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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경 청천면 향우회 史***
1.향우회 사무실; 상주 사무실(회장 댁)
2.향우회 연혁;
①1986. 8월.-천호동 고려회관에서 강래훈.고종석씨등 청천사람 몇이 만나
청천면 향우회를 조직하자고 의견합의
②1987. 10. 12-제1회 월례회-청천주민 발기인 8명 참석. 향우회칙의결. 임원구성.-초대회장;신상조(청천교 16회졸). 감사;강래훈
총무 ;고종석 선임. 발기회원 8명. 월1회 12일 월례회실시결의.
③1988.12.12-정기총회 겸 망년회-제2대회장;정태희씨 선임(청천교18회)
④1989.12.12-정기총회에서3대회장선임-박순철(청천교21회)씨
⑤1991년.12.12-정기총회.4대회장;강래훈씨.(3.5년) 5대;김창호씨(3년)
6대;남직현씨 (3년)등 3대 10년간. 회원70여명 최고의전성기였슴
7대;서기천. 8대;박헌식 9대;홍건표. 10대;정종일. 11대;심문보.
12대;이상선-2009년 현재
⑥2003년 가을 ;강래흥씨 재경괴산군민회 부회장에 피선됨
⑦향우회 기금으로 청천농협신축개관식기념품. 청천양로원방문-금일봉.
용화온천저지투쟁위원회 향우회.청천교25회동기회와 합동방문격려;금일봉
청천노인회;금일봉. 청천지킴이공원조성비;금일봉.
청천교졸업생체육대회;매년 금일봉. 청천청년회의소 주관대회 매봉축제. 청 천문화축제. 청천중. 신월교 .어룡교 졸업생체육대회-금일봉.
⑧강래훈회장;1999년 용화온천저지 대법원 승소판결 충북도문화축제에서
용화온천저지운동 충북지사공로 표창받음
3.향우회의 발족과 이후의 발자취
1)초기 향우회 발단과 조직
서울강동구 천호동 고려회관을 운영하는 고종석씨댁엔 청천사람들 몇몇이 드나들며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며 우정을 돈독히 하는 장이었다.
신상조. 정태희.박순철 고종석. 김학수. 한상준. 심영섭. 황인구씨등 8명이 그들이며 이들은 모임을 만들자데 합의. 회명도 없이 그저 고종석씨를 회계총무로 하고 월 1인당 5천원씩갹출. 1년여간 약 30만원의 기금을 적립하였슴. 1986년 아시안게임 관계로 태능으로 발령받아 청주에서 올라온 강래훈씨가 1987년 10월 20일 고려회관에서 기존청천회원들과 합세. 향우회 발족을 합의. 이들 9명이 발기인. 회명은 재경청천면향우회 .매월 12일월례회.
회장; 최연상자이신 신상조씨(청천16회-당시62세)를 선임. 감사; 강래훈.
총무재무; 고종석씨 이로써 향우회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2)향우회의 기반확대와 번창
신상조회장님 재임 1년간은 청천면민들 소재파익에 주력. 이무렵에 구회원 9명에 신입 김춘배(청천24회)윤광현.이상복(청천25회). 우정구.허소학(26회) 김사만(청천27회) 임광호.이상선(청천29회)등 10여명의 고향회원들이 입회를 했으며, 2년차 1989년 2대 정태희회장. 임광호총무. 강래훈감사로 이어지고 1년후 3대 박순철회장. 임광호총무의 유임. 임총무와 그동기들의 획기적인 발상과 노력으로 청천면 향우회원입회가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창설 3년만에 회원 40여명. 기금 800여만원으로 늘고 둘레의 김학수. 심영섭.한상준 고종석.강래훈씨등의 협조로 27회 강래흥.정종일.이명원. 김두현씨등이 입회. 우덕문.음재이.이달원.조항석 김정헌.이장희.정세근.김정조.김재영.정영준.박재억씨등 청천교 선후배님들이 대거 입회하여 향우회의 면목이 일신되었으며 한편 당시 재경괴산군민회엔 청천의 김재주광명관광사장(청천26회)이 부회장직을 맡아했으며 김부회장도 입회의사를 밝혀왔다.
3)향우회의 전성기 10년이 도래했다.
