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安東 普光寺 木造觀音菩薩坐像)
[부처님 말씀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사경합니다]
그때 무진의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의 오른쪽을 벗어 어깨를 드러내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무슨 인연으로
관세음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한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온갖 괴로움을 받을 때에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듣고
모두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주느니라."
①『법화경』으로의 여행
그때 무진의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째 앞머리가 뚝 잘려나간 기분이 들지요?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
(앞으로는「보문품」이라고 줄여 말하겠습니다)이
하나의 독립된 경전이 아니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 들어있는
한 품이기 때문입니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이 경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그동안 저는『아함경(阿含經)』을 읽으면서
부처님이 마치 연필을 쥔 채 손을 잡고
한 글자 한 글자를 가르쳐 주는
초등학교 선생님 같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힘드냐?"
"예, 부처님."
그럼 부처님은 저에게 자리를 권하셨습니다.
"여기 앉아 보아라.
이제 내가 너한테
이 세상이 어떤 모습을 띠고 있고,
그 속에서 답답해하는 너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 존재인지
자세히 설명해주마."
부처님의 다정한 가르침에 괜히 교만해지거나
너무 어려워 지루한 표정을 지으면
부처님은 은근히 저를 나무라셨습니다.
이렇게『아함경』속에서
부처님은 때로는 짐짓 화도 내시고,
또는 따뜻한 어조로 달래주시면서
저를 어서 부처님 가르침의 문지방이라도
밟고 들어서게 하시려고 무던히도 애쓰셨습니다.
『아함경』을 건성으로나마 읽고 나서
반야 계통의 경을 펼치자니
부처님은 좀 냉정하게 바뀌셨습니다.
저더러 자꾸만 피안(被岸)으로
건너가라고 채근하시기 때문입니다.
"자, 건너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은요?"
이렇게 여쭈어보면
부처님은 도리어 저에게 되묻습니다.
"네가 건너왔다고? 어디서 건너왔는데?
그리고 건너온 이곳은 또 뭐라고 설명할래?
건너가고 건너온 너는 뭐지? 그게 끝이야?"
그리고는 자꾸만
"아니야, 아니야" 라고 도리질하십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등 떠밀려
가고 가고 또 가다보니
세상이 매우 밝고 환하고 또렷해졌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있다, 없다,
살아있다, 죽었다와 같은
상대적인 판단이 동시에 멈추자
그런 판단을 떠난 사사물물이 그대로
그 자리에서 환한 빛을 내고 있습니다.
반야의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스스로가 너무나 힘들 때면
「보현행원품」도 읽고『화엄경』도 읽습니다.
제 자신이 선재동자가 되어
화엄법계華嚴法界를 휘휘 휘젓고 다니면서
선지식들을 만나 그 품에서 쉬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선지식들은
저를 잠시 안고 다독여주다가
"여기가 끝이 아냐!" 라며 품안에서 밀쳐냈습니다.
그 매몰찬 손짓..................
53분의 큰 스승들은 한결같이
당신이 끝이 아니라면서
더 가라고 손짓을 할 뿐이었습니다.
화엄경 속에서 부처님은 그저 빛을 보이셨습니다.
그 빛을 통해서 수행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거듭 반복해서 말씀하실 뿐,
저에게 더 이상 무슨 자세한 말씀을 주지도 않으셨습니다.
저는 어디로 가야하나요?
저는 어디에서 위안을 얻어야 하나요?
보살이 되라고 하셔서
보살의 마음이나마 가져봤지만
저는 힘들고 피곤하기만 합니다.
그냥 다 집어치우고 옛날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더럭 겁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거 몰라도 다들 잘 먹고
잘 살지 않는가 말입니다.
그리고 그 끝이 대체 어디인지
너무 모호하여 더럭 겁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대체 부처님은 무슨 생각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저를 이토록 힘들게 하신단 말씀입니까?
깊은 회한에 사무쳐 부처님을 향한
의심이 일어나려 할 때
제가 마지막으로 꺼내든
희망의 메시지는 바로『법화경』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법화경』속에서
부처님은 나의 아버지로 다가오십니다.
