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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가 ‘한국의 간디’라 부른 박태준 회장...3가지가 달랐다 [송의달 LIVE]
21세기 한국의 ‘롤 모델’ 지도자
①짧은 인생을 영원(永遠) 조국에
②천하위공과 멸사봉공
③성숙한 대일본관(對日本觀)
송의달 에디터
입력 2023.01.1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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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靑巖) 박태준(朴泰俊) 포항제철 회장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국가 건설자(state-maker)입니다. 1927년 경남 동래군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따라 6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초중고교를 다녔고 와세다대 공대 2학년 재학 중 해방을 맞아 중퇴·귀국했습니다.
청암 박태준 포항제철(현 포스코) 창업자 겸 회장. 1988년 당시 쇳물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성분을 조정하는 포항제철소 제강 공장의 전로(轉爐)를 배경으로 촬영했다./조선일보DB
육사 6기로 임관한 그는 6.25 전쟁 당시 경기 포천지역 1연대 중대장이었습니다. 군에서 충무무공훈장·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육군대학 수석 졸업 후 최연소 육사 교무처장, 1군 참모장 등을 지냈습니다.
◇한국 정·재계의 중심 인물
34세이던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을 맡은 그는 이후 50년 동안 요직(要職)을 맡았습니다. 육군 소장 예편→대한중석 사장(3년)→포항종합제철 사장·회장(25년)·명예회장→민정당 대표·민자당 최고위원·자민련 총재·4선(選) 국회의원→국무총리….
누가 봐도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과 부(富)의 중심에서 누릴 수 있는 걸 다 누린 인생’의 전형입니다. 흔히 부패 인사, 독재자 같은 비난을 받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지낸 좌파 진영 소설가인 조정래씨는 “박태준은 한국의 간디이다. 나는 그의 이름에 마하트마를 붙여 ‘마하트마 박’으로 부르고 싶다”고 했습니다(2011년 12월 17일 서울 현충원 영결식장 ).
박태준 회장의 20대 장교 시절 모습/조선일보DB
한 사람의 일생이 ‘성(聖)스러운’이라는 뜻의 ‘마하트마(Mahatma)’로까지 칭송받는 것은 여간 일이 아닙니다. 박태준 회장(이하 청암으로 호칭)에게 어떤 남다른 측면이 있는 걸까요? 통상대신(通商 大臣) 시절 포항제철을 방문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회고입니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느낀 것은 종업원들이 너 나 없이 마음으로부터 박태준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감명을 거기서 받았다.”
◇용광로 같은 애국심과 무사욕(無私慾)
이는 청암이 자신의 좌우명(座右銘), 즉 ‘짧은 인생을 영원(永遠) 조국에’에 철저해 탁월한 업무 능력과 강력한 도덕성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평가입니다.
경북 포항시에 있는 포스코(옛 포항제철) 본사 정문. '유한한 자원을, 무한한 창의로 이겨내자'는 박태준 회장 이래 포스코의 정신적 전통이자 기백이 적혀 있다./조선일보DB
그는 실제로 1964년 12월 국영기업체인 대한중석 사장을 맡은지 1년 만에 만년적자(萬年赤字)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습니다. 보통 4~5년 걸리는 종합제철소 건설 작업을 제철소 구경조차 한 적 없는 38명과 함께 착공 3년 3개월만에 마쳤습니다.
조업 첫 해인 1973년 포항제철은 매출액 1억달러·순이익 1200만달러를 냈습니다. 가동후 50년 가까이 적자였던 일본 동종 업계와 비교하면 ‘기적’적인 일입니다. 포항제철은 세계 철강사에서 제철소 가동 첫해부터 이익을 낸 유일한 기업입니다.
1968년 포항제철소 건설 부지에 100만원을 들여 지은 60평짜리 2층 목조건물 모습. 사막이나 다름없는 황무지에 모랫바람을 맞으며 중장비들과 함께 들어선 모습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롬멜 전차군단과 같다고 해서 '롬멜하우스'로 불려졌다./포스코
청암은 제철소 공기(工期) 단축을 위해 하루 24시간 작업을 지시해 놓고 자신도 매일 3~4시간 잠 자며 현장을 챙겼습니다. 1968년 포항제철 출범부터 1992년 광양제철소 2기 완공까지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포항 효자동 사택과 회사에서 지내 ‘효자사 주지스님’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솔선수범’하는 경영자인 동시에 ‘무사욕(無私慾)’의 리더였습니다. 피와 땀을 쏟아 창업하고 성장시킨 포스코에서 25년 만에 물러날 때, 그는 한 주의 공로주(功勞株)는커녕 퇴직금 1원도 거부했습니다. 1988년 포항제철 임직원 1만9419명에게 전체 발행 주식의 10%를 우리 사주(社株)로 배정했을 때도 같았습니다.
