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선사에서 걷기명상을 배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판에 있는 길을 걸을때가 있었는데 발바닥의 감각을 느끼면서 천천히 걸었다. 그때까지 생각에 묻혀 걷고 사느라 풀벌레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리고 많은 종류의 풀벌레 소리가 있는지 처음 느끼면서 많이 놀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걷기명상을 스님께 배울때 마다 지나간 소리는 지나갔어 없고 미래소리는 오지않아 없고 현재소리도 매순간 변하니 없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면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텅빈곳에 매순간 소리가 일어났다 사라지며 머무르지 않고 지나갔다. 어떤소리도 일어나고 사라짐만 보라고 하셨지만 칭찬과 비난에 끌려다니기가 바쁘고 바빴다. 이런수행을 좌선에서도 하고 걷기명상을 하면서도 했다. 텅빈곳에 집중하면서 안이비설신의 즉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생각과 감각을 지켜보았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알아차림과 같다. 이런 수행을 하려고 노력을 해도 금방 분별망상에 의해 오만곳을 생각에 의해 끌려다니기 바쁘고 바빴다. 그러다 어느날 좌선을 하면서 분별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텅빈곳에만 집중을 하고 있으니 세상 조용하고 고요함을 느끼다 마음을 바깥으로 향한순간 귀로는 농번기라 농기계소리 개구리소리로 엄청 시끄럽고 눈으로는 논밭 산과 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느꼈다. 세상은 텅비어 고요하기만 한데 내마음이 지나간 소리를 떠올리고 지나간 경치를 내마음의 눈별망상으로 떠올린다는 것을 알았다. 육근으로 올라오는 모든 감각은 매순간 변해 없는데 내가 입력한 기억속의 내용을 분별망상으로 떠올린다는 걸 알았다. 난 이게 공체험인지 몰랐다. 그냥 느낀것을 시로 적었는데 나중에 이것이 공을 체험한 것인지 알았다. 그때부터 난 슬픈영화를 봐도 눈물이 흐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건 내가 일으키는 분별이고 거짓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잠시 뿐이였다. 앉아 명상 할때 공에 집중만 하면 너무 편안했지만 명상만 하면 잠을 잤다. 그러다 저러다 절에 다니지 않고 명상만 하면 잠을 자니 돌 주우러 다니고 그림 그리고 그러다 운동을 하게 되었다. 지금 할수 있는게 스님법문 듣는 것 밖에는 딱히 명상을 못한다. 지금도 자리를 잡고 앉으면 허리도 아프고 잠만 온다. 이제는 슬픈영화를 보면 눈물이 난다. 그냥 한순간의 체험으로 지나간 건지? 그때부터 도저히 알수없는 경전의 내용이 이해는 된다. 그때 스님들께서 말씀하신 보임을 잘했으면 좀 마음편히 살수 있을까? 보임을 못 한건지? 이렇게 스님법문만 들어도 보임인지?
그때 내가 쓴시 생각 즉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이 텅비어 있다. 하지만 마음을 일으키면 온갖 분별 망상과 함께 세상이 일어 난다. 순간 순간 생멸하니 현재도 없다. 생멸하면서 저장된 나의 마음을 보고 있을 뿐이다. 세상은 텅비어 고요하기만 한데 내마음이 시끄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