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 다닐적에 대통령은 군인 출신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을 혼자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았다. 교련시간에 점박이 무늬가 들어간 교련복을 입고 집체훈련을 했다. 1년에 한번 교육청에서 제식훈련을 참관하러 나왔다. 우리는 뜨거운 땡볏 아래에서도 "앞으로 가, 뒤 돌아가, 큰걸음으로 가, 어깨위의 총" 등 열병 연습을 했다. 날씨가 더운 날은 핏핏 쓰러지는 친구도 여럿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박정희대통령 시해 사건이 있었다. 1979년 10월 26일 흔히 말하는 10.26사건이었다. 그날 학교 운동장에 모든 학생들이 모였다. 닭대가리란 별명으로 불렸던 교장선생님이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박정희대통령이 돌아가셨슴을 발표하셨다. 처음의 울먹임은 차츰 울음으로 바뀌었다.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이신 박정희 대통령이 어제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모두 고개를 숙여 묵념합시다." 교장선생님의 울음에 나도 콧날이 시큰해지는것을 느꼈다. 누군가는 "에이, 그 놈의 인간 잘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왠지 나라의 큰별이 떨어지고 우리나라가 곧 망하는게 아닌가, 북한괴뢰군들이 처들어오는게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그 당시 정치가 무엇이고 독재가 무엇인지 알질 못했다. 그 전 1974년 8월 15일 대통령의 부인이셨던 육영수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죽임을 당했었다. 지금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육여사의 영구차를 뒤에서 어루만지는 모습이다. 국화로 온통 둘러쌓여 있는 장례차를 뒤에서 밀면서 힌장갑으로 눈물을 훔치던 늙은 남자의 쓸쓸한 모습이었다. 박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뒤석여 있고, 추종자와 반대자가 너무 다른 이견을 가지고 있음을 지금은 알고있다. 올해 (2024년) 노벨경제학상를 수상한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보면 한국은 박정희란 독재자를 만났지만, 박정희는 경제를 포용적으로 운영했고 그래서 우리나라 경제의 기틀을 놓았다고 한다. 박정희대통령도 공과가 있지만 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경제적 부국에 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는 오랜시간 대통령자리에 있으면서 다른 독재자들과 같이 자기 주변의 군인, 엘리트, 경제인들에게만 권력을 나눠주고 특혜를 주었다. 그는 정권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감옥에 보냈다. 분명한 실정이고 잘못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면을 생각하면 가련한 생각도 든다. 오랜시간 권력의 1인자로 살다보니 주변에 아첨꾼이 많이 모이게 되었고 귀를 막고 눈을 어둡게 했다. 사랑했던 부인이 갑자기 총을 맞아 세상을 떠났으니 그 슬픔을 잊기가 쉽진 않았을것이다. 청와대가 개방되어 방문을 했었다. 넓고 넓은 청와대는 북악산에 쌓여 있었다. 홀로 그 넓은 공간에서 부인을 사별한 남자, 그는 술과 가무로 시름을 잊길 원했던 같다. 그러니 나라가 잘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전국에서 유신철패와 대통령 하야를 원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져갔다. 그러다 마침내 궁정동에서 한 발의 총성으로 죽음을 맞이했으니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다. 만약 그가 더 오랜시간 권력을 잡고 있었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했을까? 아마도 오랜시간 독재자들이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나라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가난하고,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을것이다. 이점이 역사의 우연이고 아이러니다. 10.26사건 이후 정국은 더욱 시끄러워지고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더 거세졌다. 그런데 정국은 국민들이 원하는데로 흘러가지 않았다. 박대통령을 보고 배워서인지 보안사에서 정보를 쥐고 있던 군인 전두환이 다시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게 된다. 호랑이를 피하니 늑대를 만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기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는 만행을 저지른다. 우리는 그런 역사를 같이 살았다. 그시절 나는 어렸고 흘러가던 역사를 잘 알지 못한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고 있었다.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죽임을 당하고, 이한열이 시위 중 최류탄에 목숨을 잃고 수많은 대학생들이 투신과 분신을 했다. 나는 대학을 다니던 친구들을 만나 시위하는 내용을 대강은 조금씩 들었고, 학생들이 왜? 시위에 참여해야 하는지도 들었다. 그러면 나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 내가 만약 지금 대학을 다닌다면 분신도 마다 하지 않았을거라고" 항상 나 자신이 그 입장에 처하지 않았을 때는 호기롭게 말할 수 있었다. 내 친구중엔 운동권 친구가 없었고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하며 지켜볼 뿐이었다. 정말 내가 그때 대학교를 다녔다면 의식화 되어 운동권 생활을 하며 살았을까? 시위현장마다 코를 손수건으로 막고 앞장서 짱돌을 전경들과 닭장차에 던졌을까? 옥상에 올라가 전단을 뿌리고 내 한목숨을 초개와 같이 투신했을까? 중정이나 보안사에 잡혀 들어가 조리돌림을 당하고 물고문을 당했다면 나는 얼마나 견딜 수 있었을까? 나는 그때 고등학생이었고, 은행에 갓 입사한 병아리 행원으로 내 앞가림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막걸리 한사발과 젓가락으로 "선구자"와 "아침이슬"을 부르며 대학생 흉내만 내고 있었다. 여자 뒤꽁무니나 따라다니고 짝사랑에 빠져 울고불고 있었다. 내 주변에는 정국과 관련하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렇게 세월은 둥실둥실 떠서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