『아함경』에서는 친절한 선생님이셨고,
반야 계통의 경에서는
나를 제 성품도 없고 텅 빈 공성으로
인도하려는 조련사이셨고,
『화엄경』에서는 몸체가 없는
눈부신 빛이셨던 그 분이 알고 보니
저와 여러분의 진짜 아버지이셨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수행자들이 궁극적인
가르침이라 믿고 따랐던 그간의
모든 말씀들이 전부 방편에
불과하다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법회에 참석해 있던 대중 가운데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고야 말았습니다.
그들이 떠나가자 부처님은
의외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가지와 잎사귀는 다 떠나고
열매만이 남아 있구나."(『법화경』「방편품」)
교만한 사람은 차라리 듣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일침을 놓는 것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부처님은 저에게도 당신과 똑같은
지혜가 있음을 알려주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저더러 아라한에 만족하지 말고
보살에도 만족하지 말라시며
제가 가야할 길은 궁극적으로
부처가 되는 길이라고 일러주시러 오셨습니다.
전부해서 28품으로 이루어진『법화경』은
이런 메시지를 알리기 위해 여러가지
비유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불이 난 집에서 자식들을 구해낸 이야기(『비유품』),
가난한 아들이 부자 아버지를 찾은 이야기(『신해품』),
산천초목에 고루 내리는 비 이야기(『약초유품』),
마술로 만들어낸 성(城) 이야기(『화성유품』),
제 옷 속에 보물을 품고도 알지 못해
고생한 남자 이야기(『오백제자수기품』),
독약 먹은 아이를 살려내는
의사 이야기(『여래수량품』)가 그것입니다.
한결같이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지견)가
있음을 알지 못해 헤매고 고통받는
우리들 중생을 불쌍히 여겨
구제하려고 애쓰는 부처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보문품은 이런 이야기들이
끝난 뒤에 등장하는 품입니다.
얼핏 보아서『법화경』의 구성이
조금 매끄럽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학자들은 법화경의 성립과 구성에 대해서
다양한 학설을 내놓고 있습니다.
『법화경』은 기원전 1세기경에 성립되었다,
기원후 40년경에 성립되었다, 심지어는
기원후 220년 이후에 성립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총 28품 가운데 앞의 20품까지가
본래의『법화경』내용이고 뒷부분은
나중에 첨가되었다는 학설도 매우 유력합니다.
하지만 구구한 학설들은 잠시 접어두고라도
중생들에게 부처님과 같은 지견이 있다는 것을
천명하는『법화경』속에『보문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나는 중생이야. 이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래, 말로는 불성이 있느니,
여래장이니 하지만 사실 어떻게
이런 내가 성불할 수 있겠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말이야!"
『법화경』을 통해서 부처님이
아무리 목이 쉬어라 일러주셔도
애초부터 자포자기한 우리는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런 중생들을 보다 못해 결국
부처님은 특단의 조치를 내리셨습니다.
관세음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
지장보살들과 같은
보살들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경전을 읽어보면 이분들은
이미 부처를 이루셨거나
곧 부처를 이루실 분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좀더 친근하게
법을 설하고 좀더 신속하게
구원의 손길을 내리기 위해
부처의 자리를 박차고 나온 분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분들 가운데
관세음보살님을 통해서 좀더 확실하게
구원의 보장을 받으려 합니다.
찰나라도 의심하지 말지니 염념물생의(念念勿生疑)
관세음 거룩한 성인은 관세음정성(觀世音淨聖)
고뇌와 죽음의 재앙에서 어고뇌사액(於故惱死厄)
능히 믿는 의지처가 되어준다네 능위작의호(能爲作依怙)
▲ 산청정취암목조관음보살좌상(山淸淨趣庵木造觀音菩薩坐像), 조선시대 ▲
[일타스님] 하나를 통달하면 모든 것을 통달할 수 있게 됩니다
중국 수나라 때의 스님인 혜공과 혜원은
사형 사제 사이로서, 젊은 시절 '기필코
불도를 성취하겠다' 는 서원을 함께 세웠습니다.
