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대동의 역사
석대동(石坮洞)은 일제시대에는 동래읍에 편입되었다가 1942년 부산시에 편입되었고, 1957년 동래구에 속하였다. 1978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해운대 출장소에 편입되면서 해운대구 관내에 들게된 지역이다.
석대란 지명은 조선조부터 사용해 왔으나 정확한 연원을 알 수 없고 ‘대(坮)’는 ‘대(臺)의 옛자로 동네안에 지명처럼 돌로 쌓은 높은 곳이나 이에 준하는 넓은 반석 등 지명과 관련된 사항은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자연부락으로 상리와 하리가 있으나 이는 윗마을, 아랫마을이란 뜻으로 석대라는 지명과는 무관하다.
마을 앞으로는 석대천이 흐르고 있으며 옛날에는 물이 맑고 경치가 좋아 이 일원에도 풍류를 즐길만한 좋은 자리가 있었던 곳으로 오늘날 석대란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짐작 되어진다.
영양천씨의 집성촌으로 지금도 많이 살고 있으며 일문에는 5효자 1효부 전설이 전해지고 있고 효성을 기리기 위해 마을에는 정려각(旌閭閣)이 세워졌다.
특히 이 마을에는 느티나무, 이팝나무, 소나무 등 수명이 오래된 보호수가 많으며 반송과 경계지역에는 옛날 도자기를 굽던 곳이 있어 옹기골이란 지명이 전하고 있으며 동천교를 지나 석대동 마을 입구에는 높이 79.4m의 추마산(趨馬山)이 있다.
상리와 하리 사이의 안골에는 부산시에서 1987년 6월부터 생활 쓰레기 매립이 시작되어 1992년 12월까지 총사업비 24,100백만원을 투입 쓰레기 매립이 완료되었다.
특히 이 마을은 화훼단지가 조성되어있어 부산에서 소비되는 꽃의 대부분을 여기서 충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