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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역사 요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이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이시라면 성경과 역사는 반드시 함께 공부하셔야 합니다. 예언서 부분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성경의 역사 요약은 작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 있는 연구 분석이 이루어져 성경말씀과 정확히 일치해 내는 일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년대 기준은 John Bright 의 A History of Israel의 3판 영문 연대기로 했음)
1. B.C.721년 북 왕국 Israel 멸망(왕19명)
Israel Saul (Samuel) (B.C.1020-1000), David (B.C.1000-961) Solomon (B.C.961-922)
-kingdom of Israel Jeroboam(B.C.922-901 22년)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족 스레가 사람 느밧의 아들, 다윗왕조에 반기를 듦, 왕국분열, 선지자 아히야가 자기 옷 12조각내어 10조각을 주며 하나님의 뜻을 전함,
-나답 2년 통치
-바아사 24년 통치 아히야의 아들에게 왕권이 넘어옴
-엘라 2년 통치 왕권계승 안됨
-시므리 7일
-오므리 12년 시므리의 군 사령관 은 두 달란트로 세멜 소유의 산을 사서 사마리아 성 건축
-Ahab (B.C.869-850) 22년 가장 사악한 왕, 시돈 왕 엣바알의 딸 Jezebel 왕비, 바알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중 죄를 범함, 유다왕가와 혼인한 daughter Athaliah 여왕, 선지자 엘리야 갈멜 산에서 바알선지자 450명과 대결, 불 병거로 승천 왕하 9장 이세벨의 최후 개들이 처리하다.
-아하시야 (1년) 42세 다락 격자창에서 떨어져 중병으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묻게 하는 중범죄 엘리야가 꾸짖다
-요람(여호람 아합의 아들)(아하시야 동생 12년) 시리아 군 사령과 나아만 엘리사의 명령으로 요단강7번 목욕 (게하시 문둥이)왕하 1장-7장 대 가뭄, 시리아군대 침입 네 문둥이들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시리아군대 급히 철수
-예후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에게 왕권이 넘어옴
-여호아하스 (17년)
-요아스 (16년)
-여로보암Ⅰ(41년)
-스가랴 (6개월)
-살룸 (1개월)
-므나헴 (10년)
-브가히야 (2년)므나헴의 아들
-베가 (20년)
–Hoshea (B.C.732-724 9년) Assyria의 Shalmanesser(B.C.762-722)이스라엘 정복 메디아와 페르시아 지역 포로로 끌려감 사마리아에 구다 인들 이스라엘 처녀들과 결혼하여 혼혈됨 훗날에 유다인들 기피하는 사마리아 지역이 됨-Fall of samaria B.C.721 Assyria의 SargonⅡ(B.C.721-705) 이스라엘 19명의 왕들 모두 악하고 나빴다.
2. B.C.612년 Assyria 멸망(B.C.1356-612)
성경에 최초로 등장하는 나라는 바베론, 앗수르는 바벨론의 힘이 미약해 질 때 등장하는 나라
사14:1-3, 겔31장, 요나 선지자, 나훔3:1-3 선지자 B.C.630 활동
... -Asshur-uballitⅠ (B.C.1356-1321)건설 니므롯과 니느웨 도시 중심으로 발전, 함의 손자 창10:11-12
바벨론 카시트 왕조와 힛타이트 이집트의 몰락으로 성장,메디아와 소아시아의 할리스 강, 남부 이집트까지 확장
메소포타미아 북부 티그리스 강 상류위치, 사르곤Ⅰ,삼시 아다드Ⅰ 때 소아시아와 시리아까지 확장후 호리족의 후예 마탄니와 헷의 후예 힛타이트와 생존을 위한 각축을 벌이며 아다드 니나리Ⅰ와 투굴디 니누르타Ⅰ 때 확장
-아다드 니나리Ⅰ (B.C.1297-1266)
-살만에셀Ⅲ (B.C.1265-1235)
-Tukulhi ninurtaⅠ(B.C.1234-1197)
-Tiglath PilesserⅠ(B.C.1116-1078)
-Asshur danⅡ (B.C.935-913)
-Adad ninariⅡ (B.C.912-892)
-Asshur nasir palⅡ (B.C.884-860)주변국 정복 전쟁 지중해 지역까지 확장
-살만에셀Ⅲ (B.C.859-825) 북왕국 이스라엘 아합왕과 예후시대 B.C.853년 시리아 연합군과 아합의 연합군 전쟁 12년 후 살만에셀에게 무릎 끓고 엎드려 조공 바침
Shamshi adadⅤ(B.C.824-812)
-아다드 니나리Ⅲ (B.C.811-784) 서부 원정 힛타이트, 다메섹, 두로, 시돈, 에돔, 불레셋 정복
이스라엘 요아스 B.C.798-782 조공바침,
이스라엘 여로보암 B.C.793-753 강력한 국방력 경제부흥 국력회복 왕하14:23-26, 요나 선지자 니느웨 경고
-Tiglath pileserⅢ (B.C.745-727) 디글랏 벨레셀
-살만에셀Ⅴ (B.C.726-722) 왕하17:4 이집트 소 왕 북이스라엘 호세아 반역으로 에브라임 므낫세의 사마리아 남쪽 점령 사마리아 3년 포위 722년 함락 왕하 17:1-6 고산 강가 하라 하불 이스라엘 포로 이주시킴
-사르곤Ⅱ (B.C.721-705)이스라엘 민족 국외 추방, 깃딤 에그론 아스돗 점령 왕하 17:2 Fall of samaria B.C.721
-산혜립 (B.C.704-681) 사르곤Ⅱ의 아들 각처의 반역에 대해 무자비한 숙청((B.C.689) 바벨론 탄압, B.C.701년 서부 원정 시리아 팔레스틴 왕들 징벌, 반역 주도한 유다의 히스기야를 치러 가서 라기스와 유다의 여러 도시 점 령(왕하18:13-16)히스기야 항복, 유다 재침공 예루살렘 포위 이사야 예언 앗수르 185,000군사 한 밤에 몰살 되고 퇴각, 본국 귀환후 아들에게 살해됨 (사37:38 왕하19:36-37대하 32장)왕하17:24, 유다 침 공당시 예루 살렘에서 히스기야 왕과 유다백성들 선동하고 조롱하며 하나님 대적 왕하18:35,
-에살하돈 (B.C.680-669) 부왕 살해에 가담하지 않은 아들(사37:38) B.C.675년 이집트 정복 최대 영토 확장 대하 33:11-13 므낫세 끌고감
-아쉬르 바니팔 (B.C.668-627)앗수르 전성기를 이룩, 이방인들 시리아에 정착시킴, 왕립도서관 각종 문서수집소장
(1853.12.20.영국 라상에 의해 니느웨와 왕립도서관, 점토판 발굴)
바알과 아세라 상, 앗수르의 일월성신, 인신제사, 신접자 양성 대하33:11-13
-sin-shar-ishkun (B.C.629-612) 앗수르 바니팔 이후 쇠퇴 B.C.626년 나보폴라살이 바벨론 독립선언 B.C.614년 메 대 키악사레스와 소구디아나와 바벨론 연합 3개월 포위 →Fall of Nineveh, (스바냐2:13-15 나훔3:1-3)
–Asshur uballit Ⅱ (B.C.612-609)유프라테스강 건너 하란천도, 이집트 지원 재기 노렸으나 610년 소구디아나와 Babylon Nabopolasser(B.C.626-605)연합군 하란 점령 609년 멸망. (Media Cyaxares B.C.625 -585) 연합군, 〈메디아공주와Nebuchadnezzar (B.C.605-562)혼인동맹〉
3. B.C.586년 남 왕국 Judah 멸망(왕20명)
Israel Saul (Samuel) B.C.1020-1000, David B.C.1000-961 Solomon B.C.961-922 kingdom of Judah –-Rehoboam(B.C.922-915)대체로 나쁨 솔로몬의 아들 원로들 배척
-아비얌 (3년)
-아사 (B.C.913-873 41년)좋은 통치
-여호사밧 (25년)35세에 등극 예후선지자 대제사장 아마랴 산당폐하지 못함
–Jehoram (8년) 32세 등극 좋지 못함 이스라엘 아합과 이세벨의 딸과 혼인, 창자 터짐
-아하시야 (1년) 42세등극
-Athaliah(B.C.842-837) 6년 악마적인여왕, 아하시야의 모친 왕자들 모조리 죽임 성전 앞에서 죽임 당함
-요아스 (40년)7세 등극 고모부 대제사장 여호야다(130세 장수) 고모가 숨겨서 양육, 바알사당 제거, 성전보수비 바알 제사장 맛단 죽임 좋은 왕
-아마샤 (29) 25세 등극
-웃시야(52년) 아사랴 16세등극 성전분향 범죄 문둥이 됨 스가랴 산당
-요담 (16년)
-아하스 (16년) 20세 등극 악한 왕 해시계 왕하 20:11
-히스기야 (B.C.715-687 29년) 대개혁단행, 15년 생명연장 받고 쫒아낸 휍시바 아내 데려옴, 좋은 왕 유월절을 둘째달 에 지킴, 무교절 지킴, 선지자 이사야, 산당, 목상 제거 앗수르 산혜립 하나님 공개적으로 모독 히스기야 왕 베옷입고 재에 앉아 회개 701년 앗수르 군대 18만5천명 한밤에 몰살됨, 수제사장 아사랴
-므낫세 (55년) 12세 등극 하나님을 멀리하고 주술사 마술사와 친하게 지냄, 아시리아 군대가 가시로 결박하여 족쇄채 워 바벨론으로 끌려감, 뉘우치고 낮추어 기도하므로 예루살렘에 복귀, 이방신과 우상 제거 주의 제단 보수 다 시 하나님 섬기게 함, 가장 악한 왕, 쫒겨 났던 휍시바의 아들 하나님 분노하심
-아몬 (2년) 22세등극
-요시야 (B.C.640-609 31년) 8세 등극 가장 좋은 왕 성전 보수 재위 18년 유월절을 가장 성대하게 거행 왕하22-23장 최초로 백성에게 말씀낭독(왕하23:1-3), 성전 옆 남색하는 집 헐다. 우상숭배자들 제거 바알의 집 헐고 사마리아 까지 산당제거 태양수레 불태우고 대 개혁단행 ⋇왕하23:25 최고의 왕 이집트 느고(Neco)군대의 화살 맞아 므깃 도에서 급사, 유다 예루살렘 통곡, 어머니 여디다 보스갓 아다야의 딸, 서기관 사반 대제사장 힐기야(왕하22장)
