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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내용)80
1. (불법) 이란
2. (성문사과) 란
ㅡ♡♡
[선문염송] 중에서.. (80편)
20201006
가섭이 다음과 같이 송했다.
법이란 법의 본래의 법은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으니 어찌 한 법가운데서
법과 법 아닌 것이 있으랴.
ㅡ♡
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방긋)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방긋)
이번 내용도 마음 법을 아주 재미있게 표현해 놓았는데요..^^
마음 법이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알림(법)도 있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법도 있는데요..
이러한 법은 마음(불성/성령/본능)이 온전히 드러나면 날 수록 극대화 된답니다.
대부분은 육식(六識)의 작용으로 인해 특히 생각이라는 작용으로 인해 마음이 온전히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이러한 육식의 작용을 소멸시키는 것이 수행이라 보시면 된답니다.
예를 들어 내 마음은 좌측을 가리키고 있는데 머리 등으로 이익 타산을 따져 우측으로 가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내 마음과 생각(몸)이 따로따로 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히 굳어져 있는 것이 중생들이라 보시면 되는데요.
여기서 이 마음이 마음 법이랍니다.
오늘 내용은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한 내용이 아닌데요.
오늘 내용은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법의 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입니다..
음..
솔직히 불법 이야기 같은 내용만 나오면 저로서는 글을 이어나가기가 참으로 어려운 점이 많은데요..
그 이유는 솔직히 쓰자니 현시대의 불교 수행문화를 비판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라 불자들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이야기들이 많아 참으로 거시기하고,
돌려서 이야기하자니 그것도 또한 참 거시기 하기 때문인데요..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이 글을 보시던 불자분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간답니다.
그러나 불법은 어디까지나 불법이기에 제 마음 법의 알림 데로 그대로 써보겠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최대한 짧게 해 보겠습니다.♡
어차피 불법에 관한 내용들은 너무 광범위해서 한두 가지만 간추려서 써 내려가 보겠습니다.
예전에 불교에서 말하는 법(法)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요..
불교에서 말하는 (법)이란 일반적인 그런 법이 아니라, 우주 만물이 돌아가는 섭리와 이치(理致)는 물론 마음 법 즉 불성의 법을 말하는 건데요.
다른 말로는 (불법)이라고도 하지요..
깨닫고 보면 단방에 아실 일지만 일반인 들에게는 이것이 좀 어려운 이야기인데요.
일반 사람들은 내 몸이 나라는 관념으로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랍니다.
반대로 내 몸의 작용들을 소멸 시켰을 때 비로소 이러한 것들이 보이는데요..
그 이유는 일반 사람들은 여기서 말하는 우주 만물의 섭리와 이치(理致)는 내 몸 밖의 법을 말하는 것이라 착각하기 쉽고..
마음 법 즉 불성의 법은 내 몸 안의 법이라 착각하기 쉽기 때문인데요..
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해하시기 어려운 문제랍니다.
참 이것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저로서도 말씀드리기가 참 답답한 구석이 많은 건데요..
그냥 보면 딱 알 수 있는 그런 것인데 말로 설명을 드리자니 참 거시기 한 그런 이야기랍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낸 몸 밖과 내 몸 안의 법이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시는 것이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나의 눈과, 귀와, 코와, 입으로 느끼는 것들은 육체의 기능으로 느끼는 것임으로 따로따로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여러분들의 마음 즉 불성은 안과 밖이 따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 이것이 서로가 답답한 이야기일 건데요..
일반 사람들은 내 몸이 전부라 보고 있고 내 몸이 진짜 나라고 보고 있기 때문인데요..
깨닫고 본성(불성/성령/마음)을 보면 안과 밖이 따로 없답니다.
내 눈 밖에 있는 것도 나요,
내 눈 안에 있는 것도 나랍니다.
유마거사는 이것을 불이(不二)라고도 표현했는데요.
이 둘은 둘이 아니라는 뜻이랍니다. (不二)
여기서 말하는 내 몸 밖이란 전 우주를 통틀어서 말한답니다.
이것을 반야경에서는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이라고도 표현하고 있는데요..
안과 밖이 모두 공(空)이요,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으로 공(空)이라 하지요.
실제로 깨닫고 본성을 보면 (일체 만물)이 하나의 거대한 끝도 없는 한 덩어리로 된 그런 것이 본성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그런데 이것이 일정하게 돌고 있고, 이것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또 본성(불성/성령/마음)이랍니다.
