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사감과 러브레터(1925)
★ 작품의 줄거리
C여학교 교원 겸 기숙사 사감 B여사는 못생긴 노처녀로 쌀쌀맞기 그지없는 독신주의자이며 기독교 신자인데, 학생들에게 매우 엄격했고 매서웠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여학생들에게 오는 '러브레터'이다. 남학생으로부터 아무 까닭 없이 편지를 받게 된 학생은 사감에게 불려 가서는 추궁을 당하고, 그 남자에 대하여 미주알고주알 캐고 파며 얼르고 볶아 대는 데 시달린다. 두 시간이 넘도록 문초를 한 끝에는 사내란 못 믿을 것이며, 마귀라고 한참 설법을 하고는, 악마에게서 어린 양을 구해 달라고 하느님께 눈물까지 흘려가며 기도를 한다.
그녀가 둘째로 싫어하는 것은 남학생들이 면회를 오는 것인데, 무슨 핑계를 대어서라도 돌려 보낸다. 이로 말미암아 학생들이 동맹 휴학을 하고, 교장으로부터 설유까지 들어도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
이 기숙사에 금년 가을 들어서 괴상한 일이 발각되었다.
잠든 시간에 난데없이 깔깔대는 웃음과 속삭임이 새어 흐르는 일이 생겼는데 학생들은 추측이 난무했다. 어느 날 세명이 함께 깨어나 이 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여자에게 어떤 남자가 사랑을 간절히 호소하는 소리였다. 세 학생은 사내 애인이 사랑을 참다못해 기숙사 담을 넘어 찾아온 것이라 생각했다. 꿈결같은 소리에 세 처녀는 뺨이 달아올랐다.
한 처녀의 제안으로 현장으로 살금살금 다가가게 되었다. 그 진원지는 놀랍게도 B사감의 방이었다. 안에서는 여전히 사랑을 고백하는 소리가 난다. 한 처녀가 방문을 빠끔히 열었다. 불은 꺼진 채 침대 위에는 기숙생들에게 온 러브레터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고, 사감 혼자 두 팔을 벌리고 애원하며, 키스를 기다리듯 입술을 쫑긋이 내밀기도 한다. 그러다 제물에 자지러지듯 웃다가는 다시 편지 한 장을 얼굴에 문지르며 사랑을 확인하는 말을 한다. 그 소리는 울음의 가락을 띠고 있었다.
처녀들은 놀란다. 미친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는 불쌍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눈물을 닦는다.
★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사실주의 소설
▶ 배경 :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고 일정한 규칙에 다라 생활해야 하는 C여학교 기숙사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징 : ① 설명적 묘사체 ② 결말부분에 이르러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어 독자의 흥미를 고조시키는 종말 강조, 경악 강조의 기법을 사용함
③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체
▶ 주제 ⇒ 위선적인 인간상 풍자, 위선적 자아에 대한 비판과 연민
▶ 출전 : <조선문단>(1925)에 발표함.
★ 인물의 성격
① B사감 → 딱장대요, 찰진 야소꾼으로 유명한 사십에 가까운 노처녀인데 본능을 숨기고 권위의식을 내보이다가 작품 후반부에 가면 자신의 본능을 은밀히 드러낸다. 그러나 이는 그녀가 자신의 양면성을 아무도 보지 않는 한밤 중에 독백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성격적 변화라고 볼 수는 없다. 이중적인 성격으로 풍자의 대상이 된다.
② 세 처녀들→ B사감의 본능적인 면을 발견하고 B사감을 동정하기도 하고 정신병자로 생각하기도 하는 기숙사 여학생들이다.
★ 작품의 구성
① 발단 : B사감의 외양 묘사를 통한 성격제시
② 전개 : 러브 레터에 대한 B사감의 반감과 괴벽을 구체적으로 제시
③ 위기 : 새벽 한 시경에 난데없이 깔깔대는 웃음과 속살속살하는 말이 새어 흐르는 일이 계속되자 학생들이 잠을 깨고 소리나는 방을 찾는다.
④ 절정 및 결말 : 소리의 출처가 B사감 방인 것을 안 세 학생이 문을 열어 사감의 행동을 엿본다. 처녀들은 경악하고 사감의 본성이 드러난다.
★ 이해와 감상
◈ 이 작품은 기숙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소재로 하여 인간의 이중적 심리상태를 사실감 있게 형상화한 소설이다. 본능과 권위의식이라는 대립구조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는데,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애정의 본능을 감추고 살았던 B사감도 끝내는 그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B사감이라는 위선적 인간형을 해부함으로써 그녀의 이중성을 조소하고 그 정체를 폭로하는 분위기로 극은 진행되어 간다. 그녀의 이중성은 결국 자신의 열등의식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 B사감에 대해서 이 소설은 부정적 측면만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작품 결말부에서 한 처녀는 그녀의 기괴한 행동을 동정하고 이해한다. 억눌린 본성에 대한 인간적 아픔이랄까, 비정상적 인물의 풍자 뒤에 다가오는 일말의 연민의 감정(페이소스, pathos)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서 작가적 역량을 볼 수 있는데, 풍자와 더불어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그만큼 인간에 대한 탐구의 깊이가 진지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 소설은 웃음과 눈물의 미학이며, 비판과 애정의 세계를 담은, 짧지만 긴 이야기이다.
◈ 두 개의 자아와 아이러니 → 낮 시간의 자아(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시간, 사회적 자아)와 밤 시간의 자아(자연인으로서의 자아, 개인적 자아), 이 두 개의 자아를 동시에 지니며, 이 두 개의 자아의 상이성은 아이러니를 유발하게 된다. 아이러니의 정신은, 격차를 통한 웃음과 비판을 노리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B사감의 이중적 행동을 통해 사감의 허위성을 드러내고 그것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 이 작품의 휴머니즘에 대해 말해 보자.
⇒ 이 작품의 결말은 결국 사감에 대한 애틋한 연민을 품는 여학생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처음에 여학생은 사감의 우스운 행동에 대하여 깔깔거리다가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며 이해하는 단계를 보인다. 여기에서 휴머니티는 발생한다. 그녀가 그런 모순에 찬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인간의 모습이라면 그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는 그 점을 극화하는 것으로 소설을 끝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