창설 4년차 1991년 12월 망년회겸 정기총회에서 강래훈(청천교25회)씨 회장선임. 부회장 우덕문(청천교23회)씨 고종석(청천26회)씨 두분. 총무 이명원씨(청천27회-보건연구원 서기관) 재무 김두현씨(청천27회;제일은행 서울지점장) 감사 김춘배씨(청천24회)로 임원이 일신되고 월례회장소를 교통의 요지 종로5가 금강식당(회원 이상복씨 운영)으로 옮기니 회원집회가 한결 수월해졌다. 이때 입회한 청천교 24회부터 33회까지의 신입회원들이 3년여동안 30여명이 넘는바 대략 (직급생략) 24회 김창호.감상훈(군민회장) 채규식..최원우.이필우씨. 25회 남직현.박헌식.김용대.이종황씨. 26회 고상득.김봉진.김재주.김사흥. 27회 김재성.서기천. 28회 강래진.심문보. 29회 홍건표.김정헌. 30회 안재인. 31회 한충희등이었으며 3.5년후 5대회장 김창호씨(청천24회-3년재임) 6대.남직현회장(청천25회-3년재임)등 세 회장 10년 재임기간에 회원이 무려 70여명으로 확장 이때 입회한 분이 (청천 졸업깃수 생략) 강래형.강범중.김락규(김종호의원비서실장)김영호.박대식.송유영.이장희..김상원.김명호.김재억.김태성.박명식.신관휴.김종렬.이명홍.정춘원외 상당수의 청천졸업생이 입회하고 때로는 여러사유로 못 나오게 되는 경우도 있는등 월례 참여회원이 월 평균 40여명씩 되는 맘모스 가족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즈음 1993년 강래훈회장 재임시는 용화온천저지투쟁위원회를 격려겸 방문하자는 의견에합의. 이해 8월 비오는속에서도 향우회와 청천교25회총동기회가 합동으로 회원운영 광명관광버스 두 대에 분승하고 용화현장을 방문, 텐트에서 새우잠으로 때우며 불철주야 온천현장저지를 위한 투쟁위원장 박동각님과 함께 애쓰시는 청천주민들을 위로하고 금1봉 전달. 억수같은 비를 맞고 회원 정종일.강래흥.서기천등 몇몇이 진흙구덩이 앞산을 올라 미끄러져 넘어지며 온천예정지 도벌 인부 몇 명과 현장감독을 붙들어 강제로 끌고 내려오니 이들이 놀라 즉시 경북화북 경찰에 통고. 화북 경찰서에선 즉시 출동하여 충북과의 대결로 미운판에 우리를 폭력배로 몰아붙이며 억지를 쓰기에 경찰과도 실랑이좀 하고 상경하니 광명관광회사로 상주경찰서에서 전화가 빗발치듯 우리의 신원조회가 와서 김재주사장이 그들은 언론계분들이라고 둘러대니 더 이상 전화가 안 오고 조용해졌다는 일화도 있다.
강래훈회장은 몇년후 괴산군 광장에서 열린 충북용화온천 대법원 승소확정 판결 충북도주관 문화축하식석상에서 괴산군수.괴산군의회의장. 충주시장. 박동각투쟁위원장등과 함께 향우회원을 대표한 충북지사 공로표창을 받았다.
또한 1999년 남직현회장 재임시엔 청천의 용화온천 저지 대법원승소 판결확정의 기쁨을 후손에 알리고 기념코자 조성하는 지킴이공원조성문제로 서울향우회에 청천의 면장. 김사진군의원.심광보.깅영관.이학용님등 청천을 사랑하는 토박이 유지분들이 원로에 올라오셔서 지킴이공원조성의 의당성을 역설하니 전회원이 동감하고 청천서 힘들게 채취해온 고로새약수도 전회원이 시식하며 향우회에서 금일봉. 남직현회장 금일봉등 최소한의 협조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안재인 현 청천면 구의원님은 서울학교재직시 서울향우회에 매월참석 수년간 으레껏 차를 갖이고 와서 술이 얼큰한 선배들을 댁까지 모셔드리는 겸손함과 우정의 노력을 아까지 않은 모범회원도 있었다.
때로는 괴산군 국회의원이신 김종호의원님도 월례회에 참석. 축배를 들며 일일이 회원들을 격려해주셨으며 김락규비서실장을 정회원으로 매월 월례회에 참석토록 배려해주시기도 했다.