가섭이 지금 말하고 있는 법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일체 만물이 모두 법 아닌 것이 없다란 뜻이지요..
ㅡ♡
여기서 말하는 마음 법(불법)을..
이 이치를 가장 많이 밝히신 분이 부처님이시고 그 기록이 팔만대장경 안에 그대로 수록되어 있는 것인데요..
그래서 부처님 말씀을 (불법)이라고도 하지요..
지금 가섭이 말하는 또는 부처님이 말하는 법의 범위는 아주 넓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흔히 만법(萬法) 또는 일체 만법(一切萬法)이라고도 하는데요.
여기서 일체(一切)란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모든 것을 뜻한답니다.
그리고 만법 할때 만(萬)자의 뜻은 '더없이 큰..' 또는 '더없이 넓은.. ' 이란 뜻인데요..
깨닫고 마음 법으로 보면 가섭의 말처럼 일체 만물이 모두 법 아닌 것이 없답니다.
그런데요..
일체 모든 것들이 이 마음 법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고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마음(불성/성령/본성)이란 뛰어난 알아차림이 있기 때문에 우주 만물을 알아차리고 조화를 이루고 있답니다.
작게 보면 인간 세계만 보아도 모두가 마음 법으로 운영되어가고 있답니다.
불교에서 주문하는 내용 중 "옴마니반메훔~"이라는 주문이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옴..."
이라는 소리가 우주에서 나는 소리라고 하지요..
우주인들이 우주에서 녹음해 놓은 자료가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는데요..
한번 클릭해서 들어 보시지요..
https://youtu.be/d67GImtVBeI
나사에 의하면 전 우주에는 일정한 파장이 가득 차여 있다고 하는데요..
부처님은 물론 티베트 수행자들이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소리와 파장을 알아냈느냐 하면요.
마음자리로 비추어보고 알아낸 사실들이랍니다.
이것 또한 가섭이 지금 말하고 있는 법에 속한답니다.
왜 이것이 가능하느냐 하면요,
내 마음이 곧 우주와 하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랍니다.
이것은 마음자리가 열리고 수행 정도에 따라 가능한 것이기는 하나 마음이 열리면 즉 깨닫게 되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랍니다.
즉 내 마음과 전 우주는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달라이라마만 해도 세계의 석학들(종교, 과학, 천문학, 인문학 등의 석학들)과 토론 내용만 들어보아도 대화에 조금도 꿀리지 않고 오히려 석학들이 달라이라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들만 보아도 부처님이 밝혀 두신 기록들이 얼마나 정확하고 정밀한지 지금도 나사에서는 불교 경전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달라이라마라는 사람은 단 한 번도 정규 교육과정을 밟아보지 않은 사람이랍니다.
그런 그가 오로지 불경에 나와 있는 부처님 말씀 만으로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여기서요. 또
마음 법이 열리고 깨닫게 되면 모든 경전들은 한눈에 들어온답니다.
저만 봐도 전혀 불교에 불자도 모르는 단 한번도 이런 공부를 안 해 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는 것도 경전을 보고 들으면서 마음에 비추어지는 것들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것뿐인데요..
이것 또한 지금 가섭이 말하고 있는 법에 속한답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설명하시면서,
(삼천 대천세계)란 지금으로 치면 우주에 관한 내용인데요..
전 우주는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보다 더 많은 수의 은하계와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부처님은 그 당시 말씀하시고 계시답니다.
그러면서 어디에는 어떤 보살들이 그 나라의 생명체들에게 이 법을 펼치고 있고,
또 어디에는 어떤 보살들이 그 나라의 생명체들에게 이 법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하시고 계시답니다.
가섭이 지금 말하고 있는 법 이야기는 이런 것까지 모두 포함을 하고 있는 법이랍니다.
부처님은 오로지 마음 법 하나만으로 앉아서 전 우주를 보고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방법: 의식을 우주로 향하게 한 다음 마음의 알아차림으로 비추어보고 아는 것을 말함.)
