 유형을 조사한 결과가 있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52%, 608명)이었고 그 다음으로 잘 가르치는 선생님 26%(308명), 유머있는 선생님 11%(132명), 상담 및 생활지도를 잘 해주는 선생님 10%(120명)을 좋아하는 선생님으로 꼽았습니다. 진짜 잘 가르치는 선생님은 지식을 잘 전달하는 경우가 아닌 학생들의 필요를 잘 알고 학생들에게 관심을 보여주며 학생들과 소통하는 선생님이 잘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목사인 저도 예전에 참 싫어하는 과목, 못하는 과목을 따져보면 그 과목이 싫었다기 보다 그 과목선생님이 싫어서 그 과목을 공부를 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2학년때까지 제일 싫어하고 제일 성적이 나빴던 과목은 수학입니다. 왜 그런가봤더니 1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수학선생님인데 그 선생님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습니다. 돈따지고 촌지를 받은 학생들은 잘 돌봐주고 저처럼 돈을 가져다줄 수 없는 학생들은 구박하고 심지어 제가 가장 아끼는 몇 만원되는 만년필을 잃어버리고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5천원을 내밀었을 때는 진짜 인간같지도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 계기로 수학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또 고3이 되었을 때는 너무나 좋은 수학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던히 수학공부를 했습니다. 성적이 조금 오르기는 했는데 2년동안 워낙 수학책을 놓고 있어서 기초부족으로 많은 성적을 올릴 수는 없었습니다. 진짜 잘 가르쳐주고 진짜 인기있는 선생님을 보면 성실함과 다정다감함을 가지고 학생들의 입장에서 가르쳐주는 선생님, 학생들의 편에 서서 학생들의 감정에 동화된 선생님이 진정한 선생님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의미에서 진짜 선생님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식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되기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살피고 아이들이 혹여나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처럼 돌볼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야 진정한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 부모가 되지 않고는 참 스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참된 스승이 되어주시고 참된 부모가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며 자신 또한 참된 스승으로 참된 부모가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오늘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스승의 주일을 맞이한 이 날... 이 땅의 선생님을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영원한 스승, 우리에게 참 부모같은 스승이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이 땅의 부모로서의 모범... 이 땅의 선생으로서의 모범을 다 보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살아가실 때 우리의 자녀와 우리의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참 부모로서, 참 스승으로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