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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및 고도표
일시:2009년12월13일
구간:어림고개-돗재
누구와:대구백운회 호남정맥종주팀이랑
구간별시간:
09시14분:어림고개 출발
09시43분:지도상560봉 도착
10시09분:별산(오산687m) 도착
11시42분:묘치고개(15번국도) 도착
12시30분:385.8봉 도착
12시40분~13시05분 점심식사
14시03분 천왕산 도착
14시54분:구봉산(통신탑있는곳) 도착
15시20분:서밧재 도착
16시35분:(정상1.9km前)능선삼거리 도착
17시15분:천운산 도착
17시55분:돗재 도착
총산행거리21.7km
총산행시간 휴식포함 8시간41분(최후미기준)
논개와의 사랑 충의공 최경회(崔慶會.1532~1593)
충의공 최경회(崔慶會)는 중종 27년(1532년) 11월 22일 화순 삼천리에서 태어남.
자는 善遇요, 호는 日休堂, 또는 三溪이다. 훗날 「晉州 3壯士」의 한사람으로 불린
그는 부친과 송천 양응정, 고봉 기대승으로부터 수학하여 진사와 문과에 장원하였음.
성균관 전적(典籍)을 시작으로 사헌부 감찰, 형조좌랑을 거쳐 옥구·장수 현감, 영해부사,
영암군수, 담양부사를 역임. 1590년 모친이 임종하여 화순에 있는 동안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큰형 경운, 둘째형 경장과 더불어 고사정에 의병청을 설치하고 여러 고을에 격문을 보내 의병을
모집금산전투와 무주대첩에서 혁혁한 전승을 거둠.
진주성이 왜적에게 포위되었다는 경상우도순찰사 김성일의 구원요청을 받고 진주성으로 달려가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된 후 첫 번째 진주성 전투에서 크게 승리를 하였음.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남강에 투신하여 장렬히 산화.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선조는 최경회 장군의 구국정신을 높이 사 진주 창렬사에 향사케함.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에 포충사를 세워 그 정신을 기리게 하고 충의공 시호를 내렸음.
조정의 특명으로 한천면 금전리에 사당이 세워졌으며, 능주면에 삼충각을 건립하여
그 얼을 오늘에 전하고 있음.
화순을 영원한 안식처로 삼은 방랑시인 김병연(일명 김삿갓)
1807년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안동 김씨 김안근과
어머니 함평이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남.
이름은 병연(炳然), 자는 성심(性深)이며 호는 난고(蘭皐).
6살(1812년)때 선천방어사로 재직 중이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
반란군에게 투항(投降) 함으로써 조부 김익순은 처형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짐.10살(1816년)때 어머니가 아들들의 장래를
위해 영월 산중으로 숨어 들어가 자식들을 공부시킴.
20세 (1826년)때 장수 황(黃)씨 와 결혼,
그해 영월 도호부 백일장에서 시험을 보는데 과제(課題)가
[논정가산 충절사탄 김익순 죄통우천]으로 나와 글을 지어서 장원을 하였는데
역적의 후손임이 탄로 나 장원이 취소되고 병연도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임을 알게 됨.
조상을 모독하여 큰 죄를 지었음을 통감(痛感)하고 하늘 보기가 부끄럽다하여 삿갓을 쓰고
방랑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22세(1828년)때 학균을 낳음.
1830년(24세) 차남 익균을 낳고 다시 출가하여 대지팡이에 삿갓을 쓰고 방랑 생활을 하면서
평안도와 함경도 등 각처를 두루 돌아다니며 부자나 권력자들의 행패(行悖)를 조롱(嘲弄)하는
해학(諧謔)과 풍자(諷刺)하는 시를 남김.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나 어려운 사람들의 인생사를 시로 엮으며 방방곡곡을 두루 섭렵
1841년(35세) 전라도로 내려와 광주에서 무등(無等)산 장불치(長佛峙)를 넘어 꿈에도 못 잊어
그리워했던 동복 적벽(赤壁)을 보고 “無等山高松下在 赤壁江深沙上流” 시를 지음
1863년(57세) 3월 29일 57세를 일기로 동복면 구암리 창원정씨댁 사랑채에서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여 구암 마을 동편 동뫼등(洞山)에 초장 되었다가 3년 후(1866년) 후손 익균에 의해 강원도
영월군 의풍면 와석리(노루목골)로 이장되었음.