이러한 내용들을 지금은 과학으로 겨우 알아낸 사실들을 부처님은 그 당시에 이미 알고 계셨다는 사실을 나사에서도 알고부터는 은하계의 자전 주기와 태양계의 자전 주기 등을 1겁으로 환산해서 계산해 보니 너무나 정확했다는 사실을 알고 과학자들 간에도 불교에 대한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해오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래를 한번 클릭해서 보시죠..
https://youtu.be/YtFK4qQEBAE
이렇게 부처님이 말씀하시고 계시는 (법)이란 마음 법뿐 아니라, 인간사뿐만이 아니라, 세계사 뿐만이 아니라, 우주에 관한 법뿐만이 아니라..
가섭의 말처럼 일체 만물이 모두 법 아닌 것이 없답니다.
이러한 것들을 보고 아는 것이 가능하려면 일단은 육체의 기능에서 벗어나셔야 한답니다.
특히 생각의 기능에서 벗어나셔야 한답니다.
육체의 기능은 바로 앞에 있는 것도 분간을 못 할 때가 많답니다.
이러한 (법)은 오로지 마음(불성/성령/본성) 법 하나만을 가지고 비추어 보고 아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원효대사도 일체 만물이 이 마음자리에서 나온다는 글귀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깨닫고 보기 전에는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일 건데요..
저도 이렇게 뿐이 말씀을 못 드려서 참 답답한데요..
깨닫고 마음자리를 보면 이 자리는 전 우주에 가득하답니다.
음..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일전에도 드린 말씀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알아듣기 좋을까라는 생각을 곧잘 하는 편인데요..
여러분들의 몸이 하나의 우주라고 비교해 보지요..
그 몸 안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없는 것도 있지요.
우주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그런데요.
발가락 근처에 있는 한 세포가 있습니다.
그리고
얼굴 근처에 있는 한 세포도 있습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지요..
하나는 발, 하나는 머리 쪽에서 말이지요..
그러나 이 둘은 하나의 몸에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한 몸에서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하나는 발가락 세계가 전부인 줄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고,
또 하나도 얼굴 세계가 전부인 줄 알고 있습니다.
이 둘은 같은 몸에서 죽고 또 태어나기를 반복하지만 그 사실을 모릅니다.
그런데 발가락에서 살고 있는 한 세포가 견성을 했습니다.
"아.. 내 몸과 밖은 본래 하나구나.."
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지속적으로 같은 몸 안에 있는 머리 쪽으로 마음의 의식을 집중시켜 봅니다.
그리고 느껴 봅니다.
머리 쪽의 세포가 지금 기침을 합니다..
같은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보니 그 파장을 느끼고 발가락에 있는 세포도 그 느낌을 감지합니다.. (불이/不二)
,
또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지요.. 제가 예전에 많이 들려 드렸던 내용인데요..
바람이 가득 찬 여러 개의 풍선이 있습니다.
이 풍선을 위에서 설명드린 세포라고 해도 좋습니다.
풍선 속에는 공기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풍선을 여러분들의 몸이라 비유해도 좋습니다.
공기를 여러분들의 마음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풍선 속에 있는 공기와 풍선밖에 있는 공기는 같은 공기일까요, 아니면 다른 공기일까요.?
또
풍선이 터졌습니다. (몸이 죽었습니다.)
터진 풍선 속의 공기는 어디로 갈까요.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겠지요.
이렇게 공기가 풍선 속에 있을 때에는 내 풍선(내 몸) 네 풍선(네 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풍선이 터지고 나면 풍선은 그저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 되고 풍선 속에 있던 공기는 밖과 하나가 된답니다.
사람이 죽어도 이와 같답니다.
죽으면 그냥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거랍니다.
몸은 몸대로 불성(성령/본성/마음)은 불성대로 말이지요.
견성을 하시고 본성(불성/성령/마음)을 직접 보시게 되면..
"아..! 그러네.."
이것이 깨달음이랍니다.
더 관찰해 보면..
"어.. 이것이 끝없이 뻗어 나가네..."
이것이 공부를 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살아지고 생기고, 생기면 또 살아지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일체 만물이 다 말이지요..
이것을 (법)이라 하기도 하고, (윤회)라 하기도 하고, 정확히 맞아떨어진다고 해서 정법(正法)이라고도 하지요..
이렇게
불교에서 말하는 (법)이란 그 범위가 너무 넓어서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란 불가능하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법이기 때문에 다 일일이 설명하자면 몇만 년이 걸리겠지요..
부처님도 평생을 이 법에 대해 설명하셨지만..