대하35장 예레미야의 애곡,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잘 섬기고도 므낫세 때문에 분노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런 혜택을 받지 못함
-여호아하스 (B.C.609년 3개월)33세 등극 나쁜 왕 이집트에서 사망
-여호야김 (11년) 25세 등극 엘리야김을 개명하여 이집트왕이 세운 악한 왕 바벨론을 3년간 섬기다 배반, 바벨론의 침 공 갈대아 부대, 시리아 부대, 모압, 암몬 부대로 유다를 치게 하심(왕하24장),1차 포로, 므낫세의 중죄(왕하24:3)
-여호야긴 (3개월) 나쁜 왕 바벨론에 포로가 됨 느부갓네살의 2차 포로 렘36장 에레미야 선지자
-Zedekiah (B.C.597-586 11년)21세 등극 여호야긴의 삼촌 맛다니야를 시드기야로 개명 재위9년 10월10일에 예루살 렘 성 3년간 포위, 성전 왕궁 불탐, 시드기야보는 앞에서 왕자들 죽이고 자신의 두 눈이 뽑히고 놋 족쇄와 쇠 사슬에 묶여 바벨론 포로(1차 B.C.605, 2차B.C.597, 3차 B.C.586) 친위대장 느부사라단 성전 보물 약탈 바벨 론으로 가져감 남은 백성들의 총독으로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랴 임명됨
4. B.C.550년 Media 멸망
Cyaxares(B.C.625-585)
-Astyages(B.C.585-550)왕 Persia Cyrus에게 수도 엑바타나 점령됨, 총리 하르파고스 등 고위층 앗수르 풍습 사치, 서민들 정치외면, 빈부격차, 장군들 고레스에게 돌아섬, 만다네 공주는 Cyrus대왕의 어머니
5. B.C.546년 Lydia 멸망
헤라클레스가의 왕 칸타울레스의 아내가 기게스와 공모하여 왕위 찬탈 기게스(687-660)
-크로이소스(560-546) 금의 산지로 알려진 리디아, 고레스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사르디스로 도주, 고레스 사르디스 점령 연로한 크로이소스왕 고레스의 포로가 됨
6. B.C.539년 10월13일 제 11왕조 Neo Babylonian (독수리 날개의 금머리 사자 사44:26-28)멸망
Nabopolasser(B.C.626-605)바벨론 총독으로 있으면서 독립을 이루려다 실패 후 메디아와 연합하여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헤자와 3중 성벽의 수도 니느웨 점령함 B.C.612년 독립
–Nebuchadnezzar(B.C.605-562)공중정원, 바벨론 성 건축 둘레96km, 높이 14m 넓이26m, 청동 문100개, 3중 성벽과 유프라데스강을 이용한 헤자 총리 다니엘과 세친구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Amel-marduk(B.C.562-560)
-Neriglissar (B.C.560-556)
-Nabonidus(B.C.556-539)마르둑 사제들과 종교적 갈등으로 아들에게 섭정 데마로 원정
-Belshazzar(B.C.546?-539)부왕 나보니두스 대신 섭정 메디아 페르시아연합군 공병대 유프라데스강 36km북방 물길 을 돌림, 바벨론 성 해자로 침투 함락, 연합군 마르둑 사제들 협조로 B.C.539년 10월13일에 큰잔치를 벌리 고 성전 기물로 여러 방백들과 술을 마시던 벨사살왕이 벽에 손가락 글씨를 보고 놀라 불러들인 다니엘의 경고대로 멸망하여 무혈점령 당함(바벨론 마르둑 사제들과 종교의 자유보장 선약) 고레스는 B.C.539년10월 29일에 개선장군처럼 입성 62세가량의 외숙부 메대인 다리우스에게 바벨론 통치를 맡김
7. B.C.525년 Egypt 멸망(겔29-32장)
이집트역사는 기원전 7000년으로 추정, The Old Kingdom 29-23 century ..... Ⅲ-Ⅳ Dynasties 26-25century(The pyramid Age).....ⅠIntermediate Period 22-21 cen The Middle Kingdom 21-18 cen → Ⅺ Dynasty →Egypt reunited B.C.2040→Ⅻ Dynasty B.C.1991-1786..... ⅡIntermediate Period
-The Hyksos왕조 18-16 century→... ... 요셉의 애굽 총리, 야곱의 12지파 70명 이집트 고센 땅 거주 ?
-Amosis B.C.1552-1527 힉소스 왕조 축출 →
-AmenophisⅠ B.C.1527-1507 야곱의 후손들 노예생활 시작 ?
-ThutmosisⅠ B.C.1507-1494 -ThutmosisⅡ B.C.1494-1490 -ThutmosisⅢ B.C.1490-1436
-AmenophisⅢ B.C.1403-1364 -AmenophisⅣ (Akhenaten)B.C.1364-1347 -Haremhab 1333-1306
-RamessesⅡ (B.C.1290-1224) 출애굽 당시
-Shishak(22왕조) B.C.935-914 이스라엘 Solomon왕 사후 남, 북 왕조 분열 당시
-Osorkon (B.C.914-874) ... ...23왕조 759-B.C.715
-NecoⅡ(B.C.610-594 (유다왕 여호아하스시대)
-PsammetichusⅡ (B.C.594-589)
-Apries(Hophra) (B.C.589-579)유다 예루살렘 멸망 당시
- Amasis (B.C.570-525)
-PsammetichusⅢB.C.525 Persia의 Cambyses에게 멸망, 캄비세스는 이집트 정복후 귀환도중 예루살렘에서 본국 마기승려와 가짜 스메르디스의 반란 소식을 듣고 자살, 군인들의 지지로 DariusⅠHystaspes (B.C.522-486) 가 고레스왕의 공주 아토사와 결혼 왕위에 오름
8. B.C.330년 Persia (수양, 곰의 입에 세 갈빗대 : 리디아546, 바벨론539, 이집트525)멸망
다니엘서11장2절 이제 내가 진실을 네게 보여주리라. 보라, 페르시아에서 세 왕이 일어날 것이요(고레스, 캄비세스, 다리우스), 넷째는(크세르크세스, 아하수에로) 그들 모두 보다 훨씬 부요할 것이며 그가 자기 재물과 자기 힘으로 모든 사람을 선동하여 그리스의 영토를 칠 것이며
Cyrus(태양과 같다, 암 늑대의 아들 B.C.550-530) 어머니 메디아공주 만다네와 남쪽 변방 출신의 캄비세스에게서 출 생한 고레스는 메디아의 외할아버지 아스티아게스 왕의 수도 액바타나 점령(B.C.550년), 외삼촌 다리우스를 바벨론 통치자로 임명(B.C.539년),535년 1차포로 귀환 성전재건 기초공사 세스바살,스룹바벨,
마사케타이 유목원시부족과의 전투에서 사망(루리스탄 청동제 무기)
–Cambyses (B.C.530-522)이집트 원정 때 동생 스메르디스를 죽임, 귀환 길에 본국의 가짜 스메르디스(바르디아)반란 소식으로 예루살렘에서 자살, 성전공사 중단
–가짜 스메르디스(바르디아) 6개월 ,
–DariusⅠHystaspes (B.C.522-486)군인들의 지지로 왕위에 오름, 반란 평정, 고레스의 딸 아토사와결혼, 메디아 지방 의 악메다(엑바타나)궁에서 538년 고레스왕의 조서(에스라6장) 발견, 예루살렘성전 중건령(B.C.520년) B.C.516 성전공사 완공 재위6년 아달월(12월)3일Haggai Zechariah) Marathon 전투(490년페이디피데스42.195km승전보)
–Xerxes(B.C.486-465)아하수에로왕 에스더의 남편, 인도에서 이디오피아까지127지방의 군주, 스파르타군 격파 아테네 점령 육전승리, 테르모필레, 살라미스 해전 800척대 380척 좁은 해로 유인전(B.C.480년)패배, 이집트 반란진 압B.C.486년, 바벨론 반란진압B.C.482년 에스더서 모르드개, 하만의 유다인들 전멸될 뻔한 사건을 되돌려 복수하는 부림 절 사건,
–ArtaxerxesⅠLongimanus(B.C.465-424)아닥사스다1세왕(Ezra7장)재위7년 5월 포로2차 귀환(B.C.458년1월 출발 바 벨론 출발), 서기관겸 제사장 에스라는 왕의 고문, 율법회복, 성전 제사회복, 유대공동체, 회당 율법교육, 재위 20년 B.C.445년 3차포로 귀환(포로현지출생 자녀세대) Nehemiah 2장 1절 니산월 16년간 중단된 성벽공사 52일 만에 완공, 성경낭독, 초막절 지킴, 페르시아는 그리스와 Callias평화협정
–XerxesⅡ(B.C.423)45일만에 암살됨
–DariusⅡ nothus(B.C.423-404)
–ArtaxerxesⅡMnemon(B.C.404-358) 404 이집트반란 독립(28-30왕조), 401 형제의 난 (형 고레스)
–ArtaxerxesⅢOchus(B.C.358-338)
-Arses (B.C.338-336)
-DariusⅢ Codomannus (B.C.336- 331) {⑴Granicus전투 알렉산더군과 전투참패, ⑵잇수스 전투 알렉산더군4만 고슴도치 밀집대형으로 다리우스3세 군60만 대패 ⑶Gaugamela 전투 참패로 박트리아로 도주 태수에 의해 살해됨, 알렉산더 군 바벨론 입성, 페르세 폴리스 점령, 인더스 강 건넘, 인도 절벽 산 도달 회군, 바벨론 귀환 알렉산더사망}
9. B.C.323년 Greece(성난 수염소)의 Alexanderos사망
Philipos 2세 기원전356년 애꾸눈 털보 Philipos 2세 부왕과 어머니 올림피아스에게서 마케토니아의 수도 펠라에서 알 렉산더 출생, B.C.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승리로 도시국가들을 통합하여 그리스로 통일, 기원전336년 코린 트 원탁회의에서 페르시아 복수전 결의, 에게 해 근처 딸의 결혼식을 위해 딸과 사위를 데리고 신전 으 로 가던 필립포스2세는 아탈루스가 강간한 귀족출신으로 필립포스의 수려한 동성애 파트너 궁중의 파우사니 아스에게 살해됨(강간범을 처벌하지 않고 그리스지방 총독으로 임명하자 분개함.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2권28장, 소크라테스의 영향 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이고 알렉산더군대 동성애 부대로 알려짐),