김삿갓이 화순적벽을 보고 지은 시
將遊赤壁 歎有客 無酒(장유적벽 탄유객무주)
고적을 돌아보는 사이 통소로 노래하는 밤이 되니
참새와 까마귀가 날아 가버리고 없는 창망한 섬이로구나.
추풍에 악양에서 시를 짓는 두보 같고
석양에 저정에서 만취해 돌아가는 구양수 같네.
허정(한가한) 팔월인데도 사람은 볼 수 없고
이슬 맞은 갈대만 창창하고 강물은 아득 하네
강산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곳이므로.
술 좋아하는 사람들과 놀기 좋은 곳 이 로 세.
파초 핀 언덕에서 시를 주고받으며 능각을 건너
죽계 곡에 술통 들고 들어가 돌을 캐 배에 실었으면
여간 나는 알았으니 서로 기다릴 필요 없고
유적으로 가득 찬 호남의 이름 높은 고을 일세
어정거리는 사이 연하에 가려 물을 곳이 없으니
복주고을 붉은 강물 각 해변의 모퉁이 같구나.
소동파 이후 처음으로 북에서 내려 온 선비이며
임술 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신축년 가을 일세(1841)
가운데가 굽어있어 사람들이 샅샅이 보기 좋고
서민 양반 밤에 함께 노래를 주고받기 좋네.
욕심을 버리니 빈 배에 江月이 가득하고
사람 없어 적막하니 물머리로 건너가세
어염전에는 왕래자들로 시장이 왁자지껄하고
황촌에는 초동모수가 짝지어 오래 사네.
글 짖고 낭유하는 사람 여사로 가볍게 보고
강물은 스스로 흘러가니 나는 누구와 같이 돌아갈 가?
난장과 아름다운 노래 소리는 이미 끊어 졌고
한달이 넘게 산행을 못하다가 5주만의 산행을 시작합니다.
그동안 허리와 어깨부상으로 산행전 해오던 운동도 못하고
산행에 나서게 되지만 그래도 이름없는 호남의 산야를 다시
빏을수 있다는것에 오히려 가슴이 설레입니다.
전처럼 5시10분에 꼬디조님과 만나서 홈플에 도착합니다.
오랜만에 옛날 낙동정맥때 이용하던 32인승 버스가 도착합니다.
28인승보다 발받침대가 있는 32인승이 훨씬 더 승차감이 좋아서
그동안 백두대간에 차출된 32인승을 무척이나 기다렸는데
드디어 오늘은 편하게 가나봅니다^^
지리산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기전 12월이 생일인 저혼자 생일케잌을 받습니다^^
언제나 잊지않고 생일상을 마련해주시는 임원단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동면 어림마을
▼09시14분:
단체사진후 오산(별산)을 향해 오르막을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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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림마을을 출발하자마자 나타나는 보호수 약200년된 나무라네요
큰 변화가 없다면 앞으로도 우리들보다는 더욱더 오래오래 이곳에 남아 지나가는
수많은 산꾼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09시43분:
출발후 처음 만나는 임도
모양상으로는 임도를 따라가도 별산에 도착할것 같은데
나중에 별산에서 보니 정상까지 이어지는것 같았다.
▼10시00분
어림고개에서 2~3개정도의 봉우리를 오르고 내려가면 어느듯 정상이
암봉으로 이루어졌다는 별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나 이구간은 별산까지는 무등산을 뒤로 두고서 진행하니 전망 좋은곳에서
뒤돌아보면 무등산이 아침햇살속에 위풍당당히 솟구쳐 있슴을 보게됩니다.
▼뒤돌아본 무등산 방향
▼조금더 올라서면 확실히 무등산이 자세히 보입니다.
저는 무등산구간을 개인사정으로 참석못해 조만간 보충산행을 하려고 합니다.
아마도 방학때 마눌이랑 둘이서 갈 것 같네요^^
▼10시07분:
화순군 동면 청궁리방향
별산에서 바라본 주위 풍광이 예술입니다.
근래 산행중 최고의 조망이더군요
동복호와 무등산이 어울어진 풍광은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온 보람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동복호 방향
아마도 저기 어느곳에 "김삿갓"도 반했다는 적벽이 있겠지요^^
▼10시09분:
별산(오산)687m 도착
정상이 암봉이라 눈이나 비올때는 미끄럼 주의
진행방향에 무인감시탑이 있고 먼저 진행한 회원들이
모두 모여서 백운회 공식주 막걸리 한잔들 하고 계십니다.
당연히 저도 한 잔합니다^^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것 같습니다.