명예회장으로 복귀한 뒤 “노후를 생각해 조금이라도 스톡옵션을 받으시라”는 주변의 권유에 그는 “포항제철은 선조(先祖)의 피로 세운 회사이다. 공적인 일을 할 때 사욕(私慾)을 갖지 말라!”고 일갈했습니다.
경북 포항에 있는 포스코 역사관 내부 모습/조선일보DB
◇주식·퇴직금 ‘0원’...73세에 전셋살이
“청암의 도덕성은 무서울 정도였다. 그분의 리더십 근간은 청렴결백(淸廉潔白)이었다”(황경로·포스코 2대 회장)는 증언 그대로입니다. 인사 청탁과 금품 주고받기[授受]가 난무하던 1956년 11월, 그는 세칭 ‘노른자위’ 자리인 국방부 인사과장이 됐습니다. 그러나 청암은 유혹 및 압력과 싸우다가 10여개월만에 25사단 참모장 근무를 자원해 갔습니다.
포항제철 사장 시절 아버지가 “문중 사람들을 좀 써주면 안되겠냐”고 하자, 청암은 그대로 방을 나와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1962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준 하사금을 합쳐 서울 북아현동에 집을 마련하기까지 그는 8년 새 15번 전셋집을 전전했습니다. 38년간 살던 집을 2000년에 팔아 생긴 돈 14억 5000만원 중 10억원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고 73세에 다시 전세살이를 했습니다.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이 1970년 2월 초 정치인과 정부 관료들의 정치자금 및 리베이트 상납 요구와 각종 간섭 등을 보고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외압 차단을 약속하며 서명해 써 준 종이. ‘종이마패’로 불렀다./조선일보DB
1992년 10월 3일 개천절, 서울 현충원 박정희 대통령 유택 앞에서 임무완수 '영혼 보고'를 하는 박태준 회장. 그는 1948년 육사 강의실에서 탄도학을 강의하던 박정희 당시 대위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1960년 부산군수기지 사령관 참모장과 국가재건최고위 의장 비서실장으로 인연을 이어갔고 대한중석 사장과 포항제철 사장에 발탁됐다. 1965년 "고속도로를 내가 직접 감독할테니, 종합제철은 임자가 맡아"라는 박정희의 한마디가 철강왕 박태준 쇳물 인생의 시작이었다./포스코
그가 사후에 남긴 재산은 전무(全無)했고, 말년에 생활비와 병원비는 자녀 5명(4녀 1남)의 도움으로 해결했습니다. 청암을 다룬 평전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의 저자인 이대환 작가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단군 이래 최대 프로젝트였던 포항제철 25년 동안 박태준은 한 푼의 비자금도 만들지 않았다. 이는 누구도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20세기 후반 한국사에 길이 기록될 업적이다. 이거야말로 박태준의 이름을 포철 용광로만큼이나 칭송(稱頌)해야 할 일이다.”
경북 포항시 포항공대(포스텍) 캠퍼스 내 노벨동산에 세워져 있는 박태준 회장 동상. '강철거인'과 '교육위인'이 새겨져 있다./포스텍
◇“천하는 개인 것이 아니다”...‘멸사봉공’
‘천하위공(天下爲公·천하는 개인의 사사로운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公]의 것). 이 한 마디는 청암의 생애를 관통하는 또다른 정신적 기둥입니다.
1970년 포항제철에 사상 처음 6000만원의 보험회사 리베이트 자금이 생겼을 때입니다. 청암이 이 돈을 청와대로 들고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포항제철의 예산에서 빼낸 것이 아니고 공돈이니 통치 자금에 보태 쓰시라”고 건네자, 박 대통령은 “임자 마음대로 써라”며 돌려주었습니다.