팔만대장경 안에도 모두 설하지 못할 정도로 그 범위는 아주 넓고 깊답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법이란 지구뿐만 아니라 전 우주를 이야기하고 있는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가섭도 본문 내용처럼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으니 어찌 한 법가 운 데서 법과 법 아닌 것이 있으랴.)라고 대답을 한 것이고요.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저도 보고 있는 이 넓은 세계를 이 넓은 마음(불성/설령)을 어떻게 한 마디로 설명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늘 [선문답] 같은 것으로는 상대의 깊이를 알 수가 없다 하는 거랍니다.
이런 것으로는 도저히 알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랍니다.
선문답 같은 것으로는 딱 거기까지만(본성까지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들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상대의 깊이를 알려면..
먼저 상대의 마음 상태부터 관찰을 해 보아야 한답니다...(불성이 있는지 없는지? 있으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상대가 마음 쓰는 것을 관찰해 보아야 한답니다. (大, 小 여부.. 큰마음 작은 마음, 대승과 소승이 여기서 갈리게 됨)
그리고 그 마음을 어떻게 비추어보고 공부를 해 나가는지를 보아야 한답니다.. (세상을 비추어보는 이것이 진짜 공부)
저는 개인적으로 가섭의 이 답변은 백번 이해를 한답니다..
제가 봐도 전 우주는 이 마음 법 하나로 통으로 굴러가고 있답니다.
사람 또한 이 법 안에 속해 흘러가고 있지요..
사람뿐만이 아니라 일체 만물이 모두 그러합니다.
그래서 일체만법(一切萬法)이라고 그러는 거고요..
그리고
진짜로 도인이라 그러면 이러한 이야기들이 술술 나와야 한답니다.
자신이 깨닫고 보고 아는 것들을 부처님의 말씀과 비교해 보면서 해 나가는 공부가 진짜 공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맨날 (공)이 어떠니.. (무)가 어떠니..
하면서 (공/무) 타령이나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처럼 세상 밖에서도 조금도 꿀림이 없이 이 법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답니다.
맨날 절 안에서만 폼만 잡고 앉아 있었지 그들이 하는 일이 대체 뭡니까?
스님이라고 하는 분들이 타성에 젖어서 손만 벌 일 줄 알았지 공부들을 안 해요.
공부도 안 하는 이런 사람들에게 무슨 대우가 필요할까요..
ㅡ
그리고 (법)이란 이치(理致)에 맞아야 한답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세상 법도 무시를 하면 안 된답니다.
지금 듣고 계시는 고승열전의 만암선사 말씀처럼..
오늘 라디오 고승열전 만암스님의 말씀이 나왔기에 한 말씀 더 보태자면.. (여러분도 같이 녹음 내용은 들어보시죠..)
사람은 염치라는 것이 있고,
세상 살이에도 (법도)라는 것이 있답니다.
세상 살이의 법을 작은 법이라 하다면..
불법은 큰 법을 이르는 말인데요,
여기서 작은 법도 제대로 못 지키는 도인들이 어떻게 불법 같은 큰 법을 지켜 나갈 수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를 자꾸 불교에 대한 비판으로 알아들으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아니랍니다. 그 반대이지요.. 늦게나마 너무 불교를 사랑하게 된 사람의 말이랍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작은 법, 즉 작은 유혹도 못 이겨내는 도인들이 어떻게 불법 같은 큰 법을 운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안 그런가요.?
어찌 선사라 하는 사람들이, 스승이라 하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삼배를 청하고, 반말은 기본이고,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운력(運力)을 자기 집 종 부리듯이 하면서 중생들의 약한 마음을 이용해 탐착을 일삼는단 말입니까?
지금 듣고 계시는 만암 선사의 이야기처럼 중들 스스로가 일을 하다가 일손이 부족할 때나 대중들이 좀 나서서 도와줄 뿐이지 어디 감히 젊은 중 놈들이 늙은 보살들에게 앉은 자리에서 따로 밥상을 받고, 수행도 안 된 사람들이 대중들에게 아는 척을 할 수 있다 하겠습니까..
저의 이 말은 비판에 앞서 스님들 스스로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가섭의 말처럼 법 아닌 것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불법)을 지켜나가려고 노력을 해야만이 이 땅에 그나마 선배 고승들이 어렵게 일구어 놓은 법맥을 이어 나갈 수 있다 하겠습니다.
어느 옛 선배 고승들이 이러고들 있었답니까..?
