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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歌謠]와 민요의 차이는 ? |
가요 [歌謠]의 개요(명사) : ☞기재한 시가문학에 대한 구송성(口誦性)·음악성을 지닌 시가 ☞1.민요·동요·속요·유행가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2.<교방가요(敎坊歌謠)>의 준말. 3.<대중가요>의 준말 가요 [歌謠]는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원래 음악이 따르는 것을 ‘가’, 음악이 없는 것을 ‘요’라고 구별하였는데(詩經:曲合樂曰歌 徒歌曰謠), 현재는 민간가곡 전반을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이와 같이 가요는 문학과 음악에 걸친 예술형태로서 문학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을 종합하고 있다. ▶음악적인 면에서 볼 때는 넓은 뜻의 가곡으로 풀이할 수도 있으나, 가요라 하면 어느 정도 문학적인 면, 특히 역사적인 면에 비중을 두는 것이 보통이다. 가요는 문학과 음악에 걸친 예술형태로서 시가와 음악이 분화되지 않았던 원시시대부터 이미 여러 민족 사이에 존재해 왔으며, 일상생활이나 종교적 행사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져 자주 무용이나 연극과 함께 묶여 내려왔다. ▶한국민족의 생활에 관한 중국 문헌상의 기록, 즉 《삼국지》 <위지(魏志)> 중의 부여전(夫餘傳)·고구려전(高句麗傳)·예전(濊傳)·마한(馬韓) 및 진한전(辰韓傳)·변진전(弁辰傳)과,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 중의 위 각 부족국조(部族國條)를 보면, 각 부족의 습속(習俗) 일면에는 제천(祭天)·사귀신(詞鬼神) 및 가무음주(歌舞飮酒)를 하는 양상이 나타나는데, 동맹(東盟)·무천(舞天)·영고(迎鼓) 등의 의식이 있었고, 그 가운데는 악기 사용까지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있어 그와 같은 종합예술로서의 가요가 당시에도 이미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가요는 그 성립에서 보아 가사와 곡이 동시에 형성된 것과, 가사로서의 시가가 작곡된 것, 그리고 곡이 선행하여 여기에 가사가 붙여진 것으로 나누어지는데, 옛날에는 가사와 곡이 동일 작가에 의하여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요는 시가의 한 형태로 생각됨과 동시에 역사적으로는 시가의 원천으로서, 부르는 노래로서의 가요에서 읽는 노래로서의 시가를 분기(分岐)시켜 온 것이라 본다. ▶또 가요는 민요와 예술적 가요로 크게 나뉘며, 민요는 작사자나 작곡자를 밝혀내기 어려운 민족적 또는 집단적 소산임을 그 특징으로 하며, 민중 일반에게 불리는 까닭에 가사나 곡조가 단순하다. 반대로 예술적 가요는 개인적인 예술적 창작이므로 그 작사·작곡자가 알려져 있음은 물론, 곡의 구성이 복잡 ·고급 또는 장대(長大)하여 대개 전문적인 가수에 의하여 가창된다. ▶그러나 민요는 예술적 가요의 원천이 되기도 하며, 예술적 가요가 민중의 생활 속에 흘러들어가 민요와 같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가요를 내용면에서 보면 세속적인 가요와 종교적인 가요로 나눌 수 있으며, 세속적 가요에는 연가(戀歌)·노동요·경축가·권주가·자장가·동요·군가·행진가 등이 있고, 종교적인 가요는 제사나 예배, 또는 주술용으로 만들어지는데, 서양에서는 신에 대한 찬미가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가요는 중국 시가의 영향을 받은 것과 한국 고유의 가요로 나누어지는데, 삼국시대의 향찰(鄕札)로 된 향가가 그 원류이며 그후 민요적인 노래와 궁정에서 행하여진 별곡·시조 등이 발달하였다. 민요적인 노래로는 백제 때의 《정읍사》가, 별곡은 고려 중기의 《한림별곡》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시조는 고려 후기에 발생하였다. 이들 시조와 별곡은 후에 문학적 시형(詩形)의 기준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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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大衆歌謠]란 ? |