-알렉산더(B.C.336-323)20세에 왕위 계승, 부친을 살해한 자들을 처형하고 데모스테네스의 반란도 진압, 소수정예, 밀 집 방어진과 천재적 기병전으로 무장하고 수 염소의 깃발을 펄럭이며 펠레폰네소스 해협 건너 B.C.334년 Granicus전투 승리, B.C.333년 입수스 전투 승리, 두로 요새 점령(7개월) B.C.332년 이집트점령 페르시아 통치에 염증 내던 이집트인들 알렉산더군 환영, 332년 9월 예루살렘 방문 대제사장 얏두아의 환영과 함께 성전 봉헌제사 드림, B.C.331년 Gaugamela 전투승리로 페르시아 패망, 페르세 폴리스에서 동진, B.C.327 년 박트리아점령, 소그디아나의 파라이타게네(타지키스탄) 옥시아르테스의 딸 록산나와 혼인(AlexanderⅡ) 화해정책으로 점령, B.C.326년 봄 인더스 강 건넘, 마우리아왕조(인도)의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갔으나 군대 의 거부로 동진 중단 바벨론으로 회군, 헬레니즘→인도의 간다라예술, 당나라 불교문화에 영향, 아리스도텔 레스에 수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카 칼리스 테네스가 페르시아관리들의 알렉산더 왕에 대한 동방 식 경배 의전 반대 수용, 그리스 군인들과 관리들 페르시아인들과 결혼 장려, B.C.323년 6월13일 바벨론 사망 12년 8개월 왕위 ( 구약 마지막 대제사장 얏두아 느12:11)
10. 다니엘서 7장 하늘의 네바람, 네 머리의 표범
바벨론 벨사살 제 일년(≒B.C.546)Danniel의 환상 속 내용들,
알렉산더 사후 처음 7명의 부하 장수들이 경쟁하였으나 강력한 장군들의 디아도키 시대((B.C.323?-301? 춘추전국, 군웅할거) 입수스전투(B.C.301년)로 경합 후 결국 네 개의 나라로 갈라섬,
1, 카산드로스장군 그리스 지역
2, 리시마쿠스 장군 소아시아 트라키아
3, 안티고누스장군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지역, 인도 일부
4, 톨레미 장군 이집트, 팔레스틴
안티고누스 장군이 바벨론에 있는 알렉산드로스의 부인 록사나와 아들 알렉산더 2세 살해,
헬라의 정통성 주장 다른 장군들의 복종 강요, 입수스에서 4장군의 전투(B.C.301년)시 이집트 톨레미는 Seleucus nicatol 장군을 전쟁에 파견, 안티고누스가 제거 되었으나 안티고누스의 지역을 Seleucus nicatol 장군이 차지함,
새로운 4분 구도
1, 카산드로스 그리스 지역
2, 리시마쿠스 소아시아 트라키아
3, Seleucus nicatol(작은 뿔)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지역, 인도 일부
4, 톨레미 이집트, 팔레스틴
이집트의 톨레미가 차지해야할 안티고누스 지역을 휘하 장군 셀레우커스 니카돌의 배반으로 빼앗기자 7차례의 북방 Seleucid왕가와 남방 Ptolemy왕가의 전쟁으로 번져 이른바 세계사 150년 전쟁의 발단이 됨
북방 Seleucid왕가
SeleucusⅠ nicatol (B.C.312-280)
-AntiochusⅠ(B.C.280-261)
-AntiochusⅡ(B.C.261-246)
-SeleucusⅡ(B.C.246-226)
-SeleucusⅢ(B.C.226-223)
-AntiochusⅢ(B.C.223-186)the Great 바니아스 전투 승리로 팔레스틴과 유대지역접수 이집트전 의도대로 되지않고 섬들조차 로마의 개입 으로 뜻대로 되지 않고 마그네시아 전투 패배 굴욕적인 Apamea 평화조약 배상금 때문에 Elam신전약탈하다 살해됨
-SeleucusⅣ(B.C.186-175 안티오크4세 동생에게 살해됨
-AntiochusⅣ(B.C.175-163)Epiphanes(신이 나타나다) 성전훼손 약탈, 할례와 안식일금지 토라 불태움 번제 단에 제우스 신상 세우고 돼지 피로 성전오염, 하시딤 450명 아폴로니우스 장군의 전차부대로 깔아 뭉개어 살해, 4만의 유다인포로 매매, 8만 살해, 4만의 포로들 노예로 시리아에 끌려감
-AntiochusⅤ(B.C.163-161)
-DemetriusⅠ(B.C.161-146) (알렉산더 발라스)유대 성전 대제사장 아론의 후예 야킴 임명
-AntiochusⅥ(B.C.146-143)
-트리폰 (B.C.143-139)
-AntiochusⅦ (B.C.139-134)유다 침공 예루살렘 정령하고 과중한 공납물 요구, 134년 갑자기 사망으로 유다에 대한 지배 종결
로마 폼페이우스 개입으로 셀류시드왕조 B.C.64년 멸망, 시리아는 로마의 속주로 전락
남방 Ptolemy왕가
-PtolemyⅠ Lagi (B.C.323-285)
-PtolemyⅡ Philadelphus (B.C.285-246)
-PtolemyⅢ Euergetes (B.C.246-221)
-PtolemyⅣ Philopator (B.C.221-203)성전 진입 시도하다가 마비되어 쓰러진 후부터 유다인들 학대
-PtolemyⅤ Epiphanes (B.C.203-181)
-PtolemyⅥ Philometor (B.C.181-146)
-PtolemyⅦ (B.C.146-117)
↓
-클레오파트라와 Ptolemy13세의 남편이자 남동생, 왕위 경쟁자 이집트의 독립을 보장해 주기로 한 율리우스 시저와 사랑, 시저 원로원에서 살해되자 어린 아들 카에사리온을 데리고 이집트로 귀환, 안토니우스와 두 번째 사랑, B.C.31년 안토니우스군대가 옥타비아누스와 악티움해전에 패하여 안토니자살했다는 소식에 클레오파트라도 39세로 자살함 폭 넓은 독서로 박학다식한 여 군주
11. 남 북 왕가의 전쟁
1차 전쟁 톨레미Ⅰ와 셀류커스Ⅰ 니카톨 간의 전쟁 312년
2차전쟁 안티오크 1세와 톨레미 2세간의 전쟁 (B.C.274-271)
3차전쟁
안티오크2세와 톨레미2세간의 2차 전쟁 후 남방 왕 톨레미 2세의 딸 베르니케를 안티오크 2세에게 시집보내 평화협정맺음 안티오크2세의 이혼당한 본처 라오디케가 남편을 독살하고 베르니케와 그의 어린 소생마저 살 해, 라오디케의 아들 셀류커스 2세 왕위계승 된 사건 (단11장 5-6절)
4차전쟁
북쪽 4번째 왕 셀류커스2세와 톨레미3세간의 전쟁(B.C.246-241) 누이와 조카마저 살해당하자 남쪽 톨레미 왕가 톨레미 3세 간의 복수전으로 북쪽 셀류시드 왕가의 패배로 많은 재물과 신상들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 함(단11장6-9절)
5차전쟁
안티오크 3세와 17살의 톨레미 4세간의 전쟁(B.C.219-217) 라피아 전투 후에 톨레미4세가 예루살렘에서 제 사장들의 만류에도 성전 진입시도하다 마비되어 쓰러졌다 깨어난 후부터 유다인 탄압
6차전쟁
안티오크 3세와 5살의 톨레미 5세간의 전쟁(B.C198년) 바니아스 전투 유대인들의 도움으로 안티오크 3세 승 리 후에 딸 클레오파트라를 남쪽의 톨레미5세 5살에게 정략 결혼시킴 이집트를 딸을 통해 조종하려 했 으나 딸이 남편의 편을 들어 무산됨, 팔레스틴과 유다의 지배를 갖게 됨(단11장17절)바니아스 전투 승리로 팔레스틴과 유대지역접수 이집트전 의도대로 되지않고 섬들조차 로마의 개입으로 뜻대로 되지 않고 마그네시아 전투 패배 굴욕적인 Apamea 평화 조약 배상금 때문에 Elam신전약탈하다 안티오크 3세 살해됨
7차전쟁
안티오크 4세와 톨레미6세간의 전쟁(B.C.170-169)으로 알렉산드리아까지 점령하여 이집트 전체가 위기에 처 했을 때 로마의 원로원에서 파견한 포필리우스 라에나스 장군에게 모욕을 당하고 이집트 점령이 수포로 되자 과도한 전비조차 건지지 못하고 회군하게 되어 억울하고 분한 적개심으로 예루살렘에서 악행을 저지르고 성전 을 모독, 경건한 유대 하시딤 450명을 돌길위에 뉘이고 아폴로니우스 장군의 전차부대로 깔아뭉개어 죽이고 8 만명을 살해하고 4만을 노예매매, 안티오크로 4만 명을 노예로 끌고 감, 토라의 낭독과 소지를 금하고 안식일 제도를 금하고 성전의 번제 단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많은 돼지를 잡아 그 피로 성전에 뿌려 모독하면서 헬 라의 음란문화를 권장하고 할례까지 금하는 만행을 저질러 많은 제사장들이 하늘에 절규하는 사태가 있었다함 (2300주야 동안 암흑기)
포로 귀환 후 학자 에스라의 노력으로 성전제사와 율법의 준행이 회복되는 듯하였으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감격 의 눈물로 읽었던 토라를 읽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강력한 지도층의 결여로 점차 세속화되어 감에 따라 유다인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 경건주의자들이 생겨나 하시딤 중에서 바리새파와 엣세네파가 나 오게 되었으며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제사장그룹에서 사두개 파로 분리되었다.(마카비전후서 참조)
12. 헬라화 되어 가는 귀환 공동체와 2300주야
폭력으로 헬라화를 강요당하자 귀족층인 사두개파와 권력층과 상인그룹에 헬라화가 급속히 번져갔다. 심지어는
