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퀴즈 프로그램
Dr. Peter S. Ruckman
(Part One of Two)
지난
70년
동안 나타난 TV에 관한 현상 중 하나가 게임 쇼, 특히 퀴즈 프로그램의 증가세이다: 64,000달러가 걸린 질문, 위기일발,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인가 같은 식이다. 보통 그런 오락 프로들에서는 일반 상식 문제를 내는데 하나님께서 내시는 “퀴즈 프로그램”에는 사소한 문제가 없다. 하나님의 “퀴즈 프로그램”에 나오는 문제들은 모두 “핵폭탄급”으로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퀴즈 프로그램”에 대해 갖고 계신 계획은 여러분이 “브라운관 속 쓰레기통”에서 보는 쓸데없는 것들보다 훨씬 중요하다.
하나님의
첫 번째 질문은 약 4:14에 나온다. 그 질문은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이다. 성경은 여러분의 생명이 시험(욥 7:18)과 같다고 말씀한다. 또 여러분의 생명은 그림자(욥 8:9), 항해하는 배(욥 9:26), 구름(욥 30:15), 꽃(욥14:2), 그리고 품꾼(욥 7:1)과 같다. 약 4:14로 돌아가서 보면 삶의 특징은 덧없음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시는
두 번째 질문은 사람이 죽을 때 “그가 어디 있는가?”(욥 14:10)이다. 여러분은 이 질문을 “하찮다”고 부르겠는가? 사람이 죽으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디로 가는가, “그가 어디 있는가?” 그는 어딘가에 계속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가 어디 있는가?”
열역학법칙에 의하면
물질과 에너지는 창조 혹은 소멸될 수 없다. 한 형태가 다른 형태로 바뀔 수 있지만 소멸되지는 않는다. 이치가 그렇다면 사람이 죽을 때 그는 어떻게 되는가? 누군가 “그는 무덤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이다. 하지만 당신이 묻힐 때 진짜 당신은 어디 있는가? 성경과 관찰 가능한 과학적 사실에 의하면 여러분의 몸은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일 수 있는 어떤 물질(먼지)로 화하게 될 것이다(창 3:19).
여러분의
몸은 그렇다 할지라도 당신 자체는 어떻게 되는가? 당신은 어디로 가는가? 어디에 있게 될 것인가? 욥은 자기가 어디로 갈지 알았다(욥 19:25-27).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 아셨다(요 14:2, 16:10). 바울은 자기가 어디로 갈지 알았다(딤후 4:8; 고후 5:8; 살전 4:17). 베드로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 알았다(벧전 1:3-4). 요한은 자기가 어디로 갈지 알았다(요일 5:13).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가? 모르고 있다면 왜 모르는가? 오직 성경적 기독교 신앙만이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으며 다른 어떤 종교도 그 문제에 관해 확답을 줄 수 없다.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가 어찌 깨끗해질 수 있겠느냐?”(욥 25:4; 욥 14:4도 같이 보라). 여러분은 레위기에 나오는 출산과 성에 관한 그 모든 규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경에서는 부모가 구원받아야 그들의 아이들도 “거룩하며”(구원받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은 “불결하다”고 말씀한다(고전 7:14). 레위기에서는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불결해진다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 위에 강림하실 때 이스라엘의 남자들에게 그들의 아내를 가까이 하지 말고 셋째 날 주를 만날 준비를 하라고 명하셨다(출 19:15). 다윗이 사울에게서 도망하면서 대제사장에게 가서 빵을 달라고 요청할 때 제사장은 그날 물려낸 거룩한 빵을 주면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면 먹어도 괜찮다고 말했다(삼상 21:4-5). 이 말씀들이 대체 무슨 뜻인가? 여인에게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불순종의 자녀요, 진노의 자녀라는 뜻이다(엡 2:1-3).
다음
질문은 이렇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과 더불어 의로우리요?”(욥 9:2). “그렇다면 어찌 사람이 하나님과 더불어 의롭게 될 수 있겠으며”(욥 25:4). 화성과 금성에서 일어나는 일을 탐구하는 것보다 이 질문이 훨씬 중요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선함을 내보이며 스스로를 정당화시킨다(눅 16:15; 잠 20:6).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자기 주제를 아는 죄인은 자력 구원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자기 의를 보이며 허풍을 떠는 대신 자신을 하나님의 자비에 내맡겨서 의롭게 된다(눅 18:10-14). 욥, 바울, 그리고 젊은 부자 관원은 여러분보다 나은 사람들이었지만(욥 1:1,8; 빌 3:4-6; 눅 18:18-23)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선행 때문에 의롭게 되지 못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기 위해서는 죄 없는 사람의 피가 필요하다(롬 3:24-26).
