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플리퍼 ‘스토리보드’의 두 번째 시간이다. 지난 시간 증오의 연쇄와 화합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만큼, 이번 주는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모험 활극을 선정했다. 무대는 메인 스토리 3장으로, 시로를 동료로 삼은 아르크 일행은 광활한 바다가 펼쳐진 세계에 도착한다. 한 가지 불상사가 있다면, 하필 착지한 곳이 해적선의 갑판이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해적선의 선원이 아니다. 아르크 일행이 우연히 구출한 인어 소녀 ‘아멜리아’다. 주체할 수 없는 하이텐션을 어필하며 종횡무진 바다를 누비는데, 문제는 주인공 일행과 모험하며 경험을 쌓고 성장하더니 해적으로 전직하는 것이다.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그녀의 여로를 짚어보자.
오늘의 키 퍼슨 ‘아멜리아’
아멜리아가 등장하는 메인 스토리 3장 ‘대해의 끝’은 육지가 사라져 망망대해가 별을 뒤덮은 세계다. 주민들은 배를 타고 생활하며, 드문드문 인공 건축물인 해상 도시가 존재하는 정도다. 하지만, 이건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바닷속에는 마물과 인어가 살고 있으며, 아멜리아는 그런 해저의 주민 중 하나다.
위 프로필의 성격과 한줄평을 보고 ‘뭔가 이상한데?’라 생각했다면 정답이다. 아멜리아는 월드 플리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4차원 캐릭터다. 텐션이 매우 높고 행동력도 굉장해 대부분의 주변 인물이 그녀에게 휘둘리고 있다. 실제로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다들 ‘나는 이 의식의 흐름을 못 따라가겠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물론, 여느 서브컬처에서 그렇듯 이런 말괄량이를 휘어잡을 인물이 한 명 쯤은 있다. 함께 메인 스토리 3장에 등장하는 ‘마리나’다. 붉은 칼날 해적단의 리더이고, 이 세계에 도착한 주인공 일행과 함께 모험을 이끄는 핵심 조력자다. 다행히 극악무도한 해적은 아니고, 상인을 호위하는 협객에 가깝다.
아멜리아가 그녀라면 꿈쩍 못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다를 헤엄치던 중 해적의 그물에 낚여 어항 속 활어 신세가 되었고, 이를 우연히 아르크 일행과 마리나가 구했다. 그 후 아멜리아는 그녀를 언니라 부르고 따르게 되었으며, 해적을 동경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결론이 이해가 안 된다고? 진지하게 생각할 것 없다. 흐름에 몸을 맡기고 분위기를 즐기면 된다.
아멜리아의 기묘한 모험
아멜리아는 초반에 조연으로 등장하며,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한다. 앞서 언급했듯 해적선의 활어 신세로 아르크 일행과 조우하는데, 마침 해적들이 그녀를 잡아먹으려고 하던 차였다. 왜 인어를 잡아먹는 고하니, 일본 설화 중에는 인어 고기를 먹고 불노불사가 된다는 ‘야오비쿠니’ 이야기가 있다. 어째서 서양 분위기의 무대에서 일본 설화가 돌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그냥 넘어가자. 이번 시간에 이런 걸 일일이 지적하면 피곤해진다.
그녀가 다시 등장하는 후반에는 해저로 무대를 옮긴다. 마리나의 해적선이 크라켄과의 접전 후 침몰하기 때문이다. 아르크 일행이 정신차린 곳은 월드 플리퍼가 숨겨진 성역으로, 다행히 아멜리아가 걸어준 마법 덕분에 익사하지 않을 수 있었다. 본격적인 합류는 잠시 후인데, 등장 시간은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남기고 퇴장한다.
친구가 세뇌당했어? 그게 지금 중요해?
그녀가 재합류하는 시점은 아르크 일행과 성역의 인어들이 한바탕 부딪힌 이후다. 아르크 일행이 인어들을 보고 ‘아멜리아와 같은 인어인가 봐’라고 말하자, 그들이 아멜리아를 납치한 범인으로 오해한 것이 원인이다. 당연히 일행은 해명하려고 하지만, 일반인은 따라갈 수 없는 하이텐션이 인어의 종특인지 말을 듣지 않는다. 다행히 아멜리아가 나타나 상황을 정리하나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우리의 머리를 어질하게 만들 대상이 다른 인어에서 아멜리아로 돌아왔을 뿐이다.
아멜리아의 본격적인 기행은 이제부터 시작한다. 아르크 일행, 정확히는 ‘마리나 언니’가 성역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니 손수 길 안내에 나선다. 당연히 ‘성역’ 씩이나 되는 곳이니 다른 인어들이 말릴 법도 하지만, 그런 규정을 아멜리아가 신경 쓸 리 없다.