평화를 가장하여 예루살렘성에 당도한 안티오크 4세의 아폴로니우스장군의 부대가 문지기들과 원로들에게 세금거두는 문제로 상의하러 왔다고 속여 성문을 열게 하고 성안에 들어선 안티오크 군대가 또 다시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자행하면서 헬라화를 강요하고 제우스 신상에 제사와 경배를 강요했다(B.C.167년9월15일 제우스 신상). 이때 예루살렘 서북방26km에 위치한 제사장들의 도시 모딘이라는 곳에서도 시리아군대의 악행이 시작되어 시리아 군대의 폭력이 두려워 제우스 신상 앞으로 제사와 경배를 하러 가는 나약한 유대인과 제사를 강요하던 헬라 관리들을 처형한 원로 제사장 맛다디아가 아들들과 함께 고프나 산지으로 도망하였다. 거기서 경건주의자들인 엣세네파 유다인들이 합세하고 많은 유다의 젊은이들이 합류하여 군대가 형성되어 안티오크의 군대와 여러 차례 대항하여 전투를 벌여 대부분 승리하고 더렵혀진 성전을 회복하여 가는 과정에서 안티오크 4세에 의해 2300주야(6년4개월 20일간 단8장14절) 동안 겪게 되는 유다 인들의 참혹한 핍박기간 (B.C.171-164 안티오크 에피파네스 =신의 현현, 유다인들 에피마네스=미치광이) 요한복음10장 22, 23절 수전 절
※ 단8:14 그가 내게 이르되 2300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Ha simon (ha 정관사)
⃒
⓵맛다디아(B.C.166년사망)
⃒
요한 ⓸시몬 ⓶유다 마카비 엘르아잘 ⓷요나단(지휘권 계승 순서)
⃒
유다 요한힐카누스Ⅰ 맛다디아
⃒
①아리스도불루스 → ②알렉산더얀네우스 안티오쿠스
⃒
③아내 살로메알렉산드라(왕위 계승순서)
살로메알렉산드라는 남편 아리스도불루스 사후 시동생 알렉산더 얀네우스와 재혼 시동생 사후 여왕등극
⃒
아리스도불루스Ⅱ 요한힐카누스Ⅱ (4년간 왕자의 난, 로마 폼페이우스 개입)
13. 마카비 왕조(하시몬 왕조)B.C.63년 멸망
-유다 아버지 맛다디아가 연로한 몸으로 유다군을 지휘하다가 셋째아들 유다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숨을 거두자 B.C.166년 사망, 유다 가 출전하기 직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난 후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으로 승리하였 다. 예루살렘 회복, 성전봉헌(B.C.164년 12월) 하여 정결하게 함(수전절Hanukah),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술로 연전연승(B.C.166- 160)사마리아에서 유대로 진격하던 안티오크의 아폴로니우스 장군이 유다 군에 살해됨,
후임 Selon장군도 연전연패하는 마카비(쇠망치) 전쟁
-요나단 유대 사막 게릴라전 (B.C.160-142)
-시몬 유대 독립국가 B.C.142년 친 그리스파, 하시딤, 마카비파의 통합
-요한 힐카누스 B.C.128년 사마리아 원정 그리심산 이방신 신전 파괴 유대 화 정책
B.C.125년 이두매 정복 유대화정책으로 할례와 개종 강요 대 헤롯과 그의 아비 안티파테르 개종 유대화
-아리스토불루스Ⅰ (B.C.104-103년) 왕의 칭호 공식 사용 갈릴리 정복 유대 정착촌건설(사9:1이방의 갈릴리)
-알렉산더 얀네우스 (B.C.103-76년)아리스토불루스Ⅰ의 형수 살로메와 결혼, 용병 고용하여 솔로몬이후 최대의 영토,
-살로메 알렉산더(B.C.76-67년女王)마카비 왕조의 전성기 (142-67)국민통합, 종교, 문화적 부흥기
-살로메 사후 4년간 왕자의 난, 아리스도불루스와 아들(B.C.106-63)로마 폼페이우스 개입으로 63년 마카비왕조 로마에 정복되어 폼페이우스가 유다 통치자로 안티파테르의 둘째아들 헤롯 임명(B.C.37-B.C.4년3월) 헤롯은 자신이 이두매 출신으로 정통 유다 인이 아니어서 백성들의 배척을 인식하고 하스몬 왕가의 여인 미리암과 혼인함. 그럼에도 여전히 아무 소용없자 10여명의 아내들을 차례로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 이른바 하스몬 왕가출신 두 번째 부인 미리암의 아들 아리스도불루스를 대제사장에 임명한 후 목욕을 함께 하자며 유인, 욕탕 물속에 눌 러서 살해하고 아내 미리암과 장모 알렉산드라는 이집트에 있는 안토니에게 헤롯의 악행을 고발하는 편지를 띄움, 헤롯은 하시몬 왕가의 씨를 모조리 죽여 없애버림, 백성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유다 백성들의 분노를 누그러트려보려는 술책으로 B.C.19년부터 솔로몬 성전보다 더 거대한 성전공사를 기초부터 확대하여 넓게 터 를 잡고 시작하였다(A.D.64년 완공).
14. 헤롯 왕가
로마를 대신하여 팔레스틴을 통치(B.C.55-A.D.93년)하면서 정통 유다인이 아닌 이두매 출신이라 스룹바벨 성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솔로몬 성전보다 더 규모가 큰 성전을 지어 유대인들이 자신에 대한 증오와 따가운 시선들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함
AntipaterⅠ 이두매의 장군 B.C.70 사망
-Antipas Ⅱ 안디바 안티파테르Ⅰ의 아들로 B.C.47년에 유대 총독으로 임명 됨, 나바테아 왕국의 공주 키프로스와 결 혼 장남 파사엘과 헤롯(대 헤롯) 출생 B.C.43년에 사망
-HerodⅠ the great 헤롯왕(마2:1, 19절) 안티파스 2세의 둘째, 갈릴리 통치,B.C.47, 하시몬 왕가의 후손이며 아리스 토불루스의 아들 대제사장 안티고누스가 파르티아(바대)와 연합하여 헤롯가와 전쟁, 3년간 유대인의 왕, 헤 롯의 형 파사엘은 파르티아군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자살, 헤롯은 로마로 피신하였다가 유대인의 왕으로 (B.C.37-B.C.4), 1년후 유다로 귀환, 로마가 파르티아군 몰아내고 안티고누스는 로마로 압송, 예수님 탄생하 실 때 유다의 왕, 예루살렘 성전 재건축 (B.C.19-A.D.64) 가이사라 건축 수도 이전, B.C.4년 사망 예수님 가족 이집트에서 나사렛으로 귀환
-Herod Antipas 헤롯 안디바(B.C.4-A.D.39)갈릴리 분봉 왕, (마14:1분봉 왕 헤롯 막6:14 헤롯왕 눅13:32 여우) 헤롯 대왕의 아들로 아내 헤로디아, 셒포리 디베랴를 수도로 건설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 빼앗아 혼인 세례 요한 죽임(마14:11) 예수님 심문(눅23:8)
-Herod Arckelaus 아켈라오(마2:22) 헤롯대왕의 아들로 안디바의 동생, 유대 사마리아 지역 분봉왕(B.C.4-A.D.6)
악정에 시달리던 유다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파면됨, 로마총독 직접통치(A.D.6-41) A.D.18년사망
-Herod phillipⅠ(빌립)헤롯대왕의 아들로 헤롯 안디바의 이복 동생 아내 헤로디아 이복 형 헤롯 안티파스에게 빼앗김(마14:3),
-Herod phillipⅡ 분봉왕 빌립(눅3:1) 헤롯대왕의 제일 나은 아들로 이두매 분봉왕 가이사라 빌립보 건축 뱃세다 재건
A.D.34년사망
-Herod AgrippaⅠ헤롯왕(행12:1) 헤롯대왕의 손자로 헤롯 안디바의 조카, 유대와 사마리아 통치, 야고보 처형(행12:2)
베드로 투옥(행12:3) A.D.34년 사망
-Herod AgrippaⅡ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로 (행25:13) 헤롯가의 마자막 통치자, 베니게와 근친상간, 가이사라에서 바울 심 문(행26:1) A.D.100년 사망
15. 사납고 무서운 네번째 짐승의 로마 사 요약
B.C.754 쌍둥이 늑대소년 로물루스 형제 로마 건국신화
B.C.334 이탈리아 반도 통일
B.C.264-241 서 지중해 패권을 잡고 있는 카르타고와 1차 포에니 전쟁
B.C.218-202 2차 포에니 전쟁 한니발 장군 알프스 원정
B.C.202-191 고올 정복
B.C.146 그리스 로마의 속주,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 종료
B.C.88-79 슐라 집정관 취임
B.C.73-71 스파르타쿠스 노예들의 반란
B.C.60 1차 삼두정치 Pompeyus, Crassus, Julius Caesar시저
B.C.58-51 시저 고올과 브리튼 점령
B.C.49-44 시저의 집정관 임기 만료에 대해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이 비무장 본국소환 명령, 불복, 시저 군대 루비콘 강을 건너 내전 점화, 폼페이우스 그리스 지역으로 도주, 시저 군에 패하여 이집트로 도망, 이집트인들 폼 페이우스 머리 시저에게 바침, 시저 클레오파트라의 사랑, 시저 종신 집정관 취임, 원로원 부르투스에 시저 암살되자 클레오파트라 시저의 아들 카에사리온을 데리고 이집트로 귀환, 임시로 맡긴 톨레미14세를 죽이 고 아들 카에사리온을 이집트 왕으로 세우고 배후에서 조종
B.C.43 2차 삼두정치 Octavianus, Mark Anthonyus, Lepidus
B.C.40 옥타비아누스와 마크 안토니우스 전쟁,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두 번째 사랑-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을 모조리 소탕하고 동방의 속주들을 순시하는 중에 소아시아의 길리기아주 의 타르소스(다소)에서 원로원 파를 금전으로 매수한 협의를 씌워 클레오파트라를 소환하였으나 호화롭게 꾸 민 배위에 올라선 안토니는 파르티아 원정 하려던 본분을 잃어버리고 클레오파트라에 빠지게 되어 이집트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로마의 본처 폴리비아가 남편 안토니를 불러들이려는 계책으로 안토니의 부하와 옥타비아누 스가 전쟁을 하게 했다. 안토니의 패배 아내마저 병으로 사망하여 위로하며 서로 화해, 레피두스와 삼두정치 재확인 후 옥타비아누스의 누이 옥타비아와 재혼시킴, B.C.33년에 옥타비아와 이혼, 클레오파트라와 재혼 파 르티아 원정은 패배로 끝나고 로마 시민들과 원로원은 안토니를 비난하며 소환하여 처형하고 나일 강의 마녀 클레오파트라를 잡아 죽이라고 들끓었다.