지금부터라도 밖에 있는 중생들에게 눈을 돌려서 진정한 불법(佛法)을 보이는 것이,
지금 가섭이 말하는 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답니다.
ㅡ
또
법이란..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고,
가뭄이 있으면 홍수가 있고,
슬픔이 있으면 기뿜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고,
죽으면 다시 태어나고 태어나면 다시 죽고,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을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輪廻)라 하는데요..
세상일뿐만이 아니라 전 우주는 이렇게 일정한 윤회(輪廻)을 하면서 이치(理致)에 맞게 돌고 있답니다.
인간의 몸만 보아도 수많은 생명체들(세포들)이 태어나고 살아지듯이..
전 우주도 일정한 법에 맞춰서 돌고 도는 이치를 부처님은 당시에 이미 비추어 보고 아셨는데요.
이렇게 넓고 광범위한 내용들을 불교에서는 만법(萬法)이라고 표현해 두었답니다.
가섭도 이렇게 끝없이 많은 법들을 설명하자니..
"법 아닌 것이 없다."
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건데요..
앞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내가
"야.!"
하면 상대는
"왜.!"
하지요.
이것도 작은 (법) 이랍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지요.
,
내가 한 손에 쥐면 다른 한 손은 손에서 놔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요, (법)이랍니다.
,
수행 또한 내가 마음을 비울 때 비로소 다른 마음으로 채워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요, (법)이랍니다.
,
요즘처럼 중생들의 마음이 허전한 세상에서 종교단체 또한 종교라는 큰 우산 속 안에서 헐벗고 가난한 중생들은 물론 무지하고 어리석은 중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보살펴 주게 되면 오지 말라고 해도 (절)이나 (교회)로 모여들기 마련이랍니다.
반대로 수행자라 하는 사람들이 무식한 것도 모자라 자꾸 손을 내밀면서 쥐려고만 대들게 되면,
어느 똑똑한 중생들이 수행을 하려고 오겠으며,
세상 살이에 시달려 괴로운 마음이라도 한번 달래보려고 도인이라 칭하는 사람들에게 친견을 청하면 30~50만 원 이상은 용돈으로 주어야 그나마 가까스로 개별 면담이 가능한 구조이니..
이것을 어떻게 불법(佛法)이라 할 수 있을까요..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한국불교가 미쳐도 단단히 미쳐가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일단 수행자는 돈과 물질에 탐착을 하는 순간 그것으로 수행자로서의 자격은 끝장이랍니다.
왜냐하면
수행의 최대 목적은 모든 것을 마음에서 내려놓고 버림으로써 해탈을 이루는 것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이 필요하면 만암선사 처럼 노동을 해서 벌어서 쓸 생각을 해야지 그래야 다른 중생들도 그것을 보고 마음이 따르는 것인데요,
베프는 불교가 아닌 반대로 대놓고 얻어먹으려고만 들면 세상 법에도 안 맞고, 불법에는 더더군다나 안 맞는 법이랍니다.
이로 인해 외면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세상의 (이치)요, (법)이랍니다.
(이 내용은 시간이 날때 옛 스님들과 요즘 스님들의 차이점.. 유식한 스님, 무식한 스님,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한번 글을 올려 보려 하는데요, 옛 스님들은 정말 똑똑한 분들만 모였답니다. 그러나 요즘 스님들은 학교나 사회에서 적응 못하고 피신 하다시피 들어오는 스님들이 대다수다 보니 이런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는 건데요.. 극소수 몇 명은 빼고요.^^)
아무튼 가섭이 말하는 (법)이란 한도 끝도 없는 법을 말하는 것인데요..
일체 만물이 모두 법이라는 것만 아시면 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법력(法力)이란 이러한 모든 (법)을 지켜 나가거나 이행해 나가는 힘(力)을 말한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누가..
불법이나 수행을 전수해 주는 데 있어 그 대가로 금전이나 그에 상응하는 물질을 상대가 주려고 할 때 그것을 뿌리칠 수 있는 힘(力)...,
이것을 법력(法力)이라 하고,
이렇게 하면서 길을 가는 도인을 도력(道力)이 있는 사람이라 한답니다.
ㅡ♡♡♡
오늘 (부록 1) 와 (부록 2)는 모든 분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라 오늘은 같은 란에 수록해 보았습니다. ♡
저번 주에 성문사과(聲聞四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미뤘는데요..
오늘은 그 뒷이야기를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이 (성문사과)는 수행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를 보는 기준점인데요.