또
다른 질문이 있다: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롬 14:10). 여러분이 형제들을 분주하게 판단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도 분주하게 여러분을 판단하신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먼저 판단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면 판단받지 않으리라”(고전 11:31). 그리스도 안의 형제들에 관해서는, 여러분은 자신의 경주를 완주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 낫고(히 12:1) 그가 서거나 넘어지는 것은 “자기 주인에게 있느니라”(롬 14:4).
여기에
좋은 질문이 하나 있다: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어떤 늙은 흑인 목사가 이 구절로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선, 내가 말할 것은 모든 사람은 어딘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 중 어떤 이들은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말할 것은 여러분들 중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머무르고 있는 이들은 결국 자신이 원치 않는 곳에서 삶을 마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누구 편에 서 있는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으실 때 여러분은 주께 발견되겠는가? 내 말은 주께서 여러분을 찾으실 수 있느냐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시기에 물론 찾아내신다. 내 말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떤 목적으로 불러 쓰시려 할 때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주께서는 겔 22:30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찾으려 했으니 그 사람은 장벽을 쌓아 그 땅을 위하여 내 앞에서 갈라진 틈에 서서 나로 그 성읍을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이라. 그러나 나는 아무도 찾지 못하였노라.”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질문이다(창 3:9). 그리고 나서 4천년 후에 사람이 하나님을 찾으면서 “어디 계십니까?”(마 2:2)라고 묻는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신 것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고 또 구원하려는 것이라”(눅 19:10).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이 말씀을 주셨다. “내가 나를 찾지 않은 자들에게 발견되었으며 나에게 묻지 않은 자들에게 나타났느니라”(롬 10:20).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질문이 하나 있다: “이분이 도대체 누구신가”? 물론 주님은 조셉 스미스, 공자, 마담 블라바츠키, 엘렌 G. 화이트, 간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등과 다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이었고 이 자들은 죄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죽음에 관한 열 세 가지 세부 사항을 예언하실 수 있었지만 그들은 하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증인들이 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기적들을 행하셨지만 그들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서 일어나셨다. 상기 언급된 남녀들은 존 브라운(미국의 노예 해방 운동가)처럼 “무덤에서 썩어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질문을 여러분과 모든 인류에게 하고 계시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에 대해서 힐책하겠느냐?”(요 8:46). 현대 역본들은 힐책하려 시도하는데 그 역본들은 주를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막 3:5) 마 5:22의 “까닭없이”를 삭제했다. 1,400만의 유대인들과 십 억의 무슬림들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은 주를 거짓말쟁이라 부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며 주께서는 누구의 죄를 위해서도 죽지 않았고, 무덤에서 일어난 적도 없다고 말한다. 마호메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가 있었다고 입증하려 애썼던 것은 위선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모슬렘 저자들이 마호메트의 생애에 대해 기록한 역사책들을 읽었는데 거기에는 마호메트가 뇌물수수, 노예 거래, 남색, 거짓 증거, 자기 대적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데 연루된 사실들, 또 “알라의 선지자”가 그런 짓들을 자랑하고 다녔던 기록이 나온다. 여러분 생각에는 그런 지저분한 들개 같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임을 입증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는가? 당연히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퀴즈 프로그램에 나올 또 다른 질문이 여기 있다. 예수께서는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마귀의 자식들이요, 거짓말쟁이라 부르시기 직전에 이 질문을 하셨다(요 8:44): “어찌하여 너희는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요 8:43).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었는가?
문제는
주님의 말에 진실성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주의 말씀은 “신실하고 참되도다”(계 22:6). 주의 말씀이 어려웠기 때문도 아니다(잠 8:8-9). 마크 트웨인은 성경이 자신을 괴롭게 하는 이유가 그 말씀들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다. 말씀들이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괴로웠던 것이다. 성경 말씀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너무 이해하기 쉬워서 누구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문제가 무엇이었는가? 주께서는 그 질문을 하시면서 같은 구절에서 이유를 설명하셨다: “이는 너희가 나의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라.”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요 8:47). 그들은 덤불에 빠진 골프공마냥 잃어버린 자들이었다.
고전
2:14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러나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이요, 또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 일들이 영적으로만이 분별되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의 퀴즈 프로그램” 시리즈는 다음 호에도 계속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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