B.C.31년 9월 1일에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 승리, 안토니 이집트에서 자살, 클레오파트라 자살 옥타비아누스 황제(아우구스투스) 등극, 징세 목적의 팔레스틴 인구조사 실시(갈릴리 나사렛→베들레헴 160km) B.C.4년 베 들레헴(빵집)에서 주 예수님 탄생하심, 아우구스투스 A.D.14년까지 집권
A.D.14-37년 티베리우스 황제
A.D.43 로마 브리타니아 정복
A.D.54-68 로마 대 화재 폭군 네로 황제, 기독교 신자들 대 박해로 학살당하여 일곱 언덕에 묻힘(교황청자리),
A.D.66 로마의 유대 총독 부정부패와 가혹한 징세로 불만 폭발 유다인 반란, 67년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의 무자비한 진압작전으로 전쟁으로 확대, 69년 베스파시아누스 장군 로마 귀환 군인 세력의 지지로 황제 등극
A.D.69-79 플라비우스 왕조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등극
A.D.70 유대 예루살렘 성전 로마군의 약탈과 파괴, 예루살렘 성 내부에 관광객포함 백만 가량 갇힘, 혼란을 틈타 도 적 떼와 강도 집단들 난동으로 비축식량 불탐, 아사자 속출하는 중에 귀부인 자녀를 삶아 먹는 참사, 요세푸 스 성벽에 올라 성문 열고 로마에 항복권유, 배신자란 비난 속에 시체 썩는 냄새 진동하자 성 밖으로 시체 던지며 비류들의 저항, 지옥의 참극을 경험하며 성전 파괴하다. 성전의 자취조차 사라짐.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장군의 로마군 예루살렘 성 파괴(B.C.586년 솔로몬성전 파괴되던 날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참조)
A.D.73 마사다 전투 유다의 마지막 항전 전원 자살 참패
A.D.79-81 티투스 황제 등극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A.D.81-96 도미티아누스 황제 티투스 황제의 동생(3부자황제) 기독교 박해 사도 요한 밧모섬 유배 요한계시록
A.D.117 하드리아누스 황제
A.D.122 하드리아누스 (장벽 건설) 132년 황제 숭배 강요와 신상건립문제로 바르 코크바(아람어 별의 아들), 유다 지 도자, 지휘로 2차 유다인 독립투쟁 3년간 독립, 세베루스의 로마군 135년 유다진압, 예루살렘 추방령, 유다 인 예루살렘 출입금지 어기면 사형 처한다는 황제의 포고령 디아스포라
A.D.307-337 306년 7월 25일 콘스탄티누스 황제 312년 소규모군대로 알프스를 넘어 토리노와 베로나에서 막센티우스 군대를 물리치고 가을에 로마에 입성 로마 서쪽 밀비아 다리에서 충돌, 중대한 전투에서 기독교깃발을 앞세운 콘스탄티누스군대가 승리함, 313년 기독교 공인, 314년 아를르 공의회 서방 주교들 소환 평신도로 참석, 324 년 다신교 제사금지령, 325년 동부와 서부의 총대주교들 니케아 회의 소집 아리우스주의 배척(알렉산드리아 사제 아리우스가 주장한 이단설), 니케아 신조, 안티오크에서 <사도들에게>라는 제목의 긴 연설, 337년 임종 침상에서 침례 받음(크리스 스카레의 로마황제 참고)
A.D.337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
A.D.395 데오도시우스Ⅰ황제(379- 395) 고트족과의 4년간 전쟁을 평화조약으로 끝내고 동방을 군사적으로 안정시켰 으나 제국 내에는 서고트족들이 정착해 살게 되었다. 밀라노에서 황제가 죽기 전에 동로마를 아르카디우스(17 살395- 408)에게 상속되었으나 그가 31세에 사망하여 7살 아들 데오도시우스Ⅱ 황제(A.D.408-450)에게 다시 상속되어 40년간 재위에 있었으나 권력은 누이와 아내에게 있다가 433년부터 누이 폴케리아가 통제권 장악,
데오도시우스 치세동안에 주요 골칫거리는 도나우강 북쪽의 훈족의 아틸라였다.
-서로마는 차남 호노리우스(10살395 -423)에게 남겨줌 (금신상의 두 다리) 콘스탄티우스 장군의 충성으로 제국 내에 정 착한 부르군트족과 서고트족을 통제는 했지만 스페인지역에는 반달족과 알란(알레마니)족 수에브 족에게 시달리 게 됨
A.D.425 423년에 호노리우스가 죽자 황제 위 계승문제로 혼란하다가 425년 5월에 라벤나에서 데오도시우스 군대는 6세의 발렌티아누스를 황제로 옹립하고 재위 찬탈자 요한네스를 살해, 사실상 실권은 갈라 플라키디아와 아 이티우스 두 장군에게 있게 되면서 져물어 가는 로마제국
A.D.476 서로마 멸망,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작은아우구스투스) 서로마 마지막 황제, 476년 여름 게르만 용병대장 오 레스 테스가 이탈리아 영토 1/3을 내놓으라고 하여 거절하는 황제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해 9월 4일에 서 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루구스 툴루스는 퇴위 강요에 황제자리를 내놓고 나폴리 만으로 은퇴하여 연금 생활, 공식적으로 멸망이라고 하지만 서로마 제국내의 권력층들만 제거되었으나 일반인들의 생활은 계 속되어 갔다(살후2장).
A.D.540 동로마 비잔티움 제국이 이탈리아 재정복
A.D.1453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풀 오스만 트루크에 점령 멸망, 8인치 대포 소리에 놀란 경비병이 해안 초소 문 잠 그지도 못하고 도주, 동로마 패망, 콘스탄티누스 황제 로마의 귀족층들에게 콘스탄티노플에 면세 혜택과 건 축자재 대리석 등을 제공하면서 까지 이주를 적극 추진 큰 도시로 발전 동로마의 수도가 됨
16. 열 발가락(열 뿔 단 2장의 금신상의 철과 진흙의 열 발가락)
(성경은 서 로마를 기준으로 예언하심 <참조 : 군주론 마키아 벨리>)
로물루스 황제의 서로마 476년 게르만족 헤룰리의 용병대장 오토 아케르에게 멸망으로 10발가락으로 분열
사납고 무서운 짐승 의 로마가 멸망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내몽고에서 발원한 훈족(Hun흉노)의 일파가 서진하여 항가리 부다 페스트에 본거지를 정하고 게르만족을 침공,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 훈족의 군대를 피하여 이른바 세계사의 게르만족 대이동으로 로마의 영내까지 피신해 가면서 로마의 붕괴가 시작됨(서방에서 훈족의 역사375- 469 전성시대 아틸라 대왕 때) 처음에는 아틸라대왕 에게 거액의 황금과 배상금을 주면서 명목상의 로마로 버티어 가는 과정에서 (서로마의 로마교구의 총대주교)이를 중재하던 종교의 정치개입이 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카톨릭의 수장들이 정치에 개입 야합해 가면서 이른바 적그리스도 교황으로 발전하게 됩니다(로마 영내의 5대교구 : 로마, 콘스탄티노플, 안티오크,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교구).