경치가 죽음입니다^^특히나 아침햇살과 운해가 어우러져 장관입니다.
▼10시38분:
억새와 잡목이 가득한 내리막 능선을 잠시 내려서자 임도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진행한 다음,
좌측 숲속으로 들어서서 오르막 능선을 올라 헬기장을 통과합니다.
이어지는 내리막 능선을 내려서서 우측으로 하산 길이 있는 안부를 지나고
오르막 능선을 오르는데 좌측으로 동복호가 보입니다.
그다지 힘들지않는 오르막후 봉우리를 내려서서 잠시 완만한 능선을
지나고 삼거리에서 정맥 길은 90° 좌측으로 방향을 튼다.
직진하지 않도록 독도에 신경을 써야 할 곳입니다.
▼11시42분:
묘치재까지는 지속적인 내리막으로 중간에 쌓인 나뭇잎만 조심한다면
크게 힘들지는 않게 묘치재에 도착할수 있다.
묘치고개는 광주·화순과 동복·순천을 잇는 15번 국도가 호남정맥의
주 능선을 가로 지르고 있다.
우측으로 삼거리가든이 자리하고 있어 식수를 보충하는데 용이하겠다.
화순적벽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은 약7KM에 걸쳐서 수려한 절벽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노루목적벽, 보산리적벽, 창랑리적벽과 물염적벽으로 나뉜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에 유배온 신재최산두가 중국의 적벽에 못지 않다하여
적벽이라 명명하였다 한다.
아쉽게도 김삿갓을 비롯한 많은 시인, 묵객 들이 좋아했던 상류의 노루 목적벽은
85년 동복댐 준공을 계기로 수몰되어 25m 가량 잠겨버렸다.
현재도 노루목적벽과 보산리적벽은 광주시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출입이 제한되어
광주 상수도사업본부(정수사업소 062-234-4538)에서 허가를 받아야만 방문이 가능하나
동복댐 우회도로나 물염정이 남아 있는 물염적벽에서 옛선비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또한 1807년(순조 7년) 3월13일 경기도 양주군 회동면에서 출생 하여 전국을 떠돌다가
이곳 적벽에 매료되어 1863년 4월 29일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김삿갓의
초분지(初墳地 - 3년 후 차남이 고향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에 모심)가 보존되어 있다.
그가 생전 동복에서 고향영월을 바라보며 그리워하였을 자리에 현재 망향정(望鄕亭)을
건립중이며, 인근 광주 무등산 공원에 김삿갓 시비가 있어 김삿갓을 기리는 답사자들이
한번은 가 볼 만한 코스이다.
적벽문화제 : 매년 10월 중 전통문화의 계승과 지방문화의 개발을 위한 적벽문화제가
종합문화예술 행사로 열리고 있다.
▼11시45분:
도로를 건너 절개지 좌측이 들머리다. 절개지를 올라서자 좌측으로 굴뚝이 보인다.
가시덤불에서 가시에 찔리며 묘2기를 차례로 지나고 가시덤불이 가득한 오르막
능선을 올라 봉우리를 통과한다.
▼12시30분:
385.8봉 도착
정맥 길은 90°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가시덤불의 내리막 능선으로 이어집니다.
두어번 좌우로 꺽어지며 오르고 내린후 오르막 능선을 올라 12시30분 지도상 385.8m봉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내용을 알 수 없는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묘1기가 자리하고 있다.
이후 어느 이름없는 곳에서 혼자만의 식탁을 펼칩니다.
지나가다 잠시 멈추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저만치 앞에서 회원들 목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아무래도 한달만의 산행에다가 등산화도 새등산화로 산행을 하니
묘치고개이후엔 발이 아파 조금씩 속도가 떨어진다.
▼13시07분:
주라치 도착
내리막 능선을 내려서고 완만한 능선을 지난 다음, 오르막 능선을 올라
정상에 묘2기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내리막 능선을 내려서서 묘지3기가 있는 곳을 지나 임도가 지나는 안부에 도착한다.
이곳이 지도상에 표기되어 있는 주라치다
▼14시03분:
천왕산(424,2m) 도착
주라치이후 몇번의 오름과 내림을 반복한후 정상이 약간의 간벌이 된 천왕산에
도착한다.간벌로 표시판은 보이지않고 (독산312 재설2001.6)이 표시된 삼각점으로
이곳이 천왕산임을 알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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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산을 지나 우측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눈이 온다면 주의 구간입니다.