그런속에서 향우회 기금도 1200만원이 넘어 애경사 부조도 회칙대로 실행하고 매년 1-2회씩 야유회. 청천고향 방문등을 하였으니 방문때마다 경비는 오히려 남아돌아갈 정도로 전회원들이 특별회비도 내며 우정의 한마당이 되니 고향 선후배를 초월한 형제의 우정과 협조로써 서로 돕고 위하는 마음이 하늘을 찌를듯 일치 단결 사기 중천이었다.
4) 한때 어려웠든 청천 향우회와 이를 극복했다.
이후 향우회가 너무 오랜 기간 지남과 동시 회원의 연령증가. 건강악회등등의 이유로 잘 나오던 회원들의 발길이 점점 줄어지니 월례회 분위기가 어색하며 쓸쓸해지는 느낌이 나기도 했다. 이에 7대 서기천회장은 이 분위기를 일신코저 여러 처방도 내며 1년을 버텼으며 신임 8대 박헌식회장님 역시도 어려움이 줄줄이 꼬리를 물었으니 이즈음 2년간은 그때까지 적립된 기금은 어떻든 보존하며 향우회를 운영한다는 관례를 지키려고 서기천. .박헌식회장과 강범중총무의 재정적 어려움은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되어 임원 자신들 사재를 털면서까지 또 남직현 전회장의 거액특별 찬조금까지 가세하여 난관을 이겨내기에 안간힘을 쓰던 때도 있었다. 어떻든 적자 운영을 하지 않겠다는 임원님들의 굳은 결심으로 당시 회비는 들어오지 않고 지출은 많아지는 역현상에 임원님들의 희생적인 노력으로 슬기롭게 극복하며 어려운 몇 년이 넘어가고 2003년 새 아침이 밝았다.
신임 9대 홍건표회장. 이상선. 김정헌 양 부회장. 강범중총무 한상준. 김학수감사의 원로임원선임으로 새 출발한다는 다짐속에 회비를 50% 인상하고 회원출석을 권유하며 새로운 회원을 영입하면서 향우회 재건에 노력하니 이후 회원이 꾸준히 영입되고 못 나오든 회원들이 다시 복귀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새출발의 기운이 감돌아 적자예산이 점차 1년후에는 흑자로 돌아서며 회원들의 사기도 많이 향상되게 되었다.
이즈음에 향우회에선 군민회와도 유대를 강화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강래흥 감사(미당식품대표이사)를 향우회추천 청천면민대표로 군민회에 천거하기에 이르렀고 군민회에선 대환영으로 이사회를 소집하여 강래흥 군민회 부장직으을 인준하니 이로써 청천향우회 창설후 처음으로 괴산군민회의 임원이 활동하게되고 군민회와의 유대를 돈독히하게 되었다.
한편 김웅회(고 김재주광명관광사장의 장남). 김태중씨(고 김명각사장의 차남-김명각씨는 청천분. 일찍이 상경. 자수성가로 청천전설. 청천전업사를 창업- 청천졸업생들을 다수 자회사에 취업시킴. 김사달박사. 박형규국회의원님들과 청천교 18회 동기동창. 삼총사로 고향발전에 앞장. 청천교에 앰프시설기증. 재경 괴산군민회 노인회장등을 역임. 청천향우회에도 수차 래왕. 격려말씀으로 정을 나누심.)는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향우회에 입회하게 되어 박수갈채를 받았고 초창기 발기회원 10여명중 20여년을 향우회에 몸 담아온 회원은 강래훈.고종석.한상준.김학수 4사람이 건재했다.
5) 2007. 2008 향우회 젊음의 신풍속에
향우회 대 변혁의 깃발이 올랐다.
2005. 정종일회장팀이 바톤을 받으면서 젊은 향우인들 영입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됨에 강래형총무의 활동상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연이어 2007년 8.15청천교 졸업생한마음체육대회 주관깃수인 48회 동기회장 김성희(서울마포거주)씨가 서울향우회 6월 12일 월례회에 참석. 금년 8.15대회에 서울향우회에서 꼭 참석해주실것을 기화로 젊은 후배 김성희씨가 향우회정회원으로 입회하니 이를 시발로 청천향우회에도 한세대를 뛰어넘은 선후배가 함께 어울리는 젊음의 서음이 었다.