1. 351 프랑크 (프랑스)갈리아지방의 프랑크족, 게르만 대 이동 끝 무렵 481년 아버지 힐데릭의 뒤를 이어 클로비스 가 조부의 이름에서 유래한 메로빙거(메로베치) 왕조를 세워 라인 강 하류까지 확대, 10개 부족들을 합쳐 프 랑크 통일국가 형성, 클로비스 로만 카톨릭으로 개종, 아리우스파 서고트족을 데스파냐로 축출, 벨기에 프랑스 지역에 해당하는 곳까지 확장, 게르만의 왕국들이 대부분 소멸해 가도 건재한 왕국, 클로비스 사후 4명의 아 들들에게 분할 되었으나 558년 막내아들 클로타르1세가 통합, 클로타르 사후 세 아들에 분할통치 하면서 형제 간의 다툼, 두 아들이 죽고 그 중에 지기베르트의 아내 브룬힐데가 왕위를 차지하여 내분하는 사이 732년 이 슬람의 침략을 카룰루스 마르텔 궁재가 자신의 군대로 투르와 푸티아에서 국가 존망의 위기를 막아내자 백성 들이 왕이 될 것을 간청하였어도 거절함, 그럼에도 무능한 왕을 궁재의 아들 Pippin이 폐위시켜 수도원 승려 로 만들고 자신이 751년 카롤링거 왕조로 전환, 피핀의 아들 Charlus(771-814)대제가 800년 로마 총대주교 로부터 서유의식과 서로마제국 황제의 관을 씌워주는 대관식, 게르만 대 이동으로 혼란과 무질서의 상황을 매 듭 짓고 유럽에 정 교 협력 속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획기적인 사건,
2. 351 알레마니 (독일)260년경 아그리테쿠마테스 점령, 5세기말 알자스와 스위스 북부까지 영토 확장, 496년 프랑크 클로비스에 정복되어 프랑크에 합병됨, 원래 여러 게르만족이 합쳐진 부족으로 수에비족 내에서 부족 연맹체 결성, 독일이라는 프랑스어 Allemagne와 스페인어 Alemania
3. 406 부르군트 스위스 동게르만 일파 브루고뉴 일대
4. 406 수에비족 군사령관 리키메르의 라벤나궁 반란 원로원 의원 중에 리비우스 세베루스 3세를 서로마 황제로 옹립 하였으나 465년 11월 사망 467년 4월 안테미우스 서로마황제로 이탈리아에서 선포되었지만 반달족원정 실패
472년 리키메르가 안테미우스를 처형하고 올리브리우스를 후임 황제로 옹립한 그해 7월에 사망, 그가 옹립한 황제도 11월에 사망 473년 3월에 브르군트의 왕자 군도바트의 꼭두각시 황제로 글리케리우스가 임명하였으나 474년 6월 동로마의 황제 장군에게 쫒겨 나고 율리우스 네포스를 앉혔으나 1년후 다시 자신의 부하 오레스 테스에게 폐위되고 사실상의 로마의 군대실권은 게르만 용병대에 있었으므로 에레스 테스는 자신의 아들 로물 루스 아우구스 툴루스에게 양위되었다. 476년 여름 게르만 용병대장 오토 아케르(오레스 테스)가 이탈리아 영 토 1/3을 내놓으라고 하자 거절하는 황제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해 9월 4일에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 스 아우구스 툴루스는 퇴위 강요에 황제자리를 내놓고 나폴리 만으로 은퇴하여 연금 생활, 공식적으로 서로 마 패망됨
5. 408 서 고트 데오도릭왕 수도를 톨로사(툴루즈)로 정함 스페인 서 게르만 알라릭410년 로마 침공 갈리아+히스파 니아 거 대 왕국 수에비 인접 711년 이슬람에 패망
6. 409 앵글로 색슨, 브리튼, 영국
7. 429 반달 게르만 일파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중심으로 국가 건설 455년 6월에 로마 2주간 라벤나 약탈 후 물러감
8. 453 롬바르트 이탈리아 북부 지배자 리우프란트 다브뉴 강과 오스트리아 지역 게르만족(롬바르드족)이 세운 롬바 르디아 왕국의 중심지 569년까지 롬바르드족은 파비아를 제외한 포 강 이북의 모든 주요도시를 정복, 774년 이 지역은 샤를마뉴 왕이 다스리던 프랑크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가 스페인(1535~1713)·오스트리아 (1713~96)·프랑스(1796~1814)의 지배. 이탈리아의 통치는 1859년부터
9. 453 동고트Ostrogoth 이탈리아 아드리아해 북동지역 고트왕국
10. 476 헤룰리 이탈리아 ⇒스칸디나비아+발칸반도 이주 동 게르만 일파 스웨덴 남부Dani 북 게르만 일파
이탈리아(433-493)왕(480-493)으로 게르만의 용병대장 오토 아케르가 되었다.
서고트족과 수에비족은 스페인을 양분하고 반달족은 북 아프리카에서 정착 해 갔으며 로마 령의 브리타니아는 앵글로 색슨 족의 잉글랜드로 번창해 갔다.
여러 종족 이름들
슬라브=폴란드
마자르= 헝가리⇒말갈족 (흉노 훈족은 아틸라 대왕 사후 항가리와 유럽 변방으로 흩어짐)
바이에른= 알레마니족
프랑켄=튀링겐족 Mizraim=Egypt 히브리 단어
엘람=페르시아의 옛 이름
리디아=Lud, Lydians터키서부
수메르= 시날, 세메르 셈의 나라(점토판)
우르 = 우르크, 에렉
악갓= 아카드 트루크=터키(말갈)고멜, 도갈마
마곡= Magog, Magogites 그리스인들은 스키타이(Scythians)로부름
그리스=Jayan, Greece히브리인들은 야완(달시스, 엘시스, 깃딤, 도다님)
메섹=Mesech, Moscow의 옛 이름
17. 적그리스도
다니엘 7장 20절
또 그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뿔이 그 앞에서 넘어졌고 그 뿔에는 눈들도 있고 심히 큰일들을 말하는 입도 있고 그 외모가 그의 동료들보다 더 견고하게 보이더라.(또 다른뿔 : 적 그리스도 교황 . 그 앞에서 넘어진 세뿔 :헤룰리493년, 반달534년, 롬바르트538년 동로마 유스티아누스<저스틴> 황제의 벨리사리우스 장군)
21절 내가 본즉 바로 이 뿔이 성도들과 싸워 이겼으나
22절 옛적부터 계신 분께서 오셔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도들을 위하여 심판을 베푸셨으며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그 왕국을 소유하였더라.
23절 그가 이같이 이르되, 넷째 짐승은 땅위에 있을 넷째 왕국인데 이 왕국은 모든 왕국과 달라서 온 땅을 삼키고 짓밟아 산산조각 낼 것이요,(넷째 짐승 넷째 왕국 : 로마)
24절 또 이 왕국에서 나온 열 뿔은 앞으로 일어날 열 왕이요, 그들 뒤에 다른 왕이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정복할 것이며 (476년 서로마 멸망 후 열 나라로 분열, 그들 뒤에 : 754년, 다른 왕 : 교황, 세 왕을 정복할 것이며 : 헤룰리493년, 반달534년, 롬바르트538년)
25 그가 앞으로 엄청난 말들을 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을 대적하겠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도들을 괴롭혀 지치게 할 것이며 또 그가 때와 법을 바꾸고자 생각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넘겨져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한 때 두 때 반 때 : 42달 = 3년 반 = 1260일 = 538~1798년 2월 10일까지 교황권에 의해 성도들이 박해 받는 기간)
사도들에 의해 선교된 그리스도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순수함을 이탈하여 세속화되어 마침내 로마의 콘스탄티누스황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소위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변질되어갔습니다. 사도 바울께서 당시에 경고하신 적그리스도의 나타남을 지금 막고 있는 자가 있다고 하셨는데(살후2장), 그 막고 있던 자 로마황제가 476년 서로마의 멸망으로 제거되고 10개의 부족국가로 분열해(열 발가락, 열 뿔) 가면서 영토분쟁의 시대로 접어들게 됨, 로마 멸망의 결정적 원인중 하나는 내몽골에서 서진해온 (흉노)훈족이 게르만을 공격하여 이른바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로마의 영내로 밀려들게 되고, 로마는 이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훈족과 전쟁을 치르게 되지만 기울어진 동, 서로마는 훈족에게 굴복하여 거액의 배상금으로 버텨가고 훈족은 1세기 간 유럽을 지배하는 과정에 서로마와 훈족 간에 배상금 문제를 상호 조정하고 중재하는 과정에서 종교의 정치개입이 시작 되면서 적그리스도(카톨릭 교황) 세력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됨.
전 유럽을 두려움과 공포로 떨게 하던 훈족의 아틸라 대왕이 게르만 일파의 공주와 결혼하여 피로연을 마치고 술에 취하여 밤늦게 잠든 침실로 자객이 잠입하여 예리한 송곳무기로 비강을 통해 뇌를 찔러 암살하는 상황을, 가장 유력하게 의심되는 자들 중에 하객으로 와 있던 자들 중에 훈족의 왕궁에 거침없이 드나들 수 있는 총대주교 일파를 지목하는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었다네요.
로마지배의 영내에 5대 교구(로마, 콘스탄티노플, 안티오크,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교구)중에서 황제의 권력이 작용하는 로마교구의 총대주교가 수위권을 주장하며 정치에 개입하고 상호협력(정교협력)관계로 발전, 부도덕한 프랑크족의 정치적 우두머리를 서유의식을 해주고 황제로 등극할 수 있도록 하면서 로마의 총대주교는 이들의 도움으로 754년 교황 좌에 오르게 되고 이탈리아의 중심부 로마에 교황령의 5개 영지까지 확보하더니 유럽 왕들마저 두려워하게 하는 카놋사의 굴욕 사건으로 교황의 횡포가 어떠함을 서양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더니 마침내는 성경과 십계명을 변개하고 하나님의 자리까지 모독하는 더러운 존재로 이른바 정의와 법률적 기준 잣대가 없는 악의적 종교재판으로 수많은 성도들의 피로 얼룩진 교회사 속에서 숨겨진 순교사화를 남겼습니다.
계시록의 13장 첫머리에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되살아나 온 세상이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그에게 온 세상이 경배하더라는 말씀대로 나폴레옹에 의해 1798년 2월 10일에 교황 피우스 6세의 죽음으로 교황권의 소멸이 확실한듯하였으나 이탈리 파시스트 무솔리니와 1929년 2월 10일에 교황 피우스 11세의 대리인 가스파리 추기경의 라테란 궁 정교협약의 부활로 정확히 말씀대로 죽었던 머리 하나 적그리스도 교황이 세상에 다시 살아나 온 세상을 폭력으로 지배권을 획득하려 시도하다 실패를 거듭해도 멈추지 않습니다(1차 2차 세계대전).