다음 장면은 아멜리아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추후 보스전에서 ‘야도리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야도야도’란 거대 소라게가 나타나는데,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어릴 적부터 함께 놀던 소꿉친구라고 한다. 그런데 웬걸, 야도야도는 세뇌당해 에밀리아의 인사를 무시하고 흉포하게 날뛰기 시작한다.
앞서 프로필 이미지에서 아멜리아를 ‘세뇌 치료(물리) 전문가’라고 소개한 이유가 이 장면 때문이다. 세뇌당한 건 안중에 없고 인사를 안 받아주는 태도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일행을 몰고 소꿉친구를 집단 구타한다. 정신을 차린 야도야도가 끔찍한 꼴을 당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건 이쪽이 할 말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얘네 정말 친구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
은연 중 무수한 떡밥을 푸는 후반부 스토리
야도야도의 세뇌 치료를 마친 아멜리아와 일행은 월드 플리퍼가 위치한 성역 내부로 이동한다. 이 무렵을 전후로 많은 떡밥이 나와 해외 서버 유저들은 미심쩍다는 시선으로 지켜본 바 있다. 마치 현대 백화점을 보는 듯한 고층 빌딩과 철골의 잔해, 에스컬레이터가 대표적이다. 이에 ‘이 세계는 바다에 가라앉기 전 상당한 문명을 이루었던 것 같다’는 언급이 나오나, 그 이상 자세히 다뤄지지 않은 채 이야기가 끝난다.
아, 오늘의 주인공 아멜리아의 행적도 지나칠 수 없다. 세계의 비밀 등 이야기 중심에 관련한 인물은 아니지만, 썩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일행이 연금술사를 쓰러트린 후 티배깅으로 멘탈을 공격한 것이다. 티배깅이 왜 중요한 일이냐고?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우리가 심연을 볼 때, 심연은 아멜리아를 들여다본다
여기서 끝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녀의 기묘한 모험은 이벤트 버전으로 등장한 ‘아멜리아(1.5주년)’의 개인 스토리로 이어진다. 위 일러스트는 새롭게 꽃단장한 아멜리아인데, 어딘가 이상하다. 지느러미처럼 생긴 귀가 사라졌고 두 다리와 난데없는 기관총이 생겼다. 공부하다 질린 차에 오래된 책을 한 권 보고는 ‘좋아, 결정했어!’라고 뛰쳐나간 결과가 이것이다.
아무튼 그녀가 쪽지 하나만 남긴 채 금단의 서를 들고 사라지자 성역에는 비상사태가 발생한다. 이에 아르크 일행과 할아버지가 그녀를 찾아 나섰고, 다시 만난 아멜리아는 해적 인어 공주가 되어있었다. 마리나와 함께 탐험하던 중 마물의 습격으로 침몰할 뻔했고, 그 와중 우연히 보물을 삼켰더니 다리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기승전결이 이상하다는 점은 이해한다. 이를 직접 본 아르크 일행도 ‘있잖아. 솔직히 이해가 안 되는데?’, ‘설명해줘도 아무것도 모르겠어’라는 반응을 보였으니까.
과정이 어찌 되었든 다리를 얻은 아멜리아는 마리나 언니와 데이트 삼아 사이버 펑크 세계를 질주하거나 해적단을 꾸리는 등 자유분방하게 여행을 즐긴다. 마지막 여행지는 그녀의 고향인 바다에 가라앉은 세계로, 바닷속에서 해적선을 일방적으로 공격해 침몰시키는 전술에 마리나로부터 ‘졸렬한데?’란 칭찬(?)을 듣는다. 사실 공격받은 해적선의 선장이 그녀를 잡아먹으려 했던 점을 고려하면 당해도 싸다.
무수한 기행을 펼친 후 비로소 아멜리아의 행적의 배경과 속마음이 드러난다. 하늘을 동경해 수면으로 올라온 날 해적에게 붙잡혔으며, 내심 다른 이들이 자신을 알아주길 바랐다는 이야기다. 메인 스토리에서는 태연하게 하이텐션으로 떠들었지만 사실 잡아먹히기 직전임에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할 만큼 무감각한 상황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녀가 마리나를 동경해 해적 선장이 된 이유도 생각보다 복합적인 셈이다. 멋지게 자신을 구해준 마리나의 모습, 그리고 그녀가 월드 플리퍼를 이용해 다른 세계로 떠나자 붉은 칼날 해적단의 뒤를 이어 악당을 토벌해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청소년 특유의 방황이 깔려있었다. 물론, 그건 그거고 기행은 기행이다. 혹여 월드 플리퍼에서 파란 장발을 나부끼는 인어나 기관총을 든 해적 소녀를 만난다면 주의하자. 어떤 하이텐션 기행으로 당신의 정신을 쏙 빼놓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