청천.어룡.대후.신월.송면.덕평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주로 청천중학교 또는 다른학교로 진학했던 40대초반부터 50대초반의 젊은 청천태생 동기생 남여들이 향우회입회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것은 아무래도 강래형 청천교총동문회 부회장의 노력이 숨어있는 것이었다. 여직껏 무뚝뚝한 노장남자뿐이던 향우회에 새로운 여성졸업생의 향긋한 바람이 불며 같은 깃수별로 서로 이끌며 월례회에 나오기 시작하니 월례회가 깊어갈수록 입회자가 불어나면서 2007년 말에 신입회원이 30여명으로 늘고. 2007연말엔 오산 강래흥 군민회부회장 초청 향우회 망년회땐 처음으로 젊은 신입회원들과 노장원로회원들이 함께 어울리며 잔을 부딪치며 고향만세를 부르며 임원도 개선했다.
2008년 향우회를 짊어질 신임 임원진 11대회장 심문보. 부회장 김정헌 김학수씨 감사 정종일.김재영씨, 후배들과 잘 협력하는 강래형.김용구.최초의 여성총무 박병문등 복수총무 선임. 이후 1년간은 젊은 청천출신 남.여 회원들 입회로 서로 이름도 모른체 월례회날은 눈이 동그래지며 새 얼굴들에 잔뜩 호기심을 갖게 되니 노장회원들은 신입회원이면 으레 과거 청천 누구의 손인가를 물어보기에 여념이 없고 연고를 알고는 너무 반갑고 즐거워 기쁨에 손에 손을 맞잡고 시시름 없이 컵을 마주쳤다.
이렇듯 향우회가 살아 물결치는듯 생동하며 과거 저녁이나 먹고 헤어지던 관행이 젊은 향인들의 출현으로 2차 노래방으로 남여노소 함께 달려가 손잡고 우정을 다지며 목청을 다듬으니 한달에 만나는 만남의 기쁨이 기다려지고 고향의 추억은 더욱 선명히 피어오르며 우정은 점점 두터워졌다.
6) 2008의 청천 향우인들의 단합 망년회
2008년 한해 생동헸던 향우회에도 망년회가 다가오니 강래형사무총장. 김용구 박병문총무와 홍원표.김창복.박기량(KBS 성우)씨등 열성적인 젊은 회원들이 자진 앞장서서 획기적인 회원단합망년회를 추진하니 박기량씨의 자비출연과 각계연고 회원들의 특별 후원물품.. 특히 임원진의 노력과 과다한 후원금의 희사로 차근히 진전. 드이어. 2008년 12월 12일 망년회 막이 올랐다.
향우회원. 아직 입회는 안 됐지만 예정자들등 남녀노소 약 100여명 참석. 홍원표 회원님의 섹스폰 연주가 부드럽게 파노라마로 공기를 가르는 가운데
전문성우 박기량회원의 개회선언. 심문보회장의 대표인사. 재경군민회 강래흥부회장과 향우회역대회장이었든 강래훈.김창호.남직현.박헌식.정종일.홍건표씨의 인사소개, 이어 청천교 총동문회 이종배회장 축하인사말씀도 있었다. 연이어 향우회원중 70세이상이자이자 10년이상 향우회에 몸담은 원로회원들 김창호.강래훈.남직현.박헌식.김봉진.강래흥.정종일.채규식등 원로8분에게는 전회원이 마련한 꽃다발과 금지환을 각각 공로선물로 드렸으며, 박기량회원님이 마련한 선물 100여점 이상을 전회원의 추첨을 통해서 실감나게 웃으며 분배하기도 했고 미녀 트리오댄스팀의 현란한 무용과 초대가수의 흥겨운 노래로 흥을 돋우면서 일단 서막을 마무리 했다.
회식연에는 선후배 너나 없이 한데 어울러져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멋진 한 장면이었다
이런속에도 젊은회원 남녀 10여명 즉 강래형.김용구.홍원표.김창복.박기량,박병문.강호복,우향옥,김재수.김순선.심혜자.신효순.전향진님등은 실내외 회원
뒷바라지 주선. 진행등 업무로 눈코뜰새 없었고 회식장에 앉아보지도 못한체 활동하는 아름다운 우정을 보이기도 했다.