청암은 그러나 이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다 회삿돈을 더 보태 임직원 자녀들을 위한 제철장학회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세운 학교만 포항과 광양에 모두 27개입니다. 한국 기업 최초로 임직원 자녀 대상 전액 대학 장학금 제도와 한국 최초의 연구 중심대학(포항공대)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1970년 4월 1일 거행된 포항제철 1기 공사 착공식. 오른쪽부터 김학렬 부총리, 박정희 대통령, 박태준 사장이 버튼을 누르고 있다./조선일보DB
국영기업 최고경영자(CEO)로 30여년 재임하는 동안, 청암에게는 고가(高價)의 설비 구매나 원료 도입 결정을 둘러싼 정치 자금 협조와 인사 청탁, 리베이트 요구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불법 뇌물인 정치 자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정치 무풍지대’를 고수했습니다. 이는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 대통령의 무한(無限) 신뢰와 청암의 ‘천하위공’ 자세가 어우러진 덕분입니다.
청암이 현실과 적당히 타협했다면, 포항제철은 부실 회사로 추락하거나 지금도 적자를 걱정하는 2~3류 기업으로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1965년 한일(韓日) 국교 정상화를 하면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對日) 청구권 자금 일부로 세운 ‘국민 기업’이라는 칭호도 퇴색했을 게 분명합니다
장교 시절 당번병을 쓰지 않았던 청암은 통행금지를 지키다가 첫 아이를 잃었습니다. 그는 멸사봉공(滅私奉公)과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입으로만 외치지 않고 국제 가격보다 20~40% 저렴하게 양질의 철강 제품을 국내 기업들에 공급하면서 흑자 행진을 이어가는 ‘제철보국(製鐵報國) 경영’에 목숨 걸었습니다.
회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는 “우리가 실패하면 조상에게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 ‘우향우(右向右)’서 영일만 바다에 투신하자”고 외쳤고 그때마다 새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있는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의 묘. 2020년 8월 모습이다./송의달 기자
1979년 박정희 서거후 청암은 “포항제철을 정치 외풍에서 지키기 위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놨습니다. 1990년 3당 합당 후 민정계의 수장(首長·최고위원)이 된 그는 김영삼 대통령 후보와의 불화로 1992년 말 민자당 최고위원·포항제철 회장·국회의원직에서 모두 물러났습니다.
문민 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3월부터 4년여 해외를 떠돌던 청암은 포항제철 계열사와 협력업체에서 약 39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1995년 특별사면돼 공소기각 결정을 받았습니다. 청암에게도 흠결이 있지만 그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사회 지도층에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책무)에 충실한 이도 드뭅니다. 소설가 조정래씨는 다른 추도문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너나 없이 돈에 홀려 정신 잃은 세상에서 박태준의 길을 따라가기란 너무 어렵고, 어쩌면 그 분은 이 시대에 마지막 애국자인지 모른다. (중략) 정직·청렴한 그 분을 바로 아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바르게 세우는 길이다.”
진보좌파 진영의 소설가 조정래씨가 2007년 발간한 박태준 회장 전기(傳記)/조선일보DB
◇성숙한 일본관...知日과 用日·克日
청암의 세 번째 남다른 측면은 차원높고 성숙한 대일본관(對日本觀)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백성’으로서 일본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그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 두 개가 있습니다.
이야마 북중학교 1학년때 교내 수영대회에서 1등을 했지만 ‘조선인’이란 이유로 일본인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우승을 빼앗긴 일과 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도쿄 시내에 미군의 폭탄이 쏟아지던 날 방공호에서 겪은 일입니다.
“그때 방공호는 질서가 정연했다. 노인들, 특히 할머니들이 나섰다. ‘젊은이는 안으로 들어가라. 위험한 곳은 우리가 막는다. 왜 책을 들고 오지 않았느냐? 젊은이는 책을 펴고 공부해라.’ 방공호 입구에 천막이 쳐지고 젊은이가 모인 제일 안쪽엔 두 개의 촛불이 켜졌다.”
청암은 “1등을 뺐겼을 때 가슴 속이 끓었지만 참고 다스렸다”며 “방공호에서 할머니의 질책을 들었을 땐 식민지 청년으로서 고국(故國)에 대한 책임감에 몸서리쳤다”고 했습니다. 그는 일본이 준 분노는 참고, 감동은 받아들여 조국 재건을 위한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그의 진면목(眞面目)은 포항제철 건설 자금 마련을 위한 협상에서 드러났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1965년부터 종합제철소 건설을 추진했고, 이듬해 11월 미국·영국·독일 등 5개국 8개 회사 연합체인 대한(對韓)국제제철차관단(KISA·Korea International Steel Associates)이 발족했습니다.