이후 작은 오르내림후 전방에 구봉산으로 짐작되는 봉우리를 보며
시멘트 임도를 만나는데 밤나무밭옆으로 두개의 통신탑이 있다.
▼시멘트임도를 만나면 임도 우측으로 약간 오른후 좌측 능선으로 이어져간다.
이곳에 도착하기전 저앞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잠깐 볼일이 있어
그냥 듣고는 무시한다^^
진행방향은 통신탑을 지난후 숲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잠시후 우측으로 급하게 꺽여져 내려간다.
▼15시20분:서밧재 도착
서밧재는 광주·화순과 벌교·보성을 잇는 15번 국도가 호남정맥의 주 능선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도로는 4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이다.
도로 우측으로 문성석재와 조금 떨어진 곳에 모텔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진행할려면 좌측으로 도로밑 굴다리를 이용하거나 멀리 모텔앞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아니면 무단횡단을 해야하는데 저는 굴다리 밑으로 해서 진행합니다.
밑에 15번국도 간판이 있는곳에서 정맥길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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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3기 좌측으로 진행하여 잡목과 가시덤불이 가득한 곳을 지나고 묘1기가 있는 곳을 지난 다음,
소나무 숲의 오르막 능선을 오르고 바위지대 우측으로 올라 300m를 나타내는 봉우리를 통과한다.
정상에는 묘1기가 자리하고 있다.
이어 교육원삼거리를 지나고 대한광업진흥공사 표지석도 지나면 제1쉼터에 도착합니다.
▼16시35분:
잡목이 성가시게 힘든 발목을 더욱더 잡아끌고 지친 몸으로 도착하니
능선삼거리에 도착한다.
▼17시15분:
천운산(601.6m) 도착
힘든 오르막이나 내리막이나 이제는 힘들어 다리가 저려온다^^
어느듯 어둠이 몰려오는것 같다.
헤드렌턴도 미리 준비하고 힘내라고 구름과자도 한 대 먹어본다^^
천운산전 꼬디조님이랑 통화후 마지막힘을 내어본다.
▼저멀리 한천자연휴양림 주차장이 보이고 돗재가 보인다.
묘치재에서 서밧재는 새등산화로 인해 조금은 힘들게 진행했지만
서밧재이후는 염려 했던것 보다는 쉽게 진행합니다.
그렇다고 룰루랄라 길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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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산이후 제법이나 컨디션이 회복되는것 같다.
초코바가 보약이네^^
이제는 숲속에서는 제법이나 어둡고
조금 벗어나면 아직은 랜턴없이도 진행할만 하지만
그래도 더욱더 조심해서 달려본다.
▼서밧재이후 사진은 대부분 야생마님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다리만 안 좋은 줄 알았더니 수전증까지 왔는지 그나마 몇장없는
사진이 대부분 흔들려 사용불가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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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만한 내리막 능선을 내려서서 팔각정 앞을 통과하고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능선을 내려서서 돗재에 도착한다.
▼17시55분:돗재 도착
이렇게 돗재에 도착합니다.
오늘 나쁜 컨디션과 새등산화로 조금은 고생했지만 그래도 완주했다는 뿌듯함이 더욱더 즐거움입니다^^
도착하니 돗재는 어둠이 짙게 깔렸고 한우로 만든 소고기찌개 한그릇이 하루의 피로를
풀어줍니다.특히나 제일 후미에서 혼자서 내려오니 불쌍(?)하게 보였는지 노총무님께서
소고기를 많이도 주셔서 맛있게 먹었습니다^^감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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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재는 화순군 한천면과 남면을 잇는 822번 지방도가 정맥구간을 지나가고 있고
돗재 표지석과 새마을의 의지라는 비석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돗재는 한천자연휴양림의 입구이고 주차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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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의 반을 지났습니다.
사람 발걸음이 무섭다고 어느듯 호남정맥도 종착점을 향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름에 지나온 호남정맥 구간을 생각하면 몸서리 쳐지지만 그래도 보충산행도하며
여기까지 진행했다니 조금은 감개무량합니다^^
산행기를 담당하는 저로서는 좀더 노력하는 모습으로
다음구간부터 열심히 산행하겠습니다^^
이왕지사 여기까지 고생하며 왔는데 구정맥이 끝나는 그날까지 한번 힘써봅시다^^
먼훗날 죽으면 묘비명에 1대간9정맥 완주라고 꼭 적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백운회원 여러분 열심히 달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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