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에 짓기 시작하여 200명의 장인에 의한 3년간의 작업이 끝나자 라나크 가족이 성에 입주했다. 그러나 내부 장식이 완성되기까지는 12년이 더 걸렸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난 윌리엄 라나크는 남오스트레일리아의 금광 지대에서 은행업으로 경력을 쌓아 뉴질랜드 남섬 서쪽의 더니든에 위치한 오타고 은행 지점장이 되었다. 수완이 탁월한 사업가였던 그는 자존심 또한 대단했다. 아들 로널드와 함께 차를 타고 오타고 반도의 고지대를 돌아다니면서 그는 웅장한 가족 저택이 들어서면 가장 잘 어울릴 장소를 찾았다.
이 성은 그의 첫 아내 엘리자를 위해 고딕 부흥 양식과 식민지 양식의 혼합으로 지었다. 건축 자재와 가구를 고르는 데에 그는 비용을 전혀 아끼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고용한 장인들과 더불어 이탈리아산 대리석, 영국산 타일, 베네치아와 프랑스산 유리가, 웨일스산 점판암 등이 사용되었고, 목재는 뉴질랜드 산 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이국적인 종류의 나무로 정원을 꾸몄다.
헤르쿨라네움 유적지에서 발견된 욕조를 본 따 만든 육아실 1t짜리 대리석 욕조도 있다.
1886년, 윌리엄이 가장 귀여워했던 딸인 케이트의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아 성에는 무도회장을 새로 직기도 했다. 하지만 불행히 그녀는 생일을 맞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고, 이 무도회장은 그녀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라나크가 정치가가 된후 이 곳은 뉴질랜드의 유명 인사들의 접대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1898년 윌리엄 라나크는 국회 건물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유효한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가족 간에 다툼이 일어났고 결국 성은 팔리게 되었다. 정신병원과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군인 숙사로 이용되면서 성은 심각하게 훼손되어 수리가 필요한 지경이 되었고 1967년 바커 가에서 성을 사들여 복원에 착수했으며 대중에게 공개했다.
라나크 성은 오늘날 더니든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 중 하나이며, 뉴질랜드의 유일한 성으로 과거의 명성을 다시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곳 1001선에 소개되기도 한 더니든의 대표적 관광지.
*참조: www.larnachcastle.co.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