1976년 5월 31일 포항제철 제2고로 화입식(火入式)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과 함께 불을 넣고 있다./조선일보DB
KISA는 그러나 1969년 상반기 “한국에서 종합제철소 건설은 채산성이 없다”며 ‘최종(最終) 불가(不可)’ 결론을 내리고 붕괴했습니다. 세계은행(IBRD)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은 제철소 건립 자금을 모을 방법이 없는 ‘고립무원(孤立無援)’ 처지가 됐습니다.
여기서 청암은 ‘농림수산업 지원 용도’로 정해져 있는 대일(對日) 청구권 자금을 포항제철 건설 자금으로 일부 전용(轉用)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자신이 ‘해결사’로 나섰습니다. 이 제안에 완강하게 반대하던 오히라 마사요시 대장상(大藏相·우리나라의 기획재정부 장관)을 1969년 8월 1주일 동안 세 차례 만났습니다.
청암은 일본 정부간행물보관소를 찾아샅샅이 뒤져 일본 사례를 분석한 뒤 “한국에 제철소를 지으면 일본 안보에 큰 도움된다”는 논리를 설파해 설득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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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박태준 회장이 이나야마 일본철강연맹 회장 겸 신일본제철 회장(오른쪽)을 만나고 있다./조선일보DB
전 세계가 하나같이 “한국에서 제철 산업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할 때, “난국에 빠진 조국을 구하겠다”는 청암의 순정하고 강렬한 애국심이 일본 지도층을 감복시킨 것입니다. 그의 완벽한 일본어와 일본인의 문화적 특성과 심리를 꿰뚫는 실력도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당시 그를 만났던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는 “나는 박태준의 단호함에 너무 놀랐고, 그래서 당신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감정적인 반일(反日) 데모가 끊이지 않던 1960~70년대, 청암은 “일본을 알고 일본을 활용해 일본을 극복하자”는 ‘지일(知日)·용일(用日)·극일(克日)’의 3단계 일본 대응을 주창했습니다. 청암은 포항제철의 ‘스승’이던 신일본제철을 1990년대 추월해 그 타당성을 증명해 냈습니다.
포항제철소 모습/조선일보DB
불굴의 용기와 투지로 청암이 일궈낸 한·일(韓日) 협력 모델은 대한민국의 진정한 산업화와 선진화의 불을 붙인 본격 출발점이었습니다. 현해탄(玄海灘·대한해협) 양쪽에 자유민주·시장경제라는 동일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긴밀하게 협조하며 고도성장을 질주했습니다.
◇“후세 경영자들에게 살아있는 교본”
1978년 중국의 덩샤오핑이 이나야마 요시히로 신일본제철 회장을 만나 “중국에도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하자, 요시히로 회장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습니까”라며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이 일화는 박태준이 한국을 넘어 최소한 ‘아시아적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그가 세우고 이끈 포항제철은 그의 생전에 품질 경쟁력 세계 1위 철강사가 됐고, 양적으로도 1975년 세계 46위에서 3위(1989년), 1위(1997년)로 급부상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한국 조선·자동차·기계·건설 산업의 성장과 대한민국의 경제대국 도약은 한낱 ‘꿈’에 그쳤을 것입니다.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박태준 사장과 박종태 포항제철소 초대 소장 등 직원들이 제1고로(용광로)에서 사상 첫 쇳물을 뽑는 데 성공하자 다같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고 있다./포스코
기술도 자본도 없는 철강 불모지(不毛地)라는 차가운 현실에 좌절 않고, ‘세계 1등’과 ‘초격차 경영’을 선구적으로 이뤄낸 박태준은, “후세의 경영자들을 위한 살아있는 교본”(이병철·삼성그룹 창업주) 그 자체입니다. 그는 1977년 8월 공정률 80%짜리 건물의 부실(不實)을 발견하고 서슴없이 폭파 명령을 내리면서 “조국의 백년대계가 여기서 출발한다. 이것은 폭파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기폭제다”라고 했습니다.
1977년 8월 1일 포항제철 3기 공사 중 불량 구조물 폭파 모습/포스코
◇“현장의 선비”...10년 후를 내다보라!