이 기준점으로 도인들의 수준을 가늠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모두가 마음 상태를 보는 기준점이고요, 그 마음 상태에서 어떻게 언행(言行)을 이루며 살고 있느냐? 그리고 어떤 마음을 쓰면서 살고 있느냐.? 등을 보고 상대의 도력을 알아내는 방법이랍니다.
많은 도인들이 이 내용을 입에 오르내리고는 있으나 외면하고 있는 문구이기도 한데요.
그 이유는 본인과 자꾸 비교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문사과)와 자신을 비교해 보면 금방 자기 자신이 탈로 나거든요..
그러나 이것 또한 잘 못 된 수행자의 자세랍니다.
학생이 숙제를 외면하는 것과 같거든요..
수행자란 무릇 늘 자기 자신을 점검해 보고 부처님과 같은 완전한 성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답니다.
그러니 더더욱 나 자신을 이 (성문사과)에 대조해 보면서 본인의 수행에 힘써야 하거늘..
반대로 자기도 어려우니까 외면을 하면서 무명한 중생들 앞에서만 개폼을 잡는다면 그 수행자를 어디에다 쓰겠습니까..
지금부터라도 한국불교의 모든 수행자들은 이 (성문사과)의 내용을 기준점으로 수시로 자신을 비교해 보면서 수행을 이어나가야 한답니다.
이 내용은 비판의 목소리가 아니라 진정한 저의 마음의 소리랍니다.
아무쪼록 스님 내 들이나 여러분들이나 이 성문사과(聲聞四果)를 기준점으로 내가 얼마나 성장해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ㅡ♡
성문사과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니까 너무 어렵게 설명해 놓은 것들이 많네요.
그래서 (운허용하스님의 불교사전)을 기초로 제 식대로 글을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글이 길어질 수 있음으로 중요한 내용만 빼고 전문 용어는 각자가 네이버 등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제 경우도 부처님과 같이 이 성문사과(聲聞四果)의 기준점으로 상대의 도력을 평가하거나 제 자신을 되돌아보는 데에 활용하고 있답니다.
이 기준점으로 한국 스님들을 비교해 보면 정말 엉망진창임을 알 수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도력이란 불법을 지키는 힘,
또는 불법을 행하는 힘을 말한답니다.
이야기에 앞서 성문사과를 이해하자면 먼저 탐(貪) 과 진(瞋) 을 이해하셔야 하는데요.
왜냐하면 결국은 모두 이 두 가지를 내려놓고 버리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번 주에 말씀드렸듯이
탐(貪)은 욕심, 탐심, 갈애, 애착, 집착, 등을 말하는 것이고요.
진(瞋) 이란 화냄, 분노, 흥분 등을 말하는 내용이랍니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진(瞋) 보다 탐(貪) 이 훨씬 내려놓기 힘든 것인데요..
화는 참을 수 있어도 탐은 참으로 참기 힘들지요.
예를 들면 보편적으로 늙어갈수록 진(瞋) 은 점차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탐(貪) 은 늙어 갈수록 더 늘어나는 경향이 많답니다..
늙어갈수록 애들처럼 욕심이 더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탐(貪)은 내려놓기 힘든 수행일 것입니다.
도인의 세계에 있어서도 견성만 하신 분들은 젊어서는 천하를 덮을듯하지만 늙어 갈수록 자신의 안위와 노환이 걱정되어 탐(貪) 심(心)을 떨쳐내지 못하는 경우로 보시면 되는데요.
그도 이해가 가는 것이..
평생을 정해진 곳에만 살다가 늙어서라도 고생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각박 관념 등이 있어서인데요.
사람은 늙고 병들면 마음이 많이 약해진답니다.
특히 혼자 생활을 해야 하는 절 생활의 특성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도인이라는 칭호를 받는 분들이라면 모든 것에 초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물론 모든 대중들이 그를 보고 따라 하기 때문입니다.
위가 무너지면 아래까지 무너지는 것은 동서고금을 떠나 모두 같은 (이치)이고 (법)이랍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당대에 (대안 선사)나 (원효스님)처럼 당당하게 홀로 훌륭하게 도인의 삶을 살다 가신 분들도 드물 건데요..
여러분들은 아직 이 탐(貪)과 진(瞋)을 없애는 일이 여러분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중요하고 또 중요한 일인지 모르실 건데요.