대중가요 [大衆歌謠] (popular song) : ☞서양음악이 도입되던 시절부터 대중 사이에서 즐겨 불려온 세속적인 노래. ☞대중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일반 대중의 흥미를 위주로 한 노래. 가요곡. (준말)가요. ▶예술가곡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유행가라고도 한다. 예술가곡이 예술성과 심미성에 가치를 두는 데 반하여 대중가요는 감각적인 대중성 ·오락성 ·통속성 ·상업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예술가곡을 제외한 가요 전반을 의미하나, 민요와는 구분된다. 한국에서의 대중가요는 서양음악의 수입과 더불어 시작된다. 즉 선교사들에 의하여 찬송가를 중심으로 한 서양음악이 들어오자(1885), 서양의 노래들이 번안되어 불리기 시작하였다. ▶1910년 학부(學部)에서 《보통교육창가집》을 발간하였는데, 거의가 1872년 일본에서 발간된 《소학창가집》의 곡들을 전재한 것들이었다. 이 시절 창가는 서양음악을 지칭하는 것이 통례로 인식되었다. 대중가요는 산업사회의 발달과 함께 매스컴의 급진적인 발달에 힘입어 지방적인 색채가 퇴색되면서 도시에서 지방으로 확산되는 특징이 생겼다. 그리고 노래의 발성 ·창법 ·리듬 ·음계 ·멜로디가 민감하게 변하고 장식음(꾸밈음)의 구사법이 변화무쌍하게 변천해도 그 나름대로 하나의 전통을 이어가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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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童謠]는 ? |
동요 [童謠] (children's song) : ☞어린이의 생활 감정이나 심리를 나타낸 어린이를 위한 정형시(定型詩).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또는 어린이를 위하여 지은 노래. 동가(童歌). ▶동요란 어린이 노래인데, 그것이 노래이니만큼 동시와 다른 것은 글자 수를 맞추어 지은 정형시라는 점이다. 민족시인 김소월(金素月)의 시에 7 ·5 조가 많으나, 그것을 민요나 가요로 보지 않는 것과 같이, 동요도 역시 정형동시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처럼 정형동시를 동요로 본다면, 글자 수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게 풀어 쓴 어린이시를 동시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어른시와 달라서 동요와 동시는 어른들이 지어 어린이에게 주는 작품이다. 어린이 자신이 지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역시 아동문학을 다루는 동요시인의 생각과 솜씨를 빌려야 문학 구실을 할 수가 있다. ▶동요에는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구전동요(口傳童謠)가 있는데, 전승동요(傳承童謠) ·전래동요(傳來童謠)라 부르기도 한다. 언제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고, 지은이가 있더라도 이름을 굳이 밝히지 않는 겨레의 노래로 굳어진 것이 구비동요(口碑童謠)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달아 달아 밝은 달아》와 《새야 새야 파랑새야》인데, 앞의 것은 중국 당(唐)나라의 이태백(李太白:701∼762)을 생각하면서 지은 동요이고, 뒤의 것은 ‘녹두장군’이라 불리던 동학농민운동의 전봉준(全琫準:파랑새란 八王, 즉 全씨를 뜻한 말)의 죽음을 미리 슬퍼하여서 지어 퍼뜨린 동요였으니, 어린이 입을 빌린 어른 동요였다. ▶1910년대에 접어들면서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깨우침 노래인 창가(唱歌)가 어린이 입에 오르내리다가 192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예술동요라 할 수 있는 동심을 살린 동요가 나타났다. 방정환(方定煥)의 《형제별》, 유지영(柳志永)의 《고드름》, 윤극영(尹克榮)의 《반달》, 윤석중(尹石重)의 《흐르는 시내》가 그 무렵의 동요들이었다. 판에 박은 듯한 4 ·4조나 7 ·5조에서 벗어난 첫 시도는 1933년에 나온 동시집 《잃어버린 댕기》(윤석중 지음)로, 《세계지도》 《담모퉁이》 《도깨비 열두 형제》 등의 창작 동시가 실렸다. 