그리고 사제인 혜원스님은 장안으로 가서
여러 경전을 남김없이 독파하여
대강사가 되었고, 혜공스님은 강화로 가서
오로지 관음경만을 외우며 정진하였습니다.
두 스님은 헤어진 지 30년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혜원스님은 여러 경전의
심오한 도리를 쉴사이 없이 계속하였으나,
사형인 혜공스님은 한 마디의 응답도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홀로 열변을 토하다가 멋적어진
혜원스님은 혜공스님께 물었습니다.
"사형께서는 도무지 말이 없으시니,
그동안 어떤 공부를 하신 것입니까?"
"나는 원래 천성이 우둔하지 않는가?
그래서 관음경 한 권만을 읽고 외웠을 뿐이라네."
"관음경이라면 세속의 불자들도
모두 외울 수 있는 경전이지 않습니까?
사형께서는 나와 더불어 도과(道果)를
성취하겠다는 서원을 세웠거늘,
30년이 지나도록 겨우 관음경
달랑 한 권만을 외웠단 말이오?
이것은 우둔한 것이 아니라 나태한 증거요.
서원을 저버린 사형과는 그만 인연을 끊겠소이다."
혜공스님은 흥분한 혜원스님에게 차분히 말하였습니다.
"관음경이 비록 적은 분량의 경전이지만
역시 부처님의 말씀 아니더냐.
그 말씀을 믿어 받들면 무량한 복을 받을 것이요,
그 경전을 경솔히 생각하면 죄를 짓게 되는 법이다.
그렇게 성만 내지 말고, 서로의 인연을 끊기 전에
내가 외우는 관음경을 한 차례만 들어주게."
"허허, 관음경은 내가 백번도 더 가르친 것인데,
어찌 시끄럽게 들으라고 하시오?"
"불법이 사람을 키우는 것이지,
사람이 불법을 키우는 것은 아니네.
다만 지성으로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그만이지,
왜 사람을 핑계하여 법까지 버리려 하는가?"
이 말을 무시할 수 없었던 혜원스님은
마지 못해 혜공스님의
관음경 독경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혜공스님이 경의 제목을 읽자
이상한 향기가 방안에 충만하였고,
본문을 읽어나가자 천상의 음악소리가
울려퍼지며 네 가지 꽃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천상의 음악소리는 갈수록
미묘한 곡조로 바뀌었고
꽃비는 분분히 휘날리더니,
혜공스님이 관음경 외우기를 끝내자
꽃비도 음악소리도 일 순간 멎는 것이었습니다.
눈앞에서 전개되는 기적에 깜짝 놀란
혜원스님은 자신의 오만함을 깊이 뉘우치고,
혜공스님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였습니다.
"한갖 냄새나는 송장에 불과한 혜원이
감히 불법을 깊이 깨달았다고 자부하고
살았습니다. 부디 저를 깨우쳐 주십시오."
모든 경전을 두루 섭렵한 혜원스님과
관음경 하나만을 30년 동안 외운 혜공스님.
이 두분 스님 중에 어느 스님의
도력이 더 높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사람이 다 혜공스님을 택할 것입니다.
간경수행은 물론이요 수행하는 불자라면
마땅히 혜원이 아닌 혜공스님을
닮고자 노력 하셔야 합니다.
물론 근기에 따라서는 많은 경전을 두루
접하여야 많이 깨우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법의 세계는 그야말로
'일통일체통(一通一切通)' 입니다.
하나를 통달하면
모든 것을 통달할 수 있게 됩니다.
한 경전을 요달하면
모든 경전의 뜻을 꿰뚫을 수 있습니다.
오직 성패는 내가 그 경전과
하나가 되어 공부를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경전과 하나가 되어 공부를 하다보면
차츰 삼매에 젖어들게 되고,
마침내는 혜공스님과 같은
신통묘용이 절로 생겨나게 됨을 잊지 마십시오.
[법우 여러분 무더위와 장마철 건강 유의하소서 (3)편으로 이어집니다]
'가장 행복한 공부' 無量光明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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