여러분들이 그냥 생각하고 짐작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는데요..
탐(貪)과 진(瞋)을 없애면 그냥 착하고 선해진다는 생각 정도로만 이해하실 수도 있지만..,
탐(貪)과 진(瞋)을 없애면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지고, 뭐? 그런 것들로만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 건데요..
물론 이러한 것들도 있지만 이것은 기본적인 옵션에 불과하답니다.
인생을 훨씬 편하고 쉽게 살아갈 수가 있다고 그럴까요..
아니면 인생이 저절로 잘 풀린다 그럴까요..
아무튼 희한하게 모든 것이 잘 풀린답니다..
이것은 진실이랍니다..
인생을 아주 무난하게 살아 나갈 수가 있답니다..
ㅡ♡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성문사과(聲聞四果)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불교사전 중에서 가장 신뢰를 받고 있는 [운허용하 스님이 지은 불교사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는데요.
조금은 어렵게 쓰여있지만 뒤에 제가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성문사과(聲聞四果)란
성문들이 깨닫는 4계급
1. [수다원과] 처음 성인 축에 들어간 지위,
2. [사다함과] 욕계 9지의 사혹 9품 중에 앞의 6 품을 끊고 아직 3품이 남아 있음으로 인간과 천상에 한번 왕래하면서 생을 받아야 하는 지위,
3. [아나함과] 사다함과에서 남은 3품 혹을 마저 끊고 욕계에 다시 나지 않는 지위,
4. [아라한과] 3계의 견혹, 사혹을 끊고 공부가 완성되어 존경과 공양을 받을 수 있는 성인의 지위,
라고 되어 있는데요. 좀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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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버려야 할 것이 10가지 항목이 있는데요, 이 중에서 몇 가지가 버려져 있는가?
라는 내용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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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려운 내용이 나오네요. 이것도 뒤에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문구는 참고만 하시면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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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10 가지 항목을 둘로 나누어 보면 (오하분결)과 (오상분결)로 나뉘는데요.
오하분결(五下分結)이란
(1) 유신견(有身見). 오온(五蘊)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고, 또 오온은 자아의 소유라는 그릇된 견해.
(2) 계금취견(戒禁取見). 그릇된 계율이나 금지 조항을 바른 것으로 간주하여 거기에 집착하는 견해.
(3) 의(疑). 바른 이치를 의심함.
(4) 욕탐(欲貪). 욕계의 탐욕.
(5) 진에(瞋恚). 성냄. 노여움. 분노. 증오.
을 말하고,
오상분결(五上分結)이란
(1) 색탐(色貪). 색계의 탐욕.
(2) 무색탐(無色貪). 무색계의 탐욕.
(3) 도거(掉擧). 들뜨고 흔들리는 마음.
(4) 만(慢). 오만함.
(5) 무명(無明).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등을 말하는 내용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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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설명해 보면.. 이런 이야기랍니다.
(1). 유신견(有身見)
즉 "이것은 내 몸이다."라는 착각, 또는 "이것은 내 물건이고 내 재물이다."라는 착각, 또는 자아가 있다고 하는 착각, 오온이 나라는 착각, 나의 것이 있다는 착각, 나의 자아라고 집착하는 삿된 견해나 착각, 등을 말함.
(2). 계금취견(戒禁取)
즉 인이 아닌 것을 인이라 하고, 도가 아닌것을 도라고 하는 잘 못된 가르침. 즉 형식적으로 정해진 계율이나 금지된 사항 등을 바른 것이라고 집착하거나 착각하는 것.
(쉽게 말해 좋은 일 하면 천당 가고 나쁜 짓 하면 지옥 간다는 잘 못된 계율, 또는 절이나 교회에 보시(헌금)를 많이 하면 극락 가고 못 하면 지옥 간다는 등의 잘 못된 견해. 또는 천도재를 잘 지내 주면 극락왕생하고 못하면 지옥 간다는 말로 중생들을 현혹시켜 금전을 갈취하는 잘못된 견해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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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심(疑心)
즉 불법을 의심하는 것, 부처님 말씀을 안 듣고 의심 하는 것, 또는 갈팡질팡하는 것,
(쉽게 말해 부처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는 사람, 대표적인 것으로는 "점이나 무당질을 하지 마라.." " 대가를 받고 이법을 전하지 마라..,"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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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욕탐(欲貪).