이어 박목월(朴木月) ·강소천(姜小泉) ·이원수(李元壽) ·김영일(金英一) ·윤복진(尹福鎭) ·신고송(申孤松) ·권태응(權泰應) 등이 동요 창작에 힘을 기울였고, 시단(詩壇)에서는 정지용(鄭芝溶) ·윤동주(尹東柱) 등의 동요가 문학적 수준을 높이는 데 공헌하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린이를 위하여 지은 시를 동요 ·동시라 부르지만,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시인의 작품 가운데서 어린이들도 알아볼 수 있는 쉬운 시를 골라 또래의 어린이의 수준에 맞추어 내주는데 이것이 동요 구실을 한다. 서양의 경우, 영국에서 동요가 가장 왕성하며, 영국과 미국에서는 옛 동요를 통틀어 ‘머더 구스의 노래(Mother Goose’s Melody)’라 일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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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요 [儀式謠]는 ? |
의식요 [儀式謠] : ☞민요 중 의식의 기능을 가지는 민요. 의식을 치르면서 부르는 민요. ☞의식이 아닌 때에는 거의 부르지 않는 노래로서,장례요·지신밟기 노래·성주풀이·동투잡이 등이 있음. (참고)노동 요·유희요(遊戱謠). ▶의식의 일부로 주술적 목적이나 기타 의식 진행상의 목적으로 불린다. 노동요나 유희요에 비하여 빈약하지만, 무가(巫歌)나 불가(佛歌) 등도 넓은 의미에서 의식요라 할 수 있다. 민요에서 의식요는 세시의식요(歲時儀式謠)와 장례의식요(葬禮儀式謠)가 있다. ▶세시의식요는 지신밟기나 서낭굿을 할 때 부르는 노래로 ‘지신밟기노래’, ‘고사요’라고도 하며, 가정의 태평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례의식요에는 상여소리와 달구질소리가 있는데, 상여소리는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노래로 인생무상을 한탄하고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가사로 되어 있으며, 달구질소리는 시체를 묻고 달구질하면서 부르는 노래로 답산가류의 산천풀이와 유택(幽宅) 명당풀이로 이루어진다. 관을 운반하거나 묘를 쌓으면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요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노동보다는 의식의 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의식요로 분류된다. 그밖에 동투잡이요·액(厄)풀이 등이 있으나 이러한 의식요는 대개 무가에서 파생된 것으로 순수민요라 하기는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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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요 [勞動謠]는 ? (상주 모심기 악보) 노래듣기클릭 |
노동요 [勞動謠] : ☞노동의 능률을 높이거나 즐겁게 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의 총칭 ☞민요의 한 가지. 힘든 노동을 보다 즐겁고 능률적으로 하기 위하여 부르는 노래. (참고)유희요(遊戱謠)·의식요(儀式謠). ▶작업요라고도 한다. 어느 나라든지 노동요는 있었고, 한국에도 농경생활 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민요의 일종으로, 놀음놀이를 할 때 부르는 의식요(儀式謠)나 의식을 치르면서 부르는 유희요(遊戱謠)와는 구별된다. 그 기능은 노동을 효과적으로 진행시키고, 집단노동시에 행동통일을 위한 구령의 역할을 하며 노래를 부름으로써 즐겁게 노동을 할 수 있고 또한 노래를 통하여 노동의 내용이나 노동하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게 된다. ▶노동요의 종류는 ① 농업노동요(밭갈이 ·모내기 ·김매기 ·타작할 때의 노래) ② 길쌈노동요(물레노래 ·삼 삼는 노래 ·베틀노래 등), ③ 토목노동요(땅다지기 ·달구질 등의 노래), ④ 운반노동요(가마 ·목도 ·상여를 멜 때의 노래), ⑤ 어업노동요(노젓기 ·그물당기기 때의 노래와 해녀의 노래 등), ⑥ 제분노동요(방아노래 ·멧돌노래 등), ⑦ 수공업노동요(풀무질노래 ·양태노래 ·망건노래 등), ⑧ 가내노동요(빨래노래 ·바느질노래 등)가 있다. ▶또한 노동요는 노동의 방식에 따라, 여러 사람이 일제히 움직이는 노동을 할 때 부르는 공동노동요,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제각기 일을 하며 부르는 집합노동요, 혼자서 일하며 부르는 개인노동요로도 분류된다. 