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무쌍했던 상주의 엉터리 신주 연기로 갑을 철저히 응징
이에 대한 갑의 보복도 만만치 않다. 상주 장군이 된 갑은 이전에 을에게 진 빚을 톡톡히 갚는다.
그 뒤에 을이 어버이 상을 당해 갑이 와서 보복을 할까봐 날마다 끙끙거렸다.
그러다가 갑은 열흘이 지나서 찾아와 문상을 한 뒤에 안부를 물었다.
갑 : [신주는 만드셨는가?]
을 : [아, 이미 만들었다네...]
갑 : [내가 신주를 만들어 올리려고 했더니만, 마침 다른 일 때문에 출타하여 그 일을 이루지 못했으니, 이를 어쩌나? 매우 송구스럽다네.]
갑은 그렇게 하고 몸을 일으키더니 신주 앞에 나아가 신주함을 열어 본 뒤에 태연히 인사를 하고 나가는 것이었다.
상주는 문에 이르러 그를 배웅했는데, 갑은 문 밖에서 소매 안으로부터 신주를 꺼내더니 상주에게 슬쩍 보여 주었다.
상주는 그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네, 이게 무슨 도리인가?]
갑은 저번에 당한 것을 보복하려고 몸을 홱 돌리더니 잽싸게 달아났다.
그러자 상주는 상복도 벗지 않은 채 상장(喪杖)을 들고 그를 뒤쫓아갔다.
갑은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내달렸는데, 그 마을을 한 바퀴를 빙 돌았더니
고을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놀라지 않는 자가 없었다.
아이들이 다투며 따라 오자, 볼 만하여 구경꾼이 무리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갑은 신주를 도랑에 휙 던지고 내달렸다.
상주는 급히 건져내어 가슴에 품었으나 분통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는 속으로 흐느껴 울며 돌아 와 그것을 깨끗이 씻어 봉안하고 울먹였다.
[이 모두 불효자의 죄입니다.]
그는 봉축을 마치고 궤를 열어 보았는데, 궤 속의 신주는 예전처럼 아무런 일 없었다.
其後 乙生 曹親喪 深 慮甲生來報嫌 日日悶之 旬後始來 弔問後 仍問曰 造主否 曰已成矣 曰吾當早來題主 而適因事出他 未遂如誠 是 豈情耶 深切愧歎 仍起身詣神主前 啓櫝見之後 天然辭去 喪制送至門 甲生在門外 自袖中 出神主而視之 喪制見之 大警曰 是何道理 甲生 欲報前日之嫌 仍回身走去 喪制不脫喪服 携喪杖追去 甲生 回回逃去 遍踏一邑 一邑男女 老少 莫不驚駭 童稚爭隨 觀光成群矣 畢竟 投之於潦水而走 喪制 急入拯取 盛之懷中 不勝痛忿 掩泣而返 淨洗而 將欲奉安 泣告曰 都是不孝子之罪也 祝畢開櫝 櫝中神主 依舊無恙矣. [破睡椎]( 27話 : 假神主). [栖碧外史海外蒐逸本](卷26).
을은 어버이 상을 당했는데, 갑의 보복을 두려워한다. 지난번에 자기가 갑에게 농학을 한 것이 갑으로부터 보복을 받을 만큼 지나쳤기 때문이다.
을이 걱정한대로 갑의 보복 행위는 주도면밀하게 실현된다.
갑은 문상하고 나서 을에게 신주를 만들었느냐고 묻는다. 을은 이미 그것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갑은 을의 어버이 신주함을 열어 보고는 나가는 길에 자기 품안에 들어 있는 신주함을 슬쩍 보여 준다.
이 신주함은 갑이 일부러 만들어 온 것이다.
이에 을은 녀석이 자기 어버이의 신주를 훔쳐 가는 것으로 착각한다. 갑은 을이 자기의 술수에 제대로 말려 든 것을 확인하고 줄행랑을 친다.
남의 신주를 훔쳐 달아나는 친구와 그 뒤를 따라 가는 상주의 모습을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남의 조상 신주를 훔쳐서 인정사정 없이 시속 100km로 내빼는 놈!
슬픔에 젖어 망연자실해야 할 상주가 상복을 입고 대나무 지팡이를 들고 추격하는 광경.
온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이들의 우스운 행각에 마을의 어린 아이들이 줄을 이어 따라 갔을 것이다.
물론 구경꾼도 뒤따랐을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상황 설정을 통한 코미디 연출)
이 무렵, 갑은 신주를 도랑에 던져 버리고 행적을 감춘다.
을은 분통을 참고 신주를 건져내어 가져갔으나, 원래의 신주는 아무 탈이 없었다.
을은 갑에게 철저히 속는다. 신성하게 모셔야 할 신주를 두고 친구는 이처럼 농학을 실현한다.
조선 시대의 경우, 조상의 신주는 생명처럼 소중히 다루어야 할 대상이다.
신성하게 모셔야 할 신주를 훔치는 있을 수 없는 상황 설정과 연기를 통해 웃음을 유발했다.
지난 번 모욕에 대한 철저한 응징과 설욕전을 완수했다.
출처 : 이원걸. [조선 후기 야담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