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는 그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다. 무수히 넘어졌기에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버린 것이다.」
「소중하지만 늘 곁에 있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연습,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게 아닐까?」
2007년부터 다큐멘터리 디렉터로 일해 온 작가는 그동안 일을 통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관점에서 세심하게 느낌을 전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일 때문에 만난 사람들이지만 그들을 취재할 때는 대상자를 어떤 순간에도 그들을 수단으로 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편백나무 숲에서 치유를 목적으로 살고있는 암 환자를 만날 때도 프로그램을 잘 만들기 위한 면담이 아니라 그들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담으려고 노력했고,
자신의 남편과 바람난 친구를 단죄하고 옥살이를 하고 있던 여인을 취재할 때도,
21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그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을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서 용서하고 있던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대했다.
어린아이들의 재활 병동을 찾아서는 매번 부딪치고 넘어지면서도 또 다시 일어나서 걷긱를 계속하는 아이를 보고는 의미 있는 삶의 깨우침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그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다. 무수히 넘어졌기에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기억에서는 지워졌겠지만 아기 때부터 몸을 뒤집느라고 애를 쓰고, 뒤집고 나서는 기어보려고, 그리고는 앉아보고, 일어서 보려고 넘어지고 깨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은 걷고 뛰게된다.
좌절이라는 구렁텅이 속으로 빠지지 않고 생을 살아가는 것이 모든 인간의 공통점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작가가 인용한 정헌종의 <방문객>이란 시란다.
우리가 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이렇듯 소중한 인연이다.
이 말을 따르자면 아마도 나는 수천여 명의 인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된다.
그러니 비록 63년을 살았지만 나를 스쳐간 인연들을 생각한다면 나는 벌써 1만년은 살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아직 깨우치지 못하고 시기하고 증오하는 대상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프고 안타깝다.
「우리에게 3년은 너를 만나서 행복한 시간으로 남아 있는데 너에게는 후회의 시간이었다고 하니 조금 슬프다.」
역시나 인연에 대한 소중한 교훈의 이야기다.
누군가를 만나서 즐거웠던 기간이 시간이 흐른 뒤에 생각해 보니 그 누군가를 만났던 소중함은 잊어버리고, 그 기간 동안 그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일을 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후회는 그 때 그 인연을 덧없게 만드는 악행이리라.
이런 일들은 너무나 흔하게 일어난다.
남자들이 2~3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기 쉬운 군 생활, 자신이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나서 그쪽으로는 가고 싶지 않다는 후회 아닌 일반적인 증오!
다행히도 나는 군 생활도 다시 해 보고 싶을 정도로 보람된 것이었고, 32년의 직장 생활도 후회 없이 일했기에 위로는 되는 부분이지만 내 생의 모든 부분이 만족스러웠을까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작가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후 사제관을 찾아가 촬영을 하면서 추기경을 기억했다.
【당신이 태어났을 땐 당신만이 울고 주위의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땐 당신 혼자 미소 짓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울도록 그런 인생을 사십시오】
추기경의 말씀이다.
성직자로서는 당연할 수 있는 얘기겠으나, 추기경의 남은 재산은 총 300만원 이었고, 각막을 기증하는 등 모든 것을 이 땅에 돌려주고 가셨다.
그리고 남긴 마지막 말씀은 【서로 사랑하세요】 라는 말씀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나’ 라는 사람이 죽었을 때 주변의 사람들이 울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 죽고나면 알 수도 없는 일이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ㅠ ~~
타인에게 함부로 동정하지 않는 태도를 얘기하면서는 배우 ‘구교환’과 인터뷰한 이야기를 한다.
구교환이 독립영화를 영화를 찍을 때 고생한 스태프들을 향해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던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성심을 다하고 즐겁게 일을 한 스태프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실 보통의 생에서 남들을 위로한답시고 ‘미안하다’ 라던가 ‘안 됐다’는 등의 말을 쉽게 하고 지낸다.
그러나 모두가 납득할 수 있듯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닐까?
자신의 위치에 불만을 갖고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마도 그들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아닐까?
누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세상에 하찮은 일은 그 어디에도 없지 않을까?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따뜻한 사무실에서 펜대를 굴리는 사람이나, 무더위에 헬멧까지 쓰고 길거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나 모두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부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2009년 3월 소록도에 다리가 연결되면서 취재하던 중 만난 한센병 노부부가 작가의 어머니 수술 소식에 「우리가 평생 네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해 줄께」라고 한 것에 눈시울을 적셨던 이야기가 보였다.
그 노부부는 왜 다른 이를 위해서 평생 기도한다고 했을까?
1985년 소록도에 심부름차 이틀 동안 들렸던 기억이 난다.
성당에 기증된 성서 테이프를 한 박스 들고 고흥 녹동에서 배를 타야 했던 시절.
선착장에 내려 고요셉 신부님(멕시코)이 계시던 사제관에 들어설 때까지 철조망이 둘러쳐 있던 구역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환자분들을 보면서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 날 성당에서 장레식이 있을 때, 그곳에 모인 분들과 미사를 볼 때는 두렵고 무서웠던 모든 생각이 바뀌었다.
그분들은 모두가 평온해 보였으며, 사랑의 마음이 넘쳐 흐르는 듯 했다.
따로 흩어져 있는 여섯 마을을 둘러보니 꽃과 나무들도 예쁘고 멋졌으며, 닭과 돼지는 어디에서 본 것에 비할 바 없이 살이 통통하게 쪄서 건강해 보였다.
다시 말해 그분들의 생활은 미련했던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너무 행복해 보였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니 그분들은 자신의 무엇인가를 위해서 기도하기보다는 다른 이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다.
일본의 호스피스 전문의인 오츠 슈이치를 소개하는 작가의 글을 보면 슈이치가 암 말기 환자 1,000명에게 물어본 ‘가장 후회되는 일’이 정리되어있다.
빈도가 높은 답변 중에는 결혼을 했더라면, 자식이 있었더라면과 같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담배를 못 끊고, 치료를 무시한 것과같은 건강에 관한 것도 있고 스물다섯 번 째에는 신의 가르침을 모르고 산 것도 후회했지만 있지만 제일 많은 답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이었다.
무엇보다도 많은 후회가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것이라니...!
너무나 당연하다.
【임종의 순간에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고 흐뭇한 미소를 띄우고 죽을 수 있음은 남편을, 자식을, 친구를 열심히 사랑한 기억밖에 더 있겠는가?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들중에서 보석 같은 사람과 만난 기억밖에 더 있겠는가?】
라는 박완서 작가의 글에서처럼
사람들의 생에 있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 될 것이다.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당신이 있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못해 준 것이 말기 암 환자들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에 이르렀을 때도 후회되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