또한 노동을 떠나서 노래 자체의 즐거움 때문에 아무 곳에서나 부르게 되면, 노동요가 아닌 일반 민요로 전환되는 수도 있다. 그 예로 황해도의 감내기, 평안도 ·함경도의 호미타령, 평안도의 배따라기, 전라도의 농부가 ·뱃노래 ·방아타령 ·베틀노래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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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요 [俗謠]는 ? |
속요 [俗謠] : ☞조선 중기 이후 일반 민중 사이에서 널리 불리던 가요(歌謠). ☞1.민간에서 널리 불리는 속된 노래. 속가(俗歌). 2.‘잡가(雜歌)’의 딴 이름. ▶속가(俗歌)·속가사(俗歌辭) 등으로도 불리며, 가사와 민요의 중간적인 위치에 놓인 노래들을 일컫는다. 민요가 서민적인 데 비하여 속요는 시상(詩想)에 있어 민요이면서 가사의 품위를 나타내려고 한문투를 많이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영·정조시대에 서민문학이 성하여 사설시조(辭說時調)를 낳았듯이 서민층의 문학적 활동 무대가 넓어짐에 따라 민요가 가사에 접근하기 위하여 이를 모방하게 되었다. 반면에 서민층이 가사에 접함으로써 가사는 차차 속화(俗化)하여 민요와 가사의 중간적인 새로운 범주의 속요를 이루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의 노래로서 문헌에 나타난 속요를 들면 〈권주가〉 〈매화가〉 〈유산가(遊山歌)〉 〈관등가(觀燈歌)〉 〈황계사(黃鷄詞)〉 등이고, 구전(口傳)된 것으로는 〈형장가(刑杖歌)〉 〈집장가(執杖歌)〉 〈춘향가〉 〈부용가(芙蓉歌)〉 〈화전가(花煎歌)〉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국문학상으로는 보통 고려시대의 속요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파악하여 〈쌍화점(雙花店)〉 〈청산별곡〉 〈서경별곡(西京別曲)〉 〈만전춘(滿殿春)〉 〈이상곡(履霜曲)〉 〈가시리〉 〈동동(動動)〉 〈정석가(鄭石歌)〉 등을 꼽기도 하며, 백제가요로 유일하게 전하는 〈정읍사(井邑詞)〉도 이에 속하는 노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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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가 [勸酒歌]는 ? |
권주가 [勸酒歌] : ☞작자 ·연대 미상인 조선시대의 가사(歌辭). ☞1.술을 권할 때 부르는 노래. 2.조선 시대의 12가사 중의 하나. 작자·연대 미상. ‘가곡원류’에 실려 전함. ▶주석(酒席)에서 서로 술을 권하면서 부르는 노래로, 구가(舊歌)와 신가(新歌)가 있다. 권주(勸酒)를 노래한 다른 단가(短歌)들이 대개 저속한 데 비하여, 가사체인 이 장가(長歌)는 기품이 있고 단아한 것이 특징이다. 《청구영언(靑丘永言)》과 《가곡원류(歌曲源流)》에 실려 있다. 그 일부를 보면, 구가는 “잡수시오, 이 술 한 잔 잡수시오. 이 술 한 잔 잡수시면, 천만 년이나 사오리다…”이고, 신가는 “불로초로 술을 빚어, 만년배에 가득 부어, 비나이다. 남산수(南山壽)를 약산 동대(藥山東臺) 이즈러진 바회, 꽃을 꺾어 수를 놓며, 무궁무진 먹사이다…”로 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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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사 [井邑詞]는 ? |