르네상스의 문화적 부흥기에 유럽은 종교의 암흑기로 수많은 성경 신자들을 화형과 고문 살해하던 잔인하고 추악한 행태들을 어찌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존 폭스의 순교사화)
적그리스도 교황청 악마의 화신 교황세력들은 고도로 문명화된 지금 옛날처럼 드러내놓고 잔인하게 악행을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마귀 사탄의 앞잡이임을 숨긴 채 온 세상 지배권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않고 물밑에서 온갖 추악한 정치 공작과 잔인하고 음흉한 배후 조종자로서 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교황세력들이 인류의 대량 살상과 폭력적 지배를 목적으로 고안해낸 사악한 지옥의 묵시록이라 하겠습니다만 세기말 전에 실패를 인식하고 종말론적인 Neo Maxism으로 수정하여 전 세계를 지금 소돔과 고모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오래전 교황청의 또 하나의 걸작인 계시록 무저갱의 연기 속에서 올라오는 메뚜기(아르비=아랍) 떼들인 폭력적 이슬람의 해악은 성도들과 인류를 향한 단발마적 최후의 발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시라면 성경을 읽으시고 이 세력들에 대하여 똑바로 분별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출발
우리 주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성경에서 말씀하심
1260일(마흔두 달, 삼년 반, 한때 두 때 반 때)시작과 종결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시켜 이탈리아 반도를 침략하는 반달, 헤룰라이, 롬바르트 세 민족을 치고 로마감독을 이단 처형권을 주고 교회의 머리로 인정한다는 저스틴(유스티아누스) 동로마의 황제 칙령이 나던 해 538년을(1260일 42달, 3년 반)시작점으로 하여 1798년 2월10일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발티에르 장군의 군대가 교황청으로 쳐들어가 교황PiusⅥ 대관 연회 중에 체포 프랑스의 발렌스 성에 감금 굶주림 속에 1개월여 만에 사망 공식적으로 지상에서 교황이 사라지면서 1260일(삼년 반, 마흔두 달)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끝나게 됩니다. 이 기간에 교황과 교황청세력들에 의해 소위 이단 심문소라는 종교 재판소를 만들어 유럽에서 성경 신자들을 향한 악마적이고 잔인한 탄압으로 성도들의 피 흘린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보석처럼 숨겨진 계시록의 144000 의인들의 순교사화가 드러나게 됨(계시록7장1-8절 이스라엘의 12지파와 그 외의 많은 흰 무리들)
754년 최초의 교황 등장(Anti Christ)
Vigilius 로마의 총 대주교(537-555) 로마는 476년 멸망 후 이탈리아를 침공한 고트족을 물리치려고 동로마의 황제 유 스티 아누스(저스틴)군대를 파견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려고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한 전임 총 대주교 아카피토Ⅰ 의 사망으로 부제로 있던 비질리우스에게 동로마의 황후 데오도라가 451년 칼케돈 공의회의에서 결정된 사항 을 부정하고 주 예수님께 대한 단성론을 지지를 요구하며 금700개와 많은 여비를 주고 로마 귀환의 안전보장 과 총대주교가 되게 해주겠다는 밀약, 동로마 군대의 벨리사리우스 장군의 호위를 받으며 로마에 귀환, 이미 임명되어 있는 실베리오 총대주교(536-537)쫒아내어 귀양 보내 굶어 죽게 함 534년 동로마 저스틴 1세 황제 는 주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지지하는 정통론에 대하여 세신학자와 저서를 단죄하는 삼장서 칙령발표
자카리아 로마의 총 대주교 (741-751)로마시를 침공한 롬바르드족과 평화조약 협상, 성상파괴론자 동로마 황제와도 화 해하며 프랑크왕국과 우호관계 강화하면서 이름뿐인 메로빙거 왕조를 피핀3세(카롤링거 왕조)가 왕위찬탈을 묵인하고 왕위에 오르도록 도움(정치와 종교의 야합= 정교협약)
스테파노Ⅲ(2세) 로마의 총 대주교(752-757)에서 754년 최초로 교황 좌에 오름 752년 스테파노 2세가 총대주교에 선 출되었으나 4일 만에 뇌출혈로 사망하여 교황 인명록 상으로 스테파노3세, 753년과 756년 2차의 롬바르드족 의 침공 을 물리쳐 주고 정치적으로 이미 헌정된 로마교회 영토(5개 영지)를 회복시켜줌 754년 프랑크의 피핀 에게 황제 서유의식을 해 주고 피핀으로부터는 자신이 교황 좌에 오르게 해 주는 상호 협력하는 정교야합,
18. 70주(週
23절 네 간구가 시작될 때에 명령이 나왔으므로 내가(가브리엘 천사) 네게 알리려고 왔나니 이는 네가 크게 사랑받는 자이기 때문이니라.
다니엘서9장 24절
주께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도시에게 칠십 이레를 정하셨나니 이것은 범죄가 그치고 죄들이 끝나며 불법에 대하여 화해를 이루고 영존하는 의를 가져오며 환상과 대언을 봉인하고 또 지극히 거룩하신 분에게 기름을 붓고자 함이라.
네 백성= 이스라엘인들,
네 거룩한 도시에게 =예루살렘에게,
범죄가 그치고 죄들이 끝나며= 아담에서부터 현 인류까지 해결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죄와 사망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굴레이고 멍에인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려고 영존하는 의를 가지시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시공간의 제약이 있는 인간 마을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유월절의 희생양이 되셔서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에서 전 인류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셨다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한복음19장30절). 로마 병사가 주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골고다 언덕을 언약의 피로 적신 것입니다.
땅의 중심부 아리마대 요셉님 소유의 무덤에 안치되셔서 3일 밤낮을 시체로 계시다가 초실 절에 봉인된 돌무덤을 여시고 부활의 첫 열매로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 제사장으로 하늘의 성전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의 성전과 성직제도나 제사와 예물은 그 때 끝났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이 둘로 갈라진 것입니다. 이레의 한 중간에 희생물과 봉헌 물을 그치게 하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모든 제도는 폐해졌고 끝났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소와 양의 피로 드리는 제사도 그 때 끝난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믿는 것이 인간 구원의 진리인 것입니다. 유다인과 이방인의 구별과 차별 없이 오직 십자가 진리 안에서는 거듭난 형제와 자매로 하나일 뿐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정부 차원으로 성전을 짓겠다고, 동물희생 제사를 복원하겠다고, 제사장 임직 시에 속건제와 속죄제에 필요한 황소를 복제하여 기르고 있다지요? 그런다고 하나님께서 용납하실까요? 지금 성경을 대단히 오해하고 있어서 명백히 잘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다니엘서 호세아서만이라도 제대로 읽고 이해해도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느헤미아 2장의 내용은 느헤미아의 동생 하나니의 예루살렘 일부가 불타고 헐어진 성벽과 성문에 대한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아닥사스다 왕의 호의로 느헤미아가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려고 예루살렘에 간 내용으로 아닥사스다 왕이 묻기를 언제 쯤 오느냐고 했지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은 없었습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고문으로 존경받는 학자이시고 느헤미아는 아닥사스다 왕의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며 왕의 대화상대로 그의 직함은 술 관원입니다. 따라서 학자이시며 아닥사스다 왕의 고문이신 에스라님에게 왕의 재위 8년에 포로들을 데리고 올라가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고 하셨지 않나 새겨보게 됩니다.
25절 그러므로 너는 알고 깨달을지니라.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로부터 통치자 메시아에 이르기까지 일곱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을 것이요, 이 곤란한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될 것이며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 느헤미야 2장 1절 ArtaxerxesⅠLongimanus(B.C.465-424)아닥사스다 1세왕 재위8년 1월 비벨론 출발 5월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2차포로귀환시 에스라의 인도로 할 때 명령이 내려 졌다고 추정이 되고 느헤미아 2장1절의 재위 20년 니산 월(445년 7월 태양력 3-4월) 52일 만에 느헤미아의 인도와 주도적 노력으로 무너진 성벽 재건하고 불탄 성문을 다시 달음, (성문은 도시마다 재판이 이루어지는 장소라 유다 인들에게는 중요한 곳임)
26 육십이 이레 후에 메시아가 끊어질 것이나 자기를 위한 것은 아니니라. 장차 올 통치자의 백성이 그 도시와 그 성소를 파괴하려니와 그 끝에는 홍수가 있을 것이며 또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폐하게 하는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메시아가 끊어질 것이나= 주 예수님의 3년 반 동안 지상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
장차 올 통치자의 백성이 그 도시와 그 성소를 파괴하려니와=A.D.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의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파괴되고 로마에 저항하면 어떠함의 본보기로 성전의 흔적조차 없어짐(마24장참조 현재 통곡의 벽은 그 당시 예루살렘 주둔 로마군영으로 밝혀짐), 638년 아랍 모슬렘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다시 점령되어 로마군영이었던 곳에 담을 쌓아 메꾸고 위에 황금 돔 사원과 (불루 모스크)를 685년에 완공합니다. (아랍=아르비=메뚜기).
27 그가 많은 사람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확정하겠고 그 이레의 한 중간에 희생물과 봉헌 물을 그치게 할 것이며 또 가증한 것들로 뒤덮기 위하여 그것을 황폐하게 하되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리할 것이며 작정된 것이 그 황폐한 곳에 쏟아지리라, 하니라.
그가(26절의 메시아를 27절의 그가로 받으십니다.) 많은 사람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확정하겠고= 마지막 한 이레 중에 주 예수님의 3년 반 기간 동안 사역하심과 메시아께서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리시는 언약의 피,
나머지 3년 반은 일곱 집사 중에 한 분이신 스데반 집사 첫 순교까지라고 여기고 있으며 이로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대한 칠십 이레 예언의 말씀이 완료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사도행전6-7장)
70이레 계산
계산의 기준 말씀
다니엘서 9장 25절 그러므로 너는 알고 깨달을지니라.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로부터 통치자 메시아에 이르기까지 일곱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을 것이요, 이 곤란한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될 것이며
70이레(주)는 일수로 환산하면 490년
⓵. B.C.445년으로 계산하면
페르시아의 다섯 번째 왕 ArtaxerxesⅠLongimanus(B.C.465-424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롱기마누스)아닥사스다 1세 왕(Ezra7장) (아닥사스다 히브리식 호칭) 재위 20년은 B.C.445년이므로 70주인 490년 – B.C.445 = A.D.45년이므로 예수님께서 3년 반 사역 후 말씀대로 한 이레의 절반에 십자가에서 사망하신 기간을 다시 제하면 45년-3년 반= 41년 반이 됩니다.(?)
⓶. B.C.459년으로 계산하면
예수님의 탄생하신 해는 대 헤롯(B.C.37-B.C.4)의 집권기 인 B.C. 6년이시고, 30세 되셔서 침례 자 요한의 침례를 받으시고 3년 반 사역하시고, 33세 반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계산하면
B.C.6년에서 33년 반은 = A.D.27년 반입니다.
따라서 A.D.27년 절반에 스테반 집사님 순교하신 때 3년 반을 더하면 = A.D.31년이 되어 70이레가 종결됩니다.
70이레의 490년 – 31년= B.C.459년이 됩니다.
※ 느헤미아 2장의 내용은 느헤미아의 동생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 일부가 불타고 헐어진 성벽과 성문에 대한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아닥사스다 왕의 호의로 느헤미아가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려고 예루살렘에 간 내용으로 아닥사스다 왕이 묻기를 언제 쯤 오느냐고 했지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은 없었습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왕의 고문으로 존경받는 학자이시고 느헤미아는 아닥사스다 왕의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며 왕의 대화상대로 왕의 곁에 항상 있어야하는 그의 직함은 술 관원입니다. 따라서 학자이시며 아닥사스다 왕의 고문이신 에스라님에게 왕의 재위 8년에 포로들을 데리고 올라가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고 하셨지 않나 새겨보게 됩니다.