선조들의 핏값과 후손들의 미래라는 숭고한 대의(大義)를 한시도 잊지 않는 청암이었기에 그는 어떠한 부실·부정(不正)·불의(不義)와 거래할 수도, 눈 감을 수도 없었습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의 저명(著名) 인사들은 모두 강당에서의 선비이고, 책 속의 선비, 말 속의 선비였다. 그러나 박태준은 지(志)와 의(義), 그리고 렴(廉)과 애(愛)를 ‘행동’으로 실천한 ‘현장의 선비’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돈에 대한 집착과 사익(私益) 추구가 극심합니다. 국민들은 그래서 진정한 사표(師表)이자 롤 모델(role model)이 되는 지도자를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정세와 수십 년된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지금, 청암이 평생 붙잡아 온 4가지 화두는 우리의 갈 길을 비추는 빛입니다.
①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②절대 절망(絶望)은 없다 ③어디서든 세계 1등이 되자 ④10년 후를 내다보라!
2023년은 마침 대한민국 최초인 포항제철 고로(高爐·거대한 용광로)에서 쇳물을 처음 쏟아낸 지 반세기(半世紀), 청암이 이 땅을 떠난 지 12년을 맞는 해입니다.
2011년 12월 17일 오전 서울 강남 포스코 본관에서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 영결식 모습/뉴스1
2011년 12월 17일 오전 서울 강남 포스코 본관에서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 영결식 모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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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서 홍콩특파원, 산업1부장, 오피니언 에디터로, 조선비즈에서 대표이사(CEO)로 일했습니다. 현재 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 겸 에디터로 '송의달 LIVE'와 뉴스레터 '송의달의 모닝라이브'를 연재합니다.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혁명>(2021년), <미국을 로비하라>(2007),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의회>(2000)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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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Y44
2023.01.15 14:19:58
박정희 박태준이 대한민국을 이만큼 키워 논것이다,하지도 못하는 것들히 반대나 하고 나라 좀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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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세상사람들
2023.01.15 17:30:50
좌파에 이와 필작할 인물이 있습니다. 자신을 청렴결백하다고 하시는 분이죠. 이재명. 호
하쿠나마타타
2023.01.15 16:22:28
대한민국 산업현장에 일획을 그어 온 철강맨으로 그의 업적은 만대에 빛날 것이다. 아랫글에 절대 동감하며 우리의 영웅들에 좌파들에게 궂이 명찰을 달아준다면 먹칠먹추위인이다.
테스형아
2023.01.15 15:07:53
박정희,박태준은 머리와 몸으로.... 좌파들은 주딩이로만....
로타블루
2023.01.15 14:09:38
누구도 저분의 인생역정에 토를 달수는없다 이병철,정주영,김우중,박태준...이나라 근대화를 이끈 4두마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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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post
2023.01.15 16:41:32
사두마차를 누가 몰았겠는 가? 철이 없어 한일 회담 반대를 하던 1960년대의 나를 돌이켜 보면 역사의 큰 영웅을 몰라본 필부로 부끄러움이 끝이 없다. 이 민족을 일깨우고 이끈 박정희 대통령을 늘 마음에 품고 한민족이 번성하기를 기원한다.
사냥개
2023.01.15 13:53:50
조정래는 좌파 이닌가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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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湖浪客
2023.01.15 15:57:56
좌파 문인 조정래가, 유일하게 긍정 평가한 인물이 박태준회장입니다. 좌파의 눈에도 저 분은 트집 잡을게 한점 없으셨지요. 말년에 김영삼이란 골통이, 대권선거에서 자기를 지지해 주지 않았다고, 대통되고 나자 정치보복하여, 팔자에 없는 일본 망명생활도 하셨지요. 참으로 우리 민족사에 영월히 남을 진정한 영웅이십니다.
탁구초짜
2023.01.15 14:28:40
저도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일부러 읽지 않았지만 조정래의 박태준 포철 사장 인물평은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대한민국의 마하트마 박" 박태준 사장은 박정희 대통령과 비견될 정도, 말년은 오히려 더 나은 삶을 살았네요. 김종필보다도 더 애국자였네요. 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포항제철, 포항공대, 우연히 만들어진게 절대 아니고 박태준 사장 덕이였네요. 윤석열 대통령이 본받아야할 인물입니다. 자유대한민국 화이팅 !!!
