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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도 대평동의 높다란 건물에 서면 자갈치시장, 부산항, 천마산 등 부산 원도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홍영현 기자 hongyh@kookje.co.kr |
- 수명 다한 선박부품·고철 쭉 늘어선
- 대평동 일대는 거대한 설치미술장
- 녹 없애려 망치 두드리는 소리 '깡깡'
- 부품수리 골목 '깡깡이길'로 불려
- 국내 첫 조선소가 있던 곳이기도 해
오전 11시 부산 중구 남포동 6번 출구, 영도다리가 보이는 길에서 여행은 시작이다. 약초 상가를 지나 영도다리 아래 물레방아횟집 있는 골목으로 내려선다. 매일 12시 영도다리를 들기 시작한 뒤부터 각지에서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구경하러 오는 덕분에 다리 드는 걸 잘 볼 수 있는 자리에는 일찌감치 노점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최근에는 주말마다 노래공연도 한다. 그런 번잡함을 피하고 싶다면, 영도다리가 멀찌감치 보이는 해안선에서 자신만의 지점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점바치 골목을 지나 영도다리를 건너 영도로 들어간다.
■굳세어라 금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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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리조선소 주변의 쇠사슬. 마치 설치미술 작품 같다. |
다리를 건너자마자 '굳세어라 금순아'로 유명한 가수 현인 할아버지(1919~2002)의 동상이 손을 내밀고 있다. 센서가 있어 사람이 동상 앞에 서면 노래가 나온다. 송도해수욕장에도 현인광장이 있는데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오는 기계가 설치돼 있다. 피란민의 애환을 노래로 함께한 현인 할아버지를 기리는 공간이다.
동상 앞에서 계단을 따라 영도다리 아래로 내려오면 오늘의 목적지인 대평동이 시작된다. '영도 깡깡이길'을 담은 지도를 만드는 작업에서 디자인 부문을 담당한 올드뉴스의 이승엽 대표와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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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깡이길'를 걷다보면 수리중인 배를 자주 보게 된다. |
영도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배가 많이 정박해 있다. 대풍포매축비가 있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간다. 태풍이 올 때는 이 항구로 피항한 배가 꽉꽉 들어차 장관을 이룬다. 그럴 때 서로 배들이 부딪쳐 상하는 일이 없도록 배 가장자리를 따라 타이어들이 붙여 놓은 모습이 이채롭다.
원래는 스티로폼을 썼다고 하는데, 값싸게 대체할 만한 것으로 폐타이어가 있으니 대세가 됐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사진가들을 부산에서 만나 영도 일대를 안내했는데, 그들은 바로 이 일대를 사진에 담았다. 그때 봤던, 배들이 서로 어깨를 맞댄 모습이 굉장히 따뜻해 보였다.
■배들의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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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도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대평동 길 . |
이곳에서는 배를 수리한다. 정박한 배들 앞으론 선박을 수리하느라 교체한 부품들이 나와 있다. 유압기, 크고 작은 톱니바퀴들, 밧줄, 쇠사슬, 닻, 그물…품목도 다양하다.
수명이 다한 부품이 죽 늘어선 모습은 마치 설치미술 전시장 같다. 붉게 녹이 슬기도 하고, 바다에서 보낸 지난 세월을 보여주는 기름때가 묻어 있기도 하다. 그 문양이 참 자연스러워 누군가 부품을 캔버스 삼아 일부러 그림을 그려 놓은 것 같기도 하다. 굵기가 서로 다른 쇠사슬과 닻도 '전시'돼 있다.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항구의 비엔날레에 온 기분이다.
비엔날레나 전람회에 가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세숫대야 같은 일상용품을 작품으로 전시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바로 영도의 항구 전체는 하나의 커다란 비엔날레 전시장이다. 컬러풀(colorful) 영도의 매력을 새로 발견한다. "이 쇠사슬에 '영국 작가 데이비드가 만들었다'고 이름표만 붙여 놓는다면 누군가 바로 비싸게 사 가지 않을까" 농담을 하며 길을 걷는다.
이런 선박 부품이 이곳에 이렇게 많이 전시돼 있는 것은 교체했다고 바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철값을 받고 다시 판매하기 때문이다. 수명을 다하고도 마지막까지 주인에게 이익을 주는 고마운 녀석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주변에는 고물상과 자원을 재활용하는 가게가 많다. 녹슨 드럼통이나 고철을 수집해 판매한다. 고물상 앞에 늘어놓은 부품을 만나도 마치 멋들어진 설치 미술품을 만난 느낌을 받는다.
■깡깡이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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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도 깡깡이길' 지도를 보고 있는 올드뉴스 이승엽 (왼쪽) 대표와 핑크로더 양화니 대표. |
부산의 항만이 매축으로 만들어졌듯 이곳도 매축해서 형성한 항구다. 그것을 기록한 대풍포 매축비가 이곳에 서 있다. 대풍포 매축비를 지나 용두산공원과 자갈치시장, 남항대교까지 한눈에 보는 곳으로 간다. 주변 경관과 함께 우리의 행선지인 선박수리업체가 모인 곳을 본다.
이제부터는 '깡깡이길'이 시작된다. 깡깡이는 선박의 녹슨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 망치로 두들겨 페인트를 벗겨내는 작업을 이르는 말인데, 이 주변에는 그런 깡깡이 일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선박 수리 업체에 고용대 일하고 있다. 영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조선소였던 다나카 조선소가 있던 곳이다.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선박 수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올해 초 이곳 깡깡이길을 소개하는 지도가 나왔다. 지도 제작에 참여한 이승엽 씨는 "이곳은 일의 특성상 아저씨들이 많다. 화니 씨 같은 여성이 지나가면 인기가 꽤 많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선박 수리를 하는 작은 부품업체가 있는 곳을 지나면 막다른 길이 나온다. 낚시를 하는 이들이 보인다. 낮 12시 정각이 되자 저 멀리서 영도다리 상판이 올라간다. 그 주위로 개미떼같이 많은 사람이 모였다. 우리는 멀리서 유유히 다리 드는 모습을 보았다.
바다를 따라 외곽으로 돌아가면 커다란 철문 사이로 배를 수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문틈으로 보이는 배의 위용은 참으로 대단하다. 저 무거운 배가 바다에 뜬다고 생각하니 신기하다. 이 풍경도 영도 풍경, 부산 풍경이다.
골목을 따라 어느덧 대평동 주민센터 옆. 옛날에 신사였다는 유치원이 보이고 작은 시장 골목도 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분이 많으니 주변에서 식당도 많다. 일제강점기부터 창고로 쓰던 건물 곁에는 화려한 색색의 드럼통이 놓여 있다. 그 곳을 지나면 선용품 회사가 모인 센터가 있고, 그 곁에 용신당이 있다. 용신당은 신을 모신 곳이다. 선원이 많이 사는 영도에는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곳이 옛날부터 많았다고 한다.
청년사회적기업 핑크로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