70주의 종결은
사도행전 6장~7장의 내용대로 주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진리로 세워진 첫 번째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내 일곱 집사 중 한 분이신 스테반 집사님의 첫 번째 순교하신 때 까지라고 합니다.
B.C.457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아닥사스다 왕 재위8(에스라7장8절)년 1월이 되겠습니다(1월바벨론 출발 5월예루살렘 도착).
70이레490년 – B.C.459 = A.D.31년
한 이레의 절반에 해당하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A.D.27년 반이고, 나머지 한 이레의 절반은 스테반 집사님의 첫 순교 때까지로 A.D.31년에 70이레의 마침이 되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주님의 첫번째 교회내 스데반 집사님의 첫번 순교를 하늘 성전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응원하시는 모습을 증언하시면서 순교하셨습니다.
로마에서 파견한 예루살렘 총독 빌라도(필레트)의 재임기간이 A.D.26~36을 고려할 때 이 계산이 유력합니다.
19 다니엘서 8장 14절의 2300일
2300일
다니엘서 8장 14절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니라.
이 구절은 결론까지 포함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천삼백 일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된다는 결론의 말씀 아닙니까?
이천삼백 년으로 잘못 해석하는 분들이 많아서 다시 글을 쓰게 됩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이천삼백 일을 = 이천삼백 주야 저녁과 아침으로 구분하여 기록되어 있지요
저녁= έσπέρας 에스페라스
아침= πρωι 프로이
아마 킹 제임스 성경에는 굳이 저녁과 아침으로 구분하지 않아도 결론이 명확하기 때문에 이천삼백일로 번역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이천삼백 년으로 해석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인데도 빅 데이터 시대인 지금에도 이천삼백 년으로 오류를 전파하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문제인 것이지요.
말라기 대언 자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시는 대언 자들이 없는 침묵의 시대로 4백년 넘게 이어져 오는 유대인들의 역사에서 북쪽의 시리아에 여덟 번째로 안티오크 에피파네스(신의 현현) 극악무도한 왕이 나타나서 성전을 모독하고 유다 인들을 혹독하게 탄압하는 기간 이천삼백 일까지의 내용 아닙니까?
이천삼백 일만에 성전이 회복된다는 말씀이지요.
B.C.586년에 남 유다 국이 멸망하여 바벨론 포로기 중에 고레스 왕에게 B.C.539년에 바벨론 나라가 페르시아에 정복당하여 유다 인들이 포로 된 채로 페르시아에 귀속되었지요.
헌데 페르시아 고레스왕은 대언 자 이사야와 에레미야를 통해 이미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150여 년 전에 미리 말씀하셨던 왕입니다.
이사야 44장 28절-45장 2절
역대기 하 36장에서는 유다 국이 왜 멸망당하고 남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서 고초를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 분들 스스로가 설명하여 주십니다.
참고로 열왕기 하 17장 6절 말씀에 B.C.721년 북 이스라엘 마지막 왕 호세아 제 구년에 아시리아에 멸망당하여 이스라엘 사람들도 포로로 끌려가서 할라와 고산강가의 하볼과 메대 사람들의 도시에 두었더라.
후에 느부갓네살의 아버지 나보폴라사르가 메대와 연합하여 아시리아를 정복하여 바벨론에 통합되므로 586년에 잡혀온 유다의 포로들과 합류되었겠지요. B.C.539년에 다시 페르시아에 바벨론이 멸망되어 페르시아에 통합되므로 고레스 왕을 통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포로귀환 공동체 12지파들이 성전을 다시 세우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보수하고 성문을 다시 달고 총독 느헤미아와 율법학자 에스라에 의해 예전처럼은 아니더라도 유월절을 회복하고 장막절을 지키며 토라를 낭독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새로 시작하였지만 얼마 못가서 하나님을 떠나 악하고 어두운 역사 속으로 또 다시 세속화되어 갈 즈음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인류의 장자 유다 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매를 맞게 되는 그 기간에 대한 내용이 되는 것이지요. 외경 마카베오 상 하 권이라도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다른데 적용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인 것이지요.
전에는 남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서 고초를 겪었지만 이번에는 자기 나라 안에서 북쪽의 시리아의 여덟 번째 안티오크Ⅳ 에피파네스 왕에게 성전의 모독과 제사와 안식일마저 지킬 수 없는 고통을 당한 후에 성전을 회복하고 제사를 다시 봉헌 드리기 까지 이천삼백 일 동안 혹독하게 탄압 당하는 기간을 말씀하시는 내용으로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니라.
다니엘서 8장 24절
그의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권세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놀랍게 파괴하며 형통하여 마음대로 행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8장 25절
그가 또 자기의 정책을 통하여 자기 손에서 속임수를 형통하게 하며 마음속에서 자기 자신을 높이며 평화를 빌미로 많은 사람을 멸할 것이요, 또 일어서서 통치자들의 통치자를 대적할 것이나 그가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무너지리라.(통치자들의 통치자=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할 것이나)
북쪽 시리아의 안티오크 4세와 남쪽 이집트왕국 톨레미 6세간의 7차 전쟁(B.C.170-169)으로 알렉산드리아까지 점령하여 이집트 전체가 위기에 처 했을 때 로마의 원로원에서 파견한 포필리우스 라에나스 장군에게 모욕을 당하고 이집트 점령이 수포로 되자 과도한 전비조차 건지지 못하고 철군하게 되어 억울하고 분한 적개심으로 예루살렘에 쳐들어가 악행을 저지르고 성전을 모독하고 보물들을 약탈까지 하였다는 것이지요.
경건한 유대 하시딤 450명을 돌길위에 쓰러트리어 아폴로니우스 장군의 전차부대로 깔아뭉개어 죽이고 이어서 8만 명을 살해하고 4만을 노예매매를 하였다고 전하며 북쪽 시리아의 안티오크로 4만 명을 노예로 끌고 갔다는 것이지요.
토라의 낭독과 소지를 금하고 안식일까지 금하고 B.C.167년9월15일 성전 번제 단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많은 돼지를 잡아 그 피로 성전에 뿌려 모독하면서 헬라의 음란문화를 권장하고 할례까지 금하고 할례를 행한 모자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러 제사장들이 하늘을 향하여 두 팔을 벌리고 절규하는 사태까지 있었다고 전하지요.
북쪽의 시리아 안티오크Ⅳ 에피파네스 여덟 번째 왕의 폭력과 공포의 강제에 의해 헬라화를 강요당하자 귀족층인 사두개파와 권력층과 상인그룹에 헬라화가 급속히 번져갔다는 것이지요.
그 후로도 재차 쳐들어와서는 평화를 가장하여 예루살렘성에 당도한 안티오크 4세의 아폴로니우스장군의 부대가 문지기들과 원로들에게 세금거두는 문제로 상의하러 왔다고 속여 성문을 열게 하고 성안으로 처 들어간 안티오크 군대가 또 다시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자행하면서 헬라화를 강요하고 제우스 신상에 제사와 경배를 강요했다고 하지요.
이때 예루살렘 서북방26km에 위치한 제사장들의 도시 모딘이라는 곳에서도 시리아군대의 악행이 시작되어 시리아 군대의 폭력이 두려워 제우스 신상 앞으로 제사와 경배를 하러 가는 유대인과 제사를 강요하던 헬라 관리들을 처형한 원로 제사장 맛다디아께서 아들들과 함께 고프나 산속으로 도망하셨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경건주의자들인 엣세네파 유다 인들이 합세하고 많은 유다의 젊은이들이 합류하여 군대가 형성되어 아버지 맛다디아께서 연로하신 몸으로 유다 군을 지휘하시다가 셋째아들 유다에게 지휘권을 넘기시고 B.C.166년 사망하시었다지요.
아버지로부터 지휘권을 물려받은 유다 마카비우스는 부대가 출전하기 직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난 후 안티오크의 군대와 전투를 벌여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술로 연전연승(B.C.166- 160)하였다지요.
사마리아에서 유대로 진격하던 안티오크Ⅳ의 아폴로니우스 장군이 유다 군에 살해되고 후임 Selon장군도 연전연패하는 유다 마카비(쇠망치) 전쟁의 승리로 더렵혀진 성전을 회복하여 가는 과정에서 안티오크 4세에 의해 2300주야(6년4개월 20일간 유다인들의 암흑기로 성전의 모독과 오염에서 회복되는 기간)) 동안 유다 인들이 참혹하게 핍박당하는 B.C.171-164년 기간까지의 내용이 2300일이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이 기간 동안에 공을 많이 세우며 위기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헌신한 유다의 형제들이 차례로 전쟁을 지휘하다가 죽어갔지요. 첫 번째로 아버지 맛다디아 이어서 유다 마카비우스 세 번째로 요나단이고 네 번째 장남 시몬 때에 와서 나라가 회복되고 영토까지 확장되면서 유다 인들의 전쟁 지도자에서 왕으로 제사장까지 겸하게 되었었지요. 그래서 하 시몬(하스몬) 왕조로 부르게 되었지요. 그중에서도 유다 마카비우스의 탁월한 전투지휘로 성전까지 회복하여 가장 평화롭고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되어 마카비 왕조로도 부르게 된 것이지요.
(안티오크Ⅳ 에피파네스 =신의 현현, 유다 인들은 에피마네스=미치광이로 호칭)
안티오크Ⅳ 에피파네스의 침략전쟁을 하나님을 의지하여 유다 마카비우스의 탁월한 지휘로 연전연승하여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마침내 2300일 만에 성전을 정화하여 메노라(Menora 등잔대)에 불을 밝히고 제사를 회복하는 날을 기념하는 하누카(Hanukah)의 유래가 전해져서 신약시대에 요한복음10장 22, 23절 수전 절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명백한 내용들을 확인하시고 오류들을 바로 잡아 주셔야 하겠지요.
2300일은 6년×360일= 2160일, 2300일-2160=140일–4개월(30×4) = 20일 (유대력 1년=360일 윤년 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