dkwltkdl
2023.01.15 14:44:07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회장이 계셨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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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E
2023.01.15 14:19:31
우리에겐 거인들의 역사가 있었고 그 거인들로 인해 우리가 지금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는 걸 국민에게 뼛속깊이 알리기도 부족한데 부정하는 인간들에 의해 무너지는 현실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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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인
2023.01.15 14:35:01
박태준, 정주영, 이병철... 등 당시 대한민국 근대화에 앞장 섰던 사람들은 모두 박정희 대통령의 바둑 돌이었다. 빨치산 아들 조정래가 박 회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말은 처음 접했는데 그런 그가 박정희는 왜 증오했지? 박정희가 없었으면 박태준도 없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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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rigado
2023.01.15 14:46:24
중국의 등소평이 박태준 회장을 중국에 모시고 싶다라고 한 일화도 있었지요. 대한민국이 배출한 진정한 영웅중의 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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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짱
2023.01.15 14:52:27
박통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그와 비견되는 사람이 현재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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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2023.01.15 14:27:44
비록 태백산맥을 쓴 사실상 종북인 사람이 쓴 글이지만 내용이 충실하고 청암의 인생을 매우 잘 묘사했다. 청암 같은 지도자가 지금도 있어서 나라를 지도해야 하는데 핵위협 아래에 있는 국운이 걱정된다. 종북이 위험한 이유는 이런 사람의 글이 매우 재미있고 설득력이 잇어 사람에게 먹힌다는 것이고 거기에 은연중 종북 사상을 심어 사람들의 경계심과 비판정신을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태백산맥이 얼마나 재미있었던가는 읽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때 기소되었을 때 사실 검찰이 좀 너무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대중이, 무현이 등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하는 짓거리를 보니 한민족이 통채로 김일성 일족의 노예로 될 수도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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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네
2023.01.15 15:06:22
박태준 회장은 분명 한 세기에 출충한 인재 입니다 그에게도 일찍히 그의 재능을 알아준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기 가능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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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유공자
2023.01.15 14:30:31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중학교 때 계백장군에 대한 글을 읽고 감명 받았는데 자신을 우리나라를 위해 바친다는 정신을 가진 몇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혜택을 입을 것이다. 조선회사 초창기에 입사하여 근무 후 연금까지 받고 있으니 박태준회장님이 없었으면 우리나라 조선업도 생겨나지 못했으므로 내 인생도 그 혜택 받은 사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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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네
2023.01.15 15:10:38
문재인이 만약 이 글을 본다면 부끄러워 쥐 구멍으로 숨어야 할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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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나라
2023.01.15 15:15:10
오늘의 한국이 있도록 초석을 깐 위대한 위인이다. 이러한 위인이 박정희 아닌 다른 대통령을 만났다면 포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나라를 세계 영향력 6위가 되도록 토대를 마련하신 위대한 두분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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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분취
2023.01.15 15:16:34
(저는 동작 현충원에 산책을 20년간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곳의 박태준 선생의 묘에는 찾아온 분들이 바친 꽃들이 10년 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주위에서 기억되는 분은 현충원에 오직 이 분 뿐입니다. 첫 3년간은 부인께서 매일 오셔서 천막도 쳐주었구요. 아직도 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대한민국의 영웅이자 지도자이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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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네
2023.01.15 14:52:18
보수는 이분들의 국과 관을 설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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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옹
2023.01.15 15:33:56
글 중에 1970년 보험회사 리베이트로 받은 돈 6000만원을 들고 바로 청와대로 직행하여 박정희 대통령께 드렸다. 리베이트는 우리나라는 불법이지만 국제거래에선 합법화된 것으로 개인이 착복해도 된다. '이게 무엇인가?' '네 리베이트로 받은 돈입니다.' 박대통령은 펴보지도 않고 박태준회장에게로 다시 밀며, '임자 마음대로 쓰게.' 유명한 일화 중의 하나다. 그는 바로 그돈을 밑천으로 오늘의 포항공대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다. 지금 포항공대가 세계상위권 대학으로 발돋움하게된 초석이 된 것이었다. 카네기 보다 더 위대한 '진정한 강철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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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네