정읍사 [井邑詞] : ☞작자 ·연대 미상의 백제가요. ☞오늘날 전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 한글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노래. 행상을 나간 남편의 밤길을 염려하는 내용. [‘악학궤범’에 실려 전함.]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이후 구백제(舊百濟) 지방의 노래로 짐작된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이며,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가요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다. 내용은 정읍현(井邑縣)에 사는 행상의 아내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므로, 높은 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남편이 혹시 밤길에 위해(危害)를 입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나타낸 노래이다. 형식은 6행 1연이며, 조선시대에 궁중음악으로 쓰였다. 《악학궤범(樂學軌範)》 권5에 실려 전하는 가사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하 노피곰 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를 드⒭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졈그ㆈ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의의 : 백제 현전 유일 가요(고려사 악지) . 한글로 표기되어 전하는 가장 오래된 노래 ▶유적지 : . 망부석(내장산 내장저수지 입구, 정읍시 시내 정읍사 공원 내). 주제 : 남편의 무사 귀환을 소망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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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별곡 [翰林別曲]은 ? |
한림별곡 [翰林別曲] : ☞고려 고종(高宗)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들이 합작한 경기체가(景幾體歌)의 시초 작품. ☞경기체가(景幾體歌)의 한 가지. 고려 고종(高宗) 때 한림의 선비들이 지은 노래. 현실 도피적이고 향락적인 풍류 생활을 읊은 내용. ▶당시 무관들이 정권을 잡자, 벼슬 자리에서 물러난 문인들이 풍류적이며 향락적인 생활 감정을 현실도피적으로 읊은 노래이다. 기본 음률수가 3 ·3 ·4로서, 별곡체(別曲體)라는 독특한 음률과 구법(句法)을 가지는 경기체가의 효시(嚆矢)가 되었다.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졌으며, 시부(詩賦) ·서적(書籍) ·명필(名筆) ·명주(名酒) ·화훼(花卉) ·음악(音樂) ·누각(樓閣) ·추천(贖韆)의 순서로 각각 1장씩을 읊어 당시 한림의 생활상을 묘사하였다. ▶그러나 처음 3장까지만 문사들의 수양과 학문에 연관이 있고, 나머지 5장은 풍류라기보다 향락적인 내용으로 되었다. 또한 경기하여체가(景幾何如體歌), 곧 경기체가라는 호칭은 이 노래의 각련(各聯) 끝이 ‘…경(景) 긔엇더답니잇고’로 되어 있음에서 유래한다. 가사는 《악학궤범(樂學軌範)》과 《악장가사(樂章歌詞)》에 국한문(國漢文)으로,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는 한문과 이두(吏讀)로 각각 실려 전한다. 이와 같은 형식의 별곡체 작품은 이 《한림별곡》에서 비롯하여 충숙왕(忠肅王) 때 안축(安軸)의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별곡(竹溪別曲)》이 나왔고, 조선시대에도 수많은 별곡체의 노래를 지었다. 《악장가사》에 국한문으로 수록된 제1장(詩賦)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다. “원순문(元淳文) 인로시(仁老詩) 공로사륙(公老四六), 이정언(李正言) 진한림(陳翰林) 쌍운주필(雙韻走筆), 충기대책(沖基對策) 광균경의(光鈞經義) 양경시부(良鏡詩賦) 위(偉) 시장(試場)ㅅ경(景) 긔 엇더답니잇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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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 [鄕歌]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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