끝으로 2009년을 이끌어주실 새 임원선임에 만장일치로 이상선회장. 강래흥과 심문보 전회장단의 보강된 감사. 김재영.한충희.강래형부회장. 이상선회장의 추천으로 김학수사무통장. 김창복총무.박병문여자총무를 선임하고 새로이 향우회의 더욱 활성화를 위한 박기량.홍원표 홍보대사를 위촉 선임했다.
7)이글을 맺으며 .
괴산군 타 면은 일찍이 향우회가 있었음에도 괴산군 으뜸 청천면이 80년대 말까지도 재경향우회가 없었음은 실이 기현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2009년 벌써 20년의 연륜이 된 청천향우회에도 초창기 열악한 환경을 딛고 선후배들의 노력으로 튼튼한 기반이 쌓여지면서 인적. 재력면에서 만리장성보다도 더 튼튼하고 굳건히 자라고 있으며 향우회의 전망은 밝고 희망차다.
앞으로 현재의 50대초반에서 40대후반의 회원들이 향우회의 진로를 짊어지고 이끌어 갈 때는 무한한 서광이 빛나리라 예견되며 희망의 펜을 놓는다.
부록-재경청천향우회원 명단.(무순)
1)재경 괴산군민회 임원 역임자
회장역임-김상훈님. 부회장역임-김창호. 김재주님. 현재;강래흥부회장.
2)역대 청천향우회 임원직 명단.
회장역임자.--신상조(작고). 정태희.박순철.강래훈.김창호.남직현.
서기천 박헌식.홍건표.심문보.이상선(2009현임)
부회장 역임자--윤광현.우덕문.고종석.강래진.홍건표.김정헌.
김재영.김학수.심문보.
감사역임자--강래훈.김춘배.한상준.김세창.김재영.김학수.정종일.강래흥.
심문보 음재이.홍건표..김봉진.채규식님.
총무역임자--고종석.임광호.이명원.김두현.강법중.강래형.김용구.
이상선. 김상원님.
3) 2009현재의 조직 편제표.
고문; 김창호. 강래훈 .남직현. 박헌식 .정종일 .홍건표.
원로; 채규식.윤광현. 김봉진. 한상준. 음재이. 김정헌. 임광호 .김세창.
김태중. 강범중
임원; 감사; 강래흥. 심문보.
회장;이상선. 부회장; 김재영. 한충희. 강래형.
사무총장;김학수. 총무;김창복. 박병문(여)
홍보대사;홍원표. 박기량.
운영위원;(청천교30회부터57회까지.청천중 10회부터20회까지 무순)
박대식.김용구.우향옥.김재수.강호복.박명섭.박채식.김성희.변민수.
엄태우. 김유원.최창호.윤근철.이상봉님.
현 정회원;
전양규.민영배.정상호.신효순.임희자.전향자.김순선.심해자.윤희숙. 김미현.정춘자.정재분.이승열.우곤명.이재광.석주한.정우현.장수용. 김정숙 장영옥.
현 준회원(입회한지 1년이 안 된 회원은 준회원임)
박수현.김남규.반기현.마정순.김명숙.이승억.백경윤.박흥식.박명석. 김재완.박준경.강용태. 채동철.이순남. 한유근.김선희.김진섭.김원섭.김기만.김명해.정춘옥.이해영.고성인.신은숙.노소래.이달상.신동숙.박순희.박창규. 박종등.조향숙.노정희 김지현.윤태수.조용래.지성자.윤정애 정경진.박병옥.우종례.지순옥.김태화.조황란.김해섭.
명예회원;(구 원로회원으로 가정사.건강등으로 현재 향우회 참석은 불 가하나 회원 탈퇴는 하지 않고 하시 복귀할수 있는 회원)-무순
고종석.서기천.강래진.김락규.김상원.김정조.김웅회.우정구.이장희.
정세근.정영준.김명호.김사흥.곽재호.김재억.김태성.박명식.박완영
.박재억.신관휴.안재인.우덕문.김종렬.심영섭.이명홍.조항석.조상균. 박병조.김재성.정춘원.고상득.황인구.박범식.정태희님등
(이분들은 하시라도 향우회에 복귀하시면 정회원이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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