2023.01.15 15:13:12
아 ~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박태준 회장님 그 외 수많은 조국근대화의 인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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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남
2023.01.15 15:30:02
박태준에게 전권을 주고 신임한 박정희, 박태준의 박정희에게한 임무완수 보고, 지금 다시 박정희와 박태준 같은 지도자가 없게된 나라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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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2023.01.15 15:32:41
1993년 박태준 회장은 에너지 자원을 지금 확보해야 한다고 절박한 심정으로 여러차례 이야기를 했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김영삼은 박태준 회장의 이런 주장은 귓전으로 듣지도 않고 개혁 같은 개소리만 지껄여 되었다. 이후 대통령인 대중이는 imf극복을 구실로 기업들에게 해외 자원, 해외 농장.불필요한 재산이라면서 다 정리할 것을 강요했었다. 90년대는 소련 붕괴로 에너지 자원이 헐값이었다. 2000년 들어서면서 중국 인도의 성장과 함께 무섭게 에너지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었다. 만약 이 때 영삼이와 대중이가 박태준 회장 말대로 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해외에 수많은 자원을 확보했을 것이고, 작년과 같은 무역적자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 김영삼 김대중은 역적 매국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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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2023.01.15 15:34:37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자본금 200억도 안되는 현대차에 은행권이 1900억 넘는 돈을 지원하도록 유도했다. 김영삼 시절 자본금 천억 대 회사인 한보에 은행권이 5.5조를 대출해 주도록 하였다. 같은 상황이었는데도 현대차는 지금 세계 top3가 되었지만, 한보는 1997.1.13 부도를 냈고 imf외환위기로 가는 출발점이 되고 말았다. 이래서 지도자의 능력과 역량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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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Lee
2023.01.15 14:15:32
박태준씨의 헌신과 정열은 인정한다. 그러나 1980년대 포철과 업무로 접촉결과, 주요부서 부장급의 부패와 뇌물요구정도의 수법이 상상을 지나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어디든 사리사욕의 쥐새끼들은 있게마련이라고 혀를차고 돌아온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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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배
2023.01.15 16:10:26
질풍노도의 시절. 시대를 초월한 탁월한 혜안과 신념을 가진 몇몇 지도자들의 덕으로 현재의 대한민국이 가능해진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정주영, 이병철, 그리고 박태준..등등. 한세기에 한명 나올까 말까한 인재들이 그 당시 우리나라에 한꺼번에 여려 명이 나오면서 국운이 융성하기 시작했다. 그 덕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 현재 이러한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없는 현실이 너무 아쉽다. 그나마 현정부에 조금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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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달밤
2023.01.15 16:05:36
감희 대한민국의 근대사의 위인이라 할 만 한 분. 이승만. 박정희.박태준 멸사봉공의 본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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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북
2023.01.15 14:14:59
공상, 망상 소설가의 평은 여기서 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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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 flower
2023.01.15 17:21:03
기업보국의 스승 이병철, 황소를 몰고 38선을 넘은 정주영,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김우중, 송곳으로 바위를 뚫은 박태준,.... 이나라 경제를 부흥시킨 거두들이다. 박태준, 그는 도덕성과 의지와 실천력의 표상이다. 이 거두들의 생애와 업적을 교과서에 실어 후인들에게 사표가 되게 해야 한다. 애국적이고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자료를 찾아 글을 쓰는 송의달 기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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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청
2023.01.15 17:00:39
마하트마 청암 존경합니다 부디 편히 영면하시고, 땅에서 그랫듯이 하늘에서도 나라와 겨레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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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ak
2023.01.15 16:48:51
누가 뭐래도 박정희와 박태준의 만남이 대한민국의 산업기초를 다졌다. 포항제철의 토대위에 조선,자동차, 건설, 반도체등등의 모든 산업이 좀더 수월하게 일어설수 있었던 아닌가?? 이런걸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어야 되는데...문재인이가 김정은 만나서 가짜 평화쑈한것 그런거 교과서 실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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Николай
2023.01.15 15:23:09
박태준 회장 포스코를 만들고 기틀을 잡은 공과인정한다. 하지만 5.16쿠데타 세력과 같은군부출신으로서 전문적인 철강지식 없이 포스코 회장직에 임명한건 박정희 대통령의 군인 배려라고본다. 그가 훌륭한점은 무식한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멸사봉공 정심으로 포스콜르 국가기간산업으로 안착시키고 일본의 청구권자금과 신일본제철 기술을 활용하여 세계적인 철강기업으로 키운점이고 크게 존경 받아야 할점이다. 단하나, 포스코 자회사 이권사업을 박지만에게 거의 무상불하하여 지금기분으로 말하면 업무상 배임을 저지른 점은 실수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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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 flower
2023.01.15 17:42:35