즉 탐욕을 아직 못 버린 상태를 말함. 즉 욕구, 욕망, 야망 특히 금전적인 탐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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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의 또는 진에(瞋恚).
즉 반감, 증오, 분개, 분노, 적대감, 등의 성내고 화내는 마음을 못 버린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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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만심 (我慢心)
즉 내가 남보다 낫다, 못하다, 동등하다. 하는 등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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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들뜸, 도거(掉擧)
즉 정신을 머트럽고(이리저리 찾아다니는 것) 딴 데로 달아나게 하는 마음 작용, 모든 번뇌가 안정돼 않는 것은 이 도거하는 마음 때문임. 쉽게 말해 마음이 들뜨고 흔들리고, 불안한 마음. 정신없는 마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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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어리석음, 무명(無明)
즉 모든 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인 [12연기법] 과 [사성제]의 진리를 모르는 것.
(사성제란 1.괴로움을 알아차리는 것, 2. 괴로움의 원인을 알아차리는 것, 3. 내려놓고 버리는 것, 4. 그 후로는 도의 길로 들어서는 것, 팔정도, 육바라밀 등등 / 12연기법이란 1이 없으면 2도 없다는 진리, 즉 처음이 없으면 끝도 없다는 진리, 즉 인연을 맺지 않으면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란 뜻.)
(9). 색계욕, 색탐(色貪)
즉 인체의 감각적 욕망과 물질적 욕망을 못 벗어난 상태
쉽게 말해 육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탐욕을 말함.(식탐, 성욕, 등등)
(10). 무색계욕, 무색탐(無色貪)
즉 오온 중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중 색(色)이 없는 상태,
(이 내용은 많이 어려운 내용일 건데요.. 잠시 보충 설명을 드리자면..)
모든 사람은.. 이 다섯 가지의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이것을 오온(五蘊)이라 한답니다.
1. 색(色)은 형상과 색깔로서 형상 있는 모든 물체를 말한다.
2. 수(受)는 괴롭다ㆍ즐겁다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 등으로 느끼는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3. 상(想)은 외계의 사물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상상하여 보는 마음의 작용, 곧 연상을 말한다.
4. 행(行)은 인연 따라 생겨나서 시간적으로 변천하는 마음의 작용, 곧 반응을 말한다.
5. 식(識)은 의식하고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여기에서 (색)은 인간의 육체의 작용을 말하고,
(수) ㆍ(상) ㆍ(행) ㆍ(식)은 인간의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쉽게 말해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탐욕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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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
이 열 가지 항목 중에서..
※ [수다원과] 란
(1) (2) (3) 이 마음에서 소멸된 상태를 말함.
그 외에 것들은 아직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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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다함과] 란
(1) (2) (3) 은 이미 마음에서 소멸된 상태이며, (4) 와 (5)는 약화됐지만 미세하게 (4) 와 (5)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를 말함.
그 외에 것들은 아직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음.
ㅡ
[아나함과] 란
(1) (2) (3) (4) (5)는 이미 모두 소멸되고 (6) (7) (8) 이 약화된 상태, 그러나 (9) (10) 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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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과] 란
열가지 모두가 소멸된 상태 즉 해탈을 말함
ㅡ♡
음..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몰라도 이 [성문사과]의 기준점으로 보았을 때..
제 경우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만나본 이름난 도인들 중에는 수다원과 이상을 벗어난 도인들은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한 경우인데요..
그 이유는 모두가 다 (4) 번에서 걸리기 때문이랍니다.
얼마 전에 만난 도인은 사주와 관상까지 보는 최악의 도인이었는데요..
한국에서 최고라 손 꼽히는 도인이 이 정도인데 다른 분들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참으로 옛 선배 고승들의 얼굴에 똥칠을 하는 것도 유분수지?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떡할 겁니까..
한국 불교계가 스스로 반성하고 개혁을 하지 않는 한 한국불교는 중국불교를 그대로 답습할 공산이 크다 하겠는데요.
이쯤 하기로 하고요..
가섭의 법 이야기가 나와서 여기까지 왔네요..^^
이 뒤로도 [성문사과]에 대한 저의 이야기도 많이 적어 두었는데요..
글이 너무 길어져서 올리지 못했습니다.
ㅡ♡♡
글이 너무 길어져서 오늘 (부록 3) 달라이라마 아야기는 쉬겠습니다.. ^^♡♡
성불하십시요. . (방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