"무식한 군인"이라고 쓴 것은 무식의 소치다. 그 당시 군이 가장 유능하고 높은 교육 수준을 지닌 조직이었다. 5.16쿠데타는 혁명으로 승화된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체제가 바뀌고, 국민들의 사고방식마저 바뀌어 국가진운의 전기가 되었다면 그것은 분명 '혁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MayFerry
2023.01.15 17:28:07
국부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은 멸사봉공 이 나라를 건설한 분이지만 중놈 아들 빨치산 소설가가 간디 운운하는 것은 치욕이니 삼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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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0119
2023.01.15 17:23:06
이분만큼 훌륭한 기업인은 없었다.존경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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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
2023.01.15 16:59:48
감동이고 눈물겹다 오늘날 이렇게 살게 된 곳은 다 이 분들의 선견지명이 있고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기에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룩해 놓은 것을 자꾸 친일 프레임으로 폄훼하고 깎아내리는 아주 나쁜 비겁한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한 것도 없으면서 온갖 모든 생활을 누리면서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참 나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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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길이
2023.01.15 16:37:57
오천년역사에 가난에서 해방시키고 세계강대국 반열에 우뚝 올려 놓은 사람은 박정희와 당시 박봉의 군인 공직자 간호사 광부 농부 근로자... 그중 가장 대표적 삼총사라면 박정희 박태준 정주영이다. 이세분은 심지어 중공까지 존경하며 세계인의 인정하는 위대한 인물이다. 그러나 문재인 패거리와 좌좀들은 박정희를 독재자라며 능멸한다. 60년대 군사독재자들은 거이 부정축재와 실각후 해외도피하였으나 박정희는 해외차관이나 청구권자금을 동전한푼도 아끼며 추운날 난방 더운날 선풍기도 아낄정도로 스스로 근검절약 청빈으로 이나라 일으킨 국부를 좌익들이 능멸하는 꼴 보면 울화통 치미른다. 역사는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을 올바르게 평가 할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문재인 따위는 박정희 발가락 수준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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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llyroger
2023.01.15 16:29:09
조정래 그냥 소설가 아니냐? 그 양반이 뭘 안다고 조정래 평가를 붙이냐? 기분 나는대로 지껄이는 사람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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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2023.01.15 17:46:47
박태준은 박정희 대통령 뜻을 받들어서 포철공장을 만들었지만 말년에 좌파들에게 자금지원 등 하여 이해못 할 짓을 했다.왜 그랬는지 미스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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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2023.01.15 17:43:41
포철은 어떻게 탄생 되었는가?1964년 박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하였는데,방문목적은 경제개발을 위한 차관을 얻는 것과 서독에 파견된 광부,간호원들을 위문하기 위함이었다.서독수상 에르하르트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박정희에게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고속도로,제철소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제철소를 만들면 이를 소비할 조선소,자동차공장을 만들라고 조언했고 서독의 고속도로를 자세히 견학한 후 귀국하여 고속도로 제철소 건설에 전력을 다 했다.국제사회가 제철소 건설에 외면하자 박정희는 대일청구권 자금을 사용하고자 김학렬 부총리에게 지시하여 일본의 동의를 받아 공장건설에 박차를 가했다.건설이 결정되자 박정희는 박태준에게 책임을 맡겼다.박태준은 공장건설을 잘해서 최고의 공장을 만들었지만 공과가 있다.박정희 공을 자신의 공인양 했고,포철재단을 자신의 아호로 했고,좌파 박원순재단에 10억기부,빨치산을 찬양한 조정래 등에게 지원 등 말년에 좌파들에게 아부했다.특히 중공 국가고문을 맡아서 기술을 전부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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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재
2023.01.15 17:13:36
자기 욕심을 챙기기 위해서 걸핏하면 국민이 어쩌고 경제가 어쩌고 하면서 죽창가 부르는 인간들이 읽고 깨우침을 얻어야 할 글인데... 하기야 같은 이슬을 먹어도 우유가 아니라 독을 만드는 뱀이 있는 곳이 자연계이니 이것도 신의 섭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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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네
2023.01.15 16:38:15
'73세에 전셋살이'(?) <표준국어대사전>전세살이(傳貰살이)[명사]전세 들어 사는 주거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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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자유
2023.01.15 16:29:49
포항제철 건설할 아이디어 내고 돈과 기슬 끌어 들인 박정희가 영웅이지 박태준을 포스코 영웅이라고 분칠 하는 건 역사에 대한 모욕이다. 특히, 반일선동가 조정래가 그런 말을 했다면 박태준 개인에 대한 아부요, 과장이요 날조가 분명하다. 포스코 공장에는 박정희 동상이 세워지고 기려져야 한다. 박태준은 조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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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2023.01.15 16:29:53
차기 포항제철 회장에 조국이나 이재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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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ak
2023.01.15 16:55:14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합니다.. 고로옆 순찰 할때 슬쩍 밀